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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 현택훈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안드렁물 용천수는 말없이 흐르는데

사람들은 모두 별도천 따라 흘러가 버렸네

별도봉 아래 산과 바다가 만나 모여 살던 사람들

원담에 붉은 핏물 그득한 그날 이후

이제 슬픈 옛날이 되었네

말방이집 있던 자리에는 말발자국 보일 것도 같은데

억새밭 흔드는 바람소리만 세월 속을 흘러 들려오네

귀 기울이면 들릴 것만 같은 소리

원담 너머 테우에서 멜 후리는 소리

어허어야 뒤야로다

풀숲을 헤치면서 아이들 뛰어나올 것만 같은데

산속에 숨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지

허물어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돌아올까

송악은 여전히 푸르게 당집이 있던 곳으로 손을 뻗는데

목마른 계절은 바뀔 줄 모르고

이제 그 물마저 마르려고 하네

저녁밥 안칠 한 바가지 물은 어디에

까마귀만 후렴 없는 선소리를 메기고 날아가네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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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시인이 곤을동으로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 4.3사건 당시 잃어버린 마을인 제주시 화북1곤을동을 소재로 쓴 시가 영예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제주도 4.3사업소는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조명철)가 지난 15일 본 심사 끝에 제주시 용담동 현택훈(39) 시인의 곤을동을 시 부문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이번 제1회 제주4.3평화문학상에는 지난해 1220일 마감 공모한 결과 123명의 시 667편이 출품했었다.

 

심사를 맡은 시인 신경림(동국대 석좌교수)오랜 논의 끝에 곤을동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4?3평화문학상 제정 정신에 가장 근접한 시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4.3유적지인 곤을동은 현 씨의 고향 마을인 화북동에 속해 있어 지금도 현씨가 자주 찾는 등 오랫동안 천착해 온 곳이다.

 

목원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현 씨는 지난 2005년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시와정신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구 레코드를 출간했고 제주작가회의 편집위원, 고팡문학 동인, 본지 정토의 아침도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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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질경이의 꿈 / 임경묵

 

 

질경이도 꽃을 피우냐고요

바람이 구름을 딛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백산 정상에서

꽃 안 피우고 살아남는 게 어디 있나요

노루오줌도 찰랑찰랑 지린 꽃을 피우고

심지어 개불알꽃까지 질세라 덜렁덜렁

망태를 흔드는데요 사실 말이지

그렇게 아웅대며 서둘 필요는 없거든요

밟힐 때마다 새파랗게 살아남아

가끔 뿌리까지 헹궈주는 바람을 끼고

소백산 허리에 닥지닥지 달라붙은

저를 보신 적이 있잖아요

실직한 당신의 낡은 등산화 밑에서도

이렇게 구겨진 날을 밀어 올리잖아요

혹시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온 길이 후회되세요

흔적도 없이 지워드릴 수도 있거든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팍팍하고 힘들면

부담없이 제 발목쟁이를 또옥 따서

풀싸움이나 하면서 잠시 쉬었다 가세요

길 잃어 막막한 당신이 뿌리 채 뽑아서

하늘 높이 제기차기를 해도 그만이구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가진 그늘은

씨방처럼 부푼 땀방울들을 말리기엔

너무 키가 작으니까요

그러니까 제 발목쟁이를 드린다는 거예요

대신에 당신의 캄캄한 어깨를 껴안고

하산하던 씨앗 한 톨이

고개 묻고 돌아가는 당신의 뒤안길 혹은

보도블록 틈에 질긴 뿌리를 부리고 서서

언젠가 당신의 지친 발목쟁이에

입 맞출 수 있다면

저는 밟혀도 정말이지 괜찮거든요

 

이젠 당신도 다시 한 번

울먹이는 희망을 돌볼 시간이잖아요

 

 

 

 

체 게바라 치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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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동굴 탐사 / 박기동

 

 

어떤 상처는

살 속 깊이 흉터를 만든다

또 어떤 흉터는 돌에 박힌 그림처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어두운 화랑의 통로를 지나

암벽을 더듬는 내시경 벽화 앞에 멈춘다

화가가 동굴을 지나간 뒤

알타미라는 천만년을 보내고도 살아있었다

붓은 칼보다 깊다더니

통증은 도려내도 되살아났던 것이다

자라난 들소의 뿔이 칼자국을 불렀듯

쥐뿔같은 사랑도 상처로 남은

내 속을 지나간 사람 하나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시도 때도 없이 재발하는 불치의 그림 하나 얻었다

돌아와 다시

쓰린 공복을 지나 긴 잠복을 지나

모니터에 재연되는 한 폭의 후유증으로 돌아와

천만년 전의 상처를 들추는 오후 네시 경

 

 

 

 

 

[우수상] 함석장이 노인 / 정철웅

 

 

벌교장터 서너 평 좁은 가게

함석장이 노인 하루 온종일 함석을 두드려

만 오천 원짜리 조리 하나 만든다

그는 평생 입보다는 손으로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온 것이다

오십 년째 함석 두드리는 소리에

가게는 온종일 귀가 먹먹하다

하루 종일 입을 굳게 다물어야

함석조리가 함부로 새지 않는 것인지

그에게선 말 한 방울 허투루 새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손에 온몸을 얻어맞고

세상으로 나간 단단한 조리들은

제 아래 엎드린 파꽃들이나 상추들에게

몇 년째 끄떡없이 말씀을 뿌리고 있다

벌교 장바닥에 함석장이 노인

열아홉 나이에 배운 함석일

가르칠 열아홉은 어디에도 없고

온종일 입을 굳게 다문 채 함석을 두드린다

요즘에도 팔리는 만오천 원짜리 함석조리를

하루에 한 개씩은 거뜬히 만들고 있다.

 

* 조리: 물뿌리개

 

 

 

 

 

[우수상] 흐린 명조체의 시 / 현택훈

 

 

시립 도서관 벤치 옆에 있는 비파나무엔

올해도 비파가 노랗게 익었을까

당신은 대답이 없다 나도 예전엔

나를 읽고 있는 당신처럼

책 한 권의 오후를 사랑했다

이 창은 기억할까 책을 읽다가

덮어두고서 바라보던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 있었고 물에 번진

글자처럼 흐릿한 바람이

창틈으로 불어오곤 했지

구름들이 날아다니다가 대열을 놓친

철새처럼 몇 어절씩 빠져나갔고

그날 나는, 가을과 저녁의 페이지에

모음 하나가 되어 한 형태소에 들어갔다

삶이란 서로 가슴에 활자를

새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조그맣게

허밍을 내는 것을 좋아하던

한 사람을 기억한다 그의

목소리는 비닐표지처럼 반짝였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는

시를 썼다 바람이 조금 열린

창틈 사이로 불어온다 이제

당신은 창 밖이 궁금해질 것이다

어순에 맞게 차례대로 흘러가고 있을

계절들 굳이 비파나무 아래서

시를 쓰지 않아도 형광등은

가르랑거리고 단음계의 노래를

몇 소절 부르지 않아도

한 페이지가 넘겨지더라

시옷 자음처럼 쓸쓸한,

턱을 괸 당신의 옆얼굴

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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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10월을 맞이하여 우리 문단의 큰 별이자 부천의 큰 자랑인 민족시인 변영로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2회 수주 변영로 문학제' 및 제8회 수주문학상 시상식이 부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수주문학상 대상은 임경묵(교사, 시흥시, 70년생)씨 작품 '질경이의 꿈'이 수상했으며 우수상은 현택훈(강사, 대전시, 74년생), 박기동(사업, 부천시, 59년생), 정철웅(교수, 광주시, 59년생)씨가 각각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지난 8월 중에 시 부문에 대해 전국 문인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하여 353명이 2,732편을 응모되어 이 중에서 4명의 수상작이 결정되었으며 대상은 5백만 원, 우수상은 1백만 원의 상금을 각각 지급받았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수주문학상은 부천이 고향이며 작고 후 고향 땅에 묻혀 계신 수주 변영로 선생의 뛰어난 문학 기량과 올곧은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천시에서 1998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듬해인 1999년 제정되었다.

 

질경이의 꿈, 동굴 탐사,함석장이 노인, 흐린 명조체의 시등 네 편의 응모작이 마지막 심사 대상이 되었다. 본심을 통과한 응모작의 상당수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었지만, 특히 네 분의 시는 시적 수련과 작품으로서의 성취도가 높았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질경이의 꿈을 대상작으로 결정하였는데, ‘실직한 당신을 질경이풀의 질긴 생명력에 비유한 이 작품은 최근 문단에 발표되고 있는 서정시의 약점을 발전적으로 극복한 좋은 시라고 판단되었다.

 

시적 서술의 묘사력과 언어의 유연한 구사능력 그리고 대상에 대한 관찰 등이 적절한 어조에 실려 있어 뛰어난 시적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흐린 명조체의 시는 서정적이며 안정된 어조로 유려하게 끌어나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며, 동굴 탐사는 관념적이기는 하지만 단단한 시적 구성을 보여주었으며, 함석장이 노인또한 건조하지만 사실적인 관찰력이 두드러져 보였다.

 

대상 수상자와 우수상 수상자들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며, 아깝게 탈락한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아쉬움과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 심사위원 이승훈,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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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對酌) / 현택훈

 

 

국밥에 소주를 마시니

새벽별이 떴다야

택실 기다리는 저 사람들도

노래 소리가 작아졌군

가로등은 너무 밝아서

고갤 숙이고 있는 것 같아

달리는 새벽바람이

아침신문을 스치네

너는 날 다시

새벽으로 데리고 왔어야

등 굽은 청소미화원은

수도승처럼 거룩하지 않은가

 

국밥집 유리창 앞에 앉은

새벽 거리가 내게

눈물 같은

소주를 또 붓고,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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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작들이 이상하게도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이고 형식이다. 정말로 쓰고 싶어서 쓴 시보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에 떠밀려 쓴 시가 더 많아 보인다. 아마도 시 창작 강좌 등의 영향인 것 같다. 산문 형식의 시가 많았는데, 억지로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시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시를 읽는 재미가 어데 있는가,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뛰어난 시가 적지 않아, 지용문학상의 만만치 않은 수준을 말해 주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임종훈)은 군더더기없이 아주 깔끔하게 다듬어진 시다. 이쯤의 솜씨에 이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리라. 파도와 일상의 권태와 삶의 각박함의 병렬적 비유도 자못 실감난다. 마지막 연의 처리도 시의 여운을 인상적으로 오래 남기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데 다른 시들은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서, 너무 심한 편차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돼지머리’(한수남)는 말 재간과 재치가 보통이 아니다. 청승스럽거나 구성지지 않고 밝고 날렵해서 또 다른 시 읽는 맛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조금 더 다듬어졌으면 좋겠다. 무언가 시들이 너무 어수선하다. ‘1958년 산, 포터 트럭’(신윤경)은 남편을 포터 트럭에 비유한 시로서, 삶의 구체가 울림을 준다. 가락도 제법 있다. 하지만 너스레가 좀 심하다. 같은 이의 수도도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구절들이 여러 군데 들어가 있는 것이 흠이다. ‘대작(對酌)’(현택훈)은 새벽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이 소재가 되고 있는 시다. 그런데도 제목을 대작이라 한 것은 그 새벽 거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는 개념에서일 터이다. 독작이라 할 것을 대작이라 해서 고독감을 배가시킨 점은 작자가 높은 시적 연마를 쌓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데 한 군데 빼고 더할 데 없이 깔끔한 점도 크게 호감이 간다. 이에 비해서 같은 이의 양말 한 켤레의 노래는 생활의 실감이라는 면에서는 더 깊은 감동을 주면서도 너무 말이 많아 시를 읽는 재미가 덜하다.

 

이상의 시 가운데서 선자들은 현택훈의 대작(對酌)’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쉽게 의견을 모았다. 작자나 다른 투고자들은 양말 한 켤레의 노래대신 굳이 이 시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심사위원 유종호·신경림

 

 

 

 

남방큰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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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제주도 푸른밤을 품고 대전에 상륙해 문학공부를 하고 있는 현택훈(32·사진·대전 동구 대동)씨가 대작이란 시로 당선됐다.

 

현택훈씨는 군대 있을 때 읽은 시란 무엇인가?’를 쓴 유종호 시인과 평소 존경해 마지 않은 신경림 시인에게 평가를 받아 당선돼 더할 나위없이 영광이다우리나라 현대시의 거두인 정지용 시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문학에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택훈씨는 지난해 한국사이버대학교에서 주관한 전국백일장에서 은상을 탔고, 대전일보에서 주관한 동물사랑, 자연사랑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바 있다.

 

대전 동구 대동에 거주하고 있는 현씨는 대작(對酌)이란 시에서 일반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리려 했다재작년에도 지용백일장과 지용신인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충분한 약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7회 지용청소년문학상은 모두 267명이 722편을 응모했고, 우리 지역에서는 옥천고의 손효선 양이 장려상에 선정됐다. 이번 심사위원을 맡은 이은방 시인과 도창희 시인은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수많은 작품 중에 평년작을 웃도는 수준을 보여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응모작에는 단시보다는 장시가 많았고 주제의식이나 표출능력 따위는 보편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신인문학상과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은 각각 14일 오전 11시 군청 회의실과 13일 오후 5시 관성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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