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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철학 / 김은정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오늘 갑자기 이 시가 계속 되뇌어졌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겨울의 한 가운데서그리고 인생의 반토막 쯤 되는 곳에서 시를 쓴다.

살고 죽고, 싸우고 웃고 하는 것들이 다 남의 일만 같고, 나는 영악하지도 무르지도 못한 채 세상을 애초에 던져진 모습 그대로 살아내고 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따스한 날이거나,

구름 그득 끼어 흐린 날이거나, 비나 눈이 마른 뜰 앞으로 훵 지나가는 날이면은

이대로 살아주자, 그냥 이대로 살아주자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별도 쨍하게 차가운 날 저녁이나 밤, 따뜻한 이불을 펴고 누워 말없는 천장을 보며

나는 나의 주인인갗하고 묻는 때도 있다. 그런가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 쯤,

묵묵히 벽을 지나가던 무늬들이 아니야라고 진실같은 소리를 내곤 하는데

그만 나는 울컥해져서 혼자 울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기도 겸연쩍어져서는 그냥 잠을 청한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검은 밤의 한가운데서……그리고 내 생의 마지막 날 같이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잃은 두 눈을 껌뻑거린다.

지나간 날들은 다 용서하고 잊어주고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예예 고개를 조아리다가도,

나는 아직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또 혼자 시큰둥한 마음인데,

조그만 방안 나만 홀로 누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울기도 그렇고 하여 맥없이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새벽은 길고도 멀리 있고, 나는 아무 할 말 없이, 밤이 외로운 신발을 신고 떠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사평]

 

작품 수준이 예년에 비해 훨씬 높았다. 특히 김정원, 유미경, 김정미, 송미혜, 김은정 등 다섯 사람의 시는 모두 당선작이 될만했다. 김정원의 시는 대체로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우선 시들이 깨끗하고 선명해서 호감을 준다. 한데 그 시속의 농촌은 오늘의 그곳이 아니고 한 세대 이전의 그곳이라는 느낌이다. 유미경의 시 중에서는 사랑을 덧입었네’, ‘그대를 보내놓고같은 사랑시가 자못 일품이다. 소월 조로서 소월만 못하지도 않은데, 조금 구투인 것이 걸린다. 김정미의 시는 독특한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 되고 있다. ‘합성사진이나 먼지의 방은 그가 일상생활을 어떤 시각으로 포착을 하면 시가 되는가를 알고 있음을 말해 준다. 좀더 정리가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송미혜의 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서 좋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구석이 없다. ‘알미늄 제작소어떤 파산은 소재도 요즈음 시공부하는 사람들과는 아주 색다르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 같은 것도 있고, 정리도 이만하면 깔끔하게 된 편이다. 한데 나머지 작품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김은정의 시는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를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읽다보면 쉽게 시속의 분위기로 빠지게 된다. 그만큼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다. ‘생의 철학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연상시키는데, 덜 궁상맞고 덜 처열해서 오히려 좋다. 조금은 가벼워서 시가 더 산뜻하다는 느낌이다. ‘내 스무 살에는 맑고 풋풋한 사랑 노래로서, 시에 넘치는 젊음이 좋다. 그밖의 시들도 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그의 능력을 믿게 만든다.

 

이상의 시 중에서 심사자는 송미혜의 알미늄 제작소와 김은정의 생의 철학을 놓고 고심하다가 김은정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송미혜의 시들이 오르내림이 심하다는 점이 김은정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김은정의 시는 근래 다른 어떤 신문이나 잡지가 뽑은 신인의 시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심사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당선소감] “남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를 써서 주변인과 나누고 싶습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에 김은정(30·전주시 금암동)씨의 생의 철학이 선정됐다. 당선자 김은정씨(30··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1553-25)는 당선 소식에도 별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그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 책을 좋아한 탓에 대학(전북대) 전공을 문헌정보학으로 결정했고 직업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글 쓰기를 좋아해 자연스레 시를 써왔지만 발표한다거나 응모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김씨는 우연히 지용신인문학상 공모소식을 접하고 큰 기대 없이 응모했다처음 받는 상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선작 생의 철학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다 떠오른 시.

 

누구나 힘차게 살고 싶지만 잘 되지 않잖아요. 자유가 없는 것 같은 삶이란 생각에 약해지는 순간 나온 시입니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 류시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명상적인 냄새가 짙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를 일러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로 사로잡는다고 평할 정도다. 그 역시 이런 말에 부정하지 않는다.

 

지인들은 저더러 이상하다고들 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들 하더군요.”

 

그의 여가 생활은 책 읽기와 명상, 여행 등이 차지하고 있다. 2001년 가을 15일간 휴가를 내고 네팔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

 

지나칠 정도의 차분함과 평온함은 이런 바탕 위에 놓여있다.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거기에 이르는 방법 중 하나가 명상입니다. 내가 편안하면 말이나 행동, 글에도 편안함이 깃들기 마련이지요.”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그는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더라도 깊이 이해되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시집을 내거나 문학활동을 하는 것에도 큰 욕심이 없다.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나 능력이 부족한데도 뽑아 줘 감사할 뿐입니다.”

 

심사위원을 맡은 신경림 시인과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김은정씨의 시가 묘한 페이소스와 무드를 가지고 독자를 사로잡아 쉽게 시속의 분위기로 빠지게 된다"라며 " 생의 철학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연상시키는데, 덜 궁상맞고 덜 처열해서 오히려 좋다"라고 심사평에서 밝혔다.

 

전주에서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는 김은정씨는 전화통화에서 "첫 응모를 한 작품이 당선의 영광을 안아 얼떨떨하다"라며 "평소 시에 음율을 갖다 붙이면 바로 노래가 되는 소월과 지용의 시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용의 이름이 붙여진 신인문학상을 받게 돼 기쁘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지용의 고향인 옥천을 방문해 지용생가와 지용제를 볼 수 있게 돼 더없이 좋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지용신인문학상에는 모두 306명이 290편의 시를 응모했다고 행사를 주관한 동양일보 관계자는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7일 군청 회의실에서 열리며 당선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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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있는 陸橋(육교) 2 / 김미영

 

 

그 육교 위에는 손수건만한 사막 하나 있다 하모니카 부는 늙은 낙타와 눈먼 여자 혼자 온종일 노래 부르는 사막이 있다 다 낡은 스피커 한 대와 동전 담긴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와 냄새 나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검은 선글라스 낀 여자와 등 굽은 낙타 한 마리 있다 이미자의 <열풍>이 휘몰아치는 그 사막을 온종일 걸어가는 카라반 행렬들은 이따금 우그러진 냄비에 어린 빗물을 오아시스처럼 들여다보고 지나간다 높은 빌딩들 선인장처럼 우거진 육교 위, 공중 높이 매달린 전광판 사막 속으로 벤츠 한대 사라지는 오후 즈음이면 온종일 사막을 걸어온 지친 두 사람들 황사바람 날리는 육교에서 사라지고 길 건너편 타클라마칸 노래방 속으로 비틀거리는 두 사내가 등 굽은 낙타처럼 어두운 지하 階段(계단) 속으로 사라진다

 

 

 

 

 

[심사평]

 

심사위원 손으로 넘겨진 많은 원고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몇 편의 탁월한 작품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시를 단순한 배설이나 토로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닌,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감정을 승화시키는 언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 기회에 다시 환기하고 싶다.

 

지용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지용의 감정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조정하고 빚어내는 솜씨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미영씨의 낙타가 있는 육교(陸橋)·2’는 기성시인을 능가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시인의 눈과 손에 잡힌 그 풍경은 슬픈, 가난한, 시인의 표현대로 사막과도 같은 쓸쓸한 현실이지만 시인을 통해 재현된 시적 현실은 아름답다.

 

등 굽은 낙타 한 마리로 표현된 불행한 남정네와 그의 아내가 부르는 구걸의 노래 속에 삶과 현실의 비극을 잡아내는 시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연민, 그 즉물적인 묘사의 능력이 문득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김씨의 또다른 작품 달과 동전역시 뛰어난 작품이고 나머지 작품들도 한결같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 그 앞날이 기대된다.

 

당선자의 자리를 양보하였으나 좋은 작품들을 보내준 분들로 최신화(서울), 이승은(전주), 이인주(대구) 씨 등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심사위원 신경림(시인김주연(문학평론가)

 

 

 

 

시원한 물빛 정장을 한 김미영(29)씨는 시상식장에 올라서선 말을 잇지 못했다. 격한 숨고름까지 잡아내는 마이크가 야속한 듯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채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옥천에는 처음이에요. 정지용시인은 늘 꿈꿔온 시인이지만, 지용제가 이렇게 성대하게 열리는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제 시를 높이 평가해주시고, 지용 이름의 상까지 주신 지용신인 문학상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산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김미영씨는 한 때 시인을 꿈꿔왔던 국문학도 지망생이다.

 

"대학때 응용미술을 전공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지금 하는 인테리어 일도 시적 감성이 필요한 일이에요. 시는 계속 틈틈이 쓸겁니다. 시를 좋아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낙타가 있는 육교2'`달과 동전'은 일상속에서의 느낌들을 잘 다듬은 시. 심사위원인 신경림씨는 김미영씨에 대해 현실묘사가 탁월하다고 밝혔다.

 

"주위 사람들과 사물들을 주의깊게 보는 편이에요. `낙타가 있는 육교2'는 육교위에서 장사하시는 거동불편한 아줌마들과 육교 아래에 굴러 다니는 벤츠 등의 고급차가 너무 대조적으로 보이더라구요. 그 뿌리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다듬은 거구요. `달과 동전'은 삭막한 아파트에서 매일 둥둥 떠오르는 달을 보며 상상을 한 겁니다" 이 날 시상식에는 김순영씨, 김철순씨 등 전 수상자들이 나와 축하해줬으며, 김미영씨는 5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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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 / 박옥실

 

 

한낮이 기울도록

트럭은 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흙먼지 속에 서 있습니다.

하르르. 하르르 몸 눕히는

복사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떠나도 될까요?

아프게 버린 세월이

묵정밥 숙대궁처럼 흔들립니다.

견디지 못한 세월 너머

바람은 다시 흙먼지를 뿌리고

춘양, 꼬치비재, 새발, 복상터...

버려야 할 이름들이 마음을 붙듭니다.

그러나 이젠 떠나야겠지요.

내 가야할 그곳에도

느티나무는 큰 숲을 이루고

저녁이면 성냥갑만한 집들이

환히 불켜고 있을 테지요.

 

 

 

 

7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 `이농'의 작가 박옥실(47·경기도 의왕시)씨는 다른 어떤 문학상보다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는 말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또 문학상이 있게 해 준 정지용 시인과 옥천군, 동양일보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빼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받게 돼 너무 기뻐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작품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대 서창캠퍼스 한국문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박 시인은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 평론가와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에게서 주제의식도 뚜렷하고 세련된 시어들이 경제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많은 수련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적 평가를 떠나 개인적으로 지용의 `곡마단'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 시인은 각박한 세상에서 소외되고 움츠린 사람들, 조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로 시적 소재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작 `이농'도 농촌을 떠나야만 하는 농민들처럼 도시에서 뿌리박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은 담았다고 박 시인은 설명한다.

 

"지용 생가를 찾아 옥천을 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 방문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지용시인의 정신을 이어받은 좋은 시인으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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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춘 / 장재성

 

 

아무 때나 오지 마세요.

찬바람으로

성급히 다가서지 마세요.

당신이 좀 한가로워진다면

부드러운 바람으로

푸르른 보리 물결치는

밭둑을 타고 오세요.

그리고 기분이 좋으면 휘파람을 부세요.

언덕바지 황금빛 나는

누런 황소를 보셨나요.

그런 몸짓으로 그런 눈빛으로

곤륜산*을 바라보듯 천천히

세상이 밝은 날 큰 빛으로 오세요.

당신이 정하신 날 꼭 오세요.

활짝 핀 노란 꽃잎으로

아무도 모르게

곤룡포 한 벌 펼쳐 놓지요.

 

*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하늘에 이르는 은산

 

 

 

 

하늘의 황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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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세광중학교 현직 수학교사인 장재성씨가 제6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장재성씨는 그의 본업인 수학 문제를 풀 때나 시를 쓸 때 같은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수학 문제를 풀 때나 시를 쓰는 것은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고민 끝에 나오는 것이고 문제를 풀었을 때와 시를 썼을 때 느끼는 희열감도 같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수학교사가 시인이 되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자 수학과 시에 관한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장재성씨.

 

"군대에 갔을 때 전우신문에 몇 편을 기고해 보았는데 채택이 되어 실리더라고요." 장씨가 시를 쓰기 시작한 동기다. '외롭고 심심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당당히 시인의 문턱을 넘는 결실로 나타났다. 그는 제1회 지용신인문학상에도 출품해 최종 결선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도 도전했으나 낙방했던 그는 세광고 재직 시절에는 보충수업 등으로 제대로 시간도 못내고 본인 스스로의 좌절감 등으로 3년여간 시를 쓰지 않았다. 세광중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장씨는 시를 쓸 시간을 안정적으로 가질 수 있었고 이번 수상작인 <만춘>은 지난해 가을에 써서 다듬은 것이다.

 

그는 자연예찬론자이다. 자연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수상작 <만춘>은 민들레를 소재로 한 시이다. 정지용 시인을 접한 것은 이제 56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장씨지만 지용의 토속적이고 자연 속에 운률을 담은 시가 좋다고 말한다.

 

공모전 낙방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교사로 만족하자고 다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시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으켜 결실을 이룬 장재성씨는 서인화(50)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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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방에서의 마지막 밤 / 김남용

 

 

행낭으로 건너왔다

군고구마 냄새가 자욱하다

아버지가 군불을 때시나보다

"춥지야? 기다리그라" 구들을 등지고 있으려니

참나무숯 같은 졸음이 밀려온다

방바닥은 황토빛깔로 달아오르고

갑자기 오줌이 마려운 나는

마당에 서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새벽별을 센다

밤새 사령리를 품은 안개가 무지개빛을 띠기 전

나는 행랑을 비우고 약속처럼 떠나야 한다

머지않아 아버지는

이백년 묵은 구들을 들어내리라

"이제 니들도 다 컸은께 입식 해야제"

내년 고향길 구들방에 살 익을 걱정은

비오는 날 하늘을 나는 가오리연처럼 한가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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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 / 최금진

 

 

저녁이면 가래가 그득해진 목이 아프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내 속에 뭉쳐진 욕망의

노폐물 같은 것이다 갈수록 말은 적어지고

퇴근길 혼자 걸어오다 생각하는 하루도

즐겁거나 고단하거나 결국 가래로만 남는다

아내의 부쩍 줄어든 말수도 그렇다

목에 관한 한 우리는 나눌 수 없는 제 몫의 아픔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뿌옇게 눈을 가리고 저녁이 오고 저 황사바람은

잠든 후에도 우리의 이부자리와 옷의 식탁에

수북히 먼지를 쌓아놓고 갈 것이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 파고 들어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인정이란 것도

침묵 앞에선 속수무책

아내가 화장실에서 인상을 쓰며 가래를 뱉는다

잠결에 깬 아이의 기침소리가 깊다

저 어두운 공중 위에는 뿌연 황사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잔뜩 그을은 밤의 램프를

털어 내고 있다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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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태우며 / 김순영

 

 

집안 가득한 먼지를 싸들고 둑 너머 냇가에서 불을 붙인다

등에 업은 찬 기운이 불꽃속에서 이글거리며 타고 있다

꿈틀거리는 짙은 어둠을 본다

명퇴한 아버지도 처진 어깨도

어쩔수 없는지.......

우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진다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를 지른다

남 부끄러워 사방을 본다

이지메를 당한 기분이다

당당하게 얘기하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설익는 감자의 서걱거림이 빠진 어금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작아지는 눈동자 속으로 불꽃이 톡톡 튀어 들어오고 있다

검은 망또 두른 사내가 가끔씩 경적만이 방황하는 가로등 앞에서

취한 듯 비틀거리며 길을 찾고 있다

사과상자 하나가 모습을 잃어가는데 안스럽기만 하다

별똥별 하나가 동쪽으로 길게 고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시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주최하고 옥천군에서 후원하는 제3회 지용신인문학상은 시 쓰레기를 태우며를 출품한 옥천 출신 김순영씨(37·괴산읍 동부리)에게 돌아갔다.

 

지난 13일 권청사 부군수, 박효근 문화원장, 조철호 동양일보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군청 회의실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김씨는 당선패와 5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지용신인문학 상1·2회 수상자 김철순·윤승범 씨, 가수 이동원씨, 괴산문학회 회원 등이 참석해 김씨를 축하했다.

 

김씨는 군북면 증약리에서 태어나 삼양초등학교(28), 옥천여중(30)를 졸업했으며, 친정부모인 김현옥·황종님씨는 현재 옥천읍 금구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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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오래된 집 / 윤승범

 

 

동학난도 대동여지도도, 그런 것들도 지나쳐 간 집

습기없는 이엉에는 이제 구렁이도 참새 떼도 들지 않는다.

삭고 삭아 저절로 부서져 내리는 흙담

돌아서면 키 낮춘 뒷간, 항아리 엎어 놓은 굴뚝

허리 굽히고 살았던 작은 방 두칸

양철 깡통을 주워 만든 화로

말라붙은 담쟁이 넝쿨 밑에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오래된 풍경으로 어울려 있다

 

보이는 것 없는 눈에 진물이 흘러 다섯걸음만 걸어도

숨을 헐떡거리는 할멈 물기 한 방울 없어 오뉴월 땡볕을

잘도 견뎠다 싶은, 그래서 훅 불면 할멈이나 옹기 모두 묻혀 흙이 될 그런, 한내 북쪽 작은 집 한 채

 

 

 

 

 

시성 정지용 선생의 뒤를 잇는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제2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윤승범32증평 형석고 교사씨가 당선됐다. 지난 18일 관성회관에서 개최된 제9회 지용제 본행사에 참석해 수상작인 퍽 오래된 집을 낭송한 윤승범 씨를 만나 보았다

 

 

 

옥천에 대한 첫인상은

 

시 소재를 찾기 위해 옥천을 많이 방문했었다

 

특히 옥천장터를 많이 둘러보았는데 옥천에 대한 첫 인상은 한마디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상소감 및 수상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실력이 부족해 등단 시기를 넉넉히 잡고 있었는데 당선이 되어 기쁘다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섕각을 했다

 

이번에 당선된 퍽 오래된 집은 오래된 집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 및 억눌린 역사 등을 담았으며 국밥은 역사가 묻혀있는 곳인 장을 무대로 소외된 서민층의 삶을 표현했다

 

정지용 시인에 대한 생각은

 

정지용 시인은 우리나라 시단의 새로운 장을 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모더니즘 시인이지만 여러 장르의 시를 섭렵한 분이라는 생각이다

 

고교 시절부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윤씨는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가 고향이며 동국대 국어 교육과를 졸업했다

 

현재 증평 형석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윤씨는 학생들에게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만큼은 꼭 외우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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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 김철순

 

 

애처가로 소문난 김씨가

상처한 지 한 달도 안 돼 새장가 가던 날 하늘이 화를 냈다

 

오랜 가뭄이다

냇가는 이미 물이 마른 지 오래고

밑바닥은 쩍쩍 갈라져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들풀들이 밤의 여자처럼 달라붙어

냇가는 이미 들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물이 떠난 자리에

재빨리 들풀을 키울 수 있는

발 빠른 김씨가 거기 있었다

 

 

 

사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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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꾸준히 시 창작활동을 하는 김철순(59) 시인이 1일 첫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 )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동시집에는 자연과 생명력으로 가득 찬 동시 45편이 제1(팔랑, 봄볕이 떨어진다), 2(내 귀를 물고 달아나는), 3(사과의 길), 4(깍두기 좀 치워주세요) 등 모두 4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김 시인은 이 작품집에서 엄마의 마음과 농부의 마음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곱게 담아내고 있다.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포용력,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동시에서 주전자는 오리로, 국그릇 속의 콩나물은 연못의 올챙이로, 가래떡 뽑는 기계는 두 개의 똥꼬가 달린 이상한 동물로 탈바꿈한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인의 발상에 금세 빠져들고, 어느덧 시인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상투적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용히 해/,/두 귀 달린 냄비가/다 듣고 있어/우리 이야기를 잡아다가/냄비 속에 집어넣고/펄펄펄/끓일지도 몰라/그럼,/끓인 말이 어떻게/저 창문을 넘어/친구에게 갈 수 있겠어?/저 산을 넘어/꽃을 데려올 수 있겠어?('냄비' 전문)

 

냄비의 손잡이가 두 개의 귀로 바뀐 발상이 새롭다.

 

함기석 시인은 그녀의 동시에 관해 "그로테스크한 발상이 낳는 후속 장면이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냄비라는 일상의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 전환이 냄비의 기능과 가치를 바꾸고, 말과 말의 죽음이 낳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1995'1회 지용신인문학상'을 받은 뒤 2011년 한국일보와 경상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다.

 

그동안 '꿈속에서 기어 나오고 싶지 않은 날'(1997),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2003) 2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였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용택, 이상희 시인은 당시 그녀의 동시에 관해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환상적 서사, 소박한 일상의 노래가 자연과 우주를 성찰케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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