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 장창영
지금도 무릎이 시큰거리느냐
천 삼백 년이면 불심 강한 이도 한 수 접고 가는 길
어쩌면 너도 천축(天竺)서 관절 꺾고
절 마당 목욕탕인냥 푸욱 담그고 싶었겠지
북녘땅 접어들 때엔 미처 예측 못했겠지
살아 있는 부처 만나기 위해 떠났던 기약 없는 길이었기에
다들 흑백사진 속 표정 없는 얼굴과
써금써금 해진 활자 이야기로만 기억하지만
너만은 또렷이 알고 있지
총령(蔥嶺) 거쳐 오대산 한 달음에 달려오던 발길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중국 공안에 쫓기던 어린 눈동자
고향이 함흥이랬지
단속 피해 신발만 챙겨든 채
훈춘 화룡 거치면서 몸은 숨 죽이는 일에
더 빨리 익숙해졌다지
장춘행 기차에서
매운 기침으로 쏟아지며 안겼을 때
네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지
부처님 진신사리 접했을 때보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변변히 옷가지도 못 챙기고
도문 국경* 저편에서 물끄러미
강 이쪽으로 씁쓸히 시선만 던지던 아우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안으로
성큼, 건너 설 때는 언제인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부처 때문인가, 꽃제비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무심한 우리 때문인가
오늘도 목숨을 승인 받기 위해
연변, 길림, 용정으로 떠돌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혜초, 내 어린 아우여!
* 북한과 중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다리로 이 다리를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당선소감]
줄기차게 두드렸던 문이 끝내 열리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날인가부터 불현듯 마음 한켠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복수란 무서운 것이어서 나는 한참 동안 복수의 순간을 꿈꾸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딘 시의 칼을 갈고, 헐거워진 정신을 다시 수습하면서 그렇게 십여 년을 보냈다. 그 덕에 나는 이 질긴 침묵의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원고를 보내면서 소감을 함께 보낸다거나 보낸 이후 호기롭게 술을 마실 여유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살아 남기 위해, 그리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며 시를 썼다.
나에게 시는 복수의 도구였고,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최후의 복수를 위해 칼을 빼어 들었을 때, 이미 날은 무디어 있었고 칼집에는 어디선가 왔는지 모를 꽃씨가 떨어져 조금씩 싹을 티우고 있었다.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왔던 복수의 끝은 그렇게 허망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정작 복수야말로 나를 버티게 만들었던 힘이었다는 사실을,
올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문인지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원고를 보내고 난 후에도 유난히 마음이 설레었다. 긴장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점점 더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나의 복수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면서 나도 모르게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렴풋하게나마 시를 쓰는 일이 복수가 아니라 생명을 향한 몸부림이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서툴게나마 다시 시작할 것이다. 아직 나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으므로, 더 좋은 시를 쓰는 것만이 나를 이 길에 들어서게 만들어주신 이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즐거운' 복수리라. 시를 쓰는 일이 복수라는 치졸함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주었으므로, 그것만이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으므로,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 참으로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정성어린 격려와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었으리라.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한다.
[심사평]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높았다. 다들 엇비슷해서 그런지 우뚝하게 빛과 향기를 발하는 수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주제와 어법이 다양해진 것은 보기 좋았지만, 길이가 길어지고 말이 많아진 것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꼭 필요해서 길어졌다고 보기보다는 손길과 생각이 거칠어서 간추려지지 못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말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아껴 고르면서 부심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심해서 고른 말로 이룬 시는 전체와 세부가 모두 방만하지 않은 법이다.
유희수, 김일영, 이광찬, 최용만, 장창영 제씨의 작품들을 남겨서 거듭 읽었다. 저마다 귀한 장점이 있는 개성적인 시들을 보내셨다.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하여 마지막에 남긴 작품은 ‘산수유’(최용만)와 ‘왕오천축국전’(장창영)이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어법이 서사적 소재와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나, 통일적이고 일관된 주제 효과를 거두는 데 부족함이 보였다.
동봉한 다른 시들도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고, 특히 풍자와 알레고리의 방법이 돋보였는데, 역시 전자와 같은 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어 아쉬웠다.
후자는 선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로서, 비교적 침착한 어법과 안정된 서정시의 감각,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또한 세부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숙의 끝에 ‘왕오천축국전’을 당선작으로 고른다. 천삼백 년 전 머나먼 구도의 길을 떠난 조상을 상상의 묘법에 기대어 오늘의 아우로 바꾼 기지와, 아우의 방황과 그에 대한 연민이 결국 우리 겨레의 묵은 염원으로 연결되는 스케일, 그리고 동봉한 시들이 뒷받침하는 다양한 시적 고민과 탄탄한 언어적 능력를 사기로 한 것이다.
번번히 낙선의 쓴 잔을 들면서도 꾸준히 시의 길을 다져온 장창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울러 선에 오르지 못한 분들께 간곡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심사위원 최승범(전북대 명예교수, 시인), 이희중(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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