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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까치 / 허형만

 

 

보슬비 오시는 날

날마다 찾아가는 산길을 걷는데

저만치 산까치 대여섯 마리

보슬보슬 젖는 길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다

나도 함께 뛰고 싶어 우산을 접고

비에 젖으며 가만가만 다가가는데

눈치 빠른 산까치들

후르르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른다

하이고 못 본 척 뒤돌아갈걸

미안해하며 비에 젖어 걷는다

젖어라 시여

심장 깊이 젖어라 시여

산까치도 젖으며 노래하나니

산딸기도 젖으며 붉게 익나니

보슬보슬 젖는 시는 부드럽나니

젖어라 시여

뼛속까지 젖어라 시여

 

 

 

 

바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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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산딸기처럼 도 부드럽게 젖어들어

 

자유와 허무, 방랑의식과 민족혼을 커다란 스케일로 노래했던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적 위의(威儀)는 오늘날 한없이 왜소해진 우리 삶의 성찰적 역상(逆像)이 되어 주고 있다. 이러한 선생의 삶과 시를 기리는 공초문학상 제29회 수상자로 선정된 허형만 시인은 맑고 고운 순수 모국어를 섬세하게 가다듬어 온 우리 시단의 대표적 중진이다.

 

그의 시 세계는 근원적 보편성을 일관되게 탐색하고 추구함으로써 존재의 기원에 대한 원형적 사유를 줄곧 축적해 왔다. 사물들을 향한 경험적 관찰과 그리움의 에너지를 통해 다양하고도 심원한 형상을 얻어 온 것이다. 이번 수상작 산까치또한 이러한 허형만 브랜드의 정점에서 발화된 결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은 보슬비 내리는 산길에서 산까치들이 뛰노는 장면을 만난다.

 

그네들과 함께 뛰고 싶어 우산을 접고 다가가는데 산까치들은 어느새 나뭇가지 위로 날아오른다. 그때 시인은 젖어라 시여/ 심장 깊이 젖어라 시여라고 산까치들이 젖으며 노래하는 환청을 듣는다. 산딸기도 젖으며 붉게 익어가고 시인이 상상한 ’()도 부드럽게 젖어간다. “젖어라 시여/ 뼛속까지 젖어라 시여라는 마지막 외침은 산길=산까치=산딸기를 살아 있는 형상으로 만들면서 그 형상이 아름답고 처연하게 젖어 가는 순간을 실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는 서정시의 광맥을 지속적이고 균질적으로 일구어 온 그만의 미학적 성취다. 허형만 시인이 노래하는 이러한 생명 지향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경험적 진정성과 함께 사물의 존재 형식에 대한 발견에 깊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심사위원 이근배·오탁번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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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 / 오탁번

 

 

간밤에 비 오고 바람 불어

새벽에 지팡이 짚고

밤 주우러 나간다

알밤은 다

한발 빠른 다람쥐 차지

나는 송이밤 몇 개

 

해가 뜨면

풀밭이 된 마당에서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버마재비

제 세상 만난다

고추잠자리 떼

혼자 어지럽다

 

낮곁 내내

보행기 미는 노인 한둘

텅 빈 동네

벼 익는 논배미마다

지는 해

더디다

 

 

 

알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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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미덥게 펼쳐진 순수회귀의 시학

 

자유와 허무, 방랑의식과 민족혼을 처연한 감성과 큰 스케일로 노래했던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적 위의(威儀)는 오늘날 한없이 왜소해지고 사사로워진 우리 삶의 성찰적 역상(逆像)이 되어주기에 족하다.

 

선생을 기리는 공초문학상 제28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탁번 시인은 이러한 공초 선생의 면모에 최대한 부합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활달한 언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실물적으로 포착하고 재현하는 능숙한 역량으로 이미 우리 문학사의 고전이 된 분이다. 그의 시세계는 기억 속의 유년과 고향에서 시작하여, 가장 순수한 원형을 간직한 원서헌근처의 생명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져온 과정을 담아낸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우리 기층언어에 대한 지극한 헌신을 이루어낸 시집 알요강’(2019)은 이러한 만유 공존의 상상력을 극점에서 드러낸 명품이다. 거기 실린 수상작 하루해하루해아래서 때로 부지런하고 때로 느리게 움직여가는 자연의 풍경을 부조하면서도 낮곁 내내/보행기 미는 노인 한 둘을 대조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더디게 스러져가는 삶을, 쓸쓸하지만 환하고, 비어 있지만 가득한 삶의 역리(逆理)로 노래하고 있다. 오탁번만의 천진성과 반()근대적 시법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순은(純銀)이 빛나는 아침으로부터 뉘엿하게 기울어가는 해거름까지, 하루해의 시간을 근원적 시선으로 발견한 순수 회귀의 시학이 미덥게 펼쳐진 것이다.

 

- 심사위원 이근배·유자효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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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 유자효

 

 

그를 향해 도는 별을
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
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
끝이 없는 그리움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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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한 포기 동양란이 앉은 듯한 울림

 

시집 황금시대를 읽고 있노라면 한무리의 남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달의 빛그물 밑 넓은 마당에서 강강수월래를 노래하며 원을 그리고 도는 듯한 그림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시조는 또한 그 그림과 함께 서늘한 중립성을 시 한 편 한 편마다 지니고 있기에 그 그림은 또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단 하나의 시어도 허투루 쓰지 않는 한국 시조의 미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의 시들. ‘거리는 특히 그러한 한국 시조의 정수를 보는 듯한 감을 느끼게 한다. 한 포기의 동양란이 앉아 있는 듯한 그의 시조의 선명한 그림과 함께 가만히 던져지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 세월이 켜켜이 앉은 흙마당의 부드러운, 그러나 서늘한 중립성의 시적 위로.

 

그는 한 편의 좋은 시가 추구하고 있는 시적 위로가 어떤 위상을 안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고 있는 시인이 분명하다. 그 시적 위로가 따스한 시어들의 꽃이불이 되어 춥고 가난한 사람들을 덮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구름처럼/꿈결처럼/흐느끼듯 물 흐르듯//흙이거나/불 속에서나/다시 태어난 그 순간이나//빛나는 황금시대는 누구에게나 있건만’(달항아리전문)

 

시적 위로를 알고 있는 시인 유자효의 시조들을 오늘의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보내는 이유다. 아름다운 달항아리의 빛그물에 싸안긴, ‘서늘한 중립의 오늘의 시적 위로.

 

- 심사위원 이근배·김초혜·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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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길 / 김초혜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멀고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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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늙은 아이가 바라본 신비한 세상

 

김초혜 시인은 한때 사랑 굿이라는 시편으로 세상을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시인의 시편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도 청춘은 흘러 이제 노년이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시도 따라서 노년에 이르게 마련. 그래서 시가 늙는가. 아니다. 시가 변한다. 변하더라도 좋은 쪽으로 변하는 데에 시인의 성취가 있고 독자의 기쁨이 있다. 가능하다면 시의 길이가 짧아져야 하고 그 내용이 깊어져야 하고 시선이 맑고 그윽해져야 한다.

 

딱 여기에 해당되는 시인이 바로 김초혜 시인이다. 그러기에 심사위원 세 사람은 쉽게 호흡을 같이 했고 이견 없이 김초혜 시인의 시집 멀고 먼 길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시 멀고 먼 길은 최근 시인의 시적인 노력과 근황을 한눈에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노년에 이른 시인의 해맑은 눈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겸허가 가득하다. 차라리 한 편의 기도문이다. 무릇 기도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인간의 하소연과 소망의 표현. 여기서 시인은 즐겨 어린이가 되고자 한다. ‘늙은 아이가 그것이다.

 

정말로 좋은 시인은 젊어서는 젊은 노인이지만 늙어서는 늙은 아이가 될 수 있는 시인이다. 이야말로 시인에게 이른 신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늙은 아이가 되어서 보는 세상은 당연히 아름답고 신비하고 또다시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김초혜 시인이 바라본 세계, 김초혜 시인이 내놓는 시편들이 그러하다. ‘멀고 먼 길세상을 한 바퀴 돌아왔지만 시인의 숨결은 지쳐 있지 않고 시인의 마음결은 여전히 싱싱하고 촉촉하다. 뿐더러 고요하기까지 하다. 거기에다가 지혜에 가득 차 있다.

 

고요한 지혜의 바다, 그 바다에 꽃으로 피어난 겸허한 고요. 상이란 들쑥날쑥이다. 먼저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으신 시인의 이름으로 받으시는 상에 마음의 꽃다발을 미리 전한다.

 

- 심사위원 이근배·신달자·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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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 / 김후란

 

 

지는 꽃

한때 눈부시던

천연색 빛깔 그리고

향기

 

소리 없이 지는 꽃

쓸쓸한 그림자로 누웠네

 

그토록 애틋했던

우리의 젊은 날도

흑백사진으로 남아

 

고요하여라

아득한 우주 속으로

사라져가고

 

 

 

고요함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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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연륜을 넘어선 가편, 날렵한 반전과 결론결코 지지 않는 詩作

 

시인들한테 자연적 나이는 별반 의미가 없다. 요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을 쓰고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시를 대하는가에 있다. 김후란 시인은 이미 원로 반열에 드는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참에 푸르른 시집 고요함의 그늘에게를 냈을뿐더러 그 안에는 연륜을 넘어서 더욱 빛나는 가편이 많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시 지는 꽃을 뽑아들었다. 가편 중에 가편이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송이다. 제목은 지는 꽃이지만 시로 쓸 때는 지지 않는 꽃이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미 부분의 반전과 결론. 그것도 삽상한, 날렵한 반전과 결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작품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뿐더러, 시인의 생애로 볼 때도 초반의 작품보다 후반의 작품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자신이 향기로운 과일인 줄도 모르면서 향기로운 과일로 익어야 한다. 시인은 그것을 이뤄 냈고 또 시로서 증명했다. ‘소리 없이 지는 꽃이 어찌 소리 없이 지는 꽃이랴. 그 소리 없음은 더욱 큰 소리를 이루어 독자에게로 온다. ‘고요그것이다. 그것도 우주 속으로/사라져가는 고요다. 우리 자신 즐거운 선택 앞에 고요한 기쁨과 만난다.

 

- 심사위원 이근배, 신달자,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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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 나태주

 

 

흐르는 맑은 물결 속에 잠겨

보일 듯 말 듯 일렁이는

얼룩무늬 돌멩이 하나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야지

집어 올려 바위 위에

놓아두고 잠시

다른 볼일 보고 돌아와

찾으려니 도무지

어느 자리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혹시 그 돌멩이, 나 아니었을까

 

 

 

 

꽃을 보듯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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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천진한 동심, 현실에 찌든 삶 승화시켜줘

 

성서에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불교에서도 동자(童子)는 무구한 불심(佛心)의 소유자로 치부된다. 만일 이 세상 삼라만상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결하고 착해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곧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훌륭한 시인의 마음속에는 항상 천진한 동심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시단의 법통을 이어 온 가령 정지용, 윤동주, 서정주, 박목월의 시들이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현존하는 우리 시인들 가운데서 그와 같은 분을 한 명만 고르라고 한다면 누구일까. 아마도 그는 나태주 시인일시 분명하다. 나태주의 시는 맑고, 아름답고, 진실하고, 고결한 동심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곱다. 그리고 그러한 동심이 이 속되고 고통스러운 우리의 현실,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는 가치관을 깨끗하게 승화시켜 준다. 우리는 나태주 시를 읽을 때 실로 인간의 본연, 생명의 본연, 존재의 본연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나태주 시인은 권위 있는 공초문학상의 수상자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나태주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서정시의 한 축을 받들고 있는 튼튼한 기둥의 하나다. 뜻 모를 언어의 혼돈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익사 직전의 요즘 우리 시단을 볼 때 나태주 시인의 수상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의 시가 항상 건강하고, 아름답고, 인간적인 세계관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 심사위원 이근배, 김윤희,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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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거간꾼 / 김윤희

 

 

내가 너의 무심한 갈증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발견했다

 

오늘 아침 내 손이 너에게 건넬 것은

오로지 건더기 없는 차디찬 맹물

뿐이니

손아귀에 옹이 지도록 물의 집

비틀어 잠긴 물의 문 노크하다 말고

부수어 내 손이 갇혀 입 다물고 참고 있는

한 모금 물 어렵사리 빼네

너의 앞에 내놓으니

 

간밤 긴급하고 험악한 갈증이 불타고

남은 너의 사막을 잘 받쳐 들고

아침의 오아시스 앞에

줄을 서라

그는 너를 알아볼 것이다

 

나는 물을 중개하는 특별한

자본이라곤 마련 없는 맨손의

거간꾼이 될 것이니

 

 

 

오아시스의 거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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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50년 시의 지평에 오로라처럼 섬광이

 

이 땅의 모국어의 새벽을 깨운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 정신은 한 세기의 수난의 역사를 관통하고 오늘 한국 시를 경작하는 시인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샘솟는 시의 원천이 된다.

 

올해 제23회 공초문학상 수상자 김윤희 시인은 등단 5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사유의 천착, 언어의 탁마로 우리 시의 경지를 한 단계 높이는 시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이제 그가 개간해 온 시의 지평에서 오로라처럼 섬광을 띠고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 시집 오아시스의 거간꾼이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 낙타와 함께 모래밭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환상으로 보는 것이 오아시스라 했던가. 거간꾼이라니? 시인은 이 시대의 불타는 갈증을 꺼 줄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거간하고 싶은 것인가.

 

오아시스의 거간꾼이 던지는 화두는 저 공초가 일찍이 산아 무너져라 그 밖 좀 내다보자/바다야 넘쳐라 심심치도 않느냐?’고 갈파했던 사자후에 대한 차운(次韻)으로 읽힌다.

 

오늘 아침 내 손이 너에게 건넬 것은/오로지 건더기 없는 차디찬 맹물/뿐이니에서 나는 물을 중개하는 특별한/자본이라곤 마련 없는 맨손의/거간꾼이 될 것이니까지 김윤희 시인은 그저 뜻 모를 글자들로 시를 어지럽히는 이즈음 시단의 흐름에 대해 왜 모국어를 불필요하게 낭비해서는 안 되는가, 한 편 시가 그 시대를 넘어 사람의 생각과 삶에 어떤 새 아침을 열어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김윤희 시인의 높고 넓은 시적 성과에 머리를 숙인다.

 

- 심사위원 신경림, 유안진,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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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시편 11 / 고은

 

 

오늘 오만불손의 묵언이던 내가 모처럼 입을 연다

 

나의 고독은

태양의 고독을 안다

그 불타는 고독 이외에는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 고독을 안다

 

나의 고독은

명왕성의 고독을 안다

그 만겁 빙벽의 고독을 안다

그 혹한의 침묵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필요 없는 고독을 안다

 

오늘밤은 상심의 내가 우주의 눈물을 흘리는 밤이다

 

나의 고독은

토성 및 토성 고리의 고독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도 토성도 허망이다

 

 

 

무제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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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온 세상 진동시키는 모국어의 숨결

 

오랜 어둠을 깨치고 20세기의 새벽에 우주적 광망(光芒)을 밝힌 공초의 시맥을 한 세기 가깝게도 따르는 이 없더니 공초 탄신 120주년을 맞아 시인 고은이 신작시 607수를 한 묶음으로 사화집 무제 시편’(창비)을 헌정하였다. 강점기, 분단, 전쟁의 질곡과 역경 속에서 고독한 자유인으로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경지에 이른 선각이요 구도자인 공초의 저 불기(不羈)의 여정 말엽에 동식서숙(東食西宿)을 동행했던 고은의 시의 오름이 오늘에 이르러 어찌 그에 상응하는 것인지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본심에 올라온 지난 한 해의 특출한 시집들 속에서 무제 시편은 그 방대함 위에 내뿜은 시정신의 절정에 압도되었다. 한 시인이 생애를 바쳐 써낼 만한 숫자의 한 편 한 편의 시가 모두 측량하기 어렵지마는 굳이 수상작을 뽑아 달라는 요청에 무제 시편 11’을 가려보았다.

 

오늘밤은 상심의 내가 우주의 눈물을 흘리는 밤이다” “나의 고독은/ 토성 및 토성 고리의 고독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도 토성도 허망이다에 이르러 공초가 일찍이 갈파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이나 허무혼의 선언의 대구(對句)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은의 종횡무진, 호호탕탕, 자유분방은 어디가 끝일 것인가. 이 땅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사해(四海)에 우리 모국어의 사자후를 진동시키는 그의 거친 숨결이 공초 제단에서 다시 한번 향불로 피어오르리라. “때려죽여도 때려죽여도 시의 땅인이 땅에 태어난 고은의 축복이 여기 있다.

 

- 심사위원 임헌영, 유안진,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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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말의 기하학* / 유안진

 

 

쉬운 걸 굳이 어렵게 말하고

그럴듯한 거짓말로 참말만 주절대며**

당연함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싶어서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해보다가

문득 문득 묻게 된다

 

유리 벽을 지나다가

니가 나니?

걷다가 흠칫 멈춰질 때마다

내가 정말 난가?

 

나는 나 아닐지도 몰라

미행하는 그림자가 의문을 부추긴다

제 그림자를 뛰어넘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일단은 다시 본다

이단엔 생각하고 삼단에는 행동하게

손톱 발톱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나는 나 아닐 때 가장 나인데

여기 아닌 거기에서 가장 나인데

불타고 난 잿더미가 가장 뜨건 목청인데.

 

* 파스칼은 팡세에서 는 불타는 기하학(幾何學)이라고 헸다. 그러나 시가 언어의 몸을 지니기 때문에 말의 기하학이라고 정의해본다.

 

** 장 콕토는, “시인은 항상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쟁이다(The poet is a liar who always tells the truth)."라고 했다. 그러나 원전을 못 찾아 그 출처를 밝히지 못한다.

 

 

 

걸어서 에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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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끊임없이 眞我를 찾아공초와 맞닿은 세계

 

어둠 속에 묻혀가는 내 나라의 정신을 일깨우고 모국어의 새벽을 열었던 선각(先覺)이시며 무이이화(無而以化)의 구도자이셨던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이 열반을 하신 지 올해로 50주기를 맞는다. 그 대덕(大德)과 시정신을 기리는 공초문학상 21회 수상작으로 유안진 시인의 불타는 말의 기하학’(시집 걸어서 에덴까지’·2012 6월 문예중앙)를 심사위원 전원 합의로 선정하였다.

 

유안진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시의 한가운데서 새 물이랑을 일으키며 특유의 감성과 문체로 서정성의 회복과 시대적 사유의 깊이를 언어로 조탁하여 왔다. 수상작 불타는 말의 기하학은 파스칼의 어록을 인용한 글제로 자아에 대한 성찰을 치밀한 구도로 그려내고 있다. ‘내가 정말 난가?’의 지극히 평범한 스스로에게의 물음에 나는 나 아닌 때 가장 나인데의 대답이 사뭇 공초적(空超的)이다.

 

시인은 시가 무엇인가란 화두를 깨치기 위해 쓰고 또 쓰는 고행을 한다. 그 높은 산맥과 검은 강을 건너서 비로소 만나는 한 줄기 빛! 유안진 시인은 불타고 난 잿더미가 가장 뜨건 목청이라고 정의한다. 공초가 허무혼의 선언에서 다 태워라/물도 구름도/흙도 바다도/별도 인간도/신도 불도 또 그 밖에라고 갈파한 것에 맞닿지 않는가.

 

일찍이 누천년의 현철들이 시를 일러왔으되 그 구경(究竟)을 꿰뚫은 이는 아직 없다. 이 천착(穿鑿)의 오랜 노동으로 손톱 발톱에서 땀방울이 솟는데까지 이르렀음을 본다. 이 땅의 시인들이 경작한 지난 한 해의 수확에서 타고 남은 재 속의 사리(舍利)를 찾아낸 기쁨이 크다.

 

- 심사위원 임헌영·도종환·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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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대어 / 도종환

 

 

나무야 네게 기댄다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기댈 사람 없었다

네 그림자에 몸을 숨기게 해다오

네 뒤에 잠시만 등을 기대게 해다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는 걸 안다

네 푸른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잠시만 눈을 감고 있게 해다오

나무야 이 넓은 세상에서

네게 기대야 하는 이 순간을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상처 많은 영혼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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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의 본질, 서정성 갖춘 순결한 붓

 

도종환 시인이 오랜 세월 동안 시의 본령인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동안 그의 시는 개인사적 삶의 요소에 의해 대중적 상업성과 사회적 정치적 투쟁성을 띠고 있다고 오해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시가 한국적 전통성에 깊게 뿌리내린 순수서정시라는 점을 새삼 인식함으로써 한국 시단의 밑거름을 다지는 큰 덕목으로 평가되었다. 복잡다단한 정보화 시대를 사는 오늘 시정신보다 산문정신에 기대어 자의식이 과잉된 시가 양산되는 작금의 한국 시단에 도종환 시인이 지닌 본래적 서정정신이야말로 나뭇잎에 어리는 한 줄기 햇살과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수상작 나무에 기대어는 점차 피폐해져 가는 삶을 사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어떤 절대적 존재로서의 자연의 모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모성적 사랑과 눈물이 있다. 치유할 수 없는 인간의 오랜 상처도 결국 모성의 희생적 사랑에 기대어 치유될 수 있음을 수상작은 노래하고 있다.

 

붓이 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글이 선다는 의미다. 도종환의 서정적 시적 자세가 그동안 그의 시의 붓을 순결하게 서게 했다. 이 점이 그가 제20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가장 큰 까닭이다.

 

- 심사위원:이근배, 임헌영,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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