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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권영하

 

 

하늘 끝 마천루 정수리에

밧줄을 꽁꽁 묶었다

동아줄 토해내며 낙하하는 몸으로

건물의 창을 닦으며 절벽으로 내려간다

빌딩들 눈부시게 플래시를 터트려도

허공길 유리블록 사뿐히 밟으면서

수족관 물고기처럼

살랑살랑 물호수를 흔들며 헤엄친다

뙤약볕 빨아먹은 유리성이 열을 뿜고

빌딩허리를 돌아온 왜바람이

목숨줄을 무섭게 흔들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내려간다

아이스링크에 정빙기같이

생채기를 지운다

유리벽에 갇힌 사람들에게

푸른 하늘도 열어주고

유리창에 비치는 현수막의 사연도

살포시 보듬어 닦는다

의지할 곳도 없는 허공에서

작업복 물에 젖어 파스내음 진동하고

피로가 줄끝에서 경적처럼 돋아나지만

또다시 하늘에 밧줄을 묶는다

땀 흘린 줄길이만큼 도시는 맑아지고

유리벽에 그려진 풍경화도

깨끗해지니까

 

 

 

 

2019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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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살아온 것보다 좀 뜨겁게 살아가라는 채찍 같아"

시는 감상하는 것 보다 쓰는 것이 더 맛있는가 보다.

 

수업 시간에 남자아이들도 시를 쓰면 너무 좋아한다. 발표하면서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입을 막고 킥킥 웃어댄다. 중 1학년들은 살구같이 배시시 수줍게 웃고, 2학년들은 복숭아같이 웃는다. 그리고 3학년들은 내보다 더 큰 덩치로 수박같이 웃는다. 발표가 끝나면 모두 개선장군처럼 뿌듯해한다. 그렇다. 까르르까르르 새파란 웃음을 쏟아내며… 자지러지는 그 순수한 얼굴들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아마 그래서 나도 시를 쓰는가 보다.

 

어쩌다 운이 좋아 20살 때 쓴 시가 신춘문예 최종 본선에 올라, 그때부터 시와 절친이 되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꿋꿋이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누군가 틈틈이 시를 왜 쓰는가? 물으면, "그냥…."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다행히 이번 당선으로 컴퓨터 안에서, 서랍 속에서, 종이 위에서… 쿨쿨 잠자는 내 절친들이 주위에 관심을 조금 받게 되어, 부끄럽기도 하고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또 살아온 것보다 좀 뜨겁게 살아가라는 채찍 같아서 무게감과 책임감도 더 느껴진다. 앞으로 학생들 더 열심히 가르치면서, 좀 뜨겁게 살아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점촌중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우리 가족 정영숙 선생님과 예진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대학교 때부터 시를 사랑하는 영혼으로 나를 끝까지 믿어준 백승한 형님, 친형 같은 김사현, 최우창, 이정호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심사평] 유리벽 청소 노동자의 삶 형상화 뛰어나

투고한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느낀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적어본다. 첫째, 시를 오랫동안 익혔으면 좋겠다. 잠깐 보았던 사물이나 여행지의 인상을 그대로 쓴다고 '리얼'의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 묵혀 충분한 발효를 거친 다음에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둘째,문장이나 문체의 완성도를 높였으면 한다. 셋째, 기괴한 이미지를 썼다고 해서 난해한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의식 또는 사유(사회적, 정치적, 미학적)가 시의 토대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노래가 없다. 운율 또는 리듬이 그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뛰어넘는 다섯 분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등'은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흐름이 산만하여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지가 불분명했고, '뼈 무덤 하나 먹고 둘 먹고'는 서사를 밀고 가는 힘은 인정되나 중간부분이 풀어져서 압축하는 요령이 부족했다. '죽방멸치'는 상투적 표현이 상식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했다. '샤갈의 숲속 마을로, 나는'은 이미지가 출중하여 감각은 높이 사 줄 만했으나 주제의 가벼움이 일상성에 매몰되어 우리 삶에 대한 사유를 받쳐주지 못하였다. 반면 당선작인 '거미'는 현실감을 바탕으로 사회를 보듬어 안는 시선이 따뜻하고 정겹다. 유리벽을 청소하는 노동자의 삶이 잘 형상화 되어 있었다. 함께 투고된 작품 '통일론'에서도 통일을 불 밝히는 전구에 비교하여 표현한 것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심사위원 강은교·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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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술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더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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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별을 털며 집으로 가는 퇴근길은 아름다웠다.

지친 몸에서 빠져나온 사내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연필부터 깎곤 했다. 연필심처럼 생각이 올라오면 그것을 공책에 옮겼다. 사내의 왼손엔 어김없이 담배가 들려 있었는데 온 몸을 태울 듯 빠르게 타 들어갔다.

아침에 사내의 방문을 슬쩍 열어 보면 사내의 목이 앉은뱅이 책상 위에 툭, 털어져 있을 때가 있었다. 등을 흔들어 밤새 무엇을 썼느냐고 묻기도 전에 사내는 담뱃재처럼 흩어지곤 했다.

원고를 보내 놓고 나는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지독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모든 감각이 진공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허공을 걷는 아찔한 맛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혓바늘이 입천장을 찔러 대는 통에 나는 양식을 아낄 수도 있었다.

그런 증세는 1주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몸살이 끝날 즈음 나는 일요일을 빌려 금강 하구의 갈대 숲에 접혀 있다가 돌아왔다.

혼자 콩나물국을 맵게 끓여 먹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얼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화기를 내리자마자 몹쓸 아버지가 울컥거려서 잠시 젖게 내버려두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눈물이 되곤 하는 어머니 김정자 여사, 지난해 성탄절 전야에 흙으로 돌아가신 존경하는 아버지, 묵묵히 지켜 봐준 사랑하는 핏줄들, 한시름 놓으셨죠?

큰형으로 느낄 때가 더 많았던 이상복.정영길.이혜성 교수님을 비롯한 문창과 교수님들, 어머니 같은 박라연 교수님, 그리고 내 생활의 지침서이신 정종환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호만형, 성민형, 문원을 비롯한 문우들과 시창작반 식구들, 절망할 때마다 다독거려 주던 동기생들, 출발점을 허락해 준 중앙일보와 출발신호를 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 든 길에서 지도를 만들어 나가게 하신 강연호 은사님! 앞으로도 저를 가파른 벼랑 끝에 세워 두실 거죠? 선생님, 거기로 나오세요. 오늘은 제가 소주 한잔 살랍니다.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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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로는 예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정서적 탄력이나 신인다운 패기 또는 개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심사의 자리란 때로는 곤혹스럽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이 주목했던 작품들은 김다솔.강성민.박승철.류남.박성우씨의 시편이었다.

김다솔씨의 응모 시에서 엿보이는 것은 섬세한 시어가 감당하는 풍경의 투명성이다. 관찰과 묘사에 기대고 있는 이 응모자의 시선은 드러나지 않는 삶의 굴곡과 파문들을 읽어내지만 정작 깊이나 높이로 확산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었다.

강성민씨는 환상과 이미지를 교직하는 매력적인 시상을 펼쳐 보이지만 그것들을 한 줄로 꿰보이는 맥락의 힘이 제대로 살펴지지 않는다. 응모 작품들이 유지하는 수준에는 편차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다.

박승철씨의 작품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거기에 걸맞은 시어의 선택도 선이 굵다. 그럼에도 행간과 행간 사이에 긴장과 탄력이 지탱되지 않는 까닭은 범상하고 익숙한 수사에 비약이 심한 시상을 걸쳐놓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류남씨의 시편들은 분방한 상상력을 감당하는 그 나름의 형식미가 재미있게 읽혔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확인하기에는 응모 편수가 너무 적었다. 군데군데 부적절하게 동원된 시어들도 막상 선자들을 망설이게 했다.

박성우씨의 '거미' 가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습작의 연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응모작에서도 시적 상상에 스며드는 체험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리하여 거의 제 솜씨로만 한 채 시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응모자의 오랜 단련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다만 사물 앞에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려는 노력만이 앞으로 제 몫의 장인으로 자신을 세우는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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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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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이면우(51)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거미' 4편이다.

 

노작문학상은 일제시대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시로 민족의 울분을 드러냈던 노작(露雀) 홍사용(1900-47)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선영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의 문화계 인사들이 노작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홍신선.동국대 교수)를 설립해서, 지난해부터 시상하고 있다. 1회 수상자는 안도현 시인이다.

 

올해 수상자인 이씨는 대전 출신으로 중학교 졸업 후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시집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등을 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5시 서울역 건너편 연세빌딩 주택문화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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