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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草堂)두부가 오는 밤 / 문성해

 

 

옛날에는 생각도 못한 초당을 알아

서늘한 초당두부를 알아

동짓날 밤

선연한 선지를 썰 듯 썩둑썩둑 그것을 썰면

어느새 등 뒤로는

그 옛날 초당(草堂) 선생*이 난을 칠 때면

뒷목을 서늘케 하며 일어서던 대숲이 서고

대숲을 흉흉히 돌아나가던 된바람이 서고

그럴 때면 나는 초당 선생이 밀지(密旨)를 들려 보낸

이제 갓 생리 시작한 삼베속곳 일자무식의 여복(女卜)이 된다

 

때마침 개기월식하는 하늘 분위기로

가슴에 꼬깃꼬깃 품은 종잇장과

비린 열여섯 해를 바꿀 수도 있을 것 같고

저잣거리의 육두문자도 오늘 밤만큼은 들리지 않는다 하고

밤 종일 붙어 다니는 개새끼들에게도 한눈팔지 않고

다만 초당 선생 정지 간에서 저고리 가슴께가 노랗게 번진 유모가

밤마다 쑹덩쑹덩 썰어 먹던 그것 한 점만 우물거려봤으면

이 심부름 끝나면 내 그것 한 판만 얻어

뱃구레 홀쭉한 동생들과 실컷 먹으리라던

허리춤에 하늬바람 품은 듯 훨훨 재를 넘던 그 여복이

초당 선생 묵은 뒤란으로 죽어 돌아온 밤

 

그 앞에 서면 그 여복 생각에 선생도 목이 메였다는 그것을 나는

슬리퍼 찍찍 끌고 동네 마트에서 너무도 쉽게 공수 받아

이빨 빠진 할멈처럼 호물 호물 이리도 쉽게 먹는다는 생각에

그것이 오는 밤은

개짐**에 사타구니 쓸리는 줄 모르고 바삐 재를 넘던 그 여복처럼

목숨을 내놓지는 못할지언정

슴슴하고 먹먹한 시 한 편은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라질 초당두부가 오는 밤이다

 

* 허엽(?)1517-1580, 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초당(草堂)이며 허균, 허난설헌의 아버지, 청백리이며 문장가, 조광조 윤근수 구수담 허자 등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파직 당함, 허엽은 강릉의 바닷물로 간을 한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그의 호를 따서 초당두부라고 하였다.

 

** 삼베를 기저귀처럼 잘라서 사용하던 옛날의 여성 생리대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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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참 많은 길을 돌아서 왔습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저의 아둔함은 꼭 그 길의 막다른 끝을 보고 나서야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했던가요? 극에 달해야만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을 사랑했습니다. 한번 발을 올린 이상은 그 길을 끝까지 맛봐야만 하는 직성으로 저의 발은 수시로 부어올랐습니다. 그러나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던 그 길 위에서 저는 때때로 의외의 인연들을 만나 희희덕거리는 행운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인연들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저는 가면을 쓰고 그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찌해보겠다는 욕심이 없었기에 그들은 제게 들켰지만 저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이 그들 때문에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그 짓을 좀처럼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제가 가리라 굳게 믿고 있었던 그 길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 길은 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인지요? 정말 있기나 한 건지요? 그것은 제가 어렸을 때 미루고 또 미루던 끝내는 밤새워도 하지 못하는 방학 숙제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손안에 가장 비싸고 좋은 보석을 들고 있으면서도 남의 손에 든 돌덩이를 탐하고 있었던 게지요.

 

어쩌면 주는 것 없이도 내 앞에 달려와서 넙죽 엎드리는 이 길들과 인연들에게 이제 허리 숙여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노라면 정답이니 필연이니 하는 말은 필요 없단 것을 요즘은 알게 됩니다. 모든 길들은 언젠가는 다 한곳에서 만나진다는 것과 모든 인연들은 그럴만해서 닿아 있다는 것도 이제는 머리 숙이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제가 만난, 만나지 못한 수많은 인연들이 제가 나기 한참 전부터 촘촘한 씨실 날실로 얽혀져 있었음을 생각하는 밤입니다.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채찍을 휘둘러주신 송찬호 선생님, 박남희 선생님, 유성호 선생님, 유정이 선생님께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자기 연민과 넋두리에서 벗어난 시를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달게 고통을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입술을 건너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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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지속적으로 열어가는 시의 진경들

 

6회 시산맥작품상 본심에는 모두 열일곱 작품이 부쳐졌다. 시편들을 일별하는데, 시인의 이름은 지워져 있고 작품들만 제 모습 그대로 반짝이고 있다. 시인을 안 가르쳐주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정말 시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심사에 임하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어쨌든 다양하고 깊이 있는 미적 성취와 가능성으로 이분들 시편은 한결 같이 시산맥작품상의 제고된 위상을 보여주기에 족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의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초당두부가 오는 밤?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 시편은 열여섯 나이의 여복이 늦은 밤 밀지를 가지고 어디론가 길을 떠났을 모습을 통해, 한 시대의 어둑하고 춥고 불온했을 순간을 서사적으로 담아낸다. 여복의 죽음과 시인이 느끼는 서늘한 초당두부의 감각이 아름다운 비극성의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시적인 것서사적 흐름의 결속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존재 전환의 순간을 목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지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극적 존재 형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감각적 선명성과 서사적 얼개로 시적 진경을 보여준 이 시편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일견 어둑하고 쓸쓸해 보이는 언어를 통해, 존재의 심층을 따듯하게 감싸 안는 데서 이 시편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계단에 이르는 길?을 깊이 읽었다. 일상적으로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고 바라보고 거기 머무르면서 우리는 온갖 충일한 감각의 순간으로 즐거운 상상을 하지 않는가. 반복과 점층을 통해 삶의 심연과 표층에서 일고 무너지는 우리의 존재 형식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가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이견이 제출되었지만, 이는 그야말로 에 관한 여러 생각과 감각 그리고 평가의 준거들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처럼 자신 있게 시산맥작품상 심사 과정의 공정성과 엄정함을 피력하면서, (나중에 해당 시인을 알게 되었지만) 문성해 시인의 수상을 거듭 축하한다. 우리 시의 진경을 열어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기를 소망한다.

 

심사위원 송찬호 유성호 유정이 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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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스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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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 김충규

 

 

겨울 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 소리들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미친 듯 숲을 빠져나간다 숲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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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론 그냥 썩을 몸,

갈라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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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눈 / 문성해

 

 

눈이 온다

시장 좌판 위 오래된 천막처럼 축 내려 앉은 하늘

허드레 눈이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온다

쳐내도 쳐내도 달려드는 무리들에 섞여

질긴 몸뚱이 하나 혀처럼 옷에 달라붙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진다

그것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이 흥건하다

행인 하나 쿵, 하고 미끄러진다

일어선 그가 다시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간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진다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이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다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만 그것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시커멓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그리워해야 하나

 

 

 

 

2003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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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싸움닭처럼 달려드는 삶이 고맙다

 

긴하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새벽이 찾아왔다. 베란다에 널어둔 크고 작은 빨래들이 시커멓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식구들의 몸뚱이가 빠져나간 빨래들이 무슨 문지기들처럼 집을 지키고 있다. 이 조그만 집에 참 그래도 많은 것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 살고 있는 것들이 그립기라도 한 듯 이삼일 건너 한번씩 손님들이 찾아온다. 내게 찾아온 이들이 고맙다. 내게 찾아온 가족이 고맙고, 앞으로 태어날 새 가족도 고맙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다 뒤통수 치는 기쁜 일들과 슬픈 일들이 고맙고, 작은 창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아침 햇빛이 고맙고, 내 생의 동반자인 병마저 고맙고, 무엇보다 싸움닭처럼 달려드는 삶이 고맙다.

 

그동안 많이 자질구레해져 있었다. 내 이런 변화에 많이 놀라곤 했던 친구여,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들이 우리들 앨범에 압사되어 있더라도 이제는 용서해 줄 수 있겠지?

 

그 지명만 나와도 가슴이 벌렁이는 대구, 그곳에 사는 벗들이 보고 싶다. 아직도 벗들은 눈이 오면 낄낄대며 팔공산을 오르고 있을까? 우리집 담장은 저를 훌훌 넘던 여자애를 아직도 기억할까?

 

돌아보면 내 시를 키워 온 고마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기쁨을 오롯이 그들의 몫으로 돌린다. 이제는 내 시를 담담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들, 시흥에 계시는 참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졸작임에도 불구하고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신문사에 넙죽 고마움을 전합니다. 참 좋은 시인, 행복한 시인으로 태어나서 거듭거듭 보답하겠습니다.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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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쉬운 언어로 깊고 넓은 뜻 표현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은 네 응모자의 작품에 주목했다. 안여진씨의 응모작은 언어가 맑고 신선하다. 사물을 접하는 감각도 날카롭다. 그러나 주제가 새롭지 않고 깊이도 부족하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상투적 표현에 의지하는 습관이 있다.

 

유승하씨는 현실을 분석하는 눈이 예리하고 필력도 훌륭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 주제도 깊고 다양하다. 이따금 사실의 묘사와 은유적 표현 사이에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다.

 

김금숙씨의 응모작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가장 오래 끌었던 작품이다. 삶의 깊은 체험이 주제와 언어 속에 드러나고 작품을 쓰는 태도가 진지하며 표현도 힘차다. 그러나 여성의 몸이나 임신과 생리에 관한 주제가 현금 시단의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당선자인 문성해씨는 경쾌한 일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쉬운 언어로 드러내는 뜻은 깊고 넓다. 사물의 한 귀퉁이를 가볍게 건드려 의미 하나를 폭발하게 하는 이 능력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당선작인 귀로 듣는 눈에서 읽게 되는 것은 시각과 청각 간의 공감각적 환치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실현되지 못한 채 무효가 되어버린 모든 선의와 희망에 대한 수준 높은 성찰이 있다. 다른 작품 수건 한 장에서도 인간의 삶과 사물이 어떻게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가를 감동 깊게 서술한다. 그가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 당선자의 문운을 빌며 모든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종해,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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