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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 김일영

 

 

들이 깨어져 모래알이 되고

조개들은 그 빛의 알갱이로 집을 지어

파도에 마음을 실어 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던 섬

 

밥 묵어라

어둠이 석양 옷자락 뒤에 숨어

죄송하게 찾아오는 시간,

슬쩍 따라온 별이

가장 넓은 밤하늘을 배불리 빛내던

 

달빛 계곡 꿈을 꾸면

쪽배가 저보다 큰 텔레비전을 싣고

울 아버지 하얗게 빛나는 이빨을 앞장세워 돌아오듯

 

이제 다친 길을 어루만지며 그만 돌아와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여린 삐비꽃을 씹으며

애들 소리 사라진 언덕에 앉아 있으면 석양은

머리가 하얀 사람들이

애벌레처럼 담긴 마당에 관절염의 다리를 쉬다 가고

빌려서 산 황소가 다리를 꺾으며

녹슨 경운기 쉬고 있는 묵전을 쳐다 보는 섬으로

늙은 바람이 낡은 집들을 어루만져주는 고향

그대가 파도소리에 안겨 젖을 빨던

그 작은 섬으로

 

* 묵전: 묵혀두어 잡초가 무성한 밭

 

 

 

 

2003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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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굳은살 연해지지 않게 매진"

 

주소를 잃어버린 내 몸 속의 캄캄한 골방에 감기 바이러스를 눕혀두고 집주인 할머니처럼 오래된 냉장고 코드도 뽑고 잠이 들었다. 긴 잠을 잤다. 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그 침침한 잠 속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어둠이 이미 방안에 살얼음처럼 깔리는 시간, 아직 내 몸에 꿈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어 서둘러 그것을 털어내느라 잠시 당황했었다. 감기 바이러스도 잠결에 놀라 캄캄한 골방 벽에 이마를 부딪쳤는지 잠시 잠잠하다.

 

그 동안 나는 이렇게 서둘러 당선 소감이라는 것을 쓴다. 그간 걱정거리만 되던, 이 소식에 기뻐해줄 사람들의 얼굴이 슬라이드 사진처럼 지나갔다.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왼쪽 손바닥으로 핸들을 좌우로 필요 이상 돌리며 운전을 하던 초보 때가 생각난다. 그런 시기가 얼마 지나고 운전대에 자주 닿던 중지 못 미친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겼다. 마찰에 의해 가끔 따끔거리기도 하던 자리.

 

그 굳은살을 누구에겐가 자랑을 해 보이기도 하던 기억이 생각난다. 나에게 시 쓰는 일은 살아내면서 생긴 기억이나 상처가 묻어 언어들이 딱딱하게 박힌 자리를 더욱 못살게 구는 일이었다.

 

오만한 얘기지만 마지막에 두 번 떨어져 혼자만 시인으로 2년을 살다 보니 굳은살은 이제 처음부터 내 살인 듯이 친근하다. 그 굳은살이 연해질 틈이 없도록 삽으로 산도 옮기고 솔가지 같은 손들도 열심히 잡아보아야겠다.

 

먼저 시를 써 가는 자리가 술에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셨을 많은 분들께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제가 먼저 당도해서 썩고 있을 테니 언제 오셔서 빛나는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어주시기를.

 

저 같은 무지렁이를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단단한 발판이 되어준 중앙대학교와 그곳의 교수님들, 신상웅 선생님, 김형수 선생님 그리고 이영진 선생님, 모국어의 장래를 위해 한 생을 바치셨던 이 땅의 많은 시인들, 이 자리도 영광된 자리라고 한다면 그분들이 팔 할의 지분을 갖고 계심을 내 오만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짜증스러울 법한 내 얘기들에 귀를 빌려주며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준 여러 문우들, 이경에게도 고마웠다는 말을 전한다.

 

볼품없는 제 시를 믿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더 좋은 시로 보답드리겠다. 그리고 시를 살다 가신 것으로 추정되는 아부지와 섬에서 홀로 늙어가고 계신 어머님과 형과 누이들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국민들의 역동적인 힘으로 새 대통령이 당선됐다. 나 또한 좀 더 희망의 편에서 시를 써가고 싶다.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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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특별한 안목·가능성 높이 평가

 

예심 과정 없이 우리는 응모작 수천 편을 직접 다 읽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응모작 앞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신춘문예라는 아름다운 계절병이 도지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원하는 시의 의지가 폭넓게 퍼져 있다는 것에 경이감과 함께 의아스러움을 느낀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시적 리터러시가 높다 하겠다.

 

이는 시가 과거의 유물이거나 소수 마니아를 위한 장르로 치부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와 달리, 우리가 이례적으로 누리고 있는 시의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분에 넘치는 시의 복지가 한낱 거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응모작들을 읽어가는 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응모작의 태반이 이것도 시라고 생각하고 쓴 것일까 하는 당혹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워드 프로세서의 보급으로 곧바로 눈 앞에 뜨는 활자체가 시 아닌 것도 시처럼 보이게 하는 착각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시를 너무 쉽게, 혹은 함부로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엇다. 아니면 지금의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가져야 할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시를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어떤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가? 이 두 물음을 견딘, 김일영씨의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와 고경희씨의 겨울단상’, 그리고 차주일씨의 삼베옷에 밴 땀내를 최종심에 놓고 우리는 고심하였다.

 

차주일씨의 삼베옷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체험의 심도가 있어보인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꾸며서 쓴 것 같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시가 어떤 시상을 향해 응축되기보다는 풀어져 있으며 그것의 구성에 있어서 다분히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경희씨의 겨울단상은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시를 유지시키는 고른 수준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자신의 어떤 정신적 외상과 관련된 듯한, 어딘지 병적인 상흔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시의 무늬로 그려나갈 줄 안다는 점도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가 단아하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금방 소품주의(이것은 시가 짧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의 한게에 안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완성도는 다소 떨어져 보이지만 지금 씌어진 것 그 이상의 시, 호흡이 긴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김일영씨를 당선자로 결정하는 데 동의하였다.

 

슬쩍 따라온 별이/ 가장 넓은 밤하늘을 배불리 빛내던과 같은 구절에서 보듯 그는 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되게 하는 특별한 안목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의 후반부나 그의 다른 시편에서 드러나듯 언어의 과부하가 걸려 시적 인식이 비전도체처럼 막혀버리는 과욕을 앞으로 그가 조절해야 할 것이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김광규, 정희성,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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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를 묻지마라 / 임경림

 

 

늙은 산벚나무가 온 산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가부좌 틀고 앉은 벙어리 부처를 먹이고, 벌떼 같은 하늘과 구름을 먹이고, 떼쟁이 햇살과 바람과 새를 먹이고, 수시로 엿듣는 여우비를 먹이고, 툇마루에 눌러앉은 한 톨의 과거와 할미 보살을 먹이고, 두리번두리번 못 다 익은 열매들의 슬픔을 먹이고, 애벌레의 낮잠 끝에 서성이는 노랑나비를 먹이고, 먹이고먹이고,

 

흘러넘친 단물이 절 밖을 풀어먹이고 있었다 젖무덤 열어젖힌 산벚나무, 무덤 속에 든 어미가 무덤 밖에 서 있다 퉁퉁퉁 불어 터진 시간이 아가 아가 아가를 숨 가쁘게 불러댄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

코 닫고 눈 닫고 귀 걸어 잠그고

문둥이 속으로 들어간 절 한 채

어두워지고 있으리라

 

 

 

 

2002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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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오래 울릴 수 있는 같은 시인 되고파"

 

돌이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새를 품고 있다 어느새 새가 된 돌, 제 가슴에 새겨진 날개를 보고 흠칫 놀랐다.

 

오직 시만을 꿈꾸어 온 시간의 이마에 어느 새 시의 입술이 새겨진 것일까.

 

언어의 늪 속에 빠져 몇 년을 허우적거렸다.

 

발을 빼려 할수록 의미는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나를 가두고, 그토록 가벼워지고 싶었던 영혼은 좀체 제 무게를 줄일 수 없었다.

 

실패와 상심을 거듭하던 끝에 더 이상 의미를 포획하지 않기로 했다.

 

의미를 놓아버리자 비로소 의미가 찾아들고 상상이 가지를 뻗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혼이 무거운 허물을 벗게 되었다.

 

한때 시가 종교를 대신한다고, 시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힘껏 소리쳤던 적이 있었다.

 

사막의 낮과 밤을 헤매다 얻게 되는 한 방울의 오아시스가 끊어진 길을 다시 이어가게 하듯, 분명 시는 굶주린 나를 길러 여기까지 데려왔다.

 

시는 오리무중과 같다고 생각한다. 의미의 상태가 아닌 의미를 향한 손짓, 발짓이라고 생각한다. 소리와 의미 사이에 놓여있는 신비로운 시의 숲을 안경도 없이, 맨발로 즐겁게 헤맬 것이다.

 

시는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종교이다. 어둠 속에 갇힌 시의 백성들을 햇살 밝은 창가로 불러내어 따뜻한 젖을 물리는 일,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리라.

 

정초에 꿈을 꾸었다. 숯검정 같은 허공에 구겨진 종이 조각들로 가득 메워진 종 하나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가 사라지더니, 잠시 후 텅 빈 종이 되어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화두를 던지듯이.

 

비어야만 울 수 있는 종처럼 울림이 있고 오래오래 울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부지런히 담금질하겠다.

 

시의 싹을 틔워 주신 서지월 선생님, 징검돌이 되어주신 박진형 선생님,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신 박재열 교수님,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늘 젖은 그늘을 안고 사는 가족들,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과 시 쓰는 엄마를 좋아하는 두 아들, 시를 사랑하는 여러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심사평] 독특한 감성·안정된 사유 돋보여

 

투고작들의 일반적인 수준은고른 편이었지만, 특별히 신인다운 패기있고 인상적인 작품은 드물었다. 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작품은 많았지만, 좀 서툴더라도 시적 에스프리가 넘치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서 아쉬웠다.

 

특히 많은 작품들이 산문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위 산문시들도 많았다. 그러나 산문시는 산문과 다르다. 시와 산문의 주요한 차이는 그 상상력에 있을 것이다.

 

산문의 상상력으로 씌어진 작품은 아무리 시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더라도 시적 감흥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감성이 부족한 점도 아쉬움이다. 요즘 같은 감각의 시대에 오히려 시가, 감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

 

시적 상상력과 새로운 감성의 부족을 경직된 시적 포즈로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투고작은 김우섭, 이상관, 조동범, 임경림의 작품이었다.

 

김우섭, 이상관의 작품은 언어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힘과 사물을 응시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시적 사유가 일정한 틀에 갇혀 있는 듯했고, 시적 탄력이 부족했다.

 

또 때때로 생경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이 작품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성실성과 솜씨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스스로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조동범, 임경림의 작품은 그 감성이 발랄하고 풍부했다. 언어를 조합해서 긴장된 언어의 조형물을 만드는 솜씨가 있었다.

 

조동범의 둘둘치킨과 임경림의 뾰족지붕과 뾰족창을 그는 가졌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세 편을 두고 망설인 결과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를 뽑게 되었다.

 

임경림은 상당한 시적 훈련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의 감성과 언어에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러면서도 안정된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당선자와 아깝게 탈락한 투고자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성부, 김종철, 이남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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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이 지은 집 / 길상호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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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언제부터인가 집에 대한 생각이 쾅쾅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몇 달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집이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새벽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발을 들여놨다가 좁아서 나가버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 뚝뚝 떨어져 돌아서 버리고, 누구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그 허술한 집을 지키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담을 다시 쌓아주면서, 새는 지붕을 덮어주면서 저의 집을 지탱해준 사람들. 그들 때문에 마음속 집은 아직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따뜻한 집 한 채 세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시를 쓰는 일은 저에게 집을 짓는 일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아직 서툴기만 한 저의 집짓기는 언제 끝이 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머리칼 허연 노인이 되어도 끝끝내 그 아름다운 집을 이루겠다는 마음 변치 않을 것입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기대도 앞으로 튼튼한 기둥으로 저를 받쳐줄 것입니다.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많은 지도와 관심을 베풀어주신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강정희ㆍ신익호ㆍ김균태 선생님 외 여러 선생님들, 문예창작학과의 김완하 선생님, 글쓰기의 고통을 함께 했던 청림문학동인회 선후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도 부모님께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더욱 힘찬 걸음으로 걷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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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편이나 이번 시 부문 심사만은 그렇지 않았다. 기대가 큰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 여러 편 있었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김상호의 '그 노인이 지은 집', 김남극의 '마른 물푸레나무 한 묶음', 정선용의 '달팽이', 박판식의 '장지', 최요기의 '2월의 강' 등 모두 다섯 편이었다.

 

'마른 물푸레나무 한 묶음'은 역동성과 천진성이 돋보였으나 '가련한 생들 아니랴'와 같은 미숙한 표현이 지적되었다. ''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고 생을 노래하는 것이 시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달팽이'는 달팽이에 대한 생태학적 관찰을 통해 인간의 생태학적 여정을 충실히 그린 작품이었으며 , '장지'는 할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와 통닭을 먹는 나와 가족들의 회한과 상처를 깊게 그리고 있었으며, '2월의 강'은 침묵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모두 '그 노인이 지은 집'에는 못미치는 작품이었다.

 

'그 노인이 지은 집'은 군계일학이었다. 한 편의 시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은 질량감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한 노인이 집에 들어가는 과정, 즉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아무런 무리 없이 균등한 밀도를 바탕으로 통일감을 형성한 점이 크게 돋보였다.

 

특히 서사적 요소에 서정적 요소를 차근차근 잘 어우러지게 한 데서 오는 감동이 커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번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서정시가 본 궤도에 오른 느낌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담으로 느껴졌던 현실참여라는 짐을 이제 비로소 내려놓은 것 같았다는 점을 부기한다. 당선자는 부디 노력을 통해서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남조 김광규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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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그림처럼 / 조정

 

 

풀은 한 번도 초록빛인 적이 없다

새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해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치자꽃은 한 번도 치자나무에 꽃 핀 적이 없다

뒤통수에 수은이 드문드문 벗겨진

거울을 피해

나무들이 숨을 멈춘 채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지친 식탁이 내 늑골 안으로 몸을 구부렸다

밤이 지나가고

문 밖에 아침이 검은 추를 끌며 지나가고

빈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 보면

회색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잠에 들어 두 편의 꿈을 꾸었다

풀은 흐리고

새는 고요하고

해는 타오르지 않고

티베트 상인에게서 사온 테이블보를 들추고

식탁 아래 몸을 구부렸다

자꾸만 어디다 무엇을 흘리고 오는데

목록을 만들 수조차 없었다

허둥지둥 자동차를 타고 되짚어 가는 꿈은 유용하다

탱자나무 가시에 심장을 얹어두고

돌아온 날도

나는 엎드려 자며 하루를 보냈다

삶이 나를

이발소 그림처럼 지루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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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이채운의 꽃게와 달은 나무랄 데 없는 한 편의 영상이다. 하지만, 그림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함께 투고된 작품들이 이 작품을 엄호하질 못하고 있다. 구두의 가을을 쓴 김여디는 촘촘한 묘사가 돋보였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 온 시풍이라는 게 결정적인 험이었다. 새벽의 물탱크」 「공포의 빌딩을 쓴 손현승은 아깝다. 생활의 곤고함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같은 이미지에 투영하면서 맞물리게 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그런데 지나치게 길다 보니, 이미지들의 연결에 무리가 생겼다. 시가 길어지면 넋두리로 변한다는 걸 명심해야겠다. 마지막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를 쓴 김지혜와 이발소 그림처럼의 조정이 남았다. 두 사람 모두 투고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다는 물건 보관함에 보따리를 우겨넣고 있는 노파를 묘사하고 있다. 묘사는 그냥 형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전염력이다. 묘사를 통해서 운명의 아가리에 삼켜진 삶의 어두운 심연이 저의 역겨운 냄새를 꾸역꾸역 피워올린다. 그것이 읽는 이의 세상 안에 암암히 퍼진다. 이발소 그림처럼은 묘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화다. 그가 한없이 낡은 꼴로 그리고 있는 삶이 바로 대화 상대자다. 단조롭고 적막한 묘사가 잠언처럼 읽는 이의 눈 속으로 틀어박히고 있다. 낡음은 무거움이고 무서움이다. 거기에서 도망치려고 허둥대는 동작들도 한갓 먼지로 쌓여, 낡음은 시나브로 두꺼워진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니 낡아가는 것은 생이 아니라 임을 알겠다. 이 시가 대화인 소이이다.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인생인 것이다. 선자들은 조정의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김지혜는 아직 젊다. 젊다는 건 생의 지평선이 훨씬 넓게 열려 있다는 뜻이다.

 

심사위원 이시영, 정호승, 정과리

 

 

 

이발소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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