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북양항로 / 오세영

 

 

엄동설한,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문득

극지를 항해하는

밤바다의 선박을 생각한다.

연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우는

이 배의 일개 늙은 화부(火夫).

낡은 증기선 한 척을 끌고

막막한 시간의 파도를 거슬러

예까지 왔다.

밖은 눈보라.

아직 실내는 온기를 잃지 않았지만

출항의 설렘은 이미 가신 지 오래,

목적지 미상,

항로는 이탈,

믿을 건 오직 북극성, 십자성,

벽에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어긋난 해도(海圖) 한 장을 손에 들고

난로의 불빛에 비춰 보는 눈은 어두운데

가느다란 흰 연기를 화통(火筒)으로 내어 뿜으며

북양항로,

얼어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삶은

흔들리는 오두막 한 채.

 

 

 

북양항로

 

nefing.com

 

 

14회 영랑 시문학상을 수상한 오세영 시인에 대한 시상식이 28일 오후 영랑생가에서 진행됐다. '시작' 대표 이재무 시인, 심사에 참가한 나태주 시인 등 여러 문인들이 축하를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다.

 

영랑 김윤식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2003년 처음 제정된 영랑 시 문학상은 지난해에 발간된 시집 중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송수권, 고은, 신달자, 김지하, 장석주 시인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나태주 시인은 오세영 시인은 순수서정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사회의 속악성과 물질문명의 허위성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 시적인 외연을 더욱 드넓게 확대 재생산해온 시인으로 평가되어 왔다.”며 수상 시집 가을 빗소리에서 시인은 노경에 이른 투명한 눈으로 사물과 인생과 세계를 조망하면서 더욱 넓고 깊은 사유의 시세계를 펼쳐 보이고 이다."고 평가했다.

 

오세영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고향은 유년 시절을 보낸 전남 장성과 사춘기를 보낸 전북 전주라고 밝히며, “50년 문학 생애를 거치며 많은 상들을 받았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만든 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태어난 고향에서 주는 상이기도 하고, 고향에서 인정을 해주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이 든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랑문학제는 시상식에 이어 전남도립공연단, 뮤지컬배우 김차경 시낭송, 섹소폰 유상호 공연 등 축하공연이 이어졌으며, 오후 730분부터 시문학 축제의 밤이 진행됐다. 문학관장들의 애송시 낭독, 색소폰 공연, 군민 시 낭독 등으로 영랑생가의 밤이 시로 가득 찼다.

 

728x90

 

 

집만이 집이 아니고 / 오세영

 

 

출가出家라니

정녕 어디로 간단 말이냐.

머리 깎아 바랑 메고

산으로 간단 말이냐.

장삼 걸쳐 법장法杖 짚고

바다로 간단 말이냐.

바람 따라 향기 좇아 이른 계곡엔

도화桃花는 시나브로 꽃이 지는데

하염없이 개울물은 흘러가는데

강물 따라 소리 좇아 이른 바다엔

파도는 실없이 부서지는데

출가라니

누굴 따라 어디로 간단 말이냐.

집만이 집이 아니고

집 밖에 있는 것이 또 집인데

비로봉 만물상 곰바위 밑에

앉은뱅이 민들레나 되란 말이냐.

지리산 세석대 널바위 밑에

가지 꺾인 소나무나 되란 말이냐.

출가라니

집 밖이 또 집인데

정녕 어디로 가란 말이냐.

 

 

 

춘설

 

nefing.com

 

 

[심사평]

 

올해로 7회를 맞은 공초문학상은 시 부문에 시상하는 문학상으로 그동안 수상자들의 면면을 볼 때 그 높이와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상이다.

 

이에 부응해 5명의 심사위원들은 운영 규정에 명시된 ‘20년 이상의 문단 경력이 있는 작가로 작품의 우수성뿐 아니라 수상자의 인품도 고려한다’ ‘전년도 6월부터 당해년도 5월까지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에 맞는 시인의 작품을 고르기 위해 3명 이상 대상자를 추천한 뒤 다수 득표자 2명으로 압축,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문학상의 참뜻을 살리기 위해선 국외자적 위치에서 고독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시인들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시집 벼랑의 꿈을 펴낸 오세영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수상작은집만이 집이 아니고’. 오세영 시인은 시력(詩歷)30년 넘게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오면서 일관되게 한국시의 정체성을 모색해온 중진 시인이다. 이번에 펴낸 제10시집 벼랑의 꿈은 고승들에게서나 접하던 선시의 내밀한 정서를 현대적 삶에 새롭게 접목시키고 있다. 특히 수상작은 자기 존재의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표출되는 정신적 방황을 서정적이고 모던한 언어로 포착, 현대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이런 성과는 저 무소유의 존재론적 시사상을 펼쳤던 공초의 문학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 심사위원 대표 이근배(시인)

 

728x90

 

 

그릇 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춘설

 

nefing.com

 

 

시는 한 시대의 발광체시는 우리에게 언어의 순도 높은 결정체며 문화 활동의 꽃을 뜻한다. 특히 아름다운 시는 우리를 변혁, 승화시켜 주며 한 시대와 세계를 불 밝히는 발광체로 타오른다. 시인 오세영은 그동안 우리 모국어를 갈고 다듬으며 새롭게 해석하여 문단과 사회의 한 풍경을 이루어 준 분이다. 그의 상상력은 동 시대의 감각을 넉넉히 수용해 내었고 아울러 전토의 발전적 수용에도 기능적으로 작용해 왔다.

 

- 1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오세영 시인의 작품은 익히 봐온 터라 그이 역량을 알고 있었다 박두진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 중후한 형상성으로 소월상의 영예를 한층 높였다 구상

 

()과 실()을 달아 보고자 하는 철학적 시각과 어법의 탄력이 좋다 김남조

 

그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 속에 허무, 시간, 존재와 같은 관념을 담는다 이어령

 

오세영은 소월이 이룩한 큰 시인으로의 길을 개척할 가능성의 시인이다 김용직

 

- 심사평 중에서

 

 

 

눈 덮인 들녘에서 본 별 하나나는 밝은 대낮보다도 어두운 밤의 세계를 사랑한다. 숨겨져 있는 것들, 왜곡되어 있는 것들, 잊혀져 있는 것들, 버려져 있는 것들, 죽어 가고 있는 것들이 모두는 밤이 부둥켜안고 뒹구는, 고뇌하고 꿈꾸는 연민과 증오의 목숨들이다. 태양이 외면한 이 밤의 사물들을 위하여 오늘 밤도 별들은 저렇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나의 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6년도 저물어 간 어느 눈 덮인 밤의 들녘에서 나는 비로소 보았다. 서편 하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 꺼질 듯이 떠오르는 별 하나를, 그리고 나는 오늘부터 그것을 나의 별이라 믿기고 하였다.

 

- 수상소감 중에서

 

 

728x90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가 주관하는 제2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오세영(69, 서울대 명예교수) 시인과 최현식(43, 경상대 교수) 평론가가 선정돼 기념 시낭송회를 가졌다.

6월 3일 오후 6시 서울 고려대학교 국제관 2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서울신문사 임원, 김종길 시인, 김윤식 평론가를 비롯한 심사위원 및 문인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축사, 김달진문학상 심사평, 당선소감, 수상시 낭송, 축가, 서정시학 신인상 시상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펼쳐졌고, 본상 시상식은 9월 3일 김달진문학제 때 창원 진해시민회관에서 갖는다.

본상 상금은 각 2000만원으로 수상작은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오세영 시인)과 평론집 ‘시는 매일매일'(최현식 평론가)이다.

 

 

 

 

2011년 제22회 김달진문학상 · 제1회 창원KC 국제시문학상 작품집

 

nefing.com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 오세영(吳世榮)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65-1968 현대문학 추천 완료(추천: 박목월 시인). 충남대 국문과(1974), 단국대 국문과(1981) 서울대 국문과(1985) 교수 역임.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사랑의 저쪽,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불타는 물, 어리석은 헤겔, 벼랑의 꿈, 적멸의 불빛, 봄은 전쟁처럼, 시간의 쪽배,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 아래서, 연구서 한국 낭만주의시 연구, 서정적 진실, 문학연구 방법론, 한국근대문학론과 근대시, 한국현대시인 연구, 시의 길, 시인의 길,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현대시와 불교, 평론집 현대시와 실천비평, 변혁기의 한국 현대시』 『20세기 한국시의 표정 등이 있음. 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불교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예술상 수상. 2006년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밤 하늘의 바둑판

 

nefing.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