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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변 / 이길상


역사엔 톱밥난로가 홀로 어둠을 끌어당기고 있다
저탄장 탄가루의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고
아침을 여는 길은 객지를 떠돈다
막장에 들어가는 반딧불들, 날개를 떨구면
검은 산엔 절망의 삽날이 꽂힐 뿐이다
등록금 낼 때쯤이면 아이들은 학교가 불 꺼진 빈집 같다
학교에 가지 않은 몇 아이들은 울먹이는 강이 된다
잠 못 이루며 출렁이는 삶이 거품으로 올라올 때
그 빈 공간 메우자고 떠난 아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아이 소식 궁금할 때마다 강물은 말이 없고
고요와 적막에 남은 논밭마저 드러눕는다
갈대처럼 함께 모여 살던 이웃들은 흔들리고 있는가
갈기 선 바람이 불자 희망의 불이 꺼진
길 아래 집들은 웅크리고
떡잎 같던 시간이 뿌리를 거둔다
시린 눈발에 하늘도 허기진 달을 내건다
달처럼 텅텅 울리는 마음은 철로로 놓여 먼 길 떠났을까
거죽만 남은 풍경은 주저앉아 빈 밭을 키우고
세간은 더 야위어 간다
장에 가신 아버지의 좌판에 햇살 가득 찰 날이 올까
아버지가 오실 길에 차단기가 내려가 있다
겨울 그놈의 겨울이 또 눈과 바람을 데리고
무쇠처럼 달려오고 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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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반적인 수준향상 우열가리기 힘들어 응모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시기일수록 문학은 그 결핍에 대한 보상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심사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수준의 향상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사는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장창영, 김정미, 이승은, 이영옥, 이길상의 시편들이었다. 장창영의 작품은 시적 연륜이 만만치 않아 보였고 표현들 역시 안정되어 있었다. 특히 ‘황태덕장’ 같은 작품에서 “하늘 물어뜯으며 말라가는 수천의 목어떼” 같은 구절은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정돈되어 있다는 점이 오히려 아쉬웠다. 이점은 김정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제부도’나 ‘밤의 장례식’ 등은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어서 도전의식이 부족해 보였다. 이승은의 작품들 중에서 ‘다림질을 하다가’는 생활 속에서 얻어진 소재를 뛰어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추상적인 표현들이 거슬렸고 거기다가 동봉한 작품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영옥과 이길상의 작품이 남게 되었다. 이영옥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묵호항 여인숙’은 선자들이 놓치기 아까웠다. “내가 언제나 먼곳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묵호항이 아름다웠다는 부분이나, “형광들 불빛이 / 서로의 감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같은 구절은 훌륭한 시적 표현이 단순히 능숙한 비유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시행이 너무 길게 늘어져 호흡에 문제가 있었다. 문장들을 적절히 끊을 수 있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길상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거론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우선 편차가 적어 믿음직스러웠고 섬세한 표현들 속에 삶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령 ‘연’에서 “한지 대신 벌판을 뼈대에 붙인들 어떠랴” 같은 표현이나, ‘철로변’에서 “학교에 가지 않은 몇 아이들은 울먹이는 강이 된다” 같은 구절은 수사의 익숙함을 뛰어넘는 따뜻한 시선이 드러나 있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새롭지 않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막상 당선작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선자들 사이에 이의는 없었다.

 

당선자를 포함하여 응모하신 분들의 계속적인 정진과 건필을 빈다.

 

심사위원 김남곤, 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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