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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력木歷 / 조경선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 줄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100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순간에 무너지고


한없이 차오르던 숨길은 물길이었을까
안쪽으로 파고들면 내력은 촘촘해지고
울음을 간직한 옹이가 더욱 단단해진다


벌목은 베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다
커다란 눈동자 되어 밑동이 살아 있는 건
최초의 뿌리가 사람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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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들은 다각도의 심도 깊은 논의를 계속한 결과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부문 수상작으로 조경선 시인의 시집 목력을 선정하는데 합의하였다. 신인상 부문의 심사는 시시조 부문과 소설부문으로 나누어 각 부문별로 심사위원들이 최종심 대상작을 선별한 후 시시조부문 최종심 대상작과 소설부문 최종심 대상작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후에 최종 선정하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밟았다. 조경선 시인의 시집 목력은 생활 현실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동시에 시적 화자의 내면 속에 침묵의 심연을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시적 회로를 형성하는 묘미를 보여준다. 시적 진술 속에 그림자와 여울을 그려내면서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조경선 시인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전원

 

 

 

개가 물어뜯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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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이 지난 10일 유배문학관에서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수상작 선정을 마무리하고 당선작을 발표했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김만중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은 ‘숨은 눈’의 장정옥 작가, 시ㆍ시조 부문 대상은 ‘숲시집’의 유종인 시인이 영예를 안았다.

또한 신인상에는 시조집 ‘목력’의 조경선, 유배문학특별상 부문은 ‘서포 김만중과 남해’ 외 다수의 책을 집필한 김성철 씨가 각각 당선됐다.

소설부문 대상을 받은 장정옥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해무’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제40회 여성동아에 장편소설 ‘스무살의 축제’가 당선됐다. 이후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시ㆍ시조 부문 대상을 차지한 유종인 시인은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2003년 동아일보 시조 부분에 각각 당선됐으며,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도 당선된 시인이다. 시집으로 ‘아껴먹는 슬픔’,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외 산문집으로 ‘염전-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산책-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등을 발간했다. 지훈문학상,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김만중문학상 공모에는 407권의 작품집이 접수됐다. 소설 부문 심사에는 한국 문학계의 거장 한승원, 소설가 편혜영,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허경진 심사위원이, 시ㆍ시조 부문은 시인 문태준,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오형엽 심사위원이 심도 있는 심사를 통해 당선작을 선정했다.

영예의 소설부문 대상 수상작인 ‘숨은 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것을 깊이 있게 해부해 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시ㆍ시조 부문 심사위원은 “경합한 작품집들의 수준도 높았고, 각 작품집들의 문학적 관심사도 다양해서 고심이 깊었다”며 “‘숲시집’은 세계에 대한 해박한 고전적 이해에 기초해 있고, 바깥 풍경에 자신만의 내면을 세심하고 유려한 시구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집”이라고 평가했다.

장르 구분 없이 진행된 신인상은 소설부문과 시ㆍ시조부문으로 나뉘어 심사위원들이 최종심사 대상작을 선별한 후, 최종 선정하는 엄정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밟았다.

신인상 수상작인 시조집 ‘목력’은 생활현실의 경험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동시에 시적화자의 내면 속에 침묵의 심연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시적회로를 형성하는 묘미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남해군은 오는 11월 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500만 원, 신인상ㆍ유배문학특별상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각각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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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물어뜯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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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실업일기13 / 김병

 

 

봄바람에 미친 듯 나풀대는 고추비닐 움켜쥐고 일흔넷 구부정한 밭고랑을 오작오작 오르던 어머니, 긴긴 해 새참 내온 식빵도 우유도 마다한 채 후- 숭늉 한 양재기 벌컥벌컥 들이키고 애비두 인젠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텐데 넘새 부끄러 워칙 헌다니

 

뭉그러진 두둑 흙 한 줌 소복이 떠올리며 손주 자식 잠재우듯 토닥거리다 씀벅슴벅 돌아보는 뒷산

 

한수처럼 야위어가는 진달래 진달래 꽃

 

 

 

 

암마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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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주조장 곽씨 아저씨 / 조경선

 

 

새벽 이슬 누구보다 가장 먼저 차에 싣고

눈 감도도 달릴 수 있다는 시골마을 구석구석

막걸리 나르는 주조장 곽씨아저씨

얼굴 반쯤 가리는 갈색 선글라스에

아침 인사가 서글서글 합니다

 

어느 마을 누구네 집에 무슨 일 있는지

한 바퀴 돌다보면 죄다 꾀고 있어

울다 웃다 보면

내가 남인지 남이 나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누구네 노인양반 돌아가신 마을 돌아 나오면

잠깐 막걸리 주문이야 늘지만

노인들 다 가고 나면

누가 마걸리 시킬까

저 마을은 텅 비게 되는 건 아닐까

한시름이랍니다

 

막걸리 훔쳐 먹는 푸른 머리 학생놈도 귀엽고

이장 됐다고 막걸리 돌리는 어른도 정겹고

새참에 막걸리 한 병 잊지 않는 새댁도 이쁘다는데

 

막걸리를 배달한 건지

알싸한 마음을 배달한 건지 모를 일입니다.

 

 

 

 

개가 물어뜯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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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아내 / 배재운

 

 

용돈 좀 벌어 써야겠다고

서너 달만 일해보겠다고

공장에 나가는 아내

지하실이라 공기도 나쁘고

팔이 아파 못 하겠다며

그만둔다고 하더니

자고 나면

또 출근을 한다

 

내가 벌어

내가 한 번 써보겠다더니

아이들 학원비나 벌어야겠다고

조금만 더 다닌다더니

아직도 일 나간다

 

뻔한 살림살이 아이들은 커가고

남편 직장에 고용불안 생기니

이젠 안 나갈 수도 없는 형편

팔 아프다

다리 아프다

끙끙대는 게 안쓰러워

그만두라고 큰소리 한 번 쳐보지만

아내는

이젠 내가 벌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늘도 공장에 나간다.

 

 

 

 

밥풀꽃 / 배재운

 

 

지붕 위에

햐얗게 핀 밥풀꽃

 

어디서 왔나

어쩌다 한 뼘의 땅

한 줌 흙 속에 뿌려내려

꽃을 피웠나

 

슬라브 지붕 한켠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얄굿은 바람

억수 같은 비 맞고

모질게도

홀로 견디더니

끝내

꽃을 피웠구나

 

온몸으로 불꽃과 싸우는

용해공을 닮아

땀 절은 작업복 소금꽃 같은

꽃을 피웠구나.

 

 

 

 

실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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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를 뽑고 나서

 

구조조정이다 실직이다 해서 요즘 노동자들이 받는 시련은 아이엠에프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영하듯 시의 소재도 거의 실직이나 고용 불안 혹은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노동자가 당하는 착취, 박해 등이다. 국민의 정부가 서면 조금은 나아지려니 했던 기대가 무너진 데 대한 절망감, 분도 같은 것도 많은 사람들의 시에 나타나 있다.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것은 실업일기 13’, ‘실업일기 14’, ‘안됐더먼등 이지수의 시들이다. 일단 작중화자와 작자를 일치시킨다면 작자는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실직을 한 것 같다. ‘어머니라는 부제가 붙은 실업일기 13’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긴긴 해 새참 내온 식빵도 우유도 마다한 채 후- 숭늉 한 양재기 벌컥벌컥 들이켜고 애비두 이젠 무슨 일이든 헤야 헐 텐데 넘새부끄러 워칙헌다니시는 작은 말을 가지고 큰 얘기를 하는 것이란 말이 있지만, 이 몇 마디로 실직으로 걱정이 태산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광복 55주년이라는 부제가 붙은 안됐더먼은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은 일절 배제한 채 노부부의 저녁 한때의 스케치를 가지고 지도자 또는 지배층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시력이 꽤 된 기성시인들로서도 쉽지 않은 일로, 작자의 솜씨가 상당한 수준임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배재운의 시도 재미있게 읽힌다. “지붕위에/ 하얗게 핀 밥풀꽃에서 온몸으로 불꽃과 싸우는/ 용해공의 이미지를 보는 밥풀꽃도 재미있지만,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해서 피자나 햄버거를 사줄 수는 없을 테니까 짜장면 한 그릇만 사달라는 아이의 작아지는 꿈을 노래한 생일 선물이 더 실감난다. “아이의 꿈은 자꾸 작아지고/ 아비 타는 속은 새까만 짜장이고같은 구절은 아무나 쓸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쉽사리 얻어지는 표현은 아닐 터이다. “용돈 좀 벌어 써야겠다고직장에 나가다가 이제는 남편의 고용이 불안하니까 아픈 팔 다리 끌고 기를 쓰고 직장에 다니는 아내도 오늘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시다. 배재운의 시들을 읽으면서 시는 본질적으로 현실의 요구에 대한 대답이라는 마야꼬쁘시끼의 주장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조경선의 시들은 조금 다르다. 말하자면 농촌시 또는 농민시라고 하겠는데 그가 보낸 시들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쓴 것들로서, 농사꾼 냄새가 풀풀 나는 시들이다. ‘좋겠네, 도시 처녀 농촌으로 시집가서는 그가 농촌으로 시집오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노래하고 있는 자화상으로, 시가 각박하지 않고 넉넉하다. ‘동그런 밭은 아름답다. “마침내 나도 그럴까/ 이 푸른 들판을 사랑하여/ 노동하고 뒹굴며 싸우다가/ 그대로 둥그런 밭이 될까같은 표현은 작자가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을 말로 형상화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시는 역시 새벽 이슬 누구보다 가장 먼저 차에 싣고/...막걸리 나르는 주조장 곽씨 아저씨를 노래한 주조장 곽씨 아저씨다 어느 고장에도 한두 사람있게 마련인, 그래서 그 사람이 곡 시골의 풍경이 되고 있는 곽씨 아저씨가 바로 지금 술 배달을 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시다. 조경선은 사람을 몇 마디의 말로 그리는 데 특별히 재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은 잘 살리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표성배의 시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시였다. 특히 구조조정시대의 공포와 걱절감을 노동자의 아내의 독백의 형식으로 형상화한 퇴출시대는 실감도 나고 틀도 탄탄하여 울림을 준다. 그밖에 겨울 둥지를 보낸 사람의 시도 충분히 선에 들만큼 훌륭했지만 다른 여러 군데서 당선을 한 사람이어서 일부러 뺐다.

 

- 심사위원 신경림, 이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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