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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 / 김성호

 

 

나는 너에 대해 쓴다.

 

솟구침, 태양의 계단, 조약돌이 되는 섬; 깊은 수심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너를 잊곤 한다.

 

로로, 네 빛깔과 온도를 나는 안다. 네 얼굴이 오래도록 어둠을 우려내고 있는 것을 안다. 더 이상 깊지도 낮지도 않은 맨살 같은 나날을 로로, 나는 안다.

 

네가 생각에 잠길 때 조금씩 당겨지는 빛과 무관한 조도를 안다. 마음에 마음이 부딪혔다. 소리가 났다. 그쯤은 네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내 망각은 너의 미래에서 쑥쑥 자란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통은 가장 가볍다. 로로, 내 한 살 된 부엉이를 로로라 부를 때 날개에 대해 적고 싶은 두려움도 모른 채 쿵쾅이는 마음을 너는 알까? 여긴 쓸려갈 거야,

 

온 마을의 고양이가 낮 동안 밋밋하게 비상하는 것을, 환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는 알까? 로로, 우리 모두는 네 내면과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형상이었다. 우린 오래도록 있어도 고요한 줄 몰랐지. 나는 오늘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내일도 빛을 삼키고 반짝일까 무섭다. 사지를 갖추고 내일이 지상에 엎드릴까 무섭다. 로로, 나는 널 부르면서 여전히 네가 고스란히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만은 날 잊곤 하는 걸까. 로로, 네가 들린다. 언제일까?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내면에 내면이 쏟아졌다. 카스트라토

 

구름, 비틀림, 작은 의식,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잊어버린다.

 

 

 

 

 

2015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시를 바라보지 못한그 고통이 날 살렸다

 

시인이 됐다.

 

엄마 함순옥

아빠 김기화

누나 김은정

 

이원 선생님

이준규 선생님

 

세계일보사 그리고

뽑아주신

문정희 선생님

김사인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시를 썼더랬다. 여름 내내 고양이와 지냈더랬다. 거울엔 내가 있었고 뭘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고 산책로에서 어둠을 바라보다가 너무 무서워져서 걸음을 돌리는데 집에 돌아가기가 더 무서웠으며 아무 문장이나 나를 받아줄 거라 사과를 내리치는 칼에 씻기는 날 시 연주를 하고 시 배역을 맡고 욕지거리에 반찬을 입에 물고 이건 반찬이다, 반찬이다, 각설하고 부글거리고 아, 미쇼와 김록이었지 어둠 속에서 쥬스 주스 쥬스 주스 쥬스 춤추는 거 같지, 울 거 같지, 이 식별을 감당해낼 수 없었더랬다. 어제 누군가에게 갔다. 나의 얘기를 했다. 나는 캄캄해졌다. 그가 시라고 생각하지 않소. 아름다운 한 여자라고 생각하오. 어둠은 잠잠하오. 열망 또한 그러오. 그렇게 된 것이오.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가는 자락을 맡고 도대체가 여름으로, 바보와 천재를 하루에도 몇 십번씩 왕복하는 것이다. 대개는 분노하며 칭호에 가려진 자, 그 고통 속에서 빛을 보리라. 나는 죽느니라, 나는 나다. 대개는 흥분에 차 느껴지오? 물음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그릇된 정신을 선택한 자오. 아프오. 아프오. 고양이가 터지지 않는 게 싫고 좋았더랬다, 절정을 건드렸더랬다, 쭈그러졌더랬다, 흔들리오. , 여름이었더랬다, , 바라보지 못했더랬다. 이 판단과 오류가 나를 살았소. 다시 계속 속으로 일구며 집어삼키며 그 혼이었더랬다.

 

 

 

 

 

[심사평]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음악처럼 다가와

 

우리는 어떤 새 시인을 기다리는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매혹하는 시쓰기, 읽기 전과 후의 우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해방과 자유의 에너지를 내장한 시쓰기, 그러므로 쓰는 이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근원적 의미의 모험이어 마땅한 그런 시쓰기의 시인을 우리는 설레며 기다린다.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시대 민중시풍의 단순 답습이 오늘의 문학적 대안일 수 없는 것과 똑 같은 이유에서 안이하고 나태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종환, 맹재범, 김성호로 최종 후보를 압축한 다음, 김성호를 이견 없이 당선자로 확정했다. 최종환이 적출해내고 있는 생의 비극적 아이러니들은 진지하고 시의성 있는 것이었지만, 관점과 시적 사유에서 어떤 투식이 느껴졌다. 더 자신을 던져넣어 돌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맹재범은 생의 구체와 형상화의 신선함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어설픈 점이 있었다.

 

김성호는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나아가 그것을 시적 문장으로 조직하는 감각과 내공으로 우리를 움직였다. 그는 확보된 관념이나 느낌, 사실의 서술로 시를 삼지 않고, 참 자체가 스스로 드러나는 언어적 형식으로 시가 기능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안이 비어있는 비인칭의 이름 로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마음과 언어의 섬세한 탄주에 귀를 기울이면, 윤곽이 모호한 듯하나 매우 진실하고 예민한 한 벌의 심미적 긴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김성호의 언어사용이 구현하는 미감과 아우라를, 처음 듣는 음악을 만나듯 체험해 보기를 독자들께 권한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견지되는 한에서만 이런 시는 유효하다는 것, 그렇지 않을 때 요령부득의 주관적 요설이나 겉멋의 함정에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심사 또한 모험이다. 새 시인의 미래에 우리 자신을 걸고자 한다. 각고의 정진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문정희·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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