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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위하여 / 임영조


면벽 100일!
이제는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여!

나도 그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지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 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귀로 웃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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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8회 소월시문학상에 임영조 시인이 선정됐다. 대상 수상시인 임영조의 <고도를 위하여> 등 작품 20편을 싣고, 시인 6인의 추천 우수작 57, 기수상시 인의 시 8편을 함께 묶었다.

 

소월시문학상 선정위원회(구상 · 김남조 · 오세영 · 이어령 · 조남현)에 따르면 임영조는 우리 시대의 시가 산문에 압도당하고, 또 산문화로 치닫는 것을 자랑삼는 시류에도 불구하고, 이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히 언어의 창조 행위에 몰두해 왔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 제9회 소월시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임영조 시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출항',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었다. 1991년 제1회 서라벌문학상, 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1994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바람이 남긴 은어] [그림자를 지우며] [갈대는 배후가 없다] [귀로 웃는 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등이 있다.

 

인간 욕망의 흔적을 지워 버린 달관과 무욕과 탈속의 한 경지를 드러내는 자아 성찰과 존재 탐색의 시세계를 보이는 임영조 외에도 강은교, 김혜순, 송재학, 이기철, 천양희, 홍신선의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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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언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뼈아픈 후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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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8회 소월시문학상에 시인 황지우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뼈아픈 후회> 10편이다.

 

황지우 시인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및 등단한 이후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나는 너다(1987) 등을 출간했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 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불빛 속에서 우리는 이 모순된 축복의 별, 지상에서 흔들리는 등불이 곧 하늘의 별이 되는 불빛 하나를 찾았다. 황지우라는 이름의 언어가 그것이다. 황지우에게 제8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8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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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션으로 정평이 나 있는 황지우 시인에게 걸맞는 영예다. - 구상

 

민중시의 정치 참여적 요소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어령

 

황지우 시인은 물론 강은교 · 장석주 · 최승호 씨 등의 작품도 우리 시문학을 대표하는 것이다. - 김남조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실험 의식이 돋보인다. - 김용직

 

제도화된 사회 혹은 물화된 사회에 대한 공격의 미학을 담고 있다 - 오세영

 

-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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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에 오르다 / 김명인

 


어제 하루는 화엄 경내에서 쉬었으나
꿈이 들끓어 노고단을 오르는 아침 길이 마냥
바위를 뚫는
천공 같다, 돌다리 두드리며 잠긴
山門을 밀치고 올라서면 저 천연한
수목 속에서도 안 보이는
하늘의 雲板을 힘겹게 미는 바람소리 들린다
간밤에는 비가 왔으나, 아직 안개가
앞선 사람의 자취를 지운다, 마음이 九折羊腸인 듯
길을 뚫는다는 것은
그렇다, 언제나 처음인 막막한 저 낯선 흡입
묵묵히 앞사람의 행로를 따라가지만
찾아내는 것은 이미 그의 뒷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이 산을 힘들게 오르게 하는가
길은, 누군들에게 물음이
아니랴, 저기 산모롱이 이정표를 돌아
의문부호로 꼬부라져 羽化登仙해 버린 듯 앞선 일행은
꼬리가 없다, 떨어져도 떠도는 산울림처럼
이 허방 허우적거리며 여기까지 좇아와서도
나는 정작 내 발의 티눈에 새삼스럽게 혼자 아픈가
길섶 풀물에 든
낡은 經소리 한 구절 내내 떨쳐 버리지 못해
시큰대는 발자국마다 마음 질척거리는데
화엄은 화음 속에 얼굴을 감추고 하루종일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經典을 들어 나를 후려친다

 

 

여행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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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7회 소월시문학상에 시인 김명인 씨(46. 경기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화엄에 오르다> 10편이다. 김 씨는 경북 울진 태생으로 지난 73<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출항제>가 당선돼 등단하였고,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김명인은 1973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동두천` `유다시편` 등의 연작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인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사랑과 신뢰는 남다른 그의 문학적 형상력에 힘입어 우리를 감동케 한 바 컸다.

 

- 7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김명인 시인의 시는 그 표상에 등가물의 진실이 수반되어 있다 하겠고, 이것은 그의 존재(사물)에 대한 인식 추구의 치열성과 그 체험의 부피를 말해 주는 것이다구상

 

김명인은 누구보다도 시는 서정의 토대 위에서 씌어진다는 사실을 잘 아는 시인이어령

 

나는 김명인 작품에 적지 않은 매력을 느꼈다. 그에게 소재들은 상당히 기능적으로 정서가 되어 나타난다 김용직

 

삶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인 적막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 이형기

 

시의 사상적 깊이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의 이 같은 모색을 우리는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싶다 오세영

 

- 심사평 중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혼의 지형도이제 제게 주어지는 이 상은 이미 달성된 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열심히 시를 쓰고자 애쓰는, 그러기에 그 노력을 격려하기 위한 상이라고 제 나름대로 규정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해집니다. 그리고 책임 또한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스스로 바라건대 저는 완성보다는 과정에 치열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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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묘지山頂墓地 1 / 조정권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 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산정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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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소월시문학상 제6회 수상자로 조정권씨가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연작시 <山頂墓地>이다.

 

소월시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구상, 김남조, 김용직, 황동규, 권영민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금년 10월까지 월간 및 계간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시를 대상으로 추천된 조정권, 김명인, 김혜순, 이성선, 이수익, 이하석, 최승자씨 등 7명의 수상 후보 시인 가운데 시적 인식의 폭과 깊이를 열정적으로 심화,확대시켜온 시인의 노력이 잘 조화된 작품인 연작시 <산정묘지>의 조정권씨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금년도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시인은 7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처녀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에서부터 금년 7월의 <산정묘지>에 이르기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한편 문학사상사는 김환태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평론집 <비평의 어둠 걷기>를 낸 정현기씨를 선정했다.

 

금년도 소월시문학상과 김환태문학상의 시상식은 1129일 오후 5시 서울 중학동 한국일보 빌딩 내 송현클럽에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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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환유 1 / 김승희

 

 

몇 마장인지 알지 못할

장마비가 연일연일 내리고 있다.

창이 좁아서인지

세상이 위태하리만치 어두워진다.

어둡고 긴, 무슨 포식의,

동물 창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긴 너무 어두워요, 말 좀 해봐요,

---말하면 뭘하니? 넌 날 볼 수가 없잖아,

---그래도 괜찮아요, 말하면 밝아질 테니까요.

 

세상엔 벽이 되려는 창과 싸우는 사람과

창이 되려는 벽과 싸우는 사람,

그렇게 두 진영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자택인 듯이

살고 있는 것 같다.

, , 나라는 나가비는

영구 임대주택인 듯이, 아니, 아니,

임시 임대주택인 듯이 을 대하며

조만간 흘러 가버리고 말 것 같다.

너무 쉽게 흘러가 주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투덜대기나 하면서 ......

위조 여권 같은 말을 따라서

출렁출렁......글썽글썽.....

 

 

 

떠도는 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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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 김승희씨가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제5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떠도는 환유10편이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김씨는 그동안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 『태양미사』 『달걀 속의 생등을 펴냈다. 시상식은 12월 초순 열릴 예정이다.

 

일찍부터 시는 인류문화의 영화요, 인간 정신의 순도 높은 결정체로 일컬어져 왔다. 특히 좋은 시는 역사를 움직이는 대동맥이요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와 슬기의 원천이다. 시인 김승희는 1973`그림 속의 물`로 등단한 이래 언어의 꾸준한 조탁과 작품세계의 끊임없는 확충을 통해 한국 시단의 한 별자리를 이루었다. 그 정성과 솜씨를 주목한다.

 

- 5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첨단적 탐구의식으로 빛나는 에토스적 정채(精彩)” 김승희 시인의 근작들의 에토스적 정채(精彩)는 앞으로도 더욱 발해줄 것을 믿고 바라는 바이다 구상

 

김승희의 지성은 첨예 냉철하고 독특한 미학의 분말을 뿌린다. 건조하면서 뜨겁고 고뇌로운 그의 언어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껄끄럽고 괴로운 점성을 느끼게 한다 김남조

 

그의 시는 어떤 경우에나 아주 예각적인 손길, 또는 첨단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탐구의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김용직

 

불평을 하자면 그의 시는 수준은 괜찮지만, 한 발 덜 나간 듯한 뒷맛을 준다. 좋은 시를 만들려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황동규

 

김승희 씨의 작품들은 인식으로서의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시켜 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적 정황의 이중적인 설정, 서정적 자아의 독특한 형상, 변화 있는 어조 등이 모두 개성적인 목소리로 뭉쳐 나온다 권영민

 

- 심사평 중에서

 

 

인생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열어줄 마법의 중심언어를 찾으며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점점 더 희망이 고갈되어 가는 이 엔트로피 증가 시대의 어정쩡한 인간의 뿌리 뽑힌 모습이 `떠도는 환유의 이야기`이고 이 모든 떠돎의 환유 고리의 몽타주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열려라 참깨!”하고 말하면 비밀한 보물 궁전이 열렸던 것처럼 열려라 참깨!” 같은 그런 열쇠 언어, 인생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열어줄 마법의 중심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저는 여전히 그것을 찾고 있는데 그 텅 빈 중심언어를 찾으며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이 방황의 흔적 자체가 바로 제 인생의 불가사의한 최고의 보물창고가 아닌가 하는 어쩔 수 없이 행복한 느낌도 있습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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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노래 1 / 이성복

 

 

어두운 물속에서 밝은 불 속에서

서러움은 내 얼굴을 알아보았네

아무에게도 드릴 수 없는 꽃을 안고

그림자 밟히며 먼 길을 갈 때

어김없이 서러움은 알아보았네

감출 수 없는 얼굴 숨길 수 없는 비밀

서러움이 저를 알아보았을 때부터

나의 비밀은 빛이 되었네 빛나는 웃음이었네

하지만 나는 서러움의 얼굴을 알지 못하네

그것은 서러움의 비밀이기에

서러움은 제 얼굴을 지워버렸네

 

 

 

 

그 여름의 끝 - YES24

『그 여름의 끝』에서 저자는 연애시의 어법으로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이해를, 뛰어난 서정을 통해 새롭게 펼쳐 보여준다. 저자 이성복의 시 세계는 깊이를 획득한 단순

www.yes24.com

 

 

숨길 수 없는 노래 2 /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람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숨길 수 없는 노래 3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은 두개의 다른 죽음 사이에 말이음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랜 저녁빛에 눈먼 두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서입니다.

 

 

 

숨길 수 없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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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는 제4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이성복 시인을 선정 발표했다. 수상작은 연작시 <숨길 수 없는 노래>이다.

 

이 시인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 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정든 유곽에서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이번 수상작은 작품집으로 출간 예정이며 시상식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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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에서 / 정호승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
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
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찬 겨울 밤하늘에 초승달 뜨고
초승달 비껴가며 흰 기러기떼 날면
그 어디쯤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도 샛강가로 저를 찾으신
강가에 얼어붙은 검불 같은 아버지

 

 

임진강에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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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과장된 몸짓 속에서 홀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인어떤 어려운 시대에 있어서도 이를 도와주는 한 줄기 빛이 열려 있음을 우리는 안다. 아울러 깨어 있는 감수성으로 인류와 개인이 직면하는 혼돈과 곤혹을 감지하면서 정진적 진실의 은혜로운 긍정주의로 이를 타개하려 애쓰는 몇몇 시인이 있었음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시인 정호승은 아름답고 장한 것, 귀하고 연민스럽고 무한히 사랑하게 되는 바의 생명 있는 만상을 찾아 이름 부르며 예까지 온 사람이며 그 소중한 위안들을 동시대인 다수에게 공손히 나누어 왔었기도 하다. 아가야 한다.

 

- 3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그의 문학정신에는 분명히 어떤 내명한 빛이 있다 김남조

 

준마처럼 시의 초원을 달려주길 김용직

 

돋보인 시적 진술의 메타포어 이어령

 

수상을 계기로 속도감, 신선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열을 확보하기 바란다. 황동규

 

좋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많이 쓰기를 바란다. 김현

 

- 심사평 중에서

 

 

곰시의 신비와 삶의 신비시란 삶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부스러기를 누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삶의 부스러기를 쓸어 모으는 일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역사와 삶의 부스러기를 소중히 모으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할 일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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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숲과 새들 / 송수권

 

나는 사랑합니다 우리 나라의 숲을, 늪 속에 가라앉은 숲이 아니라
맑은 신운神韻이 도는 계곡의 숲을, 사계四季가 분명한 그 숲을
철새 가면 철새 오고 그보다 숲을 뭉개고 사는 그 텃새를
더 사랑합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든가 뱁새가
작아도 알만 잘 낳는다든가 하는 그 숲에서 생겨난 숲의
요정의 말까지를 사랑합니다

나는 사랑합니다, 소쩍새가 소탱소탱 울면 흉년이 온다든가
솔짝솔짝 울면 작다든가 하는 그 흉년과 풍년 사이
온도계의 눈금 같은 말까지를, 다 우리들의 타고난 운명을 극복하는
말로다 사랑합니다, 술이 깬 아침은 맑은 국물에 동동 떠오르는
동치미에서 싹독싹독 도마질하는 아내의 흰 손이 보입니다, 그 흰 손이
우리 나라 무덤을 이루고, 동치미 국물 속에선 바야흐로 쑥독쑥독
쑥독새가 우는 아침입니다

나는 사랑합니다, 햇솜 같은 구름도 이 봄날 아침 숲길에서
생겨나고, 가을이면 갈꽃처럼 쓸립니다, 그보다도 광릉 같은 데,
먼 숲길쯤 나가보면 하얗게 죽은 나무들을 목관악기처럼 두들기는
딱따구리 저 혼자 즐겁습니다

나는 사랑합니다, 텃새, 잡새, 들새, 산새 살아넘치는
우리 나라의 숲을, 그 숲을 베개삼아 찌르륵 울다 만 찌르레기새도
우리 설움 밥투정하는 막내딸년 선잠 속 딸꾹질로 떠오르고
밤새도록 물레를 감는 삐거덕, 삐거덕, 물레새 울음 구슬픈
우리 나라의 숲길을 더욱 사랑합니다

 

 

 

산문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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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송수권 시인이 선정되었다

 

지난 75山門에 기대어로 문단에 정식 등단한 송 시인은 시집 山門에 기대어’(80), ‘꿈꾸는 섬’(83), ‘아도’(85) ‘새야 새야’(87), ‘우리들의 땅’(88),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89) 등을 잇따라 펴냈으며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86년 금호문화재단 예술상과 87全南도문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88우리들의 숲과 새들로 영예인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작은 자질구레한 일상사와 하늘과 바다와 우주를 모두 아우르며 새로운 빛깔로 되살리는 무궁한 생명력의 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에는 우리 민족 정서인 이 짙게 배어있는데 그의 은 슬픔과 체념의 이 아니라 을 부정하는 역동성으로서의 이라고 문학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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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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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한 시대의 발광체시는 우리에게 언어의 순도 높은 결정체며 문화 활동의 꽃을 뜻한다. 특히 아름다운 시는 우리를 변혁, 승화시켜 주며 한 시대와 세계를 불 밝히는 발광체로 타오른다. 시인 오세영은 그동안 우리 모국어를 갈고 다듬으며 새롭게 해석하여 문단과 사회의 한 풍경을 이루어 준 분이다. 그의 상상력은 동 시대의 감각을 넉넉히 수용해 내었고 아울러 전토의 발전적 수용에도 기능적으로 작용해 왔다.

 

- 1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오세영 시인의 작품은 익히 봐온 터라 그이 역량을 알고 있었다 박두진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 중후한 형상성으로 소월상의 영예를 한층 높였다 구상

 

()과 실()을 달아 보고자 하는 철학적 시각과 어법의 탄력이 좋다 김남조

 

그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 속에 허무, 시간, 존재와 같은 관념을 담는다 이어령

 

오세영은 소월이 이룩한 큰 시인으로의 길을 개척할 가능성의 시인이다 김용직

 

- 심사평 중에서

 

 

 

눈 덮인 들녘에서 본 별 하나나는 밝은 대낮보다도 어두운 밤의 세계를 사랑한다. 숨겨져 있는 것들, 왜곡되어 있는 것들, 잊혀져 있는 것들, 버려져 있는 것들, 죽어 가고 있는 것들이 모두는 밤이 부둥켜안고 뒹구는, 고뇌하고 꿈꾸는 연민과 증오의 목숨들이다. 태양이 외면한 이 밤의 사물들을 위하여 오늘 밤도 별들은 저렇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나의 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6년도 저물어 간 어느 눈 덮인 밤의 들녘에서 나는 비로소 보았다. 서편 하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 꺼질 듯이 떠오르는 별 하나를, 그리고 나는 오늘부터 그것을 나의 별이라 믿기고 하였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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