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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죽 북 / 문신

 

 

새벽, 저수지를 보면

끈 바짝 조여 놓은 북 같다

야트막한 언덕이 이 악물고 물가죽을 당기고 있어서

팽팽하다

 

간밤 물가죽에 내려앉은 소리들이 금방이라도 솟구쳐오를 것 같다

낮고 빠르게 다가온 검은 새 한 마리

-

물가죽 북을 울리고 가는 동안

 

물가죽 북에 이는 파문은

무심결이다

 

물가죽 북이 울어

소리를 눌러두고 있던 반대편 하늘 가죽도

맞받아 운다

 

검은 새 한 마리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그것들 번갈아가며 냉큼 받아 먹는다

 

 

 

 

곁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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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용택 시인)는 제5회 불꽃문학상 수상자로 문신(38) 시인을 선정했다고 24일 발표했다.

 

문신 시인은 2004년 전북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08년 첫 시집 물가죽북을 펴내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전통서정을 내면에 깔고 대상과의 은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문신 시인의 독특한 시세계는 말(언어)을 내세워 대상을 해체하는데 경도되고 있는 요즘 시단에 편승하지 않고 대상의 이면을 차근차근 더듬어가면서 대상과의 접점을 모색한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김용택(심사위원장) 시인은 문신 시인의 시는 물줄기 같다. 사물의 존재를 그 자체로 보듬어 안으면서 막힘을 에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사물의 저항을 돌파해나가는 정신이 번뜩인다.”며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5회 불꽃문학상 시상은 2010226() 저녁7시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다.

 

지난 2005년부터 고창 복분자주 생산업체인 ‘()선운산복분자흥진’(대표 장현숙)의 후원으로 사)전북작가회의(회장 이병천)가 주관하고 있는 불꽃문학상은 43세 이하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상.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해 마련된 이 상은 문학적 활동이 활발하고 독자적 문학세계를 확고하게 자리잡아가는 작가를 선정, 매년 한명씩을 시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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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 문신

 

 

풍경(風磬)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때가 되면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허공에 헛된 꿈이나 솔솔 풀어놓고
나 하루종일 게을러도 좋을 거야
더벅머리 바람이 살살 옆구리를 간지럽혀도
숫처녀마냥 시침 뚝 떼고 돌아앉는 거야
젊은 스님의 염불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낮에는 부처님 무릎에서 은근슬쩍 코를 골고
저녁 어스름을 틈타 마을로 내려가서는
식은 밥 한 덩이 물 말아 훌러덩 먹고 와야지
오다가 저문 모퉁이 어디쯤
차를 받쳐놓고 시시덕거리는 연인들의 턱 밑에서
가만히 창문도 톡톡 두들겨보고
화들짝 놀라는 그들을 향해
마른 풀잎처럼 낄낄 웃어보아도 좋을 거야
가끔은 비를 맞기도 하고, 비가 그치면
우물쭈물 기어 나온 두꺼비 몇 마리 앉혀놓고
귀동냥으로 얻은 부처님 말씀이나 전해볼거야
어느 날은 번개도 치고 바람이 모질게도 불어오겠지
그런 날은 핑계 삼아 한 사나흘 오롯이 앓아누워도 좋을 거야
맥없이 앓다가 별이 뜨면
별들 사이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칠 거야
그런 날이면 밤하늘도 소란스러워지겠지
그렇게 삶의 변두리를 배회하다가 내 몸에 꽃이 피면
푸른 동꽃[銅花]이 검버섯처럼 피어오르면
나 가까운 고물상으로나 팔려가도 좋을 거야
주인의 눈을 피해
낡은 창고에 처박혀 적당한 놋그릇 하나 골라
정부(情婦) 삼아 늙어가는거지
세월이야 오기도 하고 또 가기도 하겠지
늘그막에 팔려간 여염집 처마 끝에 매달려
허튼 소리나 끌끌 풀어놓다가
가물가물 정신을 놓기도 하겠지
그런 연후에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내 안에 파문처럼 켜켜이 쌓아놓고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바람의 꽁무니에 몸을 묻어도 좋을 거야

 

 

 

 

곁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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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시를 왜 쓰는가 새삼스럽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충분히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조각들과 개인적인 넋두리를 그럴 듯하게 행만 바꿔 나열한 시들은 일차적으로 제외되었지만, 일정한 수준에 오른 시들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시를 습작하는 사람라면 모름지기 언어와 인식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을 시쓰기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언어 기술자는 많아도 놀랄 만한 발견으로서의 시를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찾기 위해 일곱 사람의 시가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강윤미, 김정경, 최민영의 시는 흠잡을 데 없는 말의 수련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매끈함이 중심을 관통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보다 언뜻 서툰 듯 하지만 김미경의 [만추]와 김인경의 [팔복동과 평화동 사이의 등나무]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고, 독창적인 발성을 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윤경의 [대나무꽃]과 문신의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두 편 중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앞의 작품은 만만치 않은 패기에다 무리 없는 이미지의 전개가 돋보였으나 두어 군데 상투성에 물든 시구가 결정적인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문신의 작품은 능청스런 발상이 활달한 화법에 힘입어 시의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보여주는 시이다. 함께 응모한 시들도 믿음직스럽다. 감동이 드문 시대에 감동을 낳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허소라(시인· 전 군산대 교수)·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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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 / 문신

 

 

1

정말로 한번 만져보고 싶게 작은 손이었다

 

2

싸락눈이 내리는 저녁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즐거웠다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들 과장된 표정으로 웃어주었고

그것만이 우리의 저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고 생각했다

문득,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축축한 것들이

우리들의 배경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떤 이는 전화를 하러 눈치껏 자리를 뜨고

그 옆자리의 친구는 화장실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빈자리의 쓸쓸함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처럼

문이 열릴 때마다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때마다 낯선 얼굴을 만나고는 서둘러

쓰디쓴 눈물빛 술잔을 비웠다

갑자기 세상이 시큰둥하게 보이는 저녁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쌓아놓은 빈 병들을 보며

 

가끔씩 던지곤 하던 농담도 시들해져갈 무렵

창 밖으로 함박눈이 내렸다

우리들은 다시 활기를 띠며 눈에 얽힌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것이 사랑이든, 낭만이든,

아니면 진부한 자유이든,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즐거웠으며

즐거워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조바심 나는 저녁이었으므로

또 한 친구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우리들은 감추어두었던 속내를 더욱 단단하게 여미며

썩 괜찮은 농담을 찾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침몰하기 직전의 선장처럼 우리는

어떤 결정이라도 단호하게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처럼

창 밖의 함박눈은 우리들을 비껴서 내렸다

서너 걸음 앞에 놓인 영정 사진 한 장으로

우리들은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빈 병들은 쓰러졌고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잔들이 우리들 앞에 남아 있었고

감당하기 벅찬 날들은

더 이상 우리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날이었다

남자의 손을 보았다

지하보도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손은 작았다

제 목숨조차 스스로 거두지 못한 친구의 손처럼, 세상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제것으로 움켜쥘 수 없을 만큼 작은 손

그 작은 손위에 놓여진 동전 개수만큼 침침한 저녁이었다

 

 

 

 

2004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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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만이 내 존재 이유다

 

미련퉁이처럼 시만 쓰고 싶었습니다. 연애도 취직도 하지 않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만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는 쓰지 못하고 어느 순간 나는 미련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진짜 미련퉁이가. 그 미련퉁이가 다시 시를 쓰겠다고 합니다. 연애도 해보고 취직도 해버린 미련퉁이가 염치없이 시를 쓰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시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외로울 때마다 시를 읽었습니다. 때로는 행간에 발목이 빠져 마음이 시큰거리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시는 제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스스로 아파하지 마라. 너는 너 아닌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시는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미련퉁이는 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가 뭔지를 보여주신 이 땅의 모든 시인들과 시집과 그리고 사람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기에 오늘 또 한 권의 시집을 샀습니다.

 

당선 소식에 가장 먼저 기뻐해 주신 이병천 선생님. 고맙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련퉁이에게 시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늘 안타깝게 지켜봐주신 선생님의 젖은 눈빛이 문득 낮달처럼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눈빛이 언제 어디서라도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시를 처음으로 읽어주신 김승종 교수님, 시 쓰기를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정도면 괜찮다고 다독여주신 이희중 교수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곁에서 저를 지켜봐준 부모님과 착한 이정민이 아니었으면 제가 시를 쓸 수나 있었을까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마음사랑병원 가족들에게 이 기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3일만 기뻐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련퉁이는 또 시를 써야겠습니다. 두 분 심사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똑부러지는 시를 쓰겠습니다.

 

 

 

 

곁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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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슬픔 담담히 묘사

 

예심을 통과한 응모자 19인의 작품들 가운데서 5분의 1이 본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나머지 작품들에 견주어 비슷하기보다는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제 나름의 개성을 풍기는 것은 모든 예술작품의 첫 걸음이다. 예컨대, 모대가리금풍뎅이 한 쌍과 가시돌거미 새끼들의 삶과 죽음을 빌려서 애벌레 같은 아이를 안고 뛰어내린 어미를 보여준 잃어버린 길’(박여주), ‘탱탱한 가지 위에서/ 포슬포슬한 감자 위에서/ 아삭아삭한 오이 위에서/ 알싸한 쪽파 위에서/ 팔랑거리는나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린 세 시의 나비’(이승주), ‘열 아홉 평 진달래 아파트 가판대에서 오천원에 세 장씩 싸구려로 팔리는 ‘30수 면사 런닝셔츠같은 이력서’, 서양문물이 세계화의 이름으로 동양을 점령해버린 이 시대에 아시아 갈대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의 오대호 연안에 뿌리를 내렸다는 여정기’(김미안) 등이 그러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편의 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평가되기에는 모자라는 데가 있어서 아쉬웠다. 부분을 다루는 이들의 솜씨가 전체를 마무리하는 기량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작은 손’(문신)은 오늘의 평범한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지하보도에 엎드려 있는 남자의 손제 목숨조차 스스로 거두지 못한 친구의 손을 오버랩시키면서, 죽은 친구의 영안실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인이 남기고 간 빈자리의 쓸쓸함’, 조객들의 허황된 농담과 공허한 웃음, 피상적인 관습이 되어버린 조문과 속내에 감추어진 삶의 슬픔이 저녁에 내리는 싸락눈처럼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아무런 내면적 교감도 없이 겉 모습만 스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에 숨겨진 우수를 평이한 일상어로 형상화했다. 억지로 만들어낸 은유적 표현이 적어서 친근하게 읽히고, 산문의 어조에 시적 정취를 담았다. 구체적 부분에 충실하면서도 전체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함께 투고한 숲으로 가는 곰 인형에서도 이 작품과 대등한 수준의 저력이 드러난다.

 

새 시인의 등단을 축하하며, 계속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김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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