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데칼코마니 / 한이로(필명) 

 

내 방엔 거울이 하나

나는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서로 다른 옷을 입을 때

살짝 삐져나오는 다디단 표정

 

나란히 서면

자꾸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에겐 곁눈질이 있으니까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학교를 벗어던진 우리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 위로 쏟아진 자동차들 사이로 뿔뿔이

흩어진다

 

반으로 나눠진 마카롱,

사라진 쪽이 너라고 생각하겠지

 

바닥에 번진 우리의 그림자를 지우느라

붉어지는

늦은 오후의 얼굴들

 

간호사가 건네는 푸른 옷을

얼굴처럼

똑같이 입고 우리는

 

사이좋게

캐스터네츠를 악기라고 말하고 난 뒤의 기분을

반으로 접는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내 방엔 거울이 하나인데

두 개

 

매번 언니였다가 나였다가

 

입꼬리 살짝, 올라간다 

 

 

예스이십사

 

deg.kr

- 에드픽 제휴 사이트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수상소감] 작품, 삶과 같아 언제나 미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아득하기엔 아린 나날이어서 먼 듯하지만 가깝고 가까운 듯하지만 먼 거리였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

빛살을 엮어 만든 밧줄과 같은 인연의 힘으로 여기에 서 있다.

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

시를 쓰면서 그림을 생각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며 시 쓰는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

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

제 시의 맨 앞에 계신 이용헌 시인님, 박동기 작가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버지 어머니 큰모 삼촌 막모, 그리고 브라더 복문.

끝으로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심사평] 발랄한 상상력 뒷면에 감춘 저항의식…詩 본원적 매혹 느껴

 

본심에 올라온 열아홉 분의 작품은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쁘고 단정한 서정시에서부터 종교성을 띤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넓었으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거나 새로운 전망,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말이 많았고, 사유와 상상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련한 작품을 보기 힘들어 아쉬웠다. 산문적인 시의 경우, 시의 내러티브가 전개되면서 의미와 이미지가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하는데, 반복에 그치거나 오히려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대상으로 남은 것은 '데칼코마니' '흰색 위의 흰색' '유리방' 세 편이었다.

 

'유리방'은 산문시인데 밀도 있는 전개와 예리한 언어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상 혹은 세상의 폭력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도 읽힐 수 있는 유리방 속 존재들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주었으나,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문제의식이 보다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흰색 위의 흰색'은 말레비치의 그림 <흰색 위의 흰색>을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언어 구사가 빼어났다. 묘사와 진술의 능력이 돋보였고 시를 끌고 나가는 힘도 있었다. 그러나 평면적이었다. 눈덧신토끼와 스라소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구체적 자기 경험과 겹쳐졌으면 시의 깊이와 울림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칼코마니'는 경쾌한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정서의 파동을 지닌 작품이었다.

 

그동안 우리 시가 보여준 거울에 대한 상상력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면서 자아·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발랄한 상상력의 뒷면에 감추어져 있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같은 질문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같은 유희, 이것들을 한 편의 시에 유기적으로, 또 차분하게 담아내는 능력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심사자는 시의 본원적 매혹을 느끼게 해 준 '데칼코마니'를 흔쾌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 심사위원 : 이하석 시인·전동균 시인

 

 

728x90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 손연후

 

 

노란색 상자 안에

털실 뭉치 좋아하는 고양이를 기르는 일

 

누구나 동그란 노란색으로 웅크려본 날들 있었지

쉼표 모양 씨앗처럼 고요히 꿈꾸는 연습

 

감자야, 하고 부르면 눈이 동그래져서 딸꾹 하고

딸기향 나는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당신 넥타이에도 딸꾹거리는 딸기가 묻었어,

우리는 서로의 코를 쿡 찌르며 웃어버렸지

 

커튼을 열면 우리도 고양이 꼬리처럼 기다랗게 기대어 보고

노란 고양이 무늬 닮은 햇빛이 머리 위로 얼룩덜룩 흘러내렸지

반짝이는 유리잔마다 함께 이름을 붙이던 날

사람은 이름대로 사는 거래, 여기저기 우리 이름을 붙이자

우리는 감자 눈동자 속에 살고 유리잔과 식탁보 넥타이 구두에도 살고

사람들 와르르 모였다 흩어지는 보도블록 횡단보도에도 길쭉하게 누워 있는 거야

수많은 버스 차창 손잡이에도 상냥한 고양이 키스처럼 토닥토닥 흔들리고 있는 거지

 

하늘이 자몽즙 같은 노을빛으로 젖어들면

기다란 빨대 꺼내 눅눅해진 하루를 보글보글 휘저어볼래

볼을 삐죽 부풀린 거품들 퐁퐁 터지고

푹 익은 노을 냄새 싫어하는 감자는 자꾸만 빨대를 타고 기어오르고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 위로 쑥쑥 자라나는 노란색 빨대를 올려다봤지

높이 더 높이, 어느새 굵어진 줄기에서는 샛노란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어

 

날마다 눈부시게 타오르는 구름 위로 훨훨 날아가는 꿈을 꿨어

감자는 점프를 잘했고 우리는 고양이 무늬로 웃으며 서로에게 손을 뻗었지

하늘에서 빨간색 노란색으로 뒤섞여 열리던 우리의 기다랗고 사랑하는 미래들

 

감자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사랑에 대해 말해야 해

우리는 노란색이었고, 커튼을 열면 유리잔마다 함께 반짝이며 살아있었지

우리는 씨앗처럼 가벼워 이 계절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늘씬한 고양이처럼 숨차게 달려보지 않겠니

 

매일 밤 노란색 상자 안에서

우리는 털실 뭉치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고

 

통통 고양이 발소리 다가오자

우리는 눈 맞추며 함께 큰소리로 웃어버렸어

 

 

 

 

 

[당선소감] "슬픔 가득한 계절 속 상냥한 등불같은 시 쓰고파"

 

크리스마스 사흘 전, 학과 졸업시험을 마치고 하교하던 길에 당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학로 구석진 담벼락 아래에 서서 전화를 받으며 오랫동안 조용히 울먹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혼자서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뭘 적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는 채로, 나는 노트를 펼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곤 했다. 나는 멋대로 그것들을 시라고 불렀다.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건 어쩌면 철없는 바보의 짝사랑 같은 거였을까.

 

그동안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혼자 컴컴한 시간 속에서 한없이 헤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사실 나도 좀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의 빚만 뿌옇게 쌓여갔다. 힘든 시간 속에서 문득 내게 위안을 안겨준 것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 접하게 된 프랑스 시인들의 시편들이었다. 시를 읽으면 칙칙하게 말라가던 내 영혼의 색이 밝은 빛으로 환하게 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란 참 따뜻한 거였구나.

 

용기를 내어 다시 펜을 들고 내 멋대로 감히 시라는 걸 써봤는데, 우연히 교내 문학상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시를 좀 더 알고 싶어서 여기저기 동아리도 전전해보고, 학과에서 열리는 시 수업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계속 썼다.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

 

시를 쓰는 법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아직 많이 부족한데도 운 좋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겸손한 자세로, 계속해서 열심히 써나가고 싶다. 모두가 많이 아프고 힘든 계절이다. 잔혹한 슬픔으로 가득한 이 추운 계절 속에서, 누군가에게 작고 따스한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상냥한 등불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 항상 곁에서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들, 하연·진희·성은, 한 해 동안 함께 열심히 임용시험을 준비했던 우리 스터디원들, 하림· 주민·지성 그리고 경호, 한번 시를 써보라고, 그래도 된다고 제게 용기를 주셨던 이순욱 교수님과 국어교육과 시 동아리 '모임'의 학우분들에게도 모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아름답고 광활한 세계에 저를 초대해주신 영남일보사와 관계자분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경쾌·발랄한 시어 구사당찬 신인의 미래 기대

 

본심에 올라온 스무 분의 시 가운데 장현숙씨의 '뭉친 나이' 2편과 김지영씨의 '뜨겁고 흰 유언' 16, 홍담휘씨의 '카라멜마끼야또가 꽃피는 동안' 3, 손연후씨의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2편이 선자의 눈길을 끌었다. 장현숙씨의 작품은 시를 차분하게 끌고 가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만지는 솜씨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글에 생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흠이었다. 김지영씨의 시에서 두드러진 것은 현실 묘사 능력이었다. 다만 완성도에서 "이거다!"하고 내세울 수 있는 한 편이 보이지 않았다.

 

홍담휘씨와 손연후씨의 작품들을 놓고 장시간 논의가 있었다.

 

홍담휘씨의 '젠가'는 젠가 게임을 통해 일상과 가족, 현대성의 문제, 지구온난화까지를 유머러스하고도 시니컬하게 담아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가 녹는 북극까지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하나둘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를 비롯한 빼어난 표현이 촘촘히 박혀 있다. 이 작품만으로 본다면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투고한 다른 시편들의 질적 균질감이 편차가 있었다.

 

손연후씨의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이 시에서 유독 강조되는 '노랑'은 삶의 어둠과 우울을 들어 올리는 힘이다. 우리는 "노란색 상자 안에 털실 뭉치 좋아하는" 감자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른다. 놀라운 건 감자와 교감을 하면서 마침내 그의 발소리를 들으며 "노란색 상자 안에서/ 우리() 털실 뭉치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게 된다"는 것이다. 서두와 종결부의 아름다운 대응을 보라.

 

그건 '감자'의 무늬에서 번지고 성장하는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유리잔과 식탁보 넥타이 구두에도" 산다. 그 사랑의 힘이 "눅눅해진 하루를 보글보글 휘저으며" 그때마다 "볼을 삐죽 부풀린 거품들이 퐁퐁 터진다." 이 당찬 신인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경쾌한 시어와 발랄한 상상력을 구사한다. 이 싱싱한 능력은 이 신인의 미래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동봉한 '여름의 아이들을 아세요'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아깝게 당선에서 밀려난 홍담휘씨에게도 힘찬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손진은 시인·안상학 시인

 
 
 
728x90

 

 

해감 / 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당선소감] "내 詩가 실없는 농담 돼 사람들이 덜 아프길…"

 

어릴 적 할머니의 세탁기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어 있었어요. 세탁기에 포도를 넣어뒀단다. 세탁기에 식혜가 있단다. 말을 이리저리 뒤섞은 할머니가 씻어놓은 것들이 좋아서 꺼내 먹으라는 목소리만 기다렸어요. 헷갈리는 말들의 마음은 언제나 마음에 듭니다.

잘 웃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 시가 실없는 농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처럼 다정한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과 자주 함께할 수 있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시를 읽고 쓰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즐거워지기를. 조금 덜 아프기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씰룩거리는 입꼬리처럼, 마중을 나온 마음으로 함께 읽고 써 내려가겠습니다. 이곳에서 무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웃게 될 일이 생기면 같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비밀인데…로 시작한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비밀을 의심해야 한다고 엄숙한 척 말하면서 크게 기뻐했어요. 미소를 갑자기 삼킨 어머니는 사람의 일은 모르니 정말 조심해라, 속지 말거라, 수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말 보이스피싱이 문제입니다. 동생은 오? 축하, 하고 말았어요.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열심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학예회 동인들, 매번 다음에 만나자는 이야기만 해도 여전한 너희 덕에 문학하는 게 여전히 재밌어.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확인해 주는 속 깊은 고향 친구들, 늘 그 자리에 잘 있어줘서 고맙다. 서로의 문장을 부대끼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던 친구들, 동기들, 학우님들, 원우님들에게 따뜻한 문장을 전합니다. 감사해요. 멋진 나의 선생님들께는 커다란 마음을 꽁꽁 뭉쳐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아닌 마음까지 탈탈 털어내 읽어주는 사람에게 빛나는 사랑을 전해요. 기꺼이 손 내밀어 준 모든 분들이 어딘가로 돌아가는 동안, 마을 앞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있겠습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자신의 존재성 확인, 고백의 언어로 풀어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세 분의 응모작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형식의 파격을 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상을 관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특성을 보여서 서정의 밀도와 품격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작품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어구의 사용이 꽤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시도 한글 문장의 규범 안에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세 분의 작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래가 그래'는 응모 작품 중 드물게 생태학적 사유를 동원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의 진지함이 주목을 받았다. 고래 내장에 축적된 폐기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표현한 착상은 새로웠지만 그 주제가 시적인 언어로 유연하게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집은 기상청 지부'는 아버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서 그사이에 연민의 정서를 적절히 병치하는 솜씨를 보였고, 감정을 절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삶의 내력을 표현한 점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후'의 의미가 모호해서 공감의 폭을 확장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리빙 포인트' 외 2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 중에서는 '리빙 포인트'보다 '해감'에 더 눈길이 갔다. '리빙 포인트'가 일상적 삶의 무료함을 다양한 형상의 교차를 통해 새롭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다양함이 시상의 집중을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해감'은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평범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백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의 시적 재능이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이에 '해감'을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은교, 이숭원

 

728x90

 

 

포노 사피엔스 / 금희숙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당선소감] "천천히 행복해지는 일, 오늘을 즐기겠습니다"

 

뜻밖의 전화는 이런 것이었다. 똑같은 하루, 단지 오늘이 크리스마스 라는 것 외에는 라디오 채널을 바꾸지 않듯 일상은 그대로였다. 늦은 김장을 준비했다. 배추에 속을 채우고 허리가 아플 즈음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덤덤하게 전화를 했다. 축하합니다. … 그 다음 대화는 뒤죽박죽 그저 놀라고 고마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을 되풀이했던 질문, 진정으로 나에게 흥분된 적 있었던가! 갈수록 높아지고 어두워지는 간격 그리고 터널 같은 절벽 앞에서 아찔했던 갈등과 혼란을 번복했다. 웃는 일이 계단처럼 힘들었다. 언제부터인지 하루가 지치고 분명 걷고 있었는데 뒤돌아보면 다시 어제였다. 한 발을 내디디면 두 걸음 뒷걸음질 치고 숨 가쁘게 넘겨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종종거리는 나를 거울처럼 마주했다. 자꾸 무엇인가를 까먹고 놓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잘살고 있는 것인가? 매일 묻고 또 물었다. 시작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약속이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아기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전공과 무관한 직장을 다녔고, 내 아이들에게 못 해줬던 미안함에 시작한 책놀이 활동. 봉사하는 동안 포노 사피엔스를 자주 마주쳤다. 앞서가야 인정받는 현실 앞에서 걱정과 함께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끈이 되어 준 문전성시 동아리, 시의 공간을 안내해 준 임정일 선생님, 그리고 안방 같은 곰시 동인, 한결같은 달숨 가족, 좋은 시를 쓰라고 조언을 해주신 김산 시인님, 중대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지도 교수님과 문우님, 모두 고마운 나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다고 집안일에 소홀해도 묵묵히 기다려준 사랑하는 남편과 듬직한 아들, 고마운 딸에게 오늘의 선물을 함께 한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변화해 가는 신인류의 모습 경쾌하게 표현"

 

본심에 올라온 열두 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의 고독과 상처, 상실과 죽음이야 시의 오랜 주제이지만, 올해 투고작들에서는 유난히 어떤 활력이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마지막까지 숙고의 대상이 된 시들은 '어떤 계단' '테트리스' '수중기도' '포노 사피엔스' 등이었다. 그 중 두 작품을 놓고 장단점을 비교하며 좀 더 토론이 이어졌다.

'어떤 계단' 외 2편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집중력이 돋보였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그의 시들은 안전해 보이는 계단이 감추고 있는 위험이나 지방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을 묘사함으로써 문명의 그림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러나 타당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동어반복이 많고 시어가 산만하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밀기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포노 사피엔스' 외 2편은 간결한 언어의 배치와 행간의 여백을 통해 시적 함축성은 높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의 시들은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스마트폰에 의해 변화해가는 신인류의 모습이나 현대인의 단절된 관계와 불안의 심리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보여줌으로써 자기만의 '명랑한 우울'을 창조해낸다. 다만, 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평면적인 나열을 넘어 좀 더 심층적인 인식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미안해요 아스피린' '공공 터널' 등 다른 투고작들의 수준이 고른 편이어서 믿음이 갔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 홍정선

 

728x90

 

 

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당선소감] 서진재, 오늘은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는다 “어떻게 지내니?”


“어떻게 지내니?” 당신이 안부를 물어오면, 나는 “당신이 내 안부를 물어오는 걸 보면 나는 제법 잘 지내는 듯도 해요.” 대답한다. 내가 당신의 안부를 물으면 당신은 “해질녘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거기 백일홍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붉게 웃는다” 대답한다. 그런 거짓말을 내가 받아쓴다. 당신은 나의 안부를, 나는 당신의 안부를, 당신은 백일홍의 안부를, 백일홍은 당신의 안부를, 나는 백일홍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이 내 몸 안에 담아놓은 사투리를 전부 쏟아내고 서울의 냄새가 나는 언어로 시의 첫 줄을 시작하고 싶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기 위해 몸이 계단처럼 꺾여버리는 당신, 의자의 자세를 가진 당신은 더럽고 낮은 장소 어디에도 앉는다.

 

당신의 안부를 내가 먼저 묻고 싶다 오늘은. 안부를 언제나 당신에게 빼앗겨버리고는 했으니까. 어떻게 지내시는가,   당신. 하지만, 나의 ‘어떻게’와 당신의 ‘어떻게’가 포개져 버린다. 찌찌뽕.

 

당신의 찌찌를 꼬집어 주고 싶다. 요 것, 요 것 때문에 내가 당신의 사투리를 앓습니다. 요 것에서 흘러나온 당신의 사투리를 내가 빨아먹고 자랐습니다.

 

바깥의 안부를 먼저 묻는 당신의 사투리를 받아쓰겠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담담히 말하는 시선 인상적

 

예심을 거쳐 올라온 예비 시인 17명의 시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몇 가지 읽을 수 있었다실험적인 시보다 서정적인 시가 우세했으며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시보다 일상을 포착하거나 가족가난 등 서정시의 전통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많았다비정규직청년 실업성폭력 및 미투 운동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고 뜨거운데오늘의 시가 시대 현실의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최근의 시단에 이슈가 별로 없는 현상이 응모작에도 투영된 듯하다

17명의 작품 중 7명의 작품을 먼저 추렸고그 중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인 3명의 작품을 두고 본격적으로 토론했다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하현’ ‘새가 하는 일’ ‘이름이었다

하현은 달이 차고 이우는 것과 만두를 빚는 한 여자의 노동을 겹쳐 놓는 상상력이 흥미로웠다달을 보며 한 여자의 붉은 생애를 떠올리는 시상의 전개가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새가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중 가장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였다. “나무는 새가 펴는 우산이라는 이미지와 나무에서 새와 매니큐어와 우산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전개가 역동적이었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부모의 기대치와 어긋난 자신의 생을 들여다본 이름은 자신의 몸과 헛도는 큰 옷이름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담담히 말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가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자신에게로 유전되는 가족의 삶과 상처에서 빠져나와 그로부터 달아나는 상상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름을 호명하기로 했다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미처 호명하지 못한 예비 시인들에게는 꼭 다음을 기약하자는 격려의 말을 전한다눈 밝은 선자가 당신의 시를 호명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심사위원 이하석, 이경수

 

728x90

 

 

조문 / 이서연


빈 방에 남아 빈 방을 닦고 있는 거울처럼
그 집의 벽들은 아직 비에 젖고 있다
현관 앞에 쓰러진 우산이 있고 지붕을 넘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운다 나는 꽃을 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소부가 올 때까지
쓰레기봉투처럼 웅크리고 싶은 밤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8차선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 없는 몸이 어딘가로 간다
생각만 남아 몸을 생각한다 

엎어진 화분처럼
방문을 쥐고 있는 젖은 손이 있다
손잡이를 말아 쥔 둥근 손등만 보인다

창문이 없는 방에 바람이 들이쳤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방 안을 지나간다
감은 눈 안으로 구름은 어떻게 들어 왔을까?


 

 

[당선소감] 정말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이어지는 길 조용히 걷는 기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습니다. 눈을 떠도 주위는 감은 눈 속처럼 어두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잠버릇과 함께 낡아가는 익숙한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으며, 죽은 뒤에 관 속에서 혼자 눈을 뜨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땅 속에 묻혔는데 거짓말처럼 문득 정신이 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불 속에서 손가락과 발가락들을 차례로 움직여 보았습니다. 밤이 오면 잠을 자고, 시간이 지나면 눈을 뜨는 일상이 놀라웠습니다. 매일 밤 누워서 내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챙겨 보는 것은 내일이 다시 저에게 주어질 거라는 믿음입니다. 어째서 저는 단 한 번도 그걸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오늘이 지나갈 때마다 다음에 올 아침을 믿는지…. 앞으로 제가 다녀오게 될 누군가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다녀갈 사람들을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새벽, 6시 20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저는 어두운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정리한 시편들을 봉투에 넣어 보내고, 며칠 뒤에 가까운 분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뒤늦게 찾아간 그곳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죽음이 삶을 이어주는 시간이었고, 삶이 죽음을 연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울고, 웃고, 먹고, 마시는 탁자 위에 수저 한 벌처럼 나란히 놓인 저의 죽음을 마주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을 함께 기뻐해 줄, 오랜 시간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었던 친구들과 늘 곁에서 사랑과 격려를 건네는 가족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몇 몇 도시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새로운 도시에서 지낼 때마다 저는 언제나 제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어떤 한 도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도시로 이어지는 길을 조용히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언어 몰고가는 힘 놀랍고 삶과 죽음 관계 새로운 인식 이끌어

예심에서 올라온 10명의 작품으로 우리 시단의 변화를 실감했다. 흔히 보아왔던 개인적 발화에 가까운 소통부재의 언술이나 실험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책임방기(責任放棄)의 시편들이 확실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편들보다 익숙함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심사자는 당선권에 든 작품으로 나동하씨의 ‘계단들’과 손명이씨의 ‘전모(全貌)’, 그리고 이서연씨의 ‘조문’을 최종 선정했다. 손명이씨의 작품은 ‘달’이라는 원형상징을 변주하면서 시상을 엮어가는 수법이 눈여겨볼 만했다. 그러나 관념을 구체성에 얹는 데 힘이 부치는 감이 있었다. 나동하씨의 작품은 ‘계단’이라는 대상을 삶의 보편적 국면으로 이어내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대상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힘, 긴밀한 구성력과 치밀한 묘사력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서연씨의 작품은 참신한 비유와 더불어 언어를 몰고 가는 힘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행간을 건너뛰는 경쾌한 어법이 신인의 예기(銳氣)를 느끼게 했다.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 활달한 어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구성의 측면에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대상에 직핍해 들어가 인식의 상투성을 뒤집어내는 나동하씨의 작품과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화법으로 일상 언어의 범박함에서 벗어난 이서연씨의 작품을 두고 논의 끝에, 두 심사자는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라는 덕목에 좀 더 부합된다고 판단되는 이서연씨의 작품 ‘조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신춘문예 당선자의 영광은 단 하루다. 이 작은 성취에 머물지 말고 당선자는 언어의 모험에 기꺼이 몸을 던져 천 년을 버티는 교목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학석, 장옥관

 

728x90

 

 

공복 / 김한규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왔네요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왔습니다.

 

먼지가 부풀며 피에 섞인다 

아스팔트가 헤드라이트를 밀어내기 시작하고 

한 마디를 끝낸 입술이

 

냉동고 속에서 굳는다 

언 것이 쌓이기 시작하자

흔들리던 빈속이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하기 위해 당신은

약봉지를 잊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보인다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에는 감꽃이 떨어지고

눈물을 말리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끝났습니다.

 

아니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연락하겠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nefing.com

 

 

 

[당선소감]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 전한다

 

마치 나라를 잃어버린 것 같은 참담함에 젖어 있었다. 차라리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피하는 것이 능사는 될 수 없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저들과 맞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먼 곳으로 가신 어머니가 꿈에 오시곤 했다. 깨고 나면 “제가 잘 살고 있지 못한 거 같아요.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여름, 무지무지한 햇볕과 끝까지 대결했던 노동으로 몸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무엇보다 시를 쓰지 못한 날이어서 더 혹독하게 여겨졌다. 추스르면서 열기가 옅어진 햇살 속에 앉아 있곤 했다. 살고 있는 동네의 천변에는 코스모스가 오랫동안 흔들렸고,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힘을 내야 한다는 듯 열심히 걷곤 했다.

역시 참담했던 1980년대의 여러 해를 감옥과 거리를 오가며 살았던 벗들, 그 후에도 어떤 영예나 보상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벗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도 더 힘을 내겠다는 말과 함께. 또 ‘오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전에 부끄러워졌다. 단단해지고 싶다면 더 깨져야 할 것이다.

나보다 더 좌절하면서 견뎌온 아내, 그리고 채영, 승훈에게 다시 쓰겠다고 약속한다.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김소연 선생님, 뵈러 가겠습니다. 이기영 시인님, 이제야 갚아드리게 되었네요. ‘진주작가’의 벗들, 계속 버티며 살아남자고요. 이성모 교수님,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내다

 

본심에 올라온 시의 독후감은 심사위원들에게 마치 한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느낌과 느낌들이 손쉽게 공유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참람하다. 문학의 기술과 기교는 독창성이나 변별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결코 아니다. 그나마 네 사람의 가편을 만난 것은 다행이랄 수 있다.

시 ‘삼각형 누드’는 옷걸이와 옷에 대한 천착이다. “옷을 벗기면 너무 마른 삼각형이 나오”곤 하는 옷걸이라는 상징은 “옷의 속마음을 걸어두”는 곳이다. 그렇다고 ‘옷의 속마음’이 다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의 안팎에는 옷과 옷걸이의 불화와 화해, 측은함과 격려가 맵씨 있게 걸려 있다. 이후 옷과 옷걸이의 서로를 확장시키면서 “옷걸이의 마음을 닮은 삼각형이/ 옷을 벗으면 내 몸에도 몇 군데는 있다”라는 몸의 윤리학에 도착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를 선택해야 한다면 선자들은 이 시가 아닐까 하고 의견을 모았다.

또 다른 시 ‘답장 사이로’는 서사가 떠받치는 시편이다. 한 계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펼쳤다면 그 속의 고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러기에 시는 울림이 크고 높다.

시 ‘5분의 꼬리’는 시간의 비극성을 희극에 기대어 혹은 희곡성에 기대어 진술하고 있다. “약속장소가 5분 먼저 와 있었다./ 내가 늦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5분이라는 시간이 먼저 가 있었다”라는 구절을 본다면 5분이라는 시간은 나를 검색하려는 무의식과 의식의 의도이다. 건조한 5분들은 계속 나를 간섭하고 배반하면서 나를 돌이키게 한다. 독특한 시각이 이채롭다.

당선작인 시 ‘공복’은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는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게다가 뒤틀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낸다. 공복이라는 발화는 화자에 의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을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이다. 이것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와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시작이자 재현이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난 뒤의 망설임들 모두 같은 공복감이다. 그러한 공복감은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개량의 감정이다. 또한 그 공복감은 우리 시에서 드문 서정이기도 하고 단순하되 겹을 가진 문장 역시 쉽사리 발견하기 힘든 재능이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공복’과 ‘5분의 꼬리’ 사이에서 한참 논의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두 분의 나머지 시편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했기에, 결정은 힘들었고 결론은 행복했다. 결국 우리 시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개성이 더 도드라진 ‘공복’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나머지 세 분의 시적 역량에도 심사위원들이 오래 고민하면서 찬사를 보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심사위원 송재학, 김사인

 

728x90

 

 

가로수 마네킹 / 강서연

 

 

란제리도 망사스타킹도 액세서리도
색 바랜 바바리코트도 한데 뒤엉켜있던 가판대
가을 정기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마네킹들이 서 있다
가로등 불빛이 훤하게 조명을 비추는 쇼윈도
은행나무의 옹이가 생식기처럼 열려 있다
저 깊은 생산의 늪에 슬그머니 발을 넣어보는 저녁
어둠이 황급히 제 몸을 재단해 커튼을 친다


첫눈이 내린다
칼바람을 따라가며 천을 박는 발자국들
재봉틀 소리에 맞춰 나무의 몸속에서도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길도 불빛도 사람들도
왕십리 돼지껍데기집 화덕 위에 불판으로 모여든다
올해의 유행은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패션
마지막 단추까지 꼼꼼하게 채운 새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 무릎에
가만히 손을 얹는 홑겹의 흰 눈발

 

 

 

 

가로수 마네킹

 

nefing.com

 

 

 

[당선소감] 내 詩는 길에서 주웠다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기다리는 전화는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았으므로 금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내달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행하는 이 없이 혼자 나선 길은 낯설고 두려웠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 세종시 입구에서부터 엉키기 시작한 길은 영영 풀리지 않는 낡은 노끈 같았다. 추위와 굶주림보다 막막함이 더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 울려온 전화벨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길이 열리고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야 할 방향을 지침 해놓은 화살표를 따라 나는 이제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처투성이인 내 삶에 고운 새살이 덮이는 것만 같았다. 하늘도 그동안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려는 듯 어깨 위로 토닥토닥 함박눈이 쌓였다.

 

그제야 강변에 누워 있는 나무와 풀들의 나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의 벗은 몸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몸에 따뜻한 시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소명감이 든다. 이것은 ‘내 시(詩)는 길에서 주웠다’와 같은 말이다.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고 돌아올 때면 주머니 가득 돌멩이, 풀꽃, 바람, 물결, 새소리, 햇살들이 도란도란 담겨 있었다. 작은 풀씨 하나에도 꼼꼼하게 이름을 달아주느라 밤을 지새웠다. 내 이런 수고와 노력을 늘 부추겨 주시고, 생각해보면 참 사람 따뜻한 주병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유, 사유, 사유, 통찰, 통찰, 통찰! 귀에 못을 박아주시던 배재대 강희안 교수님께 오늘만큼은 채찍보다 칭찬이 더 듣고 싶은 날이다. 새벽녘까지 불 켜놓은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밝게만 자라준 내 영혼의 노래 같은 세 아이들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험난하고 난해한 길일지라도 같이 걷고 있기에 힘이 되는 문우 례, 숙, 정, 헌, 주, 수, 영, 봄, 화, 아, 희 등과 ‘불이문학회’ 회원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시고 이름 불러주신 영남일보와 이하석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더 많이 통찰하고 더 깊이 사유해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외투 같은 시를 써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심사평] 시인의 따뜻한 시각에서 詩 정신의 향기 느껴져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난해한 화두에 부딪힐 때마다 지나간 1980년대를 떠올린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 시절은 시에 있어서만은 풍요하기 이를 데 없는 시절이었다. 교사도 목수도 수녀도 철근공도 의사도 버스안내양도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썼고 시집을 펴냈다.

 

사람들은 시를 통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곤궁함을 지워내고자 했고 수십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시집들이 이어졌다. 세계 문예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을 언론은 ‘시의 시대’라 지칭했다.

 

무엇이 그 시절의 사람들을 시 속으로 불러들였을까. 시정신이 지닌 향기가 그 답이라 할 것이다. 시는 결핍 많고 외로운 세계의 심장에 켠 따뜻한 등불 같은 존재이다.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고 외롭지만 결코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궁핍한 생명들을 껴안고 따뜻한 지상의 꿈 쪽으로 걸어가게 한다. 익숙함과 타성에 젖은 시간들을 거부하고 평범 속으로 젖어드는 개인의 삶이 지닌 치욕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시 속에서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고 영혼의 정화가 뒤따랐다.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지성과 일치된 감정 속에서 자아와 세계를 온전히 느끼는 법을 찾은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 ‘이층의 꽃집’ ‘가로수 마네킹’이었다.

 

‘우리들의 언어 치료시간’은 언술의 명료함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를 진술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흠이었다. 모두 알 수 있는 진술은 시의 긴장을 해치게 된다. 재해석된 평범한 풍경들이 갖는 생명력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층의 꽃집’과 함께 응모한 시편들이 지닌 사유의 깊이는 소중한 것이다. 이층의 꽃집에 있는 화분 하나가 꽃을 피우는 동안 펼쳐지는 이미지의 파편들은 자유연상의 즐거움과 세계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된 시편들 속에 편향된 이국취향의 목소리는 이 응모자가 밟고 있는 땅이 어디인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했다. 이국정서 속에 자신의 고유한 삶의 정서를 새길 수 있다면 평가는 바뀔 것이다 .

 

‘가로수 마네킹’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선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헐벗은 겨울 가로수들을 따뜻이 응시하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습 속에 시 정신의 향기가 느껴졌다. 첫눈을 맞으며 왕십리 돼지껍데기 집 화덕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오래 서 있어서 아픈 플라타너스의 무릎에 손을 얹는 눈발의 모습은 이 응모자가 지닌 감정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과 세계의 결핍을 예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응시한 작품들, 심장의 쿨럭임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시편들로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곽재구, 이하석시인

 

728x90

 

 

신발 / 박진이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신발을 멀리 던지면 누구나 길을 잃겠지

 

nefing.com

 

 

 

[당선소감] 발 시린 심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결혼식장에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의 퇴장에 맞춰 박수를 치던 중이었습니다. 당선을 알리는 기자님의 목소리가 박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예식장을 나와 부산에서 수원의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자꾸만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는 내내 발이 시린 심정이었습니다. 따뜻한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매번 내가 쓴 시를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던 재경씨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민아, 우석아 사랑한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남일보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 글감이 되어준 정자시장 난전의 신발들에게도 할 수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난전의 신발 속으로 흰 눈발이 내려앉을 것입니다.

 

 

 

[심사평] 안정적인 호흡…자신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담아

 

우리가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팔꿈치에 관한 단상’ ‘신발’ ‘유령위장’ ‘바람의 건축면적’ 등이다. 네 편 모두 장단점을 두루 가졌다.

본심의 작품 일부는 기성 시인의 영향이 두드러져 본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은 불만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팔꿈치에 관한 단상’은 좋은 작품이다. 몸의 시학이란 발상은 우리 현대시의 성과이다. 화자는 팔꿈치를 관찰하고 팔꿈치라는 생을 주목한다. 팔꿈치에서 “나른한 졸음을 꺼”내는 발화는 오후의 햇빛을 거치면서 다시 팔꿈치에서 ‘둥글게 번지는 물결’을 만들다가, “사라지고 키우고 조준을 괴던 그곳에서 악단 하나를 해체해도 좋으리”라는 편안한 저녁의 팔꿈치에 도달한다. ‘신발’과 함께 우리가 오래 주저했던 작품임을 밝힌다.

 

‘신발’은 선악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신발이 맨발보다 더 슬픈 것은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발과 비슷하기 때문에 ‘시린 발’의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 흰 눈발 내려앉고 있”는 풍경은 가난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신발’에는 눈에 거슬리는 불편이 있다. 예를 들어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이란 구절은 상투적 인식이다.

 

‘유령위장’은 독특하다. “이 위는 무엇으로 배가 부를까”에 귀를 기울이면서 “숟가락이 없는 밥”의 가난에 도착한다. “비어 있는 위가 둘인 미라를 발견한다면 / 고대 인류는 / 위장이 두 개라 추정하는 인류사를 새로 쓰겠지”라는 결론과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은 다 위다”라는 진술에는 공감할 수 없다. 시적 미학이라는 점에서, 전략도 절차탁마도 부족하다.

 

‘바람의 건축면적’은 건축자재의 하나로 바람을 사용한 점이 놀라웠지만, 그뿐이었다.

 

박진이씨의 ‘신발’은 그런 점에서 순정적이고 게다가 안정적인 호흡을 얻었다.

 

유행하는 어법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는 점이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빛나는 구절이 상투성이란 단점을 껴안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신춘문예 당선이 영예가 되려면, 앞으로 평생 시인으로 살면서, 시를 사유하고 시를 써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 송찬호 시인

 

728x90

 

 

피운다는 것은 / 송지은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찰 지게 들어있는 방에서 꽃은
게으른 손목에 잡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이 스민 계절은 부풀고
어디에도 합류하지 못한 이력서 같은
천리향 나무 잎사귀 몇 장이
형광등 불빛에 말라 떨어지고 있다
손톱만한 잎사귀의 먼지를 닦아내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목마름을 견디며 버틴 푸른 힘줄이 보인다
비정규직 자리에 새 흙을 끌어와 분갈이를 한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나무에 물이 오르면
꽃잎 하나가 어둠을 빠져나와
봄의 이마에 붉은 웃음을 낙점하고 확대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에게나 꽃피울 자리는 있다
피운다는 것은 쓰러지기 위한 눈부신 허무
향기를 피우고
곰팡이를 피우고
바닥의 통증까지 밀어올리고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도둑처럼 사라진다
피우는 것들은 모두
어둠을 본적지로 두고 있다

 

 

 

 

[당선소감] 홀로 깨어 있다는 것, 외롭지만 행복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 쓰고 싶다

 

두통과 함께 날아온 당선 통보는 한동안 나를 혼돈의 늪에 밀어넣었다.


집 앞의 오래된 버드나무가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일 때마다 분명 이럴 것이라는 생각과 겨울 하늘에서 우는 단말마의 새소리도 촉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도심을 벗어나 흙을 밟고 산 지가 3년이 되었다.


자라던 풀들과 곡식들이 안식이거나 소멸한 자리에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나 또한 홀로 깨어 있어서 행복하다. 생각의 뼈를 세우고 감성을 마름하는 일들은 고난이자 내 삶의 의무이므로 멈출 수는 없다.


두통은 느닷없이 찾아왔지만 시는 늘 나무늘보처럼 움직였고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멀리 혹은 높은 곳에 있으면서 가끔은 축지법을 쓰는 너. 기다리는 일로 익숙한 나에게 혼돈이 밀려든 것은 길을 잘 찾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일 것이다.


거실에서 각혈을 하듯 잎을 다 쏟아내던 천리향 나무는 화분을 벗어나 앞마당에서 흰 눈을 맞고 있다. 서둘러 오는 봄에는 꽃이 필 것이고 어둠을 거머쥐고 나온 향낭들이 얼마나 많은 종소리를 쏟아낼지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이 그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또 분홍색 연속무늬 가슴앓이를 하게 될는지 모른다.


하루 동안 곁에 머물던 편두통이 빠져나간 공간에 내일처럼 기뻐해줄 사람들을 호명해 본다. 그 이름들로 하여 잘 견디었고 넘어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부족한 글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남일보에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시의 몸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기대는 글을 쓰겠다고 정갈하게 다짐을 한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시대 아픔 녹여낸 어두운 응모작 많아 당선작, 매 순간 삶 꽃피우는 힘 내재

 

2014년을 영남일보문학상 시 부문 응모작과 응모자 수는 총 1천862편에 389명. 대한민국이 여전히 문학을 귀히 여기는 문학공화국임을 과시하는 놀라운 수다. 전 세계 보기 드문 우리 민족의 문학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심사에 더욱 엄정을 기했다.


남녀노소 고루 보내온 응모작을 당대의 삶과 사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현상지. 올해 응모작은 어두웠다.


혁명도 사랑도 순정도 없는 시대를 살아내는 아픔들이 그대로 현상돼 나왔다. 특히 ‘비정규직’이 우리 시대의 키워드로 떠오르며 신유목시대 뿌리 뽑힌 이미지가 곳곳에 편재해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자는 25명. 읽고 또 감상하며,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송지은씨의 ‘피운다는 것은’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자잘한 우리네 일상에서 삶의 끝, 간 데 없는 깊이를 천착해가며 우리 사회를 둘러보게 하는 힘, 끝내는 허무일지라도 푸른 힘줄처럼 매 순간의 삶을 꽃피우는 힘이 있었다.


같이 보내온 응모작 ‘벙어리 뻐꾸기’의 한 부분 “울음의 표기법이 달라서 건너갈 수 없는 슬픔/ 가슴을 쳐서 북이 된다면/ 살에 닿는 아픔을 녹여 수수꽃다리 같은 소리를/ 너에게 물려주고 싶었다”에서 처럼 소통과 감동이 있었다. 머리로 짓는 시가 아니라 생살 터지는 아픔을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그 감동, 진정성의 힘이 있기에 당선작으로 흔쾌히 밀었다.
당선작과 함께 ‘해바라기’와 ‘오랑캐꽃을 위한 광시곡’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같이 보내온 작품들을 참조하며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해바라기’는 아직 덜 영글어서, 이에 비해 ‘오랑캐…’는 절실하기는 하나 너무 농익어, 무엇보다 기성시인들의 시법과 시의 구절 등이 자꾸 연상될 정도로 개성이 약한 게 흠이었다.


심사위원 이경철·이산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