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항로 / 오세영
엄동설한,
벽난로에 불을 지피다 문득
극지를 항해하는
밤바다의 선박을 생각한다.
연료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화실(火室)에서 석탄을 태우는
이 배의 일개 늙은 화부(火夫).
낡은 증기선 한 척을 끌고
막막한 시간의 파도를 거슬러
예까지 왔다.
밖은 눈보라.
아직 실내는 온기를 잃지 않았지만
출항의 설렘은 이미 가신 지 오래,
목적지 미상,
항로는 이탈,
믿을 건 오직 북극성, 십자성,
벽에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어긋난 해도(海圖) 한 장을 손에 들고
난로의 불빛에 비춰 보는 눈은 어두운데
가느다란 흰 연기를 화통(火筒)으로 내어 뿜으며
북양항로,
얼어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삶은
흔들리는 오두막 한 채.
제14회 영랑 시문학상을 수상한 오세영 시인에 대한 시상식이 28일 오후 영랑생가에서 진행됐다. '시작' 대표 이재무 시인, 심사에 참가한 나태주 시인 등 여러 문인들이 축하를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다.
영랑 김윤식의 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2003년 처음 제정된 영랑 시 문학상은 지난해에 발간된 시집 중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송수권, 고은, 신달자, 김지하, 장석주 시인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나태주 시인은 “오세영 시인은 순수서정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사회의 속악성과 물질문명의 허위성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 시적인 외연을 더욱 드넓게 확대 재생산해온 시인으로 평가되어 왔다.”며 수상 시집 ‘가을 빗소리’에서 시인은 노경에 이른 투명한 눈으로 사물과 인생과 세계를 조망하면서 더욱 넓고 깊은 사유의 시세계를 펼쳐 보이고 이다."고 평가했다.
오세영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마음과 육신의 고향은 유년 시절을 보낸 전남 장성과 사춘기를 보낸 전북 전주라고 밝히며, “50년 문학 생애를 거치며 많은 상들을 받았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만든 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태어난 고향에서 주는 상이기도 하고, 고향에서 인정을 해주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이 든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랑문학제는 시상식에 이어 전남도립공연단, 뮤지컬배우 김차경 시낭송, 섹소폰 유상호 공연 등 축하공연이 이어졌으며, 오후 7시 30분부터 시문학 축제의 밤이 진행됐다. 문학관장들의 애송시 낭독, 색소폰 공연, 군민 시 낭독 등으로 영랑생가의 밤이 시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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