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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백서 / 김상미

 

 

아주 가끔은 우울하고 대부분은 명랑해요

사람들은 내가 명랑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명랑은 우울보다 격조가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명랑하고 싶어요

무엇에든 광적으로 집착하는 체질이 못 되거든요

광적인 집착은 병적인 우울을 낳지요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

어디에서 불행이 오는지 어디로 행복이 달아나는지

쉴새없이 탐색하고 추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점점 명랑에서 멀어져 우울한 괴물로 변해버리죠

정말이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단것보다 쓴 것을 더 좋아한 탓인지

여하한 고통 위에 또 고통을 세워 그 안에 아무리 사나운 북쪽 창을 달아놓아도

내 열병은 시들 새도 없이 하루 만에 거뜬히 끝나버려요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합리적이고 쓸데없이 현실적인

값비싼 망원경 따위는 집착 강한 우울한 사람들에게나 모두 줘버려요

나는 그냥 바람 부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릴래요

무언가가 다가와 황홀하게 나를 감동시켜주길 원할래요

로댕의 대성당처럼 가우디의 카사 밀라처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지중해처럼

지로나의 내밀한 구시가지처럼 고야의 검은 집처럼 김정희의 아름다운 세한도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뒤뚱뒤뚱 해맑은 어린아이의 단순 명쾌한 웃음소리처럼

오성의 드높은 담장 단번에 밀치고 들어오는 놀라운 명랑에

자연스레 내 온몸 빠져들기를 원해요

아주아주 오래된, 처음과 끝 같기를 원해요

너도나도 창백한 백합꽃 같은 우울에 매달려

격조 있던 본래의 심연 구기고 구겨 뒤틀린 철갑 같은

고상 찬란한 신종 우울증

끊임없이 생산해내며 자랑스레 뻐기든 말든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언제나 명랑하고 싶어요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nefing.com

 

 

경남 함양 지리산문학회는22일 제12회 지리산문학상에 부산 출신의 김상미(61) 시인의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수상한 김상미 시인은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등을 출간했으며, 2003년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네시인선 아흔두 번째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펴낸 김상미 시인은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니 올해로 시력 27년 차다. 그새 시인이 품은 시집은 이번 신작까지 포함하여 단 네 권. 게을렀다고 하기에 그간 김상미 시인이 우리 문단에 선보인 시들의 존재감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고 깊어 아무래도 시와의 팽팽한 샅바 싸움에 시간을 충분히 소요한 까닭이겠거니 하게 된다. 그건 뭐 시를 보면 알 일인데 무엇보다 시 한 편 한 편에 내재된 살아 있음의 형용이 탁월하게 빛난다. 이토록 입말 글말을 예쁘게 또 천진하게 참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있을까. 더군다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에 미치는 기적을 매일같이 기록하는 사람. 그런 시인 김상미. 세번째 시집에서 네 번째 시집으로 건너오기까지 14년이란 시간 동안 시인은 아주 사소한 데서 기쁘고 행복하며 슬프고 아픈 일들을 찾고 모아왔는데, 그 결실들에 안도하는지 이리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고.

 

누구보다 발랄하고 누구보다 솔직하고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유 속 내지른 시편들이라지만 종국에는 냉정이 비치고 냉기가 서린다. 내내 뜨거웠다가 막바지에 차가워지면서 지르는 한마디의 무시무시함을 시인은 칼처럼 지니고 있다. 은장도가 아니고 과도도 아니고 도루코 면도날 같은, 종이에 싸면 도저히 모를, 작디작지만 예리한 칼날. 한껏 신나게 뛰놀게 하다 시무룩하게 뒤돌아 집에 가게 만드는 시들의 힘은 결국 자기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서일 텐데, 마치 거울을 보듯 우물을 보듯 휴대폰 카메라 속 나를 보듯 군데군데 여러 대목에서 우리의 얼굴을 비춰 우리들의 살갗에 닭살을 일게 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나 이렇게 살고 있는데요,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 시집. 나도 깔 테니 너도 까라는 시집. 발문 형식으로 쓰인 우대식 시인의 해설이 이 시집 읽기에 더한 흥미를 돋구어준다.

 

지리산문학상은 전국 20여개 시 전문 문학상 중에 소장파 시인들 누구나가 받고 싶어하는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문단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데다가 매년 제전위원장과 심사위원을 새롭게 선정하는 등 외부요인에 휘둘리지 않는 엄격한 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그동안 정병근, 최승자, 고영민, 박지웅 등의 수상자를 발굴한 지리산문학상은 지역과 유파 등을 구분하지 않고 시의 문학적 완성도와 비전만을 놓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문학상은 매년 기성 시인들의 작품과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문학평론가 홍용희와 유홍준, 정재학, 고영민 시인 등이 예심과 본심을 거치며 숙고 끝에 수상작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3시 함양여중 목련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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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백서 / 김상미


아주 가끔은 우울하고 대부분은 명랑해요
사람들은 내가 명랑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명랑은 우울보다 격조가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명랑하고 싶어요
무엇에든 광적으로 집착하는 체질이 못 되거든요
광적인 집착은 병적인 우울을 낳지요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
어디에서 불행이 오는지 어디로 행복이 달아나는지
쉴새없이 탐색하고 추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점점 명랑에서 멀어져 우울한 괴물로 변해버리죠
정말이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단것보다 쓴 것을 더 좋아한 탓인지
여하한 고통 위에 또 고통을 세워 그 안에 아무리 사나운 북쪽 창을 달아놓아도
내 열병은 시들 새도 없이 하루 만에 거뜬히 끝나버려요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합리적이고 쓸데없이 현실적인
값비싼 망원경 따위는 집착 강한 우울한 사람들에게나 모두 줘버려요
나는 그냥 바람 부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릴래요
무언가가 다가와 황홀하게 나를 감동시켜주길 원할래요
로댕의 대성당처럼 가우디의 카사 밀라처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지중해처럼
지로나의 내밀한 구시가지처럼 고야의 검은 집처럼 김정희의 아름다운 세한도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뒤뚱뒤뚱 해맑은 어린아이의 단순 명쾌한 웃음소리처럼
오성의 드높은 담장 단번에 밀치고 들어오는 놀라운 명랑에
자연스레 내 온몸 빠져들기를 원해요
아주아주 오래된, 처음과 끝 같기를 원해요
너도나도 창백한 백합꽃 같은 우울에 매달려
격조 있던 본래의 심연 구기고 구겨 뒤틀린 철갑 같은
고상 찬란한 신종 우울증
끊임없이 생산해내며 자랑스레 뻐기든 말든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언제나 명랑하고 싶어요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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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신서정파의 기수이며 1969년 [현대시학-창간:전봉건, 발행:전기화, 편집주간:고형렬02-701-2341] 창간하여 한국시단의 위상을 드높인 전봉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제정한 ‘제3회 전봉건문학상’과 새로운 사유와 감각으로 미래 한국시단을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는 ‘2007년도 현대시학 신인상’ 시상식이 ‘2018년도 현대시학 총회’와 함께 2월 23일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전봉건문학상 수상자는 시집'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펴낸 김상미 시인이 선정되었다.전봉건문학상은 지난 한 해 발간한 중견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와 평가를 통해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심사위원(이경림 시인, 이숭원 문학평론가)들은 심사평에서 “김상미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공적인 차원으로 전환하여 생의 진실과 비밀에 마주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화법, 유사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과 변화를 창조하는 그의 매혹적인 표현법은 이제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전봉건문학상 수상자인 김상미 시인은 1957년 부산 초량동에서 출생하였고, 1990년 계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다.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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