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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따라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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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3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과 수상자를 발표했다.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5개 부문에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이다. 희곡과 평론은 격년으로 수상자를 발표해 올해는 시, 소설, 평론, 번역 부문에서 4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시에선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본심을 진행한 후 최종 대상작 4권을 선정했다. 그 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행숙은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2009년 노작문학상, 2015년 전봉건문학상, 2016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부문에선 본심에 오른 6편 중 김혜진의 ‘9번의 일’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단은 “노동의 양면성을 천착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우리 삶의 근간인 노동의 문제를 통해 참혹한 삶의 실체를 파헤치는 냉철하고 집요한 시선이 돋보인다”라고 평가했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2013년 중앙장편문학상, 2018년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년 전에는 ‘딸에 대하여’로 대산문학상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평론은 유성호의 ‘서정의 건축술’이 선정됐다. 해당 비평집은 “비평적 세계를 안정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정확한 심미성을 지향하면서 비평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두루 겸비했다”라는 평을 받았다. 4개(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언어를 돌아가며 시상하는 번역 부문에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스페인어로 옮긴 주하선이 수상했다. 주하선은 ‘82년생 김지영’과 이번 본심에 같이 오른 ‘잘 자요, 엄마’를 통해 문학 번역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심사위원단은 해당 번역본에 대해 “원작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원작을 살린 충실한 번역을 통해 뛰어난 가독성을 확보했다”라고 평가했다.

수상자에게는 각 상금 5000만원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상패 ‘소나무’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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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공장 / 오은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이 없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일은 기술과 상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켜는 것. 저녁을 먹고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는 것이 차라리 더 고된 일이었다. 무인공장에서 일어나 무인공장으로 출근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으로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켰다. 보지 않은 사이에 스위치가 꺼질까 걱정되어 점심은 걸렀다. 사람을 맞이할 필요도, 사람을 배웅할 필요도 없었다. 출근시간이 왔다가 노동시간이 왔다가 밥시간이 왔다가 다시 노동시간이 왔다. 정확한 간격으로 밥시간과 퇴근시간이 왔다. 기술적이었다. 퇴근이라고 쾌재를 부르면 메아리가 되어 공장에 울려 퍼졌다. 예술적이었다. 무인공장에 출근했다가 무인공장으로 퇴근했다. 무인공장에서 잠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시간이 갱신될수록 시간개념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은 가지 않고 늘 오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렇게 오래 근무해도 기술은 늘지 않았다. 수상했다. 무인공장에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는 것이 유일하게 습득한 기술이었다. 어느 날에는 스위치를 켜는 심정으로 불쑥 내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무인공장과 달리 나는 이름이 있었다. 무인공장과는 달리, 나는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고 스위치를 껐다. 공장 내에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제야 일이 기술가 상관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할 때에야 무인공장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했는데 정작 공장에서 빠져나갈 기술이 없었다. 무인공장에서는 유입만 있고 유츌은 없었다. 제시간은 항상 찾아오기만 했었다. 곤욕은 곤혹 전에 찾아와 곤경에 처한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없어야 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한번 꺼진 스위치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사람 구실을 하는 게 곤란해졌다. 비로소 무인공장이 무인공장다워졌다. 뭔가를 원해서 뭔가를 원하지 않아서 입은 늘 벌린 채였다. 아침을 먹어도, 점심을 걸러도, 저녁을 먹어도 입은 늘 벌어진 채였다.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 없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 없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나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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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조해진, 시인 오은, 번역가 윤선영·필립 하스를 각각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작은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오은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윤선영·필립 하스의 독역서 '새벽의 나나'(박형서 원작). 희곡 부문은 수상작을 내지 않았다.

 

대산문학재단이 주관하는 제27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오은(37) 시인은 4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나는 이름이 있었다'에 실린 시를 쓰던 시간은 귤의 과육이 아니라 귤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로 상을 받게 된 그는 귤을 감싼 섬유질인 '귤락'을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비유했다.

 

오은 시인은 "귤락이 더 멀리 뻗어 나갈수록 그물망이 더 촘촘해질수록 내 우주는 따라 성장했다"면서 "낮지만 깊고 어둡지만 진한 이야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지만 팽팽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집이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끌어내고 사람의 내면을 다각도로 이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대산문학상은 교보생명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 선생이 창립한 대산문화재단이 1년여 동안 발표된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부문별로 선정해 시상한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천만원이 수여된다. 시와 소설 수상작은 번역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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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 강성은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여 오늘은 내가 옆에 있어줄게

하지만 내가 옆에 있어도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다음 해 극장은 사라지고

밤새 불 켜진 쇼핑센터가 되고

혼자 온 사람은 텅 빈 커다란 카트를 끌고 돌아다닌다

 

쇼핑센터는 예식장이 되고

예식장은 병원이 되고

병원은 주차장이 되고

주차장은 유치원이 되고

유치원은 납골당이 되고

 

우리는 납골당에 갔다

친구는 여전히 우울해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L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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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에 강성은의 시집 'Lo-fi'(로파이·저음질)와 최은미의 소설 '아홉번째 파도'가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최은미, 시인 강성은, 문학평론가 우찬제, 번역가 조은라·스테판 브와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 부분 수상자 강성은의 'Lo-fi'는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강성은 작가는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 사건을 겪으면서 시를 못쓰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시쓰기를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부문은 8편의 장편소설 중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정용준의 '프롬 토니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가 최종심에 올랐다.

 


이중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에 대한 정밀한 접근, 인간 심리에 대한 심층적 진단 등 강력한 리얼리티를 구축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최은미 작가는 "첫번째 장편소설인 '아홉번째 파도'를 시작하면서 제 세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만들어낸 인물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반씩 있었다"면서 "이번 수상으로 확신을 가지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서는 우찬제의 비평집 '애도의 심연'이, 번역 부문에서는 조은라, 스테판 브와가 함께 번역한 'La Remontrance du tigre(호질: 박지원단편선)'이 각각 선정됐다.

우찬제 평론가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애도의 주제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우리시대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새로운 희망의 원리를 어떻게 같이 찾아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 상패가 주어지며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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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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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에 서효인 시인(36)의 '여수', 소설 부문에 손보미 작가(37)의 '디어 랄프 로렌', 희곡 부문에 장우재 작가(46)의 '불역쾌재', 번역 부문에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78)의 영역작 '한국시선집: 조선시대'를 각각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시 '여수'에 대해 "이 땅의 여러 장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돋보이고 상투적 현실 인식에 안주하지 않는 풍성한 발견과 성찰을 보여준다"고 평했으며,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는 "다국적 소비문화의 영향 아래 자기 인식의 언어를 배운 젊은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서사적 상상의 발랄함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남겼다.

서효인 시인은 이날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상은 나를 포함한 선후배 젊은 시인들에게 크나큰 격려를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소설 부문 심사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1980년대생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격년제로 수상작을 내는 희곡과 평론 부문은 최근 2년간 나온 작품을 대상으로 했고, 번역은 최근 4년간 발표된 영어 번역물을 심사했다.

번역 부문 수상자인 케빈 오록은 1964년 한국으로 건너 와 외국인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따고 40여 년간 한국문학 연구에 천착했다. 오록은 "첫 번째 번역 시집으로 1989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커리어를 마감하는 지금 상을 타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번역서는 한국 고전 번역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시집으로, 조선시대 한시 600수 이상을 담은 시집이다"라고 말했다. 

시·소설·희곡 수상작은 내년도 번역 지원 공모, 주요 언어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해외에 소개된다. 상금은 부문별 5000만 원.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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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가까운 삶 / 이장욱

 

 

영원을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영원은 타고 갔다.

영원에게는 언제나  곳이 있는  같았다. 그곳이 영원에게 이미 지나온  같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열심히 잠을 자는 것은 
영원이 아니라 
영원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잊었다.
마치 나를  살아낸 듯이

내가 출근을 하고 우체국에도 가고 관공서에도 가는 것을 알면서 영원은
매일 공무원 같았다. 문서의  칸을 메우기 위해  산을 바라보는

비처럼
영원은 내렸다.
그것이 그의 업무.
나는  옷을 사고  안경을 샀다.
그것이 나의 업무.
오늘도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으로

나는 세상의 모든 기차역에 혼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나는 처음 거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고개를 들면   구름에게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영원으로부터 조금  
 곳으로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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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4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이장욱 시인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소설 부문에 김이정 소설가의 유령의 시간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는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쓴 정홍수 평론가가, 번역 부문에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스페인어로 옮긴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와 정민정 번역가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 선정사유로 시 부문의 경우 내밀한 아이러니와 중성적인 시쓰기의 비결정적인 지대가 시의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면서 한국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부문은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이 선정사유로 작용됐다.

 

평론부문은 구체적인 삶의 지문을 과하지 않은 미문에 담아냄으로써 그 자체로 문학의 지혜를 체험하게 하는 점을 들었다. 최근 4년여간 발표된 스페인어 번역물을 대상으로 한 번역부문 수상작은 원작이 갖추고 있는 보편성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함축적인 문장들이나 구어체적 표현들을 스페인어로 잘 소화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1960년대생 문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미래파 이전에 아주 내밀한 방식으로 한국 시의 언어적 확장과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력에 기여해 온 이장욱 시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자서전을 자신이 완성할 것만 같다는 에감을 40여년이 지나 소설로 실현한 김이정 소설가.

 

또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학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찾아내는 애정과 감식안으로 정점에 달한 평론의 진경을 보여준 정홍수 평론가는 지난 한 해 일어난 한국문학계의 악재와 호재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들뜨지 않고 자신 만의 문학세계를 묵묵히 펼치며 한국문학의 중추 역할을 해낸 믿음직스러운 중진 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젊은 번역가 정민정·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의 번역 부문 수상은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한 기대를 더욱 고무시킨다. 한국과 멕시코의 젊은 번역가가 4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의기 투합해 번역에 매진한 결과물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도 청소년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 1만부를 인쇄하며 한국문학 번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심사단 관계자는 시 부문은 기존의 서정시의 기율과 문법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소설 부문도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이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찬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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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개의 초록 / 마종기

 

 

"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 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왁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서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 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마흔두 개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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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 마종기(76)의 '마흔두 개의 초록', 소설 부문 황정은(39)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뽑았다.

 희곡 부문 김재엽(42)의 '알리바이 연대기', 번역 부문에서는 얀 헨릭 디륵스(40)의 '바셀린 붓다'(원작 정영문)가 수상한다.  

 심사위원단은 '마흔두 개의 초록'에 대해 "언어의 매끄러운 연쇄 위에 수놓아진 삶의 체험이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대해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삶의 존재 이유를 침묵의 문장으로 풀어냄" 등을 높게 평가했다.

 '알리바이 연대기'에 대해서는 "개인사와 현대사 교차시킨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서사적 글쓰기 개척", 정영문 원작을 독일어로 옮긴 '바셀린 붓다'에 대해서는 "제3세대 번역가의 등장을 알린 유려하고 문학성 높은 등가 번역"이라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로 상금 5000만원이 주어진다.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상패도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1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희곡은 지난 2년·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예심은 김선우·박정대·오형엽(시), 김동식·김숨·심진경·이기호(소설) 등 7명이 6월부터 약 세 달 동안 했다. 본심은 고형진·김광규·신달자·유종호·정호승(시), 강석경·구효서·김형경·도정일·최원식(소설), 박근형·이강백·이미원·이윤택·정복근(희곡), 김륜옥·김용민·안문영·전영애·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 등이 8월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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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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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진은영(43)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 소설 부문에 김숨(39) 씨의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선정됐다.

 

희곡 부문은 '칼집 속에 아버지'를 쓴 고연옥(42) 작가, 번역 부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어로 번역한 최양희(81) 씨가 수상자로 뽑혔다.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진은영 시인은 "이번 수상은 문학적 행운이다. 언제 또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궁핍한 순간에 찾아온 이 행운을 벗 삼아 좋은 시인이 되겠다." 소감을 내놨다.

 

진 시인은 "제 시는 누군가의 전범이 되는 종류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범이 되지 않는 문학의 소중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범이 될 수는 없으나 존재해야 하는 특별한 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로 한국시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문별로 상금이 3천만5천만 원이었던 대산문학상은 올해부터 전 부문 5천만 원으로 조정됐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로 바뀌어 내년엔 평론 부문을 시상한다.

 

올해 시상식은 다음달 3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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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만세 / 박정대

 

 

희미하게 그대의 얼굴이 보일 정도면 된다

천창을 통해 별빛들이 쏟아지면 된다

선반에 쌓여 있는 약간의 먼지는

음악이라고 생각하자

술을 마시는 날들을 위해

뜨거운 국물을 끓여낼 수 있으면 된다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금방 공기가 맑아지는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다락방 위에는 청색 하늘

다락방 아래엔 끝없는 대지

다락방 곁으론 날마다

그대 맑은 숨결 같은 바람이 불면 된다.

사랑하는 그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면 된다

당나귀, 굳이 차마고도를 지나오지 않았더라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당나귀에 실은 물품이 당도하면 된다

당나귀, 폭설에 길이 끊겨

설령 한 달을 오지 못한다 해도

삐걱거리는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엔 다락방 카페가 있고

다락방 카페엔 의자와 탁자가 있으면 된다

한 달 내내 눈이 내려

세상의 길이란 길들 모조리 막힌다 해도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그대만 있으면 된다

약간의 식량과 술과 담배만 있으면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으면 된다

두툼한 스웨터만 입을 수 있으면 된다

조명은 희미해도 된다

별빛이 쏟아지면 된다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체 게바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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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2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체 게바라 만세'의 박정대 시인이, 소설 부문에 '아들의 아버지'의 소설가 김원일 씨가 각각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서는 '폐허에서 꿈꾸다'의 남진우 명지대 교수, 번역 부문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불어로 번역한 엘렌 르브렝 씨가 각각 뽑혔다.

 

박정대(49) 시인은 4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제목을 가진 시집에 누가 상을 줄까' 저 자신도 기대를 안 했다""지금도 전혀 실감이 안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적 전언의 폭발력으로 최근 시단의 기계적이고 난해한 경향에 대한 의미 있는 반격"이라는 평을 받았다. 박 시인은 "시단의 시들이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내면화되는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불만이라고 할까, 시집 제목만이라도 사회적인 발언을 해보자고 시집 제목을 '체 게바라 만세'로 했는데 막상 시집을 열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제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았다"면서 "시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는데 시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시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산문학상 상금은 부문별 5천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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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가장자리를 / 백무산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끓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쳔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법륜처럼 굴려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 것도 길들어지지 않은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원한다네

한 십만년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

 

 

 

 

그 모든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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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백무산(57)씨와 소설가 정영문(47)씨, 문학평론가 황현산(67)씨가 선정됐다. 번역 부문 수상자는 단국대 스페인어과 고혜선(62) 교수이고, 희곡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30일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백씨는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가 높은 평판을 받아 수상자로 뽑혔다. 심사위원회는 “노동자 문학으로부터 삶에 대한 근원적 의문으로 시 세계의 폭이 더욱 확장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최근 동인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겹경사’를 맞았다. 수상작은 동인문학상과 동일한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다. 심사위원회는 “기존의 작품세계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을 품는 품이 한결 넓어지고 편안해졌다”고 평가했다.

황씨는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고 교수는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 교수는 남편인 번역가 프란시스코 카란사(페루)와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이다.

상금은 시와 소설 부문은 각 5000만원, 평론·번역 부문은 각 3000만원이다. 시·소설 부문 수상작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어로 번역·출간된다. 시상식은 11월29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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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이불 / 신달자

 

 

신열이 아직은 산 증거라는 듯

시멘트 바닥이 그를 떠받쳐든 채

오한에 떨고 있는 풍경 본다

사실은 끙끙 앓는 바닥을 덮어 주고 있는

누더기 육신

겨울 지하통로에 누워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의 바람을 가리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지나온 세월을 덮고 있는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

오래전에 난청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지하의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독한 바람과는 통하는지

그 소통 안에는 언 귀를 잡아당기며 쩔쩔 흔드는 손이 있는지

종이 한 장의 보온 기억을 되살리느라 발끝을 오므리지만

끌어안기도 전 적막은 압사처럼 그를 누른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영혼이 가는 곳으로 느리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저 사람

버리지 않았는데도 지나가버리는 순간의 온기를 찾아

영혼은 푸른 숲의 고즈넉한 길을 헤매는 것인지

안갯속 낯익은 집 둘레에서 인기척에 갑자기

몸을 웅크리며 먼먼 온기를 목안으로 끌어 오고 있는지

누군가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인지

죽은 듯 죽지 않은 입을 열었다 오므리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깊고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저 사람.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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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여상〉을 통해 시 〈환상의 밤〉으로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면서 재등단했다.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봉헌문자〉·〈겨울축제〉·〈아가〉·〈황홀한 슬픔의 나라〉·〈백치슬픔〉·〈아버지의 빛〉·〈열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백치애인〉·〈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와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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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68)씨와 소설가 임철우(57)씨 등이 제1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1일 신 시인의 시집 '종이', 임 작가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최치언(41)씨의 희곡 '미친극', 염무웅(70)씨의 평론 '문학과 시대현실'을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 부문에서는 하이디 강(72)과 안소현(51)씨가 독일어로 공동 번역한 김훈 원작 '칼의 노래(Schwertgesang)'가 선정됐다.

 

수상작들은 "깊어지는 인식과 농밀해지는 감각, 진화의 에너지가 독자들을 무척 감동시켰다(종이)" "진정성과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정적 서사성을 갖고 있다(이별하는 골짜기)" "연극의 유희성을 과시하는 극작술이 돋보이는 수작(미친극)" "문학이 당면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문학과 시대현실)"는 평가를 받았다.

 

종이를 주제로 한 76편의 시를 담은 신 시인은 "7~8년 전 종이가 사라진다는 작은 기사를 보고 손끝이 울려 종이에 대한 연작시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열심히 작품을 발표하지만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이 상을 받게 돼 격려가 된다"면서 "내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적은 수라도 있다면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소설 부문 5,000만원 시ㆍ희곡ㆍ평론ㆍ번역 각 3,000만원이다. 시ㆍ소설ㆍ희곡 부문 수상작은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출판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6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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