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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 / 엄원태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산벚나무 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때, 눈물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속수무책 깍지 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다듬어주던 그 바람이다.

 

제 몸 비워버린 비닐봉지는

하염없고 하염없는 몸짓을 보여준다.

저 적요한 독무는

상처의 발가락마저, 두 발마저, 지워버렸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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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주관하는 제15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엄원태(63)'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가 선정됐다.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된 작품에는 상금 1,000만원이 제공된다.

 

엄원태의 이번 시집은 따뜻한 입김처럼 잡념 없는 사람의 잡음이 없는 말이 잔잔하게 독자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그것이 그의 시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 내면의 풍경에 당도해 있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가' '고통의 임계 지점'을 지나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시집의 표제작처럼 그의 시는 멀리서 천천히 먼 우레처럼 결국엔 우리에게 다시 올 것이다.

 

시인 엄원태는 1990년 계간문학지 '문학과사회''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침엽수림에서''소읍에 대한 보고''물방울 무덤''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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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덤 / 엄원태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이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둥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 내며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이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물방울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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