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부문 당선자 - 박한라
■ 당선소감
병으로 인해 개미 다리조차 튼튼해 보이고 부러웠던 시절,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오직 신과 시만 손을 건넸다. 이상했다. 약보다 시가 내 혈액을 돌아 나를 낫게 했다. 삶이란 이해되지 않으므로 오해할 수 있어 좋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꾸준히 먹어야 오래 살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누구에게 처방을 받았듯이 더 큰 아픔을 주는 시의 처방을 내려주고 싶다. 아픔은 더 큰 아픔이 있을 때 낫는 것. 남의 불행이 나에게 씁쓸달콤한 감각으로 전이해오는 악마의 슬픔을 다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아니, 나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을 거라는 예지로 두려웠으면 좋겠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진실로 시를 사랑하므로, 나는 시로서 계속 번식하고 진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1년 전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붙잡아주시고 ‘너의 시 쓰기는 탁월하다. 그러니 자신을 굳게 믿어라’라고 믿음의 암시를 주신 김명인 선생님께 한없이 감사드린다. 처음으로 너는 시를 잘 쓴다고 인정해주신 이재무 시인님과 대학생 시절 내가 절망했을 때 따듯한 인간애로 상한 마음을 낫게 해주신 손택수 시인님께도 감사드린다. 글의 기반을 닦아주신 김완하 교수님과 정기철 교수님, 항상 믿어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한 부모님과 대학원 지도교수님이신 이혜원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드린다.
■ 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많았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감각의 드라마와 미디어와 영상의 시대에 가려 시의 구심력이 사라져간다는 세간의 흉문에 상관없이 여전히 시를 그리워하고 시가 줄 수 있는 위안과 희망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응모작의 성향이나 시적 수위의 편차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관통되어지는 신뢰가 있었다. 시가 기능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해당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이들은 자신의 삶속에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총 500여 편을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압축되어 올라온 작품들은 <고양이 안테나> <붉은 기호의 행방>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 였다.
민경란의 <붉은 기호의 행방>은 이미지가 활달하고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돋보이는 시였다. 하지만 자신이 대상을 통해 시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모호한 점이 아쉬었다. 좀 더 말하고 싶은 것을 뒤로 숨기고 정밀한 이미지로 집중한다면 새로운 시로 탄생할 거라고 믿는다.
이인호의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는 시어를 고르는 수준이 섬세하고 따뜻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였다. 하지만 동봉한 다른 작품들 중에 상투적인 표현과 일상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술들이 눈에 거슬렸다. 세계를 인식하는 통찰력과 함께 신인으로서 신선한 패기가 보태어진다면 좋은 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박한라의 <고양이 안테나>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별 망설임이 없었다. 응모된 작품 중 눈에 띌 정도로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고양이 안테나>는 고양이털이 수신하는 주파수의 시적 발상이 신선했고 마지막까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적으로 전개해 가는 완성도도 높은 작품이었다. "고양이는 털을 곧추세워 계절을 탄 바람의 끝자락을 강신호로 받아낸다" 같은 표현이나 "전파를 헤엄쳐 온 밤하늘의 음량이 점점 높아진다" 같은 시행은 숙련된 신뢰를 주었다. 응모한 다른 작품의 고른 수준 또한 이 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시의 매혹을 아는 시인이라 조금만 더 집중한다면 멋진 결실을 얻을 것이라 여긴다.
<심사위원 공광규, 김경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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