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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 정호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식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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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시집 '포옹'의 작가 정호승(58)이 선정됐다. 상화시인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송영목)는 2007년 4월부터 2008년 3월 말까지 국내외에서 출간된 만50세 이상 기성 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기호 시인은 "정호승은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의 시어는 짤막하면서 내포하는 바가 크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정호승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후 6시 카페 스타지오(MBC 방송국 건너편)에서 열리며 상금 300만원과 기념메달(순금 한냥)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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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 정호승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에 버리고 온 나를 찾아가지 못한다

의상대 붉은 기둥에 기대 울다가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머리에 새들도 집을 짓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이미 잊은 지 오래

동해에서는 물고기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고

별들도 떼지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데

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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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아 상실의 깊은 성찰공초의 무소유 삶과 상통

 

우리 현대시의 새벽을 사자후로 활짝 연 공초 오상순 선생을 기려 제정된 제19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정호승 시인이 선정되었다. 수상작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가 내포한 자아 상실의 깊은 성찰이 동해의 드넓은 공간과 천년고찰 낙산사의 종소리 여운에 담아 웅장한 원음(圓音)으로 파장을 일으킨다.

 

올해로 시력 40년을 맞는 정호승 시인은 등단 이후 꾸준히 그리고 왕성하게 창작을 해 오며 독창적 시 세계를 열어 왔을 뿐 아니라 특히 감도가 깊은 시로써 오늘의 한국시 위상을 한 단계 높여 온 시인이다.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에서 저 공초가 일찍이 꺼내 들었던 허무혼의 선언이나 방랑의 마음에 어찌 그리도 맞닿아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으로 얻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이루어 내는 것을 실현하고자 했던 공초의 정신이 예순여섯 해 뒤에 태어난 정호승 시인의 뇌파에서 자장을 일으켜 더도 덜도 깎고 보탤 것 없는 완성품으로 되살아난 것 같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끝으로 수상작은 정호승 시집 밥값에서 가려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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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에서 / 정호승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
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
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찬 겨울 밤하늘에 초승달 뜨고
초승달 비껴가며 흰 기러기떼 날면
그 어디쯤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도 샛강가로 저를 찾으신
강가에 얼어붙은 검불 같은 아버지

 

 

임진강에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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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과장된 몸짓 속에서 홀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인어떤 어려운 시대에 있어서도 이를 도와주는 한 줄기 빛이 열려 있음을 우리는 안다. 아울러 깨어 있는 감수성으로 인류와 개인이 직면하는 혼돈과 곤혹을 감지하면서 정진적 진실의 은혜로운 긍정주의로 이를 타개하려 애쓰는 몇몇 시인이 있었음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시인 정호승은 아름답고 장한 것, 귀하고 연민스럽고 무한히 사랑하게 되는 바의 생명 있는 만상을 찾아 이름 부르며 예까지 온 사람이며 그 소중한 위안들을 동시대인 다수에게 공손히 나누어 왔었기도 하다. 아가야 한다.

 

- 3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그의 문학정신에는 분명히 어떤 내명한 빛이 있다 김남조

 

준마처럼 시의 초원을 달려주길 김용직

 

돋보인 시적 진술의 메타포어 이어령

 

수상을 계기로 속도감, 신선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열을 확보하기 바란다. 황동규

 

좋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많이 쓰기를 바란다. 김현

 

- 심사평 중에서

 

 

곰시의 신비와 삶의 신비시란 삶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부스러기를 누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삶의 부스러기를 쓸어 모으는 일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역사와 삶의 부스러기를 소중히 모으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할 일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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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그물 / 정호승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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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지용제를 기해 선정하는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인과 수상작이 결정됐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정호승 시인으로 그의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 수록되어 있는 `하늘의 그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88년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시인의 월북작가 해금을 맞아 지용회에서 제정하고 시와시학사에서 주관하고 있는 지용문학상은 올해로 12번째를 맞고 있으며 작년 수상작으로는 송수권 시인의 `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가 선정된 바 있다. 고은, 오세영, 김재홍 시인은 심사평에서 "세상 만물은 모두가 하늘이 정한 율법의 그물 또는 지상적인 삶의 척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가없는 연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만이 그 모든 한계와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원천이자 힘임을 이 작품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 대구생으로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첫 시집인 `슬픔이 기쁨에게' 간행 후, `서울의 예수'(1982),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88)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으며,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과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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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신발 / 정호승

 

 

비가 온다

집이 떠내려간다

나는 살짝 방문을 열고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

신발이 떠내려간다

나는 이제 나의 마지막 신발을 따라

바다로 간다

멸치 떼가 기다리는 바다의

수평선이 되어

수평선 위로 치솟는 고래가 되어

너를 기다린다

 

 

 

당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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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시작과 계간 '시작', 지리산문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지리산문학상의 제4회 수상자로 정호승 시인의 '물의 신발' 4편이 선정됐다.

 

지리산문학상은 그동안의 공모제에서 기성 시인들의 지난 한 해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전환했다.

 

특히 올해부터 지리산문학상은 ()천년의시작.계간 '시작'과 지리산문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지리산문학상의 새로운 도약에 걸맞는 수상자 선정을 위해 유안진 시인 등은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격론 끝에 근자에 들어 삶과 죽음, 바보와 성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 의식의 심화와 확장을 보여주고 있는 정호승 시인이 제4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선정됐다.

 

한편 제4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은 이은희의 '달의 아이' 4편이 선정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수상을 하게 된다.

 

한편 지리산문학제를 주관해 왔던 지리산문학회는 전국에서 드물게 올해로 30년을 맞고 있는 문학회로 그동안 매년 '지리산문학' 무크지를 발행해왔으며 김륭시인을 비롯해 문병우, 정태화, 권갑점 등의 시인과 노가원, 곽성근 작가와 정종화 동화작가 등을 배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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