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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연구실 / 김혜영

 

  

새벽 2시
바하의 음악이 들리는 시각
사냥꾼 J는 인디언 마을로 떠난다 

짙은 녹색으로 물든 숲속
쿠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디언을 만나러 가는 걸까 
남자의 어깨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미시시피강으로 내려가는 연어의 뺨을 후려갈기는 곰
퍼득거리는 살찐 연어를 물어뜯는 곰의 
뒤통수를 겨냥하며 내티 범포가 다가간다

탕! 
곰이 쓰러지면 내티 범포는 순수한 아담이 된다

노사냥꾼 J의 연구실에는 빛나는 총들이 
서재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총은 나무의 살결을 
얇게 썰어 만들었다 후박나무 향이 나는 총들

사냥꾼 J의 책갈피 사이에서
총성이 울린다 아내는 수염이 덥수룩한 그를 
서재의 가장 깊은 심장에서 끄집어내어 바람에 말린다 
바람에 휘날리는 흰 수염과 그들의 웃음소리 

안개 자욱한 인디언 숲속에서
북극성을 따라가는 말 잔등에 앉아

다시, 총구를 겨눈다

J는 아내를 앞에 태우고 사냥을 떠난다
연구실 문은 남쪽으로 열려있다        
     

* 내티 범포(Natty Bumppo)는 19세기 초의 미국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의 연작소설  레더스타깅 테일즈(Letherstocking Tales)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  

 

 

 

 

거울은 천개의 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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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김혜영(44) 시인이 시 'J의 연구실'로 계간 시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애지문학상의 제8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 'J의 연구실'은 "문명 사회의 한 가운데서 그 문명의 탈을 벗어버리고, 아담과 이브가 살던 원초적인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시인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97년 '현대시'로 등단한 뒤 시집 1권과 평론집 1권을 냈다. 현재 부산의 시전문지 '시와 사상' 편집위원이며, 웹진 '젊은시인들' 발행인이다. 시상식은 12월 4일 오후 5시 대전 유성문화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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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魚 / 윤의섭

 

 

계곡을 돌아나온 바람 끝에 폭포 소리가 묻어 있다

예민해진 귀는 푸른 물빛을 느낀다

 

느지막한 휴일 오후에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외로웠냐고 묻자 이번 생부턴 아니었을 거라며

수화기를 일세기에 걸쳐 내려놓는다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용케도 폭포가 메마를 철을 피해 찾아온 것이다

지난 가뭄에 다 말라붙었어도 물길은 지워지지 않아

사막의 와디 같은 山客들이 여기저기서 합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류를 따라 세워진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쌓으며 소원을 빈다

자신들의 운명을 타고 난 별을 옮기는 중이다

사자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 물고기자리 물병자리가 지상에 그려지고

돌탑이 높아질수록 소원은 하도 간절하여

별을 얹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간다

 

그후로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알리는 것과 알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십년을 헤어져 있다가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십년을 견딜 수 있는 세속의 情理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마다 얼굴을 봐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달을 주워 온다 달을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조금씩 사그라져 감쪽같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바라본다 가끔은 엄한 자리에 달을 놓아주기도 한다 미끄러져 달아나는 눈썹달의 지느러미가 흐릿하다 달을 들고 나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 아래 용소에 石魚가 산다는 소문은 내게 간신히 전해졌다

실은 물속에 시퍼런 돌덩이가 잠겨있을 뿐이지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石魚는 상류로 상류로 헤엄치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슬러 기원전으로

다시 제 나이만큼의 세월 건너 저 자리로 돌아와 외로운 회향을 거듭하는

石魚

온통 푸른 눈물에 잠겨 있는

石魚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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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들여다보다가 / 민경환

 

저것을 쟁취하려
부단히 발버둥 쳤다네
저, 속엔 언제나 기쁨이 있으니

아무리 근사한 말로 치장해도
들여다보니 자웅동체였던
그 시절이 그리운가 보네

어여쁜 꽃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저 꽃 터널 속에서 지내던 때가
그리운 탓일 거야

어디서부터 연유한 건지
알 수 없어서 우왕좌왕 했었지
저 꽃을 보니 알겠네

실지로 알고 싶은 건
근원에 대해서가 아니라
방치된 무의식의 그늘인지도 몰라

존재에 대한 구도의 끝을
우린 흔히 깨달음이라 하지
나 오늘 살아있음의 당위를 느끼네

융은 집단무의식라는 말을 명명하면서
이미 우리 몸속엔 시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실려 있다 그러시네

그러니, 지금껏 우리가 살아왔듯
누누이 분신들이 살아가길 바라길래
대책없이 저 꽃을 추구하는 것이리

갑자기 시큼 오싹해지네
생각만으로도 내부의 아니마가
화들짝, 깨어나려는가 보네

 

 

 

탈주냐 도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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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6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민경환 씨, 문학비평 부문에 오형엽 씨가 11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구스타프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들여다보다가'와 평론 '평면, 혹은 우발성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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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산수 /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오리 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

보아라,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살구꽃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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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시인(목포대 국문학과 교수)이 계간 시 전문지 [애지]가 주관하는 제5회 ‘애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수묵 산수」이며, 시상식은 12월에 있다.

 

김 선태 시인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으며, 현재 계간 시 전문지 [시와사람]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참고로, 역대 애지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한 시인들은 이대흠, 함민복, 손택수, 이은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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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 이은채

 


거실에 홀로 앉아 차를 달인다

미수를 넘긴 백통 나비장에 기대어 그만 까무룩 잠이 든 사이

잠결에 양 어깻죽지가 순간 스을쩍 들리는 듯
겨드랑이 비밀스런 숲에서 일어나는 무슨 물결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그러다가 귓속말처럼 잎 틔우는 소리

이윽고 그 잎새 화알짝 펼쳐지며 몸이 송두리째 붕 뜨는 찰라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 쏜살같이 튀어나와 내 손을 덥석 베어 무는데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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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채의 시는 외견상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특별히 현학적이라거나 심오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그 특유의 호소력으로 독자들을 향해 잔잔하게 다가선다. 거기에는 일상 속에서 마주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내밀한 관찰의 기록이 있고, 흔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존재물들과의 진솔한 대면을 통한 교감의 순간이 있으며, 그것들에 둘러싸여, 그것들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에 겨운 눈물과 애환이 있다. 그 다양한 모습들을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솜씨 있게 갈무리하여 독자 앞에 펼쳐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감각적 방식으로 표현된 작은 우화寓話의 세계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김유중(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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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잎은 시들지 않는다 / 손택수

 

 

하늘에 매가 없다 솔개 한 마리, 독수리 한 마리 없다 이게 새들을 절망케 한다 매서운 부리와 발톱에 쫓길 때 그는 차라리 그 죽을 지경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아침 새들이 눈 쌓인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와서 운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펼쳐진 저 드넓은 하늘을 두고 결사코, 여린 가슴을 겨누는 가시 밀림을 찾아든다

 

오늘 빙벽을 찾아 나선 사내들이 추락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얼음 속의 가시, 살을 쿡쿡 찔러대는 빙벽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팽팽한 밧줄을 타고 아찔한 빙벽 사이를 날아다녔을 새들

 

시들지 않기 위해 피어나는 잎이 가시가 된다 연하디 연한 이파리로부터 시퍼렇게 담금질한 무쇠잎이 된다 이파리 투둑 떨어지고 적설량에 와지끈 가지가 꺽어져도 잠들지 마라 잠들지 마라 겨우내 시들지 않고 남아 얼어붙은 땅을 찔러대는 가시

 

 

 

 

목련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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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계간지 '애지'가 주최하는 제3회 애지문학상 시부문에 손택수 시인의 '가시잎은 시들지 않는다'가, 문학비평 부문에 권혁웅 씨의 '미래파'가 뽑혔다.

시상식은 12월9일 오후 6시 대전 유성 로얄관광호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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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 생명들

 

 

 

 

말랑말랑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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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근무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고,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 등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 1993년 <자본주의의 약속>을 펴냈다. 이 시집들에서 의사소통이 막힌 현실, 물질과 욕망에 떠밀리는 개인의 소외 문제를 다룬 데 이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년)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다. 이 경향은 <말랑말랑한 힘>(2005년)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년)에 이어진다.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년 애지문학상·김수영문학상·박용래문학상, 2011년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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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강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o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SNS 보다 쉬운 시쓰기 시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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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문 계간지 「애지(愛知)」가 제정한 "제1회애지문학상" 시부문에 시인 이대흠(35)씨, 문학비평부문에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장석주(49)씨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동그라미"와 문학평론 "얼굴-풍경의 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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