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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박준

- 태백에서 보낸 편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nefing.com

 

 

7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박준 시인이 선정됐다.

 

박재삼문학관운영위원회(위원장 홍옥숙)는 본심에 오른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결과,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지)를 최종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7회 박재삼문학상 예심은 배한봉·김근 시인과 박현수 경북대 교수가 심사를 맡았으며, 본심은 최문자, 이상국(2회 박재삼 문학상 수상자) 시인이 맡았다.

 

박재삼 문학은 한국의 내재된 언어 감각에 충실한 점과 모국어의 순결성을 눈부시게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심사위는 박준 시인의 시가 박재삼의 언어적 유전 형질과 본질에서 유사성을 띠고 있다고 평했다.

 

본심 심사를 맡은 최문자 이상국 시인은 "박재삼시인의 시정신과 시세계의 특성과 징후들과 상당히 부합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염두에 두면서도 서정을 갱신 보완하려는 입장과 서정의 방향전환을 꿈꾸는 시인의 시세계를 옹호한다는 의지를 보이며 심사했다""소위 서정성이 스타일이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것과 이 사실이 박재삼과 박준을 잇는 내재된 것들의 유사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논의하고 토론을 거친 후에 심사위원은 박 준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시집을 선정하고 박준시인을 수상자로 확정하였다"고 밝혔다.

 

박준 시인은 198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2008년 계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등이 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7회 박재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준 시인은 "처음 시를 쓰고 공부할 무렵 저는 박재삼을 읽으며 오래 앓았다. 문면(文面)은 다습고 아름다운데 이면(裏面)은 서늘하고 슬펐기 때문이었다""책을 덮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도 박재삼 시의 풍경들은 제 눈앞에서 자주 일렁였습니다. 삶의 어느 자리에 머물러야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우러름 섞인 질문이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어쩌면 제가 기다렸던 무엇이 당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저는 이 큰 상을, 상이 아닌 질문으로 받고자 한다""아프게 더 아프게 시와 삶의 자리를 물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고자 한다. 이순(耳順) 무렵의 박재삼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진실로 진실로/세상을 몰라 묻노니/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라는 질문처럼 끊임없이 묻고 묻겠다"고 수상소삼을 밝혔다.

 

박재삼문학관 운영위는 등단 10년 이상 된 시인을 대상으로 박재삼 시인의 서정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전년도(20181~12)에 발간된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시영, 이상국, 이문재, 고영민, 이정록, 이홍섭 시인이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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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 그림자극 / 박 준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골목은, 왼편 담벼락과 오른편 옹벽처럼 닫혀있다 막 올려다본 하늘이 골목처럼 어두워지고 있다 어느 하루처럼 환하게 번지기 시작하는 외등을 보면 사람의 몸에서 먼저 달려나오는 것이 있다 오늘도 골목에서 너는 그림자였고 나는 신발을 꺾어 신은 배역을 맡았다 서로 다른 시간에서 유영하던 그림자들이 한 귀퉁이씩 엉키고 포개지는 일은 몸의 한기를 털어내려 볕 아래로 모이는 일과 같다 집시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림자극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나와 처음으로 스친 그림자는 담에 널린 담요를 걷어 한쪽 다리가 없는 비둘기를 감싸안고 다닌 적이 있다 그림자는 비둘기를 날려주고 담요를 다시 널어놓았다 그 그림자는 옆으로 걷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다 다음 그림자는 비디오테이프의 같은 장면을 서른 두 번 돌려보고 집에서 나오는 길이다 열한 번째 같은 장면에서 그림자는 울었고 스물 여섯 번째 같은 장면에서 그림자가 사정을 했다 그림자는 말 더듬는 일을 즐겨 할 것이다 내 그림자가 길게 따라가고 있는 그림자는 언젠가 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고 싶은 그림자다 다시 말하지만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두운 골목,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 울지 않으려고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은 하나 같이 고음이다 노래가 다음 노래를 부르고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붙잡는 골목이 모래내에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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