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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목화송이처럼 눈은 내리고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따뜻한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제 가슴에 실밥

묻은 줄 모르고,

공장의 긴 담벽과 가로수는 빈 화장품 그릇처럼

은은한 향기의 그녀들을 따라오라 하였네

걸음을 멈추고

작은 눈

뭉치를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묻지도 않은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늘어놓으면서 어느덧

뚱뚱한 눈사람이 하나 생겨나서

어린 손목을 붙잡아버렸네

그녀가 난생 처음 박아 준 눈사람의 웃음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네

어둠과 소녀들이 교차하는 시간, 눈꺼풀이 내려왔네

ㅎ방직공장의 피곤한 소녀들에게

영원한 메뉴는 사랑이 아닐까,

라면 혹은 김밥을 주문한 분식집에서

생산라인의 한 소녀는 봉숭아 물든 손을 싹싹 비벼대네

오늘도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소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을 점치고 싶어 하네

뜨거운 국물에 나무젓가락이 둥둥

떠서, 흘러가고 소녀의시간이 그렇게 흘러 갔다고 분식집 뻐꾸기가

울었네

입김을 불고 있는 ㅎ방직공장의 굴뚝이,

건강한 남자의 그것처럼 보였네

소녀들이 마지막 戰線(전선)으로 총총 걸어가며 휘파람을 불었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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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15명의 응모자중 남소영, 이기인, 안휘지의 작품들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남소영의 작품들은 신춘문예 스타일이라는 상투성에서 멀다는 점, 말의 침묵-암시의 울림, 생략과 여백의 효과 같은 것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 상식을 거스르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는 점 등에 비추어 그중 눈에 띄는 시적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러나 ‘겨울인사’ 같은 작품은 버리기 아까웠다.


이기인은 존재하는 것들의 외로움과 추움을 아주 잘 느끼고 있다. 그래서 ‘ㅎ방직공장의 소녀들’에서도 보듯이 그의 작품들은 따뜻하다. 계절도 인심도 춥고 싸늘할 때는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퍼뜨리고 일으켜세우는 일도 시가 하는 중요한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부드러운 어조도 시에 힘을 더하며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다는 점도 마음놓이는 일이다.

 

심사평 : 신경림, 정현종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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