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당선 소식을 받고,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남의 이야기로만 듣던 결과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볼을 꼬집었다. 꿈은 아니었다. 기쁨도 잠시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문득 앞으로는 시가 좋아서 글을 쓰던 시절과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시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처음 강의실 문을 두드린 그때가 기억난다. 이후로 시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던 지난 추억들이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이데아를 발견한 현자(賢者)와 같이 나는 시라는 또 다른 세상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철학을 배울 때도 그랬던 것처럼 시는 아직도 나에게 우물처럼 깊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동시에 정의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오늘의 이 기쁨이 있기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살아왔다. 시를 쓴다는 말에 묵묵히 나를 응원해주던 가족들과 청년작가아카데미를 사랑으로 이끌어 준 김정대 원장님께 먼저 당선 소식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르쳐 준 정일근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강의실이나 때로는 술자리에서 시에 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진지하게 토론했던 청년작가아카데미 식구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저에게 문학의 길을 활짝 열어주신 지리산문학회와 천년의시작 출판사 그리고 정진규, 이숭원, 김춘식 심사위원님들께 누가 되지 않는 시인이 되도록 항상 노력해야겠다.
[심사평]
최치원신인문학상의 올해 본심 진출자는 권수진의 <붉은 모터사이클> 외 4편, 최주연의 <골목> 외 4편, 신혜정의 「‘사람 되기 프로젝트’에 사용된 함수(函數) 계산 과정」 외 6편, 이정행의 「폐차의 이력」 외 4편, 이정희의 「백설공주와 일곱 친구들 세상에 세 들다」 외 5편, 백지연의 「얼룩고양이 표백법」 외 4편 등 총 여섯 명 33편이었다.
투고작의 수준은 모두 등단자의 수준에 필적하는 것으로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다. 다만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경우가 간혹 있었고 자신의 작품 세계가 지닌 특징이나 장점을 아직은 잘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시적 자의식의 측면에서 시적 형식, 어법, 화법 등이 자신의 시적 개성과 어떤 상관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는 투고자 일반에게 모두 해당되는 사항이다.
이정희는 화법이 발랄하고 참신하기는 하나 아직 시적 사유의 깊이가 무르익거나 정리되지 않았다. 백지영의 경우도 발상은 참신하지만 시적 상상력의 자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시가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신혜정은 시적 개성의 문제가 단순한 차별화의 문제인가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 보면 좋을 듯하다. 기발한 생각이나 상상이 곧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이정행은 안정적인 반면 시의 흡입력이나 참신함이 다소 적다는 느낌을 주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권수진과 최주연 두 사람을 놓고 심사위원 간에 논의를 진행한 결과, 권수진은 시적 탄력과 구성의 탄탄함 면에서, 최주연은 시적 포에지와 서정적 감성의 측면에서 그 가능성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이루어졌다. 두 사람 간에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권수진의 시적 구상력, 시적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과 탄력에 더 많은 점수를 주었다. 최주연의 시적 포에지와 감수성, 언어 감각은 비록 당선자로 선정되지는 못했으나 당선자에 버금가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아깝게 탈락한 투고자는 좀 더 정진하여 차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