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 박청환
떨어지지 않겠다고 버팅기며 목놓아 울어대는 통에
십 리 오솔길 급기야 어미가 동행했다
장날 마실 가듯
어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 냄새 맡다가
나비 좇다가
어느 순간 흠칫 놀라 겅중겅중 뛰어와
마른 젖통 툭툭 치받던 길
아가, 주인 인상 좋아 뵈더라
외양간 북데기도 푸짐하더구나
말 잘 듣고… 잘 살거라
낯선 외양간에 울음 떼어 놓고
돌아선 울음
달빛 앞세워 새끼 발자국
되밟아 오는 길
큰 눈에 별 방울 뚝뚝
[당선소감] “뜨거운 용광로 보다 따뜻한 화롯불 같은 시 쓰고파”
‘좋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늘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으로 화려하거나 심오하게 어렵거나…. 이 둘은 일단 내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게 남은 건 작고 쉽고 가난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좋았습니다. 작은 것일수록 진심을 꽉 채워 담을 수 있었고 가난할수록 따듯했습니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거대한 용광로보다 고구마를 묻어 놓고 둘러 앉아 부젓가락 헤집으며 가래떡을 구워먹는 화롯불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등단이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지요?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옥천문화원, 동양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물에도 입이 있다는 것과 그 입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마경덕 시인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동료이자 선배이자 영원한 글쓰기 멘토인 이한주 시인, 아니 한주형! 고마워요. 오진엽 시인이 그랬던가요. 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내게도 그래요.
마지막으로 책 본다고, 글 쓴다고 툭하면 방문 닫고 처박히는 아빠와 남편을 그런대로 방치(?)해 준 두 아들과 마눌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감사할 사람이 많은 나에게 또한 감사합니다.
[심사평] 비백과 약졸의 솜씨가 빼어난 작품
27회 지용신인문학상은 316명의 응모자가 총 2120편의 작품을 보내와서 어느 해보다도 양적으로 풍성하였다. 이렇게 시인지망자가 폭발적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사회가 아무리 물질만능의 시대이고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정보만능의 시대이지만 인간이 지닌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는 오히려 더욱 소중한 정신적인 가치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현대시사의 드높은 봉우리인 정지용 시인의 시적 성취는 이미 우리 민족이 지닌 원형적 상징으로 만고불변의 역사적 사실이 된 지 오래다. ‘지용신인문학상’은 지용이 도달한 문학적 가치를 되새기면서 그가 이룬 모국어의 시적 성취 앞에 겸허히 경배 드리는 시인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밀묵밥’(윤영규), ‘구름 수선소’(최영희), ‘버슨분홍빛 소풍을 마치며’(문예진), ‘저 오름으로 가’(김미경)와 ‘배웅’(박청환)이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다.
‘메밀묵밥’과 ‘구름 수선소’는 시창작의 전형적인 답안처럼 단정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개성적인 파격이 안 보여서 아쉬웠다. ‘버슨분홍빛 소풍을 마치며’와 ‘저 오름으로 가’는 개성적인 기교가 돋보였지만 그것이 시의 핵심과 만나 조응하는 시적 의미가 모호하고 평범하였다.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 ‘배웅’은 너무 쉽고 무덤덤한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잠깐 호흡을 멈추고 찬찬히 읽으면서, 어미 소와 송아지의 울음과 눈물이 행간에 숨어서 시의 영혼으로 변용되는 과정을 알아채면 깜짝 놀라게 된다.
손끝의 기교만을 뽐내면서도 실상 시적인 알맹이가 부족한 작품들에 비하면,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 노래한 지용의 시세계를 지그시 눈을 감고 연필로 그려낸 원근법(遠近法)이 예사롭지 않다. 비백(飛白)과 약졸(若拙)의 솜씨가 긴 여운을 남기는 빼어난 작품이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오탁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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