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크기 / 조영심
그리움에는 닿지도 못할 한 뼘 엽서를 본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간절한 전언인 양
최초의 선언인 양
붙잡고 있는
방금 보았지만 돌아서면 다시, 울컥
보고 싶어지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그림
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에서도 한 줄 소식에 달게, 매달리는 날들
단단한 그리움 아쉬움 모두를 이 작은 종이그릇에 어떻게 다 담을 수 있을까
바다 건너온 바람이 옆에서 소리 높여 활자를 읽어주자
다섯 줄 골똘한 단문
한 뼘씩 목마른 곡절로 행간을 넓혀가며
다섯 장 장문으로 커가는 중인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고 있을
그녀만의 방언,
내 속까지 파고드는 둥그런 파동
자꾸 터져만 간다
[수상소감]
금방 보고 돌아서면 다시 딸이 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그리움의 높이로만 바라보며 돌아서던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등으로 바람결에 날아든 낙엽처럼, <제18회 애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당황하여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또한 낭패스럽기도 하여 햇볕 쪽으로 옮겨 놓았던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시들거리던 화초가 햇살비를 맞고 눈에 띄게 힘이 올라 잎들도 윤기가 흐릅니다.
문득 나의 시간도 거기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2005년 처음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송수권 교수님과 시 공부를 시작하여 <산문시사>문학 동호인들과 시를 공부하던 중 2007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인의 이름을 달았고, 그 뒤 5년마다 『담을 헐다』 『소리의 정원』 『그리움의 크기』 시집 3권을 내놓았으니 2020년 올해로 15년 차 시인입니다.
신神이 파놓은 시詩의 함정에서 언어의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것이 시詩라면 저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신의 함정에 빠져 버린 셈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마다 그분과 함께 젖은 곳에서는 설움을 대신하는 곡비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광대가 되어 외줄을 탔습니다. 제가 한 일은 오직 그분의 방문에 기꺼이 혹은 기어이 응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으로 하루해가 짧았고 한편 한편의 기쁨에 뿌듯했습니다.
나의 시의 모지인 <애지문학상>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를 쓴답시고 남의 울음에 내 설움을 섞어 곡하는 곡비 놀음은 아니었나? 어름사니 흉내 내며 어설프게 외줄에 올라 부채를 펴고 접는 잔재주만 부린 것은 아닌가, 뒤 돌아보게 됩니다.
<제18회 애지 문학상>은 아직 어설프고 빈곳이 너무 많아 그곳을 따스한 햇살비로 채워주신 거라 믿습니다. 나의 시도 어느 누군가에는 한 줌 햇살비가 되어 생기를 불어 넣으라는, 세상의 생명을 북돋우는 곡비요 어름사니가 되라는 주문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심사위원님들과 반경환 『애지』 주간님 격려의 뜻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심겠습니다.
[심사평]
지난해 겨울호부터 이번 가을호까지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시들 중에서 엄선된 10편의 후보작을 읽고, 그중에서 <애지> 2020년 가을호에 발표된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를 제18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한해동안 생산된 그 많은 시편중에서 작품 하나를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정 기준도 심사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이 뛰어나고, 앞으로 애지문학상의 위상을 진취적으로 이끌 작품을 고르기 위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는 선명한 이미지와 깊이 있고 절제된 언어로 그리움의 정서를 실감있게 그려냈다. 이 시에 개입된 서사도‘휠체어에 앉은 그녀’나‘바다 건너온 바람’정도로만 노출되어 있어서, 시상의 전개를 압박하지 않으면서 외려 그런 서사의 여백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이 시의 화자가 연민의 감정으로 지켜보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사람일 터이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요양기관에서 지내는 듯하고, 거기서 그리운 사람들로부터 부쳐오는 엽서의 “한 줄 소식에” 매달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칫 상투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던‘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 시에서 생의 말년의 고독을 대변하고 그에 저항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의 기호로 절절하게 읽힌다.“작은 종이 그릇”인 한뼘 엽서에 “다섯 줄 골똘한 단문”으로 시작하여 “다섯 줄 장문”을 넘어 “하늘과 땅이 알고 있을/그녀만의 방언”으로, 무한대의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게 그런 연유이다. 요즘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러 병원으로 간다. 현대인의 죽음의 장소가 치료와 재활이 목적인 병원이라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양원도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처소일 수도 있다.
시 「그리움의 크기」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쇠락과 질병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는 노인 세대가 처한 현실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속에서 노년의 고독과 소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의연하다.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금, 이 시는 개인사적 이야기를 넘어 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삶과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이에 광활한 삶의 영지를 대부분 잃고, ‘휠체어’라는 작은 영토에서 안간힘을 다해 그리움의 제국을 일으키려는, 삶의 비장미를 한껏 고양시킨, 조영심의 「그리움의 크기」를 올해 애지문학상으로 선정하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반경환, 송찬호(심사평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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