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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신춘문예 중앙일보 당선 詩 (채향옥)
채향옥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과 2년 재학중 2001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 현재 주식회사제팩스 재직중 *중앙일보 시 당선작 <헌 돈이 부푸는 이유> 수금해 온 낡음낡음한 돈을 세다 만난 ‘이상순 침목계 돈’ 하나, 둘,셋,넷,다섯 합이 오만 원 어쩌면 흩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을 까 저희끼리 어깨동무를 했나 그 결속이 놀랍다 중얼중얼 헤아리 던 숫잘랑은 팔랑 날아가 버린 지 오래 기왕에 잊어버린 셈은 잠 깐 뒤로 미루고 이상순과 그의 침목 계에 경의를 표한 후 아무쪼 록 그들의 친목이 돈독해지기를 바래보는 것인데 뻐꾸기는 마감 시간이 다 됐다고 성화를 부린다 처음부터 다시 하나, 둘, 셋 새 돈의빳빳한 풀기가 사라지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벙글벙글 넘어가는 낡디낡은 헌 돈 *당선소감·채향올 <아무 준비 없이 길 위에 선 느낌> 밝은 햇살 속에 갇혀 온몸이 캄캄하다.한없이 오그라드는 육신 속으 로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간다.무섭다.누구나 준비할 틈도 없이 길 위 에 서는 것이리라.빈손을 다잡아 보지만 긴장이 쉽게 이완되진 않는 다.하지만 아무리 아득한 곳에 내던져져도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 자 리에 서 있을 수 있기를 나는 나에게 부탁한다. 목소리라도 들을까 전화를 했지만 당신은 고추밭에 나가고 안 계신 다.온 생애를 흙 속에 묻어버린 어머니. 두더지가 다니는 길을 훤히 꿰고 있을 만큼 이미 신통한 곳에 가 계시지만 당신은 세상에 시라 는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게 시를 쓰게 하시는 어머니.그 대지 속에 가득한 침묵을 끝내 내 몸 안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기를. 위안과 따뜻함 뒤에 배인 쓰라림과 쓸쓸함 또한 온전히 내 것으로 하 기가 쉽지 않음을 나는 안다.오늘은 나에게 다가온 순하고 모진 모든 인연들에 고개 숙이고 싶다. 모자란 글을 애써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돋보기를 꺼내 드는 횟수가 잦아지신 강형철 교수님,그리고 마음의 빈자리를 열정으로 가 득 채워 주시는 숭의여자대학의 은사님들께 감사드린다. 토요일 오후 마다 숭의여자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서로의 상처를 겁 없이 꺼내 놓고 안쓰러워하던 내 살붙이 같은 동료들, 떨리는 목소리로 문학을 얘기하던 방송대학교의 ‘풀밭’동인들,가까운 곳에서 나를 바라다보는 모든 이들에게도고마움을 전한다. *심사평·중앙일보 <‘헌돈···’속 삶 표현 짧지만 강렬> [달](정나란)은 사유의 새로움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번 응모작품들 중 자기 생각을 가장 독특하게 표현한 한 편을 뽑으라면 단연 이 작품이다. 생각이 새롭다는 것은 세계와 사물을 보는 자기만의 눈이 있다는 것의 방증. 언제쯤 명명백백해질 수 있을까. 엉뚱하게도 나는 백 개의 달을 안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고 와르르 쏟아져 내려 여기저기 굴러가 버리는 나의 달을 뻥뻥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낟. “백 개의 달” 운운하는 첫마디의 발언부터가 엉뚱하고(즉 낯설고)사유를 굴 려가는 말의 운행 솜씨가 만만치 않으며 이러저러한 기상(寄想)들을 흩뜨리 지 않고 “줍는다”는 단일한 행위 동사로 끌어모아 상상력을 한껏 배가시키 는 솜씨도 볼 만하다.다만 흠이 있다면, 한 심사자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사 유의 새로움이 표현의 새로움으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는(혹은 밀착해주는)결정적인 촉매가 체험이다.달의 후반부가 “어린 왕자”운운하면서 맥없이 주저 앉아 버린 것은 모처럼의 새로운 사유 를 이 작가의 체험이 끝까지 보증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생각 반, 표현 반이 아니다. 생각 편에서는 그것이 전부 요,표현 편에서는 또 그것이 전부다.즉 간극이 느껴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달]은 빼어난 작품이다.그러나 한쪽이 이지러진,안타까운 작품이다. [헌 돈이 부푸는 이유](채향옥)는 언뜻 보면 너무다 평범하다,“수금해 온 낡 음낡음한 돈을 세다 만난“서툰 글씨의 ”이상순 침목계 돈〃오만 원 뭉치를 보고 어느 한 장도 흩어지지 않은 대 여기까지 온 그 놀라운 결속에 대해 천 진한 기쁨을 토로하고 있는 시다.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작품에 대해 특별한 시적 장치가 있다면 “낡음낡음” “벙글벙글”정도.그러나 이 의태어들을 지시어 에 갖다 대는 순간 돈은 그냥 무표정한 교환가치가 아니라 아리고 매운 생활 에 낡음낡음(이 얼마나 고소한 우리 말이냐!)해졌지만 때로는 볕살 좋은 침목 계 날에 모여 생기를 자랑하기도 하는 우리의 이상순 씨들의 정겨운 얼굴로 살아나는 것이다.낡은 돈에서 읽어내는 생활하는 사람들의 무거우나 밝은 미 소,이 시는 그 미소를 극대화한 아름다운 소품(예술의 세계에 무슨 대품,소품 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규모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이다. 규모가 작기는 같은 작가의 [어머니]또한 마찬가지다.[달]의 작가와 달리 이 시인에게는 생래적으로 체험을 감각화하는 언어가 특히 발달해 있는 것 같은 데 감자 줄기가 뻗어가는 모습을“더듬더듬 기는줄기 끝 밝은 눈 있어”같은 재 미스런 표현이나“오톨도톨 살갑다”같은 표현으로 간명히 처리한 것이 그렇다. [헌 돈···]이 그러했듯[어머니]역시 짧지만 어느 긴 시 못지 않게 꽉 찬 삶의 열기를 감자처럼 서늘한 안으로 품은,알이 굵은 작품이다. 모든 선의가 다 훌륭한 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처럼 삶의 내용에 헌신하고 열만할 줄 아는 젊은 시인을 만난 기쁨이 크다. 채향옥 씨의 앞의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며 우리는 또한 요즘 들어 시가 쓸 데없이 길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엄한 경계로 삼고자 한다. 끝으로 마지막까지 남았던 이들의 작품과 이름을 적어 그들 또한 격려해 마지 않는다.이분들이 있어 우리 시는 결코 쉬지 않는다.[재개발지구]의 폭발적인 길소규,[꽃사과를 자르며]의 단단한 양해기,[게장을 담그며]의 유머러스한 홍 정연,[포정의 칼]의 예리한 우종숙,[심봉사 한강수에 빠지다]의 해학의 황인산, 그리고 그밖에 도형주,윤현주,하재연,문신,주혜옥,한용국,김민하,박현수,유재혁, 최섭 제씨들. 심사위원:황동규·이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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