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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 / 박옥실

 

 

한낮이 기울도록

트럭은 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흙먼지 속에 서 있습니다.

하르르. 하르르 몸 눕히는

복사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떠나도 될까요?

아프게 버린 세월이

묵정밥 숙대궁처럼 흔들립니다.

견디지 못한 세월 너머

바람은 다시 흙먼지를 뿌리고

춘양, 꼬치비재, 새발, 복상터...

버려야 할 이름들이 마음을 붙듭니다.

그러나 이젠 떠나야겠지요.

내 가야할 그곳에도

느티나무는 큰 숲을 이루고

저녁이면 성냥갑만한 집들이

환히 불켜고 있을 테지요.

 

 

 

 

7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이농'의 작가 박옥실(47·경기도 의왕시)씨는 다른 어떤 문학상보다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는 말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또 문학상이 있게 해 준 정지용 시인과 옥천군, 동양일보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빼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받게 돼 너무 기뻐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작품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대 서창캠퍼스 한국문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박 시인은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 평론가와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에게서 주제의식도 뚜렷하고 세련된 시어들이 경제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많은 수련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적 평가를 떠나 개인적으로 지용의 `곡마단'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 시인은 각박한 세상에서 소외되고 움츠린 사람들, 조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로 시적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작 `이농'도 농촌을 떠나야만 하는 농민들처럼 도시에서 뿌리박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은 담았다고 박 시인은 설명한다.

 

"지용 생가를 찾아 옥천을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 방문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지용시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좋은 시인으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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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춘 / 장재성

 

 

아무 때나 오지 마세요.

찬바람으로

성급히 다가서지 마세요.

당신이 좀 한가로워진다면

부드러운 바람으로

푸르른 보리 물결치는

밭둑을 타고 오세요.

그리고 기분이 좋으면 휘파람을 부세요.

언덕바지 황금빛 나는

누런 황소를 보셨나요.

그런 몸짓으로 그런 눈빛으로

곤륜산*을 바라보듯 천천히

세상이 밝은 날 큰 빛으로 오세요.

당신이 정하신 날 꼭 오세요.

활짝 핀 노란 꽃잎으로

아무도 모르게

곤룡포 한 벌 펼쳐 놓지요.

 

*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하늘에 이르는 은산

 

 

 

 

하늘의 황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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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세광중학교 현직 수학교사인 장재성씨가 제6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장재성씨는 그의 본업인 수학 문제를 풀 때나 시를 쓸 때 같은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수학 문제를 풀 때나 시를 쓰는 것은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고민 끝에 나오는 것이고 문제를 풀었을 때와 시를 썼을 때 느끼는 희열감도 같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수학교사가 시인이 되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자 수학과 시에 관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장재성씨.

 

"군대에 갔을 때 전우신문에 몇 편을 기고해 보았는데 채택이 되어 실리더라고요." 장씨가 시를 쓰기 시작한 동기다. '외롭고 심심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당당히 시인의 문턱을 넘는 결실로 나타났다. 그는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에도 출품해 최종 결선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도 도전했으나 낙방했던 그는 세광고 재직 시절에는 보충수업 등으로 제대로 시간도 못내고 본인 스스로의 좌절감 등으로 3년여간 시를 쓰지 않았다. 세광중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장씨는 시를 쓸 시간을 안정적으로 가질 수 있었고 이번 수상작인 <만춘>은 지난해 가을에 써서 다듬은 것이다.

 

그는 자연예찬론자이다. 자연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수상작 <만춘>은 민들레를 소재로 한 시이다. 정지용 시인을 접한 것은 이제 56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장씨지만 지용의 토속적이고 자연 속에 운률을 담은 시가 좋다고 말한다.

 

공모전 낙방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교사로 만족하자고 다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시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으켜 결실을 이룬 장재성씨는 서인화(50)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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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방에서의 마지막 밤 / 김남용

 

 

행낭으로 건너왔다

군고구마 냄새가 자욱하다

아버지가 군불을 때시나보다

"춥지야? 기다리그라" 구들을 등지고 있으려니

참나무숯 같은 졸음이 밀려온다

방바닥은 황토빛깔로 달아오르고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 나는

마당에 서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새벽별을 센다

밤새 사령리를 품은 안개가 무지개빛을 띠기 전

나는 행랑을 비우고 약속처럼 떠나야 한다

머지않아 아버지는

이백년 묵은 구들을 들어내리라

"이제 니들도 다 컸은께 입식 해야제"

내년 고향길 구들방에 살 익을 걱정은

비오는 날 하늘을 나는 가오리연처럼 한가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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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 / 최금진

 

 

저녁이면 가래가 그득해진 목이 아프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내 속에 뭉쳐진 욕망의

노폐물 같은 것이다 갈수록 말은 적어지고

퇴근길 혼자 걸어오다 생각하는 하루도

즐겁거나 고단하거나 결국 가래로만 남는다

아내의 부쩍 줄어든 말수도 그렇다

목에 관한 한 우리는 나눌 수 없는 제 몫의 아픔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뿌옇게 눈을 가리고 저녁이 오고 저 황사바람은

잠든 후에도 우리의 이부자리와 옷의 식탁에

수북히 먼지를 쌓아놓고 갈 것이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파고 들어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인정이란 것도

침묵 앞에선 속수무책

아내가 화장실에서 인상을 쓰며 가래를 뱉는다

잠결에 깬 아이의 기침소리가 깊다

저 어두운 공중 위에는 뿌연 황사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잔뜩 그을은 밤의 램프를

털어 내고 있다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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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태우며 / 김순영

 

 

집안 가득한 먼지를 싸들고 둑 너머 냇가에서 불을 붙인다

등에 업은 찬 기운이 불꽃속에서 이글거리며 타고 있다

꿈틀거리는 짙은 어둠을 본다

명퇴한 아버지도 처진 어깨도

어쩔수 없는지.......

우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진다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를 지른다

남 부끄러워 사방을 본다

이지메를 당한 기분이다

당당하게 얘기하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설익는 감자의 서걱거림이 빠진 어금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작아지는 눈동자 속으로 불꽃이 톡톡 튀어 들어오고 있다

검은 망또 두른 사내가 가끔씩 경적만이 방황하는 가로등 앞에서

취한 듯 비틀거리며 길을 찾고 있다

사과상자 하나가 모습을 잃어가는데 안스럽기만 하다

별똥별 하나가 동쪽으로 길게 고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주최하고 옥천군에서 후원하는 제3회 지용신인문학상은 시 쓰레기를 태우며를 출품한 옥천 출신 김순영씨(37·괴산읍 동부리)에게 돌아갔다.

 

지난 13일 권청사 부군수, 박효근 문화원장, 조철호 동양일보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군청 회의실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김씨는 당선패와 5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지용신인문학 상1·2회 수상자 김철순·윤승범 씨, 가수 이동원씨, 괴산문학회 회원 등이 참석해 김씨를 축하했다.

 

김씨는 군북면 증약리에서 태어나 삼양초등학교(28), 옥천여중(30)를 졸업했으며, 친정부모인 김현옥·황종님씨는 현재 옥천읍 금구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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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오래된 집 / 윤승범

 

 

동학난도 대동여지도도, 그런 것들도 지나쳐 간 집

습기없는 이엉에는 이제 구렁이도 참새 떼도 들지 않는다.

삭고 삭아 저절로 부서져 내리는 흙담

돌아서면 키 낮춘 뒷간, 항아리 엎어 놓은 굴뚝

허리 굽히고 살았던 작은 방 두칸

양철 깡통을 주워 만든 화로

말라붙은 담쟁이 넝쿨 밑에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오래된 풍경으로 어울려 있다

 

보이는 것 없는 눈에 진물이 흘러 다섯걸음만 걸어도

숨을 헐떡거리는 할멈 물기 한 방울 없어 오뉴월 땡볕을

잘도 견뎠다 싶은, 그래서 훅 불면 할멈이나 옹기 모두 묻혀 흙이 될 그런, 한내 북쪽 작은 집 한 채

 

 

 

 

 

시성 정지용 선생의 뒤를 잇는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제2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윤승범32증평 형석고 교사씨가 당선됐다. 지난 18일 관성회관에서 개최된 제9회 지용제 본행사에 참석해 수상작인 퍽 오래된 집을 낭송한 윤승범 씨를 만나 보았다

 

 

 

옥천에 대한 첫인상은

 

시 소재를 찾기 위해 옥천을 많이 방문했었다

 

특히 옥천장터를 많이 둘러보았는데 옥천에 대한 첫 인상은 한마디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상소감 및 수상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실력이 부족해 등단 시기를 넉넉히 잡고 있었는데 당선이 되어 기쁘다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섕각을 했다

 

이번에 당선된 퍽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 및 억눌린 역사 등을 담았으며 국밥은 역사가 묻혀있는 곳인 장을 무대로 소외된 서민층의 삶을 표현했다

 

정지용 시인에 대한 생각은

 

정지용 시인은 우리나라 시단의 새로운 장을 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모더니즘 시인이지만 여러 장르의 시를 섭렵한 분이라는 생각이다

 

고교 시절부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윤씨는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가 고향이며 동국대 국어 교육과를 졸업했다

 

현재 증평 형석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윤씨는 학생들에게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만큼은 꼭 외우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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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 김철순

 

 

애처가로 소문난 김씨가

상처한 지 한 달도 안 돼 새장가 가던 날 하늘이 화를 냈다

 

오랜 가뭄이다

냇가는 이미 물이 마른 지 오래고

밑바닥은 쩍쩍 갈라져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들풀들이 밤의 여자처럼 달라붙어

냇가는 이미 들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물이 떠난 자리에

재빨리 들풀을 키울 수 있는

발 빠른 김씨가 거기 있었다

 

 

 

사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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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꾸준히 시 창작활동을 하는 김철순(59) 시인이 1일 첫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 )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동시집에는 자연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동시 45편이 제1(팔랑, 봄볕이 떨어진다), 2(내 귀를 물고 달아나는), 3(사과의 길), 4(깍두기 좀 치워주세요) 등 모두 4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김 시인은 이 작품집에서 엄마의 마음과 농부의 마음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곱게 담아내고 있다.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포용력,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동시에서 주전자는 오리로, 국그릇 속의 콩나물은 연못의 올챙이로, 가래떡 뽑는 기계는 두 개의 똥꼬가 달린 이상한 동물로 탈바꿈한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인의 발상에 금세 빠져들고, 어느덧 시인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상투적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용히 해/,/두 귀 달린 냄비가/다 듣고 있어/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냄비 속에 집어넣고/펄펄펄/끓일지도 몰라/그럼,/끓인 말이 어떻게/저 창문을 넘어/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저 산을 넘어/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냄비' 전문)

 

냄비의 손잡이가 두 개의 귀로 바뀐 발상이 새롭다.

 

함기석 시인은 그녀의 동시에 관해 "그로테스크한 발상이 낳는 후속 장면이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냄비라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 전환이 냄비의 기능과 가치를 바꾸고, 말과 말의 죽음이 낳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1995'1회 지용신인문학상'을 받은 뒤 2011년 한국일보와 경상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다.

 

그동안 '꿈속에서 기어 나오고 싶지 않은 날'(1997),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2003) 2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용택, 이상희 시인은 당시 그녀의 동시에 관해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환상적 서사, 소박한 일상의 노래가 자연과 우주를 성찰케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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