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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긂은 / 허은실
아이 가진 여자는 둥글다 젖가슴은 둥글다 공룡알 개구리 알은 둥글다
살구는 둥글다 살구의 씨는 둥글다 씨방은 둥글다 밥알은 둥글다 별은
둥글다 물은 둥글다 '응'은 둥글다 그 밤 당신이 헤엄쳐 들어간 난자는
둥글다
멀리까지 굴러가기 위해
굴러가서 먹이기 위해
내가 사랑, 이라고 발음할 때
굴러가려고 둥글게 말린 혀가
입천장을 차고 나간다
나가서 너에게 굴러간다
둥긂은 입 맞추고 싶고 둥긂은 안고 뒹굴고 싶고 둥긂은
들어가 눕고 싶다
구르고 구르다가 모서리를 지우고
사람은 사랑이 된다
종내는 무덤의 둥긂으로
우리는 다른 씨앗이 된다
0이 된다
제 속을 다 파내버린 후에
다른 것을 퍼내는
누런 바가지
부엌 한구석에 엎디어 쉬고 있는 엉덩이는
둥글다
물이 올 때 / 허은실
풀벌레들 바람에 숨을 참는다
물이 부푼다
달이 큰 숨을 부려놓는다
눈썹까지 차오르는 웅얼거림
물은 홀릴 듯 고요하다
울렁이는 물금 따라 고둥들이 기어오를 때
새들은 저녁으로 가나
남겨진 날개를 따라가는 구름 지워지고
물은 나를 데려 어디로 가려는가
물이 물을 들이는 저녁의 멀미
저 물이 나를 삼킨다
자다 깬 아이가 운다
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지상의 소리들 먼 곳으로 가고
나무들 제 속의 어둠을 마당에 홀릴 때
불리운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숭어가 솟는 저녁이다
골목에서 사람들은 제 이름을 살다 가고
꼬리를 늘어뜨린 짐승들은 서성인다
하현을 닮은 둥근 발꿈치
맨발이 시리다
물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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