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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크기 / 조영심

 

 

그리움에는 닿지도 못할 한 뼘 엽서를 본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간절한 전언인 양

최초의 선언인 양

붙잡고 있는

 

방금 보았지만 돌아서면 다시, 울컥

보고 싶어지는 온몸이 서늘해지는 그림

 

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에서도 한 줄 소식에 달게, 매달리는 날들

 

단단한 그리움 아쉬움 모두를 이 작은 종이그릇에 어떻게 다 담을 수 있을까

 

바다 건너온 바람이 옆에서 소리 높여 활자를 읽어주자

다섯 줄 골똘한 단문

한 뼘씩 목마른 곡절로 행간을 넓혀가며

다섯 장 장문으로 커가는 중인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고 있을

그녀만의 방언,

내 속까지 파고드는 둥그런 파동

자꾸 터져만 간다

 

 

 

 

그리움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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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금방 보고 돌아서면 다시 딸이 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그리움의 높이로만 바라보며 돌아서던 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등으로 바람결에 날아든 낙엽처럼, <제18회 애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당황하여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또한 낭패스럽기도 하여 햇볕 쪽으로 옮겨 놓았던 화분들을 바라봅니다. 시들거리던 화초가 햇살비를 맞고 눈에 띄게 힘이 올라 잎들도 윤기가 흐릅니다.


문득 나의 시간도 거기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2005년 처음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송수권 교수님과 시 공부를 시작하여 <산문시사>문학 동호인들과 시를 공부하던 중 2007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인의 이름을 달았고, 그 뒤 5년마다 『담을 헐다』 『소리의 정원』 『그리움의 크기』 시집 3권을 내놓았으니 2020년 올해로 15년 차 시인입니다.

 

신神이 파놓은 시詩의 함정에서 언어의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것이 시詩라면 저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신의 함정에 빠져 버린 셈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마다 그분과 함께 젖은 곳에서는 설움을 대신하는 곡비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광대가 되어 외줄을 탔습니다. 제가 한 일은 오직 그분의 방문에 기꺼이 혹은 기어이 응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으로 하루해가 짧았고 한편 한편의 기쁨에 뿌듯했습니다.

 

나의 시의 모지인 <애지문학상>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를 쓴답시고 남의 울음에 내 설움을 섞어 곡하는 곡비 놀음은 아니었나? 어름사니 흉내 내며 어설프게 외줄에 올라 부채를 펴고 접는 잔재주만 부린 것은 아닌가, 뒤 돌아보게 됩니다.

 

<제18회 애지 문학상>은 아직 어설프고 빈곳이 너무 많아 그곳을 따스한 햇살비로 채워주신 거라 믿습니다. 나의 시도 어느 누군가에는 한 줌 햇살비가 되어 생기를 불어 넣으라는, 세상의 생명을 북돋우는 곡비요 어름사니가 되라는 주문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심사위원님들과 반경환 『애지』 주간님 격려의 뜻을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심겠습니다.

 

 

 

소리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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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지난해 겨울호부터 이번 가을호까지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시들 중에서 엄선된 10편의 후보작을 읽고, 그중에서 <애지> 2020년 가을호에 발표된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를 제18회 애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한해동안 생산된 그 많은 시편중에서 작품 하나를 고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정 기준도 심사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이 뛰어나고, 앞으로 애지문학상의 위상을 진취적으로 이끌 작품을 고르기 위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조영심의「그리움의 크기」는 선명한 이미지와 깊이 있고 절제된 언어로 그리움의 정서를 실감있게 그려냈다. 이 시에 개입된 서사도‘휠체어에 앉은 그녀’나‘바다 건너온 바람’정도로만 노출되어 있어서, 시상의 전개를 압박하지 않으면서 외려 그런 서사의 여백이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이 시의 화자가 연민의 감정으로 지켜보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몸과 정신의 이별을 견딤으로 버티는 벼랑 끝”생의 막바지에 도달한 사람일 터이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요양기관에서 지내는 듯하고, 거기서 그리운 사람들로부터 부쳐오는 엽서의 “한 줄 소식에” 매달려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칫 상투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던‘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이 시에서 생의 말년의 고독을 대변하고 그에 저항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의 기호로 절절하게 읽힌다.“작은 종이 그릇”인 한뼘 엽서에 “다섯 줄 골똘한 단문”으로 시작하여 “다섯 줄 장문”을 넘어 “하늘과 땅이 알고 있을/그녀만의 방언”으로, 무한대의 그리움을 담아낼 수 있는 게 그런 연유이다. 요즘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러 병원으로 간다. 현대인의 죽음의 장소가 치료와 재활이 목적인 병원이라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양원도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처소일 수도 있다.

 

시 「그리움의 크기」에서도 신체와 정신의 쇠락과 질병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는 노인 세대가 처한 현실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속에서 노년의 고독과 소외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휠체어에 앉은 그녀’가 의연하다.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지금, 이 시는 개인사적 이야기를 넘어 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삶과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이에 광활한 삶의 영지를 대부분 잃고, ‘휠체어’라는 작은 영토에서 안간힘을 다해 그리움의 제국을 일으키려는, 삶의 비장미를 한껏 고양시킨, 조영심의 「그리움의 크기」를 올해 애지문학상으로 선정하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반경환, 송찬호(심사평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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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수프 / 송찬호

 

 

인구 3만의 도시 남쪽에 있는
늪에 악어가 살고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늪은
도시가 팔을 쭉 뻗어
대지에 끓이는 프라이팬 같다

도시는 자주 악어사냥꾼들을 늪에 보낸다
그때마다 악어는
수프를 끓여야 한다
사냥꾼들에게 먹일 수프를 끓여야 한다

악어는 온몸으로 수프를 휘젓는다
머리로
네 다리로
치명적인 억센 꼬리로
사냥꾼들이 도착하면 수프도 완성된다

사냥꾼들은 늪을 샅샅히 뒤진다
총알 구멍 난 늪의 침대를 누군가 가리킨다
놈이 여기 누워있다 도망친 게 틀림없군
사냥꾼들은 웃는다 소리친다 퍼먹는다 맛있는 늪의 수프를!

사투 끝에 악어 한 마리가 늪 밖으로 끌어 올려진다
눈이 가려지고
주둥이가 묶이고
악어의 머리에 무거운 돌이 놓여진다
그대로 악어는 끌려간다
악어를 짓누른 그 돌이 도시의 기초가 되었으니…

사냥꾼들이 떠난 후 늪의 수면으로 천천히 악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늪은 이제 고요하다
악어는 다시 수프를 끓인다
먼 피의 강으로부터
악어의 딸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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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며칠 전에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단풍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 너머로는 이름난 속리산도 있지만, 그날 갔던 산은 그리 높지 않고 혼자서도 걷기에 좋은 고적함이 있었습니다. 이왕 산에 들었으니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정상에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며 오를수록 통증이 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리하면 무릎 관절염이 더 심해지겠다는 생각에 그만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8부 능선쯤의 바위에 앉아 가져간 물과 빵을 먹으며 한참 쉬었습니다.


산꼭대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서도 겹겹의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제가 사는 동네도 보이고 그 앞 국도로 성냥갑만한 차들이 바삐 오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문득 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문학의 높이라면, 제 시쓰기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봉우리는 꼭 문학적 성취나 성공의 높이를 이르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쓰고자 하는 글의 목록이나 쓰는 글의 내적 열망의 크기를 가리키는데 더 가까운 말입니다. 요즘 제가 원고지앞에 옛 습작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자꾸 소환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위치는 지금 산 날망이 아니라, 오르는 비탈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처럼 무릎이 아프면 쉬엄쉬엄 올라야 하거나 아예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에 따른 퇴행을 넘어 무릎의 건강을 바라는 심정과 같이, 저의 ‘문학에의 등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입니다.

 

지난 몇 년간 시에 대한 고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시가 새롭지 않으리란걸 압니다. 그래도 계속 시를 쓸 것입니다. 그렇게 쓴 시가 평이하게 비쳐도 수긍하겠습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저를 호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상을 주시는 것도, 비록 평이한 시가 나올지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치열한 갱신의 정신으로 다가가라는 격려와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심사해주신 선생님들께 시에 대한 더욱 부지런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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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

 

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는 사회적 천민들의 ‘눈물의 수프’이며, 그 ‘수난의 역사’를 우화적으로 노래한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제국주의와 똑같고, 소수의 귀족들(자본가들)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다 움켜쥐고,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능력까지도 다 빼앗아 버린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토록 사납고 포악한 악어는 육체노동을 하는 농민들이고, 이 농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최고급의 농산물을 생산해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고작 피곤하고 지친 육체와 가난과 병과, 심지어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과정은 송찬호 시인이 역설한 대로 악어가 악어사냥꾼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수프를 끓이고, 끝끝내는 자기 자신의 육체마저도 먹잇감으로 바치는 것과도 똑같다. 하나도 희생정신이고, 둘도 희생정신이고, 이 악어들의 희생정신이 도시의 자본가들, 또는 도시의 고급문화인들의 삶의 토대가 된다.


모든 고급문화는 「악어의 수프」의 역사이며, 이 땅의 이름없는 사회적 천민들의 희생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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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정치 / 이영식

 


불, 질러놓고 보는 거야
가지마다 한 소쿠리씩 꽃불 달아주고
벌 나비 반응을 지켜보는 거지
그들의 탄성이 터질 때마다
나무에서 나무로 번지는 지지 세력들
꽃의 정부가 탄생되는 거라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네

봄날 내내 범람하는 꽃불을 봐
꿀벌은 꽃이 치는 거지
벌통으로 키우는 게 아니야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들
그게 며칠이나 가겠어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
같은 꽃 같은 향기더라도
오는 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행복해 하는 거야

봄날은 간다
꽃의 정부가 다하더라도
후회는 없어
튼실한 열매가 뒤를 받혀 줄 테니까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전쟁은 다른 수단의 정치“를 변용함.

 

 

 

꽃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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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올해는 『애지』 창간 20주년을 맞는 해라지요.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만이 당신의 존재증명이라 주창하며 『애지』를 이끌어 오신 주간님과 편집 종사자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올립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등단 20년을 코앞에 둔 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연필을 깎다 보니, 나도 한 자루 연필이 아니었나 싶다. 動亂 통, 탄피처럼 흙바닥에 뚝 떨어진 연필 하나. 시간의 칼날로 매일 나를 깎고 다듬어서 꾹꾹 눌러썼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볼펜과 만년필 틈에서 기를 써 봐도 손톱만 부러진 채 다시 나락으로 굴러 구더기 떼만 들끓던 날들이여. 세상 밑그림만 그리다가 어느새 몽당해지고 너무 작아 쓸모없다 내팽개칠 때쯤 연필심처럼 묵묵한 기다림 속으로 시가 왔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울음이 노래가 되었다. 별도 별사탕도 되지 않는 시를 향한 외눈박이 사랑으로 눈멀어서야 흑심 가득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꽃도 좋고 가시도 좋았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경작하느라 솔개그늘만한 밭 한 뙈기 품어 본 적 없으니 세상 뜰 때는 몽당연필 같은 시집 몇 권 달랑 메고 참, 가볍게도 가겠다.

저는 불혹도 한참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시인의 마을에 셋방 한 칸 겨우 얻었습니다. 그러니 뭐 내보일 세간살이도 없었지요. 내 머리맡에 놓인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알 두 쪽은 달렸는데 남자가, 대쪽 같은 기개가 없습니다. 한 때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더운피 개천에 풀어 저잣거리에 이름값이라도 한 모양인데, 요즈음은 시 쓰기가 신변잡기 파리채 놀음이나 다름 아닙니다. 作爲만 있고 行爲가 없습니다, 活語라면 살 저며 등뼈 내놓고 초장이라도 튀어야할 거 아닌가요? 가끔 언어를 비틀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성찬을 베풀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개다리소반에 찬밥신세입니다. 시인의 모자를 쓰고 보니 어깨가 자꾸 움츠러듭니다. 걸음걸음이 조심스럽고 그림자조차 낮은 곳으로 눕습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 비틀린 채 땅바닥에 헛바퀴를 돌고 있는 외뿔풍뎅이입니다. 세상의 저녁, 어느 한 불빛이 내 시를 읽고 있는지요. 우리가 상한 날개 껴입고 헛춤을 추는 것은 아직도 추락할 꿈이 남아있음입니다.

문장을 갖는다는 것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지요. 詩, 참 오랜 동안 내 곡진한 마음의 情人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할 때는 물고기처럼 잡아 탕을 끓이거나 우려먹고도 싶었고 속이 뻔해 보이는 그의 몸에 붙어 무언가 도모해 보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백컨대, 시 앞에 혼자이지 못했습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느라 바람만 들었습니다. 이제, 항복합니다. 시 앞에 무릎 꿇습니다. 끊고, 닫고, 못 박아, 소금 한 줌 속에 녹아있는 열 말의 바닷물처럼 나를 가두겠습니다. 충분히 외롭겠습니다. 혼자인 그 외로움일랑 『애지』와 나누며 살겠습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별처럼 빛나는 작품들 속에서 제 시에 꽃을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과 곡진한 인사를 올립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애지창간 20년을 이어오며 시 잡지 만드느라 옛날 그 좋던 뚝심 다 내려놓은 반경환 주간님께도 위로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시문학을 통해 지금까지 맺어온 뜻깊은 인연 앞으로도 잘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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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영식 시인은 낭만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꽃의 정치」는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의 소산이라는 점에서는 낭만적이고, 「꽃의 정치」는 머나먼 저곳의 정치라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꽃의 정치」를 실현시키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는 꽃의 정치의 목표가 되고, 이 ‘꽃의 정치’는 이상세계와 이상세계의 행복을 보장해주게 된다. 정치란 ‘무보수 명예직’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지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것 같은 꼼수와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라는 시구에서처럼, 이웃 국가의 정책으로 꽃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진실이 없으면 피어나지 않는 꽃이며, 전국민의 행복이 보장된 ‘꽃놀이패’의 축제를 연출해내기 위해서는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와 전통은 「꽃의 정치」의 토대가 되고, 이 역사와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이 반목과 대립이 없는 사랑의 정치가 실현될 수가 있다.

 

꽃의 정치와 꽃의 정부는 우리가 이영식 시인을 통해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며, 만인들의 행복의 향기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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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 이경림

 

가죽혁대처럼 질기고 긴 길의 끝에서 나는 보았네 加恩이라는 유리문을. 나는 보았네 그 속에서 수 세기가 내 몸을 돌아 나오는 것을. 지나간 들판 지나간 산 지나간 마을회관 지나간 밤의 광장이 보여주던 무성영화들. 나는 보았네 똥 장군을 지고 가는 장수아버지,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돌아가던 아랫마을 김 영감,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었네, 할머니는 방안에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네, 이마에 간대라 불을 단 광부들이 막장으로 가는 비탈에 한 줄로 놓여 있었네 한 떼의 개미들처럼 나는 보았네 검고 둥그렇게 서 있는 옥녀봉, 비탈에 자지러지게 피어있는 도라지꽃, 구호물자를 받으려 줄을 선 사람들, 악동 형태는 전봇대를 타고 고압선 쪽으로 오르고 있었네. 그 아래, 누렁개 한 마리가 뉘엿뉘엿 먹이를 찾아 다녔네. 아버지는 눈만 반짝이는 광부들을 지휘하고 있었네. 황금빛 해가 옥녀봉 꼭대기에 우스꽝스레 걸려 있었네. 나는 보았네 멋쟁이 신 선생이 도래실로 가는 모롱이에서 어떤 키 큰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봉암사 상좌승은 시주바랑을 메고 북쪽으로 가는 길 위 놓여 있었네. 나직한 돌담 너머 집들이 비틀 서 있었네
 

나는 보았네 어린 고염나무가 조랑조랑 매달고 있는 버거운 식구들을. 분홍 양산을 쓴 처녀들은 위험한 레일 위를 걷고 있었네. 도랑마다 물이 넘치고 둑방에는 문득 몸메꽃이 피어 있었네 검은 숲이 검은 새들을 날리고 있었네 나는 보았네 바람난 옥자가 검은 새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고통처럼 길고 질긴 가죽혁대가 그녀가 날아간 허공에 떠 있었네

*가은, 도래실,-경북 문경에 있는 마을 이름
*봉암사-문경에 있는 사찰

 

 

 

 

급!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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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상을 받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벌을 받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분명 명예로운 일이지만 반면 채찍이며 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라는 괴물이 폐결핵에 심한 공황장애 환자이던 제게 운명처럼 들이닥쳐 머리채를 잡고 30년을 조리돌린 일처럼.

문청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정지용의 백록담을 본 것이 초등학교 5학년 쯤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 아버지의 책들 사이에서 오장환 임화 백석 김기림의 시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절대 시인은 되지 않겠다 생각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아버지의 책상에서 보던 그 책들과 원고뭉치들은 우리의 배고픔에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이과를 선택했으나 가난은 배우는 일 조차 뜻대로 못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입원해 있던 병실에서 그것은 마치 주문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원인불명의 불면이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밤새 받아쓰기 하듯 그것들을 썼습니다. 수면제에 취해 잠이 들면 꿈속에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괴로웠으나 황홀했습니다. 마치 오로라 속을 휘몰려 다니는 알 수 없는 기류처럼.

 

시는 광기입니다 불면입니다. 크라이막스 입니다. 섹스입니다. 유토피아이며 타나토스이며 춤이며 거대한 침묵입니다. 침묵을 찢고 나오는 꾕가리 소리입니다. 우뢰이며 번개이며 소나기입니다. 흐느낌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에 머리채 잡혀 끌려온 지난 생은 아름다웠습니다. 시를 먹고 시를 싸고 시를 타고 시로 달리며 시를 노닥거리며 지나가는 저녁을 바라보게 해 준 시에 감사합니다. 해질녘입니다. 황혼이 아름다운 것은 이글거리던 해가 저 너머에서 반추해 주는 노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저녁이 더욱 아름답도록 제 시에 손 얹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저 때문에 기회를 잃으신 저보다 훌륭하신 몇 분의 동료 시인들게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벌을 받는 거라 생각하고 더욱 삼가며 살겠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애지의 반경환 주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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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최근 우리 시단은 크게 활력이 떨어져 있다. 한 동안 문단을 휩쓴 미래파의 시들은 애초의 저항성을 상실하고 분별한 아류들의 언어유희로 전락해 있고, 문단 일각에서는 서정성의 부활을 말하고 있으나 아직은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고답적 서정의 답습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시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많은 시전문지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 안의 언어들로 채워지고 있다. 언어의 힘으로 사회와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다. 문학상은 바로 이런 작품을 찾아 한 시기 우리 문학의 성과를 확인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 문학상은 상업성과 문단의 권력화의 수단이 된 지 오래이다. 오직 애지 문학상만이, 우리 문학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가나 시인에게 문학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주제의 시의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시인이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지 또 얼마나 치열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10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정채원의 홀로그램, 송찬호의 종이 공주, 윤제림의 달이 즈믄 사람에, 복효근의 그리움의 속도, 이병률의 어떤 걱정, 이경림의 자정, 이영식의 달은 감정노동자, 천양희의 초미금, 양선희의 시를 읽는다, 장옥관의 덜렁덜렁이 후보작이었다. 다들 한 해 동안 우리 문단을 빛낸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많은 논의 끝에 앞서의 선정 취지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경림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경림 시인의 자정은 사색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 우리의 삶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을 쉬운 언어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추억이 불러오는 익숙한 정서에 빠지거나 과거가 주는 안온함에 쉽게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아픔과 비극성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슬픔과 고통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진정한 인간애가 이런 것들의 이해 위에서 가능하다는 희망을 함께 보여준다. 이경림 시인의 이번 수상 작품은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고 잔잔하면서도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경림 시인의 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경림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을 통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둘 모두에게 큰 영광이었으면 한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황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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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 문태준

 

 

만일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창백한 서류와 무뚝뚝한 물품이 빼곡한 도시의 캐비닛 속에 있지 않았다면

맑은 날의 가지에서 초록잎처럼 빛날텐데

집 밖을 나서 논두렁길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갈텐데

흙을 부드럽게 일궈 모종을 할텐데

천지에 작은 구멍을 얻어 한 철을 살도록 내 목숨도 옮겨 심을텐데

민들레가 되었다가 박새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바람이 되었다가

나는 흙내처럼 평범할텐데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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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어머니의 들판과 필체와 한 편의 시

 

해마다 늦가을이면 나에게는 택배가 배달되어온다. 택배 상자에는 여러 곡물이 들어있다. 볶은 깨와 빻은 고춧가루, 까만 콩 등속이다. 육중한 택배를 들어 올릴 때 나는 하나의 들판을 들어 올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그 들판에서 일어났을, 힘겨웠을 노동의 하루하루들에 대해 잘 안다. 논과 밭, 그리고 둑에서 싹 트고 자라 오르고 열매 맺은 작물들의 일이며, 그 작물들을 아침저녁으로 보호하고 돌보았을 농부의 지극한 마음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택배가 배달되어오는 날에 내 심경은 만산중(萬山中)에 있는 것만 같다.

 

택배가 배달되어올 때 나는 나의 주소지를 적은 필체를 들여다본다. 볼펜으로 꾹 눌러쓴 내 어머니의 필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여간 야무진 필체가 아니다. 어머니는 부재시 관리실에 배달 부탁합니다.”라고도 써놓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필체가 호미를 빼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 ’, ‘’, ‘와 같은 모음을 쓰실 때 어머니는 빨랫줄을 받치기 위해 바지랑대를 높이 들 때처럼 위로 치켜들어 쓰신다. 나는 이 필체가 어머니의 성품과 어머니의 신념과 어머니의 노동의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허술하게 하시는 게 없었다. 깨를 털 때에도, 바느질을 할 때에도, 밥 짓고 설거지를 할 때에도, 기도를 할 때에도. 특히 끝맺음의 경우에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어머니의 필체 생각이 났다. 동시에 나에게 배달되어오는 가을 들판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한 편의 시도 하나의 필체이며, 하나의 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시가 고유하고 특별한 필체를 갖고 있는지 또 나의 시가 하나의 들판처럼 고된 노동으로 이뤄진 것인지도 함께 자문해보았다.

 

미흡한 것을 잘 채우고 가다듬어가라고 이 상을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격려인 동시에 반조(反照)를 당부하는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상을 받으니 어머니께서 아주 좋아하시겠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함께 사는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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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상은 목표나 수단이 아니라 단지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수상을 목표로 시작을 하거나 문학상을 수단으로 상업성과 유명세를 얻으려는 풍조가 지금 우리 문학계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 문학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가나 시인에게 문학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당위는 사라지고 끼리끼리 상을 나눠 가지고 명망성에 기대 문학상의 위상을 높이려는 반칙들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애지문학상의 의의는 이러한 풍조에 대한 비판이고 거부라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우리 문단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고 또 얼마나 치열한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는지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10편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김혜순의 「떨어진 별처럼」, 문태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고영민 「붉은 입술」, 문정희 「거위」, 유종인 「방석집」, 박이화 「한바탕 당신」, 정해영 「종이학」, 박형준 「불광천」, 엄재국 「호모 dew」, 김병호 「일요일」이 후보작이었다. 모두 훌륭한 작품이어서 쉽게 선정할 수 없었다. 많은 논의 끝에 가장 애지의 문학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문태준 시인의 작품을 선정했다.

 

문태준 시인의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은 아주 새로운 주제나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문명비판이라는 다소 식상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진정성 있는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삶의 인식에 가닿고 있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루한 삶속에서 우리 자신을 낭비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가두고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새로운 꿈으로 새 삶을 준비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를 읽으면 슬프다. 그 슬픔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비극적 현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시인은 이 슬픔을 통해서 단순한 문명비판을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문태준 시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쉬운 언어, 공감의 표현, 소통의 화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투와 단순함을 넘어서는 사유의 깊이 그것이 바로 문태준표 문학이다.

 

문태준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영광이었으면 한다.

 

심사위원 일동(황정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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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린 책 / 송종규

 

켜켜 햇빛이 차올라 저 나무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고요히 지켜보던 어린 나방은 마침내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바스러질 듯 하얗게 삭은 세월이 우체국을 세워 올렸을 것이다.

숲과 별빛과 물풀들의 기억으로 악어는 헤엄쳐 나가고 행성은 궤도를 그리며 우주를 비행했을 것이다.

천만 잔의 독배를 마시고 나서 저 책은 완성되었다

, 이제 저 책을 펴자

잎사귀를 펼치듯 저 책을 펼치고 어깨를 구부리듯 저 책을 구기자

나무의 비린내와 꽃과 어린 나비가, 악어와 우체통이 꾸역꾸역 게워져 나오는 저 책

저 책을 심자

저녁의 우주가, 어두운 허공인 내게 환한 손을 가만히 넣어줄 때까지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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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 같고 회오리 같고 꽃잎 같은 잎사귀들이 내 뜰에 수북수북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고 차고 환하게 얼비치는 그 아름다운 문장 속에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천산북로의 만년설처럼 녹지 않는 눈은 말고, 가슴 에이게 하는 사무치는 싸락눈은 말고, 낯선 손님처럼 처음인 듯 눈이 와서 나는 매 순간, 내가 나에게 바치는 설레는 첫 문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궁전을 내 안에 세워 올리려 했습니다. 시를 통해 당신께 이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변한 집 한 채 짓지 못했고 당신은 너무 멀어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형체가 없으므로 나는 당신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부재로만 존재하는 모순인 당신, 혼돈인 당신. 흩날리는 이 말들은 또 누구의 혼돈이며 누구의 은유인지요.

 

작은 움막에 문풍지를 달아 주신 <애지>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녹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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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송종규의 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그 시선을 통해 세상의 깊이에 도달해 가려는 시인의 지적 탐색에 우리 모두를 동참시킨다. 송종규의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형성하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통해 새로운 세계 인식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나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상품의 지배에 종속되는 타자일 뿐이다. 시간마저 순전히 내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타자화된 개인이 느끼는 파편화된 현실과 착종된 의식이 파괴된 언어로 나타나 현대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까지 하다.

 

송종규 시인의 「구부린 책」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를 만드는 것도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타자들이 만들어 낸 오래된 시간이고 그 오래된 역사가 나의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구부린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그 책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가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송종규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이승희, 안서현(글 황정산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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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鴉靑)빛 시간 / 최서림

- 서울 풍경 59

 

 

淸道라는 아청빛 시간에 푹 젖었다 왔다

시인인 나를 부러워하는, 나보다 더 시인다운 농부를 만났다

소들이랑 한 식구처럼 살고 있었다 소를 닮아 눈망울에

초겨울 저녁 검푸른 물빛 하늘이 출렁출렁 담겨 있었다

마들이라는 두꺼운 시간 속에 아청빛 시인이 살고 있다

간판들이 켜질 무렵 얽매이지 않는 말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도봉산 겨울 능선 위 저녁 하늘빛이

노시인의 눈에 흘러내릴 듯 가득 차 있다

광주 진월동에는 이른 새벽부터 푸른 저녁까지

편백나무로 시를 짜는 목공이 있다

총알이 스친 다리처럼 시리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묘한 빛깔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에 찔리고 베여 갈라터진 이 땅 어디에서도

붕대 같은 저녁이 찾아오듯이

시의 순간만큼 짧은 아청빛 시간이 왔다 간다

 

 

 

 

시인의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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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림 서울과기대 교수(문예창작과)가 제12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6일 청남대에서 열린다. 

수상작은 '아청鴉靑빛 시간'이다. 애지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이 시의 제목인 아청빛만큼 깊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지극히 절제돼 시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다"며 "시인과 농부라는 모티프를 통해 아청빛 같은 언어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한편 올해 처음 수상하는 제1회 애지문학회 작품상에는 김은주 시인의 '이응의 세계'가 선정됐다. '이응의 세계'는 후보 작품 10편 중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작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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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정거장 / 곽효환

 

 

사람들 드문드문 들고 나는

호젓한 시골마을 간이역 철길을 이어

백두대간 숲 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야겠다

간이역과 간이역을 잇는 기차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오고가게 해야겠다

 

비자나무 가죽나무 굴참나무 측백나무 팔 벌리고

작은 짐승들 새들 벌레들 분주함 가득한

숲의 정거장엔

철커덕 철커덕 쉼 없이 달려왔을 기차도

같이 온 바람도 잠시 숨 고르리라

플랫폼에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따라

나란히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갔다가

단청 고운 절집 탱화아래 앉아

잠시 먼 산에 한눈팔아도 좋겠다

세상의 시간과 일상이 한동안 멈춰

몸 부리고 쉬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작은 역 하나 숲의 양식대로 지어야겠다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

한때는 열차들 분주히 들고 나고

수많은 사람들 멈추고 떠나며

흥성하게 장도 이루었을 텐데

그 기억과 시간이 떠난 자리에

숲의 정거장에 넘치게 붐비는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고루 나누어 줘야겠다

 

두 역을 오가는 기차의 차장을 해야 할 지

두 역 중 어느 역의 역장을 맡아야 할 지

고민은 초록과 함께 깊어간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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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에피쿠로스는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의 반대방향에서 쾌락주의를 최고의 선으로 주창하였지만, 그러나 그의 쾌락주의는 주지육림 속의 방탕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근검 절약하는 금욕주의 속의 쾌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생의 목표는 쾌락”이지만, 그 쾌락은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과 번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로 구분한 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한 욕망이고, 두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이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자연적이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다. 이 세 번째 욕망은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과는 달리, 타인이 가졌으니 나도 갖겠다는 모방욕망을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두 번째 욕망과 세 번째 욕망을 거절하고,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면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소박한 쾌락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없다.

 

제11회 애지문학상 후보작품으로는 박형준의 [불탄 집], 고영민의 [민물], 송종규의 [알람에 관한 편견],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이은봉의 [지구 아가씨], 김지녀의 [선], 김백겸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장옥관의 [달도 없는 먹지 하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이 올라와 있었고, 이 후보작품들 중에서 박형준의 [불탄 집]과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집중적으로 심의한 끝에, 우리는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 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에서 이 간이역마저도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간이역과 “백두대간 숲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 그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나르는 “차장”(역장)의 간절한 꿈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대도시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빠름의 시간이고, 시골은 그 도시의 욕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느림의 시간이다. 빠름의 시간은 거짓, 사기, 폭력, 약탈 등이 난무하는 가짜의 시간이고, 느림의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시간이다.

 

모든 경전들은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이 욕망을 더욱더 풀어놓고 그 어떠한 제동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종교배와 고령화 사회, 자원고갈과 원자력발전소의 대폭발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이고,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임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이 욕망의 가속도의 시대에 반하여, 에피쿠로스적인 전원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며,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삶의 본능을 옹호한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여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최종적인 구원의 장치이다. 시인은 인간 영혼의 치료사이며, 우리는 시인이 있기 때문에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자인 곽효환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일동

 

 

 

 

 

지도에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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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애지문학상에 곽효환(46) 시인이 선정됐다고 시 전문지 ‘애지’가 20일 밝혔다. 수상작은 ‘숲의 정거장’. 심사위원들은 “에피쿠로스적인 전원 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수상작은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찬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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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 양애경

 

 

양잿물로 삶아

햇볕에 잘 말린 란닝구처럼

하얗고 보송한 여자

 

가슴팍에 코를 묻으면

햇빛 냄새가 나는 여자

머리칼에 뺨을 대면

바람 냄새가 나는 여자

잘 웃는 여자

 

낡은 메리야스처럼

주변 습기를 금방 흡수해

쥐어짜기만 하면 물이 흐르는 여자

잘 우는 여자

 

편서풍에 날아간 여자

빠른 시냇물에 둥둥 떠 급히 흘러간 여자

 

오래 입고 여러 번 빨아 얇아진

그 여자

 

지금 어디?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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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비행운飛行雲 / 함기석

 

 

아픈 아이를 안고 창밖을 본다

내일이 어린이날인데 하늘엔 어두운 핏줄만 뻗어가고

내가 가꿔온 꿈이 사마귀처럼 사각사각

내 내장을 파먹고 아이의 웃음을 파먹고 있다

옆집 무화과나무 아래 싹튼 상추들이 모두

만 원짜리 지폐로 보인다 저 싱싱한 지폐에 구름과 삼겹살을 싸

배터지게 먹고 돼지가 되고 싶은 날이다

대문가 목발을 짚고 올라온 어린 나팔꽃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저녁의 눈동자는 점점 커져 서녘하늘 전체가 붉은 갯벌로 변해가고

벼랑이 보이는 해안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햇살 하나가 가만히 다가와 아이의 상처 난 뺨을 혀로 핥아준다

흰 이가 막 돋아난 햇살의 빨간 잇몸

공기들이 만드는 투명한 파도가 쉼 없이 일렁이고

아이는 약에 취해 잠든다

나는 아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놀이터 모래밭을 바라본다

아침부터 온종일 허공을 날다 저녁에

모래밭에 떨어져 죽은 새

새가 남긴 마지막 무늬와 추상의 발자국들이

사람의 문장보다 아픈 저녁이다

나는 잠든 아이를 꼭 안고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점점 붉게 지쳐가는 하늘과 대지

저 두 장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검붉은 침묵들

거미의 입으로 들어간 벌레와 빗방울과 어둠이

환한 허공의 집이 되기까지

삶의 습한 저지대를 비행하는 아픈 비행운들

멀리서 석양에 젖은 새들이 하늘을 돌고

나무의 혼들이 죽은 나뭇가지 끝에서 빠져나와 찬 물결처럼 고요히

허공 저편으로 퍼져가는 것이 보인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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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인에게 문학상을 주는 이유는 특별하다. 뭔가 큰 성취를 얻었다고 칭찬하거나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일반적인 상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시인의 시적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상을 줘서 격려한다는 것은 문학적이지 않은 일이며 그것은 자칫 시인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문학상을 준다는 것은 어떤 작품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자는 데 바로 문학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애지문학상 심사는 바로 이러한 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작년 겨울호부터 올해 여름호까지 <애지>를 포함한 여러 문학지들에 실린 작품 중에서 먼저 후보작들을 선정했다. 시인의 명망성이나 시적 표현의 시류성은 평가의 중요 기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한 시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와 인간을 보고자 하는지 그 시선의 깊이를 가진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했다. 총 15편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했으나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과 양애경 시인의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하자는 데 쉽게 합의하였다.

 

함기석 시인의 「저녁의 비행운」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가난과 비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을 시인이 열망하는 자유와 대비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진 고통의 함량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시인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욕망과 욕망이 부풀리는 쾌락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아름다운 슬픔을 포기하거나 애써 피하며 살고 있다. 함기석 시인의 이번 수상작은 바로 이러한 슬픔을 다시 일깨워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쾌락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깊이와 미학적 성취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는 데 있다. 정치도 자본도 모두 인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너는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양애경 시인의 「여자」는 그런 대상화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한 존재가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가진 진정성과 허무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인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두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심사평 황정산)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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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계간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10회 애지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애지문학상 관계자는 남자 시 부문 함기석(46), 여자 시 부문에 양애경(56)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함씨는 「저녁의 비행운」, 양씨는 「여자」로 수상하게 됐다.
 
「저녁의 비행운」은 인식의 깊이와 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받았고, 「여자」는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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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 이전 / 황학주

 

 

한밤중 아파트 뒤안길에서 남자가 울부짖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음으로 이루어진 비명-

나는 골목을 돌아 들어가다 멈칫한다

남자는 이마를 전봇대에 걸어놓은 듯 붙이고 서서 후들대었다

아픈 것이 터져 생기는 소리를

이렇게 둥근 모음으로만 만들 수 있다니

으우어어아아아

둥근 모음들의 낯선 비애가 뾰족한 칼끝에 몸을 싣는다

 

몸을 떠는 골목, 갈라진 동굴 바닥 균열에서

몇 만 년의 석순이 자음처럼 자라지만

찢어진 자음을 발음하기엔 우리 몸은 너무 둥글지 않은가

둥근 눈동자 둥근 배 둥글게 다듬질된 부드러운 관절들

둥근 폐와 심장과 콩팥의 다정함으로

치욕을 견디는 모음의 존재들이 전봇대마다 하나씩 서 있다

오므리거나 퍼지는 발성을 배워야 살아남는

오오흐흐에에- 생존을 위한 응급처치, 추운 밤 입 벌리고

 

자음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영악한 영장류가 되거나 자폐증을 품게 된

지친 고독들이 피크닉을 와 서성인다 칼끝을 합치고 쌓은

아파트 빌딩 우거진 동굴들의 원시림에서

 

골목 담벼락에 매달려 검은 그림자가 울부짖는다 나도 저

울부짖음과 함께 울부짖음으로 동무해주며

수수만 년 전 동굴에 버려진 늑대의 아이가 그러했듯이

멀리 떨어진 부족의 전사들이 동시에 그러했듯이

모음의 발성으로 자음을 애도하며

나도 칼끝 위에서

 

 

 

 

사랑할 때와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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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인 / 안정옥   

 

 

아편은 양귀비꽃의 상처였다 덜 익은 열매에 흠(欠)을 낸 즙액이다 독이 독을 다독인다 열매의 이지러짐에서 모르핀을, 모르핀의 이지러짐에서 헤로인을 뽑아냈다 누군가 말한 치유의 힘센 이는 헤로인, 힘센 상처는 강렬하다 술값이 비싸서 가난한 사람들이 마셨던 아편, 작가나 시인들 아픈 아기와 여자들에게 흔히 권했던 시절, 얼마 전까진 그랬다 이천 개가 넘는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여자들은 들어가질 못했다 얼마 전까진, 우리 몸은 얼마 전까지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물질이다 그런 물질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상처들이 포효했기 때문인가 취한 이들의 시간은 거나하다 홀린 듯 산마루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를 잊음이 거나하다 마음을 들어 올려준다 제 몸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젠 마지막이라 말했다 내 성하지 않음을 중얼거려 본다 홀랑 들이키라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붉은 양귀비꽃의 흠(欠)이 당신에게 안착한다 성하지 못한 당신 마음에 양귀비꽃의 그런 마음이 당겨졌다    호주머니 그해엔 다녔다 헤로인을 자주 겉옷의 넣고

 

깊숙이 그해엔 넣고 호주머니 자주 깊숙이 헤로인을 다녔다 겉옷의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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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9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남자 시 부문에 황학주, 여자 시 부문에 안정옥이 18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자음 이전'과 '헤로인'이다.

심사위원들은 "황학주의 시에서 자음의 세계는 현대문명사회의 원시림과 이전투구의 세계를 뜻하고, 모음의 세계는 어머니의 세계이며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뜻한다"고 평가했고 "'헤로인'은 '만병통치약'이 없는 세계에서 '아편의 중독성'을 더없이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성찰한 수작"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상금은 각각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12월 5일 대전 유성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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