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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역사 / 최금진

 

 

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설화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배꼽이 없다

그러니 탯줄 없는 남자들을 무슨 수로 잡아매나

밤하늘엔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별들이 떠돌고

우리집 나그네,라는 우리 친척 여자들의 말 속에는

모계사회의 전통가옥과 거미줄과 삐걱거리는 툇마루뿐

멀리 강원도 탄광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우리 당숙도 죽어가는 새가 되어

가지 않고 날마다 숙모의 꿈속에 내려와 운다

티베트에선 죽은 사람을 독수리 먹이로 던져준다는데

누가 우리 집안 여자들을 부려 새를 키우나

배꼽이 없는,

그래서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

엄마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피똥 싸듯 나를 낳았다

어서어서 자라서 훨훨 날아가라고 서둘러

날개옷 같은 하얀 배냇옷 한 벌을 지어놓았다

서른일곱에 정착도 못하고 나는 지금도 어딜 싸돌아다닌다

 

 

 

새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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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격정의 민중시인으로 평가받는 충북 보은 출생 오장환 시인(19181948)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올해 제정된 '오장환 문학상' 첫번째 수상자로 최금진 시인(39·광주시 북구 문흥동)이 선정됐다.

 

실천문학 주관으로 시상되고 있는 '오장환 문학상' 수상자인 최금진 시인은 지난해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 간) 130명의 작가와 평론가가 추천한 최고의 시집으로 꼽혔고 우수문학도서로도 선정됐었다.

 

시집 '새들의 역사' "지긋지긋한 가난과 소외의 현실을 자본주의와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확장시켜 시화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이어오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내공과 결기를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신경림, 김정환, 김사인 서울여대 교수, 박수연씨 등이 맡았다.

 

최 시인은 1970년 충북 제천 출생으로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2001년 제1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으로 등단, 지난해 시집 '새들의 역사'를 펴냈다.

 

한편 오장환 시인은 동경 지산중학교를 수료, '낭만' '시인부락'(詩人部落), '자오선'(子午線) 등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성벽'(城壁), '헌사'(獻詞),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4권을 펴냈다.

 

815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문학 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1946년 이태준과 임화 등과 함께 월북했다. 시상식은 오는 103일 충북 보은 오장환문학제 행사장에서 열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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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 / 최금진

 

 

저녁이면 가래가 그득해진 목이 아프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내 속에 뭉쳐진 욕망의

노폐물 같은 것이다 갈수록 말은 적어지고

퇴근길 혼자 걸어오다 생각하는 하루도

즐겁거나 고단하거나 결국 가래로만 남는다

아내의 부쩍 줄어든 말수도 그렇다

목에 관한 한 우리는 나눌 수 없는 제 몫의 아픔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뿌옇게 눈을 가리고 저녁이 오고 저 황사바람은

잠든 후에도 우리의 이부자리와 옷의 식탁에

수북히 먼지를 쌓아놓고 갈 것이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파고 들어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인정이란 것도

침묵 앞에선 속수무책

아내가 화장실에서 인상을 쓰며 가래를 뱉는다

잠결에 깬 아이의 기침소리가 깊다

저 어두운 공중 위에는 뿌연 황사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잔뜩 그을은 밤의 램프를

털어 내고 있다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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