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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테나 외 4편 / 전욱진

 

   지금껏 옥상에서 살았는데 녹슨 손잡이가 달린 그림자가 가끔 뛰쳐나왔다. 지구의 출근 제도는 아마 태양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아침엔 이유 없이 부끄러웠다. 너는 오랫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잘랐다. 뼈가 수신한 채널 하나를 종일 보았다. 누가 보든 상관없이 방영되는 비정규 채널 아랫집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잠은 간단한 음소거였다. 너는 리모컨을 찾으러 갔다 돌아오지 않는다. 뼈가 구겨질 때마다 분명한 악몽을 꿨다. 이 세상 모든 옥상의 흐린 내일에 관하여 뼈는 지금 공중을 수신하고 있다. 그림자가 도시와 한 몸이 되자 바쁘게 혈관을 통과하는 자동차 불빛. 내일이면 장기(臟器)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다. 내 그림자에서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철거해야 하는 감정들이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옥상의 구식 안테나에 새들이 착륙했다. 이곳이 경유지인 것을 너무 늦게 눈치챈다.

 

 




 

 

  줄 타는 옷

 

   엄마는 마당을 가로질러 줄을 매고 바닥에 떨어진 검은색 옷가지들이 줄을 탔다.

 

   맑게 갠 날을 잡아당기면 검고 긴 줄이 팽팽했다. 나는 그 줄을 밟고 옷가지들의 그림자 위에서 무등을 타고 놀았는데 눈을 뜨니 나는 객지(客地) 위였다. 그때부터 자오선을 마음으로 가졌다. 칼자국을 밟고 놀았던 발로 줄을 탔다. 칼의 주인은 기우뚱거리는 중심, 몸을 흔들 뿐이었다.

 

   어쩌다 집에 들르면 엄마는 객지를 빨아 또다시 긴 줄 위에 널었다. 실패한 어름사니는 빨랫줄만 봐도 현기증을 느낀다. 상의와 하의는 이미 경지에 오른 듯 편해 보이지만 그건 내가 나의 관객일 때다. 툭툭 털어 옷을 걷으면 발목 근처나 소매가 파리하다.

 

   두 개의 극. 양쪽에 묶인 것들은 흔들린다. 줄을 타는 해. 그림자가 섞이는 줄 위 곡예사들이 마른다. 밥처럼 차가운 날씨다. 몸이 다 마를 때까지 망중한 없던 바람. 텅 빈 빨랫줄에 근황을 널어놓는다. 기시감은 펄럭거리면서 말라간다.

 

   그림자가 없는 날은 공연하기가 꺼려진다. 미신은 늘 미끄럽다. 그런 날은 모든 줄이 외줄이 되었다. 줄을 탈 때 바닥에 허우적대는 내 그림자를 동경했다. 무수한 균형들을 털어낸 몸이 마른 광대가 될 수 있었다. 곧 얼음 위를 걷는 계절.

 

   빗방울 떨어지고 객지에서 내가 나를 갠다.

 

 





 

왜소행성 134340

  

이 겨울의 상상도에는 적설량이 없다

회색을 세 들인 집에게 녹지말자녹지말자 속삭인다.

퇴출당한 아버지와 나는 명왕성 아니,

왜소행성 134340으로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집은 ㄱ을 돌아 ㄴ에 닿기 전 네 번째 달 아래에 끼여 있다.

지나친 구멍가게의 남은 유통기한을 계산할 즈음

안개가 ㄱㄴ을 채우면 명왕성의 밥에선 소독약 맛이 난다.

충동들이 문득 남산타워를 볼 때

유령이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검버섯 대신 눈꽃이 핀 할머니는 벽에다 하얀 점을 그리곤 태양이라 하셨다.

모퉁이들이 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창문들이 생겨났다.

 

네 개의 달이 일시에 소등하고 의혹은 태양과 더 멀어진다.

입김과 한 방을 썼다.

대기권에는 여전히 연탄가스 냄새가 날 거라고 동생은 믿고 있고

목 없는 여자와 짧은 연애를 했다

같이 있어만 줘 고백은 지구의 궤도를 닮아 완전히 둥글었다.

머리 아픈 숫자와 기호들로 변명을 만들고

소행성의 유형 기간은 줄지 않았다

현실계와 59억 킬로미터 바깥에서 달이 되는 꿈을 꾸다 글썽이는 해안에서 멀어지면

그제야 내가 달이 아닌 썰물임을 깨닫는다.

 

담벼락의 추문처럼 적중하는,

ㄱㄴ들이 모여 모퉁이가 되는 이 야윈 행성의 경사진 종점에서 제일 밝은 별을 꼬집는다.

밤에 목이 말라 창문을 핥을 때

흩날리는 궤도 속에서 하나둘 명왕성을 센다.  

 

 





 

  어우야담 

 

   보낸 편지는 자꾸만 되돌아왔다.

   깨어나면 다시 잠들 수 없는 지병을 가진 당신,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헤어진 애인들이 침대 밑을 기어 나오기 전에

   당신의 그림자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당신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소지를 잊은 편지가 되는 것

   불안을 심장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홉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키우는 중년의 남자부터 기침약 공장에서 일하지만 늘 기침을 달고 사는 소녀 슬퍼하는 개를 닮은 수습 수의사 요즘 면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노인 잃어버린 발뒤꿈치를 찾아 배회하는 아가씨 가로등에 붙은 청테이프를 매미라고 우기는 꼬마까지 모두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여러 개의 쇠구슬이 일정하게 부딪히는 심장 소리

   어쩌면 이미 뜯어진 무언가를 봉합하는 재봉틀 소리

   아침은 고장 난 자전거라는 듯

   지붕 위 암탉을 꺾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종족의 축제엔 금속을 먹는 풍습이 있다.

 

   토끼 우리 반대편 당신이 사는 집

   그림자는 당신을 기다리다 먼저 잠들었다.

   달은 떠나고 달빛만 남아 있다 토끼들이 전부 사라졌다.

   마을의 풍향계는 오후의 바람과 맞바꿨다.

   당신은 지금껏 깨어난 적 없다.

 

 




 

중국 속담

- 부족한 한 개의 손가락과 남겨진 귀

  

여섯 개의 귀로 저녁이 드나든다.

태양의 뒷덜미가 점점 늘어나고 천막 꼭대기에서 지는 해

선잠에선 불타는 동쪽을 꿈으로 꾼다.

내 시간은 늘 앞에 있다.

괴상한 꽃으로 머릴 반쯤 덮은

말이 문득 여섯 갈래로 나뉘는 장면들 그리고

탄성과 조소, 혐오를 가지고

저글링을 하는 여덟 시.

 

손가락들을 따라 마을을 떠도는 나는

귀가 많은 지붕

배고픈 날 뛰어가는 푸른 구름을 잡아서 빨아먹거나

내겐 있지도 않은 이름을 만들어 먹었다.

해를 따라 지는 꽃의 꽃말로

일요일의 악담을 만들었다.

 

마을은 뒤통수들이 살고 있다.

전날 모아놓은 손가락들 뜯어 먹었다.

그러다 잠에 들면 속담처럼 눈을 뜬 새벽 비가

내 옆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쇠약한 몸을 반기는 귀와 손가락

젖은 몸을 채 말리기도 전 천막을 나온다.

땅거미에 쫓기던 달팽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가고

착각한 바람과 이정표가 울렁거린다.

여덟 번의 종소리가 멀어지고 있다.

여섯 개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해를 따라 꽃이 진다는, 누군가가 중국 속담을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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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백석문학상으로 김정환(53)씨의 시집 드러냄과 드러남’(2007)이 받는다.

 

심사위원단은 예술론과 문명사적 사유를 일상의 언어로 탐구하면서 유려한 상상력과 활달한 리듬을 창출, 요즘 보기드믄 시적 형상을 구축했다고 평가해 22일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드러남과 드러냄1졸업앨범-죽음과 일상의 모뉴멘탈리티’, 2오래된 나들이-삶이 늙어간다는 것으로 구성됐다.
이들 시집은 느슨한 듯 긴밀하게 서로를 떠받치며 현현(顯現)하는 시간의 총체로 일상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인의 대담한 기획 속에 드러남과 드러냄의 한 몸으로 묶여 있다.

 

6000행이 넘는 시편들은 40년 가까운 한국근대의 복잡다다한 시간이 시인의 몸에 남긴 곤경과 난해를 그 자체로 감당한다. 동시에 일상의 시적 현현을 역설의 명징성으로 폭발시킨 보기 드문 광경에 이르고 있다.

 

창비가 최근 2년내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1912~1995)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옛 유명 요정 대원각여주인 김영한(1916~1999)이 출연한 기금으로 9710월 제정됐다.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子夜)’가 바로 김영한이다.

 

시상식은 1123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드러남과 드러냄

 

nefing.com



김정환 시인은 민중들의 고통과 좌절, 희망을 리얼리즘적으로 형상화한 시들을 주로 발표한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시대의 진실을 밝히려는 결의와 열린 감성으로 우리 시대의 언어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인문ㆍ역사서, 클래식 음악 해설서, 인터뷰집 등 등단 후 30년 동안 1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을 펴낸 정력적인 저술가다.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80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외 다섯 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제9회 백석문학상, 2009년 제8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노동자문화운동연합회 의장,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 국장, 한국문학학교 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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