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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 / 석민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2017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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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꿈꾸던 성탄 선물투병 중 모친께 바친다

 

누구나 그렇듯이 쓸모없는 하나님이 제게도 있습니다. 감사와 은총보다는 원망과 타박이 필요할 때 종종 요긴합니다. 그런데 가끔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좀 놀랍습니다. 아니 많이 놀랍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잠깐 혼동하신 게 아니었나 할 정도로.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받은 성인용 브래지어·팬티 선물세트처럼 당선 통보는 신기하고 민망하고 설렜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 내가 써놓고도 잘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가짜 같아서 어디다 버젓이 내놓을 만한 물건이 못 됩니다. 하지만 가끔 자해공갈단처럼 내 시를 중인환시에 던져놓고 싶었습니다. 온갖 모욕과 모멸을 참담하게 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던 수모 대신 누군가가 칭찬을 해줄 때는 하나님처럼 난감합니다. 그 칭찬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꿈꾸던 농담이지만 비현실적입니다.

 

무슨 군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잘 써야지요. 이렇게 겨우 시를 흉내 내는 데도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빚졌는데요. 특히 진주의 김언희, 유홍준 선생님, 하동의 김남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산타클로스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신 친정의 어머니와 극진한 간병인이신 아버지께 이 선물을 고스란히 드립니다. 잠시 효도한 것 같아 위안이 됩니다.

 

끝으로 뽑아 주신 김사인, 황인숙 선생님과 세계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 한 줄의 약력을 쓸 때마다 상기하겠습니다. 이 어색한 소감문은 얼른 끝내고 서둘러 나를 학대하러 가야겠습니다.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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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해학·역설의 묘미 살려 삶의 애환 잘 갈무리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말과 느낌을 적절히 짜 맞추는 솜씨들이 상당해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평면적이고, 어딘가 낯익은 형언과 방식에 기대어 있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석민재씨의 응모작 계통2편은 단연 돋보였다. 그의 시들은 수월하게 읽히면서 수려한데 그 속에 삶의 애환이 갈무리돼 있다. 또 근년의 젊은 시인들에게서 보암직한 축조방식으로부터도 자유로이, 시를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다. 좋은 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응모한 세 편의 시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건 빨강 네가 아무리 우겨도 빨강/파랑 같아도 이건 빨강/노랑 같아도 이건 빨강으로 시작되는 시 계통은 빛깔 이미지들과 이응의 음성상징이 공처럼 통통 튀면서 설사 내용을 모르더라도 읽으면서 기분이 좋다. 그의 시 빅풋을 당선작으로 기쁘게 뽑는다. ‘빅풋은 무지무지하게 슬픈 상황인데 아버지의 당당함(‘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과 쾌활(‘왼발 오른 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그리고 엄마의 해학(‘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으로 상황을 뒤집어 보여준다. 상상력의 전복, 역설의 묘미를 깔끔하게 끌어낸 시다.

 

함인우(‘아스피린3), 의현(‘여유가 있다면2), 김순철(‘복숭아2)의 응모작들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미지를 첩첩 겹쳐 연결시키는 힘이 여간 아니며 변두리 주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뛰어난 함인우의 시들이 그러하다. 약국이라는 작은 공간을 그 이름이 우주인 것을 빌려 우리네 작은 세상의 삶과 죽음을 우주에 병치시키는 아스피린이나 피아노와 노파와 파를 음계와 연계시키며 펼치는 버려질 것을, 산다나 삶의 통증과 페이소스로 자욱하다. 당선자께 커다란 축하를, 세 분께 안타까움을 전한다.

 

심사위원 김사인·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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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시다 / 신은숙

 

 

나무는 그늘 속에 블랙홀을 숨기고 있지

 

수백 겹 나이테를 걸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

육중한 그늘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갉아먹고 있다

 

흰눈 쌓인 히말라야 갈망이라도 하듯 거대한 화살표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초록은 시간을 삼킨 블랙홀의 아가리다

 

빨아들이는 건 순식간인지도 모르지, 그 속으로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도 사라지고

수다 떨던 소녀들도 치마 주름 속으로 사라지고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도 사라지고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이 바람 막는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마다 굵어지고 짙어지는 저 아가리들

쿡쿡 찌르고 찌르면 외계서 온 모스부호처럼 떠돌다 가는 것들

멍든 하늘을 떠받들고 선 나무의 들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켜지지 않는 그늘 속엔 되새떼 무리들

그림자 하나씩 물고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른다

 

 

 

 

 

2013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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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유리알 닦듯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정진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멸망의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구는 저녁까지 안녕했지만 그 순간 저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시를 써 온 저와 그 깊은 절망에 대한 멸망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멸망 앞에서 새로운 우주가 열리듯 오늘 저 밤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유성 하나에도 남다른 눈빛 하나 건넵니다.

 

필사하던 밤들을 생각합니다. 고급 독자로 시 읽는 행복감을 누리는 게 차라리 편할진대 시를 쓰겠다고 덤비는 순간부터마음은 어두운 동굴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덜컥 당선이 되고 보니 기쁨에 앞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시를 쓰면서 견뎌야 할 고독과 현실 앞에서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제게 시는 마음으로 읽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 새소리 바람 소리 깃들 수 있도록 마음을 유리알처럼 잘 닦아 놓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사랑하고 살피겠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입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오세영, 강은교 심사위원께 큰절 올립니다. 묵묵히 지켜봐 준 가족들 그리고 히말라야시다가 있는 초등학교 앞에 사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물방울의 힘을 알게 해주신 정병근 시인님 감사드립니다. 경희사이버대 김기택 교수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님들,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숙희와 진경에게도 따스한 마음을 보냅니다. 또 저를 알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겠습니다. 마음의 빚은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이제 조용히 히말라야시다에게로 가서 조금만 울고 싶습니다.

 

 

 

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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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선한 상상력·미학적 논리 통해 세계 재해석

 

예심을 거쳐 올라온 스물여섯 분의 작품을 놓고 심사숙의한 끝에 두 심사위원은 이의 없이 신은숙의 히말라야시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구조적 완결성과 언어적 진솔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시인이 한 특별한 사물의 인식에서 촉발된 신선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미학적 논리를 통해 이 세계를 새롭게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 세계란 하나의 큰 학교이며 삶은 그곳에서 이수해야 하는 일종의 학습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학습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 말 없이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의 존재론적 의미와 같은 것이 되지 않고서는 일상성을 탈피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 생의 진정한 완성이란 히말라야시다의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의 비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당선작이 요즘 우리는 간과하고 있으나 시가 지향해야 될 이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신선하게 형상화하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상상력에 대한 믿음, 언어적 소통에 대한 가치 부여, 미학성과 철학성의 적절한 조화 등이 그것이다. 오늘 우리 시단이 소통 부재의 언어유희나 정신분열적 사유의 독백 같은 시들로 오염되고 있어 더 그러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 과반수도 이 같은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씁쓸했다.

 

마지막까지 논의되다가 탈락한 작품으로 이시언의 유리창의 파리는 형상성이나 시상 전개에서 재능을 보여줬으나 상상력이 단순하고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약했다. 구한의 노인목경건조공법은 묘사력과 수사가 탁월하고 언어의 밀도도 나무랄 데 없으나 시상의 비약이 심했고 대상을 단지 묘사해 보여주는 수준을 탈피하지 못한 게 흠이었다.

 

- 심사위원 오세영·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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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薄雲 / 홍신선

 

 

벌써 너는

버림받은 늙은 개처럼 시간 밖에서 허기진 뱃구레를 헐떡이는가

골목 안 쓰레기통 뒤져낸

마른 사골뼈다귀들이나 체념들

힘겹게 핥고 있는가

 

얼굴 없는 후회 일순 일순을 출력 중인

서녘 텅 빈 하늘에 또 슬금슬금 나와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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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홍신선 시인의 최근 발표작들 중 『박운薄雲 』외 4편을 제4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이들 작품에서 홍시인은 경륜이나 연륜이 빚어내는 지적정서를 잘 보여 주는데 대체로 후회, 뒤돌아보기 같은 자성에 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박운』에서는 인간이 연륜을 더하고서도 끝없는 허기에서 헤어날 수 없는, 본원적인 허탈감에 젖어 있을 밖에 없는 현실을 노래한다. 이만한 안정과 지적인 통찰력이 다른 시인들에게서 찾아지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하여 심사위원회는 예의 5편을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거론된 다른 세분의 업적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재론할 기회를 가질까 한다.

 

심사위원 강희근, 문효치, 이상옥

 

 

 

 

직박구리의 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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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사랑문인협회가 시상하는 2006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로 홍신선(洪申善) 시인(교수,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장)이 결정되었다. ‘귀천’의 시인 고 천상병의 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상은 올해 네 번째로 주어지는 데 수상작은 홍시인의 근작시 『박운薄雲 』외 4편이다.

 

심사위원회 (위원장 강희근)는 심사평에서 ‘홍시인은 경륜이나 연륜이 빚어내는 지적정서를 잘 보여주는데  대체로 후회, 뒤돌아보기 같은 자성에 닿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 밝혔다.

 

홍신선 시인은 1965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서벽당집』(1975), 『겨울 섬』(1979), 『다시 고향에서』(1990), 『홍신선 시전집』(2004) 등을 내었고, 이론서로는 『한국시의 논리』 등 수권이 있다. 홍시인은 그 동안의 업적으로 최근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상식은 오는 6월 4일(일) 오전 10시 지리산 중산관광단지 ‘귀천’시비 현장(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열리는 천상병 문학제 때 있게 된다. 그 동안 받은 수상자로는 문정희, 이태수 시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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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발화점 / 정창준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 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 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예요.

배추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계는 문제 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들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버릴 집을 지은 걸까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燒却)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 휘발성(揮發性)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發火)

 

 

 

 

201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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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철거민 들여다보면서 표현 떠올려

 

시를 다시 쓰면서 딱 3년만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가 바로 3년째가 되는 해네요.”

 

정창준씨(36)는 울산 대현고 국어교사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시를 썼지만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취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와 멀어졌다. 내년이면 교사 경력 10년째인 정씨가 그 꿈을 다시 꺼내들 게 된 것은 3년 전 대학 시절 썼던 시들이 좋던데라는 말을 대학원 교수로부터 전해 들으면서다. 대학시절 썼던 시들은 컴퓨터 메모리가 삭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우연치 않게 남아있던 유일한 프린트본을 후배로부터 돌려받으면서 정씨는 다시 시를 쓰게 됐다. 그리고 3년째, 마침내 오래된 꿈이 이뤄졌다.

 

당선작 아버지의 발화점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정씨는 <난쏘공>의 화법을 인용했다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용산참사는 결코 있어선 안 되는 너무 끔찍한 일인데도, 사람들에게 쉽게 회자되기만 할 뿐, 절실한 이야기들은 외려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난쏘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고 학생들에게도 꼭 가르치는 작품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1970년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마음 아파서 그것을 모티프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정씨는 자칫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체화된 언어로 피부에 와닿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심사위원들에게 받았다. 정씨는 울산은 급격한 팽창 과정을 거치면서 용산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가진 도시라며 재개발이 예정된 학교 옆 철거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의 표현들이 나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작 이외의 다른 시에서도 사회문제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정씨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정씨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대형마트, 베스트셀러나 실용서로 채워지는 서점의 풍경을 시로 써내려갔다. 그는 사람에서 비롯되고 사람다움을 지키는 게 문학의 가장 큰 소임인 것 같다사회적 약자들이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신춘문예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아직 시 세계나 세계관이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싶다고 새내기 시인의 포부를 밝혔다.

 

 

 

 

아름다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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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실종된 현실 인식의 발견뭉클하다

 

스무 분이 겨룬 이번 본심에서는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시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보수 정부가 들어선 뒤 일상화한 사회경제적 위기의식이 예비시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고이면서, 불안을 나누고 싶은, 나아가 희망을 찾고 싶은 연대의식, 소통 욕구가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최종심에 정창준(‘아버지의 발화점4), 김유미(‘삼거리식당 지나 명랑슈퍼4), 김영진(‘도끼발4), 류성훈(‘밤의 도플러4), 한주연(‘슬리퍼를 밟는 순간4) 이 다섯 분의 시가 올랐다.

 

김유미의 시편들은 글 다루는 솜씨, 이야기를 꾸미는 솜씨가 돋보인다.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그런데 특별히 새롭지가 않고 고만고만하다. ‘고백은 김유미의 장점이 생기있게 모인 시다. 다른 시들과 고백은 백지 한 장 차이지만, 그 백지는 얼마나 두꺼운가? 한주연의 슬리퍼를 밟는 순간은 슬픈 얘기를 담담하게 그려 독자로 하여금 고즈넉이 귀기울이게 한다. 잔잔한 매력이 있는 자기만의 화법이다. 류성훈은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는 능력이 빼어나다. 그런데 그 시적인 순간을 자기화하지 못한다. 늘 최종심에 오르지만 결국엔 내려놓게 되는 시들이 있다. 언뜻 아주 시적이나 공허하고 생명감이 없는 시들. 경험이 내재화돼 있지 않은, 육체가 없는 시들.

 

김영진의 시들은 새만금이나 대학생들의 취직 문제, 세습되는 가난 등 오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소재도 주제의식도 상상력도, 다 좋다. 그런데 목적의식이랄지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작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이 끼어 있어 시가 덜그럭거린다.

 

정창준을 당선자로 내세우게 돼 뿌듯하다. 응모한 다섯 편의 시 가운데 어느 작품 하나 모자람이 없지만, 제일 앞장에 놓은 아버지의 발화점을 당선시로 올린다. 정창준의 시들은 우선 신선하다. 우리 시단에서 꽤 오래 실종됐던 현실인식이나 생활감각을 가진 시를 보게 된 것도 반갑지만, 그 사회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발성이 새롭고 독창적이어서 더 반갑다. 정창준의 시들은 감동적이다. 뭉클하다. 심금을 울린다.

 

심사위원 이시영 시인(왼쪽)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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