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처음 만나던 때 / 김광규

 

 

조금만 가까워져도 우리는
서로 말을 놓자고 합니다
멈칫거릴 사이도 없이
ㅡ 너는 그 점이 틀렸단 말이야
ㅡ 야 돈 좀 꿔다우
ㅡ 개새끼 뒈지고 싶어
말이 거칠어질수록 우리는
친밀하게 느끼고 마침내
멱살을 잡고
싸우고
죽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경어로 인사를 나누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앞으로만 달려가면서
뒤돌아볼 줄 모른다면
구태여 인간일 필요가 없습니다
먹이를 향하여 시속 140㎞로 내닫는
표범이 훨씬 더 빠릅니다
서먹서먹하게 다가가
경어로 말을 걸었던 때로
처음 만나던 때로 우리는
가끔씩 되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만나던 때

 

nefing.com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엄격한 유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6·25전쟁 때 피난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작문 교사로 재직중이던 시인 조병화와 소설가 김광식에게 배웠다.

 

1960년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진학하여 이청준, 김주연, 염무웅, 박태순, 정규웅, 홍기창, 김현, 김치수, 김승옥 등 문학 분야 인재들과 사귀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의 뮌헨대학교로 유학했으며, 1983년 서울대학교에서 〈귄터 아이히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80년 부산대학교에서 전임강사 및 조교수를 지냈으며, 1980년부터 한양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5년 〈문학과 지성〉 여름호에 〈유무〉·〈영산〉·〈부산〉·〈시론〉 등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을 출간하여 1981년 제1회 녹원문학상을 수상했다. 1981년 시선집 〈반달곰에게〉로 제5회 오늘의 작가상, 1984년 〈아니다 그렇지 않다〉로 제4회 김수영문학상, 1994년 시집 〈아니리〉로 제4회 편운문학상, 2003년 시집 〈처음 만나던 때〉로 제11회 대산문학상, 2007년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으로 제19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시집 〈크낙산의 마음〉(1986), 〈좀팽이처럼〉(1988), 〈물길〉(1994),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과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88), 산문집 〈육성과 가성〉(1996) 등이 있다. 독일문학 작품의 번역서로는 브레히트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귄터 아이히 시집 〈햇빛 속에서〉, 하이네 시집 〈로렐라이〉 등이 있으며, 1999년 독역시집 〈Die Tiefe der Muschel〉을 출간했다

 

 

 

하루 또 하루

 

nefing.com

 

 

시인 김광규(62)씨의 시집 「처음 만나던 때」(문학과지성사 刊)와 소설가 송기원(56)씨의 「사람의 향기」(창비 刊)가 제11회 대산문학상의 시와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각각 선정됐다.

 

번역 부문 수상은 소설가 오정희씨의 원작 「새」를 공동번역한 독일인 에델투르트 김(64)씨와 김선희(45)씨가 차지했으며 평론과 희곡 부문은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시상하는 대산문학상은 부문별 3천만원씩 모두1억5천만원의 상금이 걸린 국내 최대 종합문학상이다. 시와 소설 부문 수상작은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판된다.

 

심사위는 "시부문의 「처음 만나던 때」는 시인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 길을 개척하는데 있어 연륜에서 나오는 품격이 배어있고 활달한 감성과 능청스러우면서도섬뜩한 삶에 대한 관찰이 자리잡고 있다"고 평했다.

 

김광규씨는 "보통사람이 읽어서 알 수 있는 시를 쓰겠다"고, 송기원씨는 "이제내 자신의 얘기 보다 남의 얘기를 쓰겠다"고, 에델투르트 김씨와 김선희씨는 "한국문학의 외국소개에 힘쓰겠다"고 각각 말했다.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대연회장에서 열린다.

 

728x90

 

 

아니다 그렇지 않다 / 김광규

 

 

굳어 버린 껍질을 뚫고

따끔따끔 나뭇잎들 돋아나고

진달래꽃 피어나는 아픔

성난 함성이 되어

땅을 흔들던 날

앞장서서 달려가던

그는 적선동에서 쓰러졌다

도시락과 사전이 불룩한

책가방을 옆에 낀 채

그 환한 웃음과

싱그러운 몸짓 빼앗기고

아스팔트에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그는 헛되어 사라지고 말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물러가라 외치던 그날부터

그는 영원히 젊은 사자가 되어

본관 앞 잔디밭에서

사납게 울부짖고

분수가 되어 하늘높이 솟아오른다

살아남은 동기생들이 멋적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와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어느새

중년의 월급장이가 된 오늘도

그는 늙지 않는 대학

초년생으로 남아

부지런히 강의를 듣고

진지한 토론에 열중하고

날렵하게 볼을 쫓는다

굽힘 없이 진리를 따르는

자랑스런 후배

온몸으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아들이 되어

우리의 잃어버린 이상을

새롭게 가꿔 가는

그의 힘찬 모습을 보라

 

그렇다

적선동에서 쓰러진 그날부터

그는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

우리의 앞장을 서서

달려가고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nefing.com

 

728x90

 

 

그 손 / 김광규

 

 

그것은 커다란 손 같았다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손

쓰러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싸주는 따뜻한 손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손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손

시간의 물결 위로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녀린 손

아픈 마음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

팔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

끝내 놓쳐버린 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그 손

 

 

 

오른손이 아픈 날

 

nefing.com

 

 

한국 현대시의 거장이자 명시 향수(鄕愁)’의 작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30회 정지용 문학상에 김광규(77) 시인의 그 손26일 선정됐다.

 

충북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이 주최하는 정지용 문학상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지용제 행사 중 하나로, 정지용 시인의 뒤를 이을 작품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시를 매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은 이근배 예술원 부회장, 유자효 지용회장, 신달자 시인, 김재홍 문학평론가 등 7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심사를 맡은 김재홍 문학평론가 겸 백석대 교수는 심사평에서 “‘이라는 시어를 통해 자신의 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또 다시 새로운 운명의 길, 새로운 출발을 향해 떠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잘 표현했다고 했다.

 

김광규 시인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해 1975문학과 지성여름호에 유무’·‘영산’·‘부산’·‘시론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1회 녹원문학상, 4회 편운문학상, 11회 대산문학상, 19회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등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의 시세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상식은 다음 달 12일 오후 4시 옥천 구읍 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31회 지용제 행사와 함께 열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