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무스름한 살얼음
점퍼를 덮고 잠든 사람
그 사람 밖으로 삐죽 빠져나온
푸릇한 발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햇살 들 때까지만 바라봐야지
햇살에 무가 움찔할 때까지만
바라보아야지 하며
지켜본 적이 있다.
동사(凍死), 제 계절에 죽지 못한
철없는 주검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는 구덩이에 묻혀
노란 싹을 뚫는 봄을 기다리고
생채기 많던 손을 골라내고
흙 묻은 신발을 골라내던
아무리 끌어 덮어도
모자란 겨울밤이 있다.
마치 웅크린 몸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나와 있던
무의 파란 웃통을 본 적이 있다.
집이 운다
한파주의보에도
잠잠한 집
바짝 웅크린 잠 같은 집 위로
흰 눈이 내렸다.
그 사이 짬을 내어 풀린 한파
웅크렸던 집이
훌쩍훌쩍
똑똑 운다.
지붕 밑 주림을
지붕 끝이 안다는 듯이
적요하게 집이 운다.
우는 집은 고아 같다
어쩌다 화목한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망연하게 서서 울던 집
을씨년스러운 집은 모두 단란(團欒)의 유품 같다.
집 마당에서 떨고 있는 개
개를 만져주는 푸르뎅뎅한 손
두 귀가 한껏 넘어 간다.
무럭무럭 조난신호 같은 연통
그 난로 속으로
한 토막 넣어 주고 싶은
소주 반 병
울던 집도 뚝 그치고
유일한 소일엔 바람이 빠져 있다.
하루의 끝자락은
꾸덕꾸덕 힘이 세다.
총체적인 총체
엄마는 자주
총체(總體)로 나를 때리곤 했다.
엄마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화근인 나를 화풀이처럼 털어내곤 했다.
나는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엄마의 주특기는
총체로 온 집 안 구석구석을 털어내는 일.
나는 집안의 어디쯤에
웅크리고 있는 구석일까
엄마와 나는 서로의 근심
그 근심이 구석이라고 생각했다.
총체는 구석만 만나면
먼지만 만나면
춤추는 듯 즐겁게
분란을 일으켰다.
먼지들의 대장도 못 되는 나는
어느 꼬리를 닮은 털이범은 더욱 못 된다.
엄마의 취미는 창문을 열고
분란을 밖으로 털어내는 일
분란이 다 빠져나간 내 방은 또
을씨년스럽다.
털신
그 집을 지나치다
털이 수북한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언젠가 노인 한 분이
저 털이 수북한 신발을 신고
자꾸 나를 돌아보던 생각이 났다.
불시에 사람과 맞닥뜨린 짐승이
어둑한 저녁 쪽으로 사라지던 그 풍경
사람과 짐승의 경계도 아직은
살 만하다는 듯이
저녁이면 불이 켜지고
아침이면 밭은 기침 소리가 들리곤 했다.
네 발과 두 발을 두고
고민하는 듯
한 사람의 생애가 기울어지고
때로는 하늘이 넘치곤 했다.
천천히 발부터
짐승으로 변해가는 그 집의 노인
어떤 걸음을 택할지
고민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털이 수북한 발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노는 땅
우리 동네에는 노는 땅이 많다.
생전의 할머니가 가끔 다녀오시던
노구를 짜내어 흥겹게 춤추던
관광버스 풍경처럼 노는 땅 많다.
그런 노는 땅을 찾아내서
같이 놀던 할머니
노는 땅들은 바쁘다.
종자를 가리지 않고 몰려든 풀들
온갖 곤충들부터 고양이까지
누군가 버리고 간 가전제품
환삼덩굴 줄기를 타고 신나게 논다
논다. 라는 말엔
감출 수 없는 흥겨움과 한적함이 동시에 있다.
그런 노는 땅과 놀던 할머니
지금은, 밑으로부터 여섯 칸
우로 네 번째에서 무료하시다.
비가 내리는 날
질퍽질퍽 땅들은 잘도 논다
찡그리거나 구겨지다 슬금슬금 펴지는 것들
호미, 낫, 지팡이, 수레
각종 농기구를 가지고 논다.
노는 땅들은 오늘도
우거지고 가지런해진다.
[당선소감]
시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시까지 끌고 가거나 끌고 와야 될 관계들과의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름의 방식이라는 것이 있어 그 얄팍한 방식을 고집한 끝에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한쪽 방향으로만 쏟아지는 밤, 새벽 틈새 속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야 했던 지난날들이 잠깐의 단잠에 들겠습니다. 어릴적부터 꿈꾸었던 것이 이렇게 부풀어 시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해 주신 심사 위원분들께 감사합니다. 믿고 기다려 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모님, 감사합니다. 다시 새로운 계획 앞에 선 성희에게도 힘내라는 말 전합니다. 넌 할 수 있다고 매일매일 응원해 준 준섭아, 고맙다. 그리고 같이 등단하자고 다독여 주고 어설픈 글들 많이 봐줬던 형석이 형, 형의 친절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항상 시의 기초에 대해, 인간의 품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임동확 교수님께 존경의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진행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배워야 하고 써야 할게 너무 많은 저에게 시는 슬쩍 구석 한 편에 감춰두고 싶은 소중한 보물 상자와도 같습니다. 언젠가 시를 가르치는 위치에 설 수 있다면, 이 진행중인 감정들을 나직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심사평]
올해 《실천문학》신인상에는 총 198명이 응모했으며, 예심을 거친 6명의 작품이 본심에서 논의되었다. 이번 신인상 심사를 통해 얻은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많은 응모자들이 이미 언어의 조탁자로서 뛰어난 시적 기술을 발휘했지만 과도한 외국어 및 외래어 사용, 지나친 관념어 남용, 관념적 사변 취향은 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었고, 심사위원들을 다소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하루 씨의 작품들은 개성 있는 상상력과 담대한 시의 전개가 인상적인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구구절절한 문장들을 통해 오히려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핵심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조시현 씨는 미학적인 서사를 시에서 구현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이지만, 응모한 작품들 모두가 산문적일 뿐 아니라 비슷한 구조와 어조를 반복하고 있어 지루해질 우려가 있다. 장안아 씨의 시는 일상을 재발견하는 시선을 담고 있으며 리듬감 있게 읽히는 맛이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신성한 착상을 시의 몸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좀 더 끈질긴 싸움이 필요할 것이다. 장주영 씨는 어떤 거대한 세계 앞에서도 훼손 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냈다. 그러나 역시 시 속에 너무 많은 '할 말'들을 욱여 넣음으로써 시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석범진 씨는 다체로운 주제와 소재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끌어올려 심사 위원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전해 주었다. 다만 시의 주제의식을 더욱 집요하게 끝까지 펼쳐낸다면 더 큰 가능성을 가진 문청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당선작으로 뽑은 안성군 씨의 시는 화려하지도 발랄하지도 않다. 하지만 편편의 시가 서정성을 갖고 자기만의 시선과 호흡을 견지하고 있다는 데서 남다른 인상을 주었다. 이는 근래에 우리 시단이 얼마나 소통 가능한 시에 목말라 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에 와 닿는 시는 어떤 것인가, 생활이 있고, 육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각성과 성찰을 가져다 주는 시를 기다린 심사 위원들에게 이 젊은 당선자의 시는 한겨울에 "삐죽 빠져나운 푸릇한 발"(무가 움찔할 때)처럼 선명하게 우리를 각성하게 했다.
또한 '조난 신호'같은 연통이 있고, '훌쩍훌쩍' 울기도 하는 집이지만 "하루의 끝자락은/꾸덕꾸덕 힘이 세다"(집이 울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시인이 가진 결기,'꾸덕꾸덕'버티며 세상과 맞서는 복서와 같은 자세를 심사 위원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안성군 씨가 그려낸 시 속 주인공은 대개 반백수거나 노동자거나 노인이다. 안성군 씨는 그들을 응시하고 발견함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끈끈한 동류의식을 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람이요, 어떤 위협앞에서도 자신의 서정과 역사를 수호하고자 하는 '문지기'에 다름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안성군 당선자의 새로 출발을 축하하며, 한국 문학의 미래를 잇는 시인으로서 성장하길 바란다. 아울러 신인상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에겓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 심사위원 : 김은경, 이승하,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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