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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닫힌 창(窓)

 

류명순

 

저 혼자 산 공기가 두껍다

유리창 깊숙이 뿌리를 내린 먼지의 격자무늬

직각으로 교차한 문살무늬를 지워본다

풍경을 적시던 창, 가만 들여다보면

햇살에 낫을 벼리던 사내들은 간데없고

흑백사진 속에 갇힌 三代의 쑥스러운 웃음만

마른 창틀에 걸려 위태롭다

이따금씩 걸려드는 새털구름 사이로

노랗게 익은 햇살이

빈집의 젖은 추억을 빨아먹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안과 밖의 경계가 두꺼운 침묵 속에 안주하게 된 것은,

굵게 금간 유리창이

툭툭, 상처의 비늘들을 떨어트린다

풍경이 유리창을 적신다

백 년을 지나온 묵은 길같이

바람에 몸 긁히며 길들여진 세월만

가슴에 품고 삭이고 있다

 

풍경이 풍경을 적신다

누군가 젖은 몸 빠져나간 자리마다

노을 가득 밑그림만 남았다

속내를 알 길 없는 오동나무 한 그루가 窓 두드리며 안부를 묻는다

웃자란 유리창의 기억이

꽁지 노란 새 한 마리 푸드덕 날려보낸다

 

 

산복도로 회원이신 로뎀나무(류명순)님께서

<오래 닫힌 창>으로 2010년 제34회 방송대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가 되셨습니다

많이 축하드립니다

 

방송대 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중략)

 그에 비해 류명순의 시들은 어느 작품을 수상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전체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내밀한 시선과 감각, 절제된 언어, 안정된 화법들로 한결 균형 잡힌 세계를 보여준다. 당선작인 '오래 닫힌 창(窓)'에서도 침묵이나 행간의 깊이를 차분하게 읽어내는 눈이 돋보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난하거나 일정한 틀 안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낯익은 발상과 어법에서 벗어나 좀더 과감한 시적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심사평 ;나희덕시인

 

    

출처 :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글쓴이 : 양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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