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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 외 4편 / 최옥자 

연잎 위에 고인 물방울에 거미 한 마리
갇혀 있다. 연잎의 먹이가 되어 허우적댄다
연잎은 먹이가 지칠 때가지 조용히 기다린다
거미의 비명은 물방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몇 겹의 그물 밖에 펼쳐진 여름의 고요에 가 닿지 못한다
기다림의 팽팽한 끝, 거미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긴 다리를 쭉 뻗어 내리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햇빛이 물방울을 증발시킨다
물기 마른 연잎 위엔 죽어있는 거미
어느새 몸을 말리고
느긋한 여름 하늘 끝 거미줄을 친친 감고 있다
죽어서도 멈추지 않는
시방(十方)으로 뻗어나가는 저 생명의 모의(謀議),
죽은 어미 몸에서 새끼거미들이 빠져 나온다
아직 세상의 눈물을 맛보지 못한 몸이 투명하다
어미의 몸에 감긴 거미줄을 찾아낸
새끼거미들이 하나 둘
어미의 거미줄을 타고 연잎을 빠져나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죽지 않는 식욕 

활어가게에서 사온 고등어 등에서 집어등 불빛이 새어 나온다 한 사내의 주름 깊은 가슴이 바다의 기억인양 조명(照明)되고 있다
일렁이는 것들은 녹슬지 않는 것인지 아직도 싱싱한 시간들, 파도가 고등어 등에 바다의 기억을 새겨놓듯 물마루에 걸린 아내 얼굴이 사내의 가슴에 주름살을 만들고 있다

그물을 끌어 올릴수록 더욱 쏜살같이 내달리는 고등어 떼
힘을 주었다 풀어도, 아귀를 벗어나려 필사적인 고등어 위로
뭍으로 달아난 아내 얼굴이 겹쳐진다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는 성깔들이 서로의 가슴에 생치기를 내는 저녁, 도마 위의 고등어가 파닥거리다가 숨을 놓는다
나는 얇게 저민 고등어 살을 꾸역꾸역 삼킨다

상처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솔깃하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시간 

마른 도토리가 두드린다. 갈참나무 그늘아래 펼쳐 놓은 초록빛 보자기 위로 대구루루 구르던 도토리 몇 알, 풋풋했던 여름날의 얘기가 저장된 껍질을 깨고 그대의 시간이 부화를 시작하는 중이다. 날선 칼로 싹둑 자른 듯 나뒹구는 갈참나무가지의 상처 만져보았는가, 도토리 속에 알을 낳고 어느 날 문득 생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린다는 도토리거위벌레, 영문도 모르는 애벌레들은 지상의 제 집 한 채를 야금야금 파먹다가 겨울이 오면 새 집을 찾아 땅속으로 떠난다지. 그날 왜 도토리를 가져왔을까. 유리그릇에 담겨 내 방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겨울을 보낸 도토리, 가끔 흔들어 보았지만 유충은 보이지 않고 희미한 숨소리, 난 그대의 목소리가 도토리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믿었다. 갈참나무가지를 잘라내던 도토리거위벌레의 시간처럼 그대가 얘기하던 57분 동안 지구의 자전 속도가 변하고 있었을까. 갈참나무에 등 기댄 그대 주위를 하루가 공전하고 있었다. 그날의 그대 목소리가 도토리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대가 얘기하는 동안 무심히 흘렀던 57분 동안의 말들은 성충이 되는 과정을 거쳐 내게 돌아온 것이다. 다시 태어난 도토리거위벌레가 어미와 똑같은 삶을 산다 할지라도 그 시간의 눈금들이 정말 같은 의미를 잦는 것일까.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요? 비록 그대 떠도는 곳 알 수 없지만 그대 목소리 힘들 때마다 도닥도닥 내 등 다독여주는데 그것으로 그대의 시간은 충분한 것 아니까요.



게거미*의 7월 

혜화역 3번 출구에 부는 바람은 뾰족하고 눅진해
그 바람 속에서 그녀가 달곰한 냄새를 피우고 있어
꽃잎에 오래 엎드려야 꽃이 되지
꽃잎이 되고서야 향기를 품지

향기도 그물이야
대학로의 풍경이 된, 그녀의 그물 안에는 시간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어
10시가 이기든 오후 3시가 이기든 마찬가지야
아이 업은 포대기 연신 뽀얀 젖으로 적시며 그녀,
그저 하루를 구워갈 뿐이야

국자에 설탕을 녹여, 소다를 섞어, 부글부글
그녀처럼 끓어올라
철판에 붓고 누름판으로 누르면 달고나 달달달달 달고나
노릇노릇 익은 그녀가 별모양을 새기지
7월의 햇볕이 날카롭게 보도블록에 꽂혀 가
아이 입에 젖을 물리도 그늘은 오지 않아
그물 사이를 빠져나가는 시선들이 가시처럼 박혀 가

그녀가 잠시 졸고 있는 사이 낮별들이 떴어
북두칠성이 자꾸만 별들을 만들어내 방금 태어난 게자리별이
집게발 들어 바람의 모서리를 잘라내
북극성 향해 옆걸음질 쳐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사라지지
흔적 없는 그녀의 남편도 저 북극성을 보았을까
오늘도 그녀의 그물 안에는 기다림만 가득하지

* 거미줄을 치지 않고 꽃그늘에 숨에 먹이를 잡으며 게처럼 옆으로 걷는 거미



 펠릿Pellet*

새들은 소화기관을 단순화시켜 몸무게를 줄인다지. 통째로 삼켜 소화되지 않는 먹이의 뼈와 털을 부리를 통해 뱉어낸다지.

융화되지 못하는 단어들이 떠다니는 퍼즐 위로 흰눈썹황금새 한 마리 내려앉는다. 햇살을 삼켰다 내뱉듯 부리를 크게 벌리고 목울대 울컥, 단전 깊은 곳에서 끌어낸 문장의 찌꺼기 뱉어낸다. 귀퉁이들이 떨어져나간 단어 조각들이 삭이다만 문장부호들이 엉겨있다. 바람의 행간에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 삶의 단애, 부득이한 선택이 진화로 이어지고 진리가 지구 밖으로 알려지는 이 순간에도 나는 퍼즐에 매달린다. 내가 배운 유일한 문장은 부패되고 쓸모없어진 지 오래, 퍼즐의 완성을 꿈꾸며 흰눈썹황금새가 뱉어놓은 문장의 찌꺼기 헤집어 보았는데, 넓적사슴벌레 하늘소 풍뎅이의 등껍질조각들, 매미 나비의 날개조각들, 나는 낱말조각들을 그러모은다. 내가 믿은 진실의 팔 할은 거짓말, 암기를 끝내기도 전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문자에 밀려 늘 변두리에서 오그라지고 있는 내가 오늘도 퍼즐 위에 토해내는 시 한 줄 









■ 심사평

이번 신인상 시 부문 응모자는 120여 명에 달했다. 응모작의 전반적인 경향은 제 나름대로 개성적인 어법과 섬세한 표현감각을 지니고는 있으나, 너무 말이 많고 사변적이어서 마치 소설의 한 대목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만큼 복잡다단하고 최근의 시적 경향 또한 이를 부추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와 삶의 진정성이 배제된 이러한 흐름은 혼란만 부추길 뿐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는 중에서도 본심에 오른 고은희, 최옥자, 김혜숙, 안병호, 서근희, 안정윤, 윤범일의 시들은 기성시인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가령, 최옥자의 「그물」, 고은희의 「맨발의 표정」, 김혜숙의 「소리집 풍경」, 안병호의 「뼈」, 서근희의 「茶飯事」, 안정윤의 「툰드라 산 19번지」, 윤범일의 「호떡주의자에게」 등은 대상을 형상화하는 솜씨와 신선한 표현이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러나 안병호의 경우 가족사나 가난의 소재를 다루되 너무 길다는 점에서, 윤범일의 경우 표현의 묘미에만 주력할 뿐 주제의식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었다. 남은 세 사람의 시들은 막상막하여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주로 생태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김혜숙은 “주인이 없어 지나가는 햇볕이 문을 열어주던 트라이앵글 꽃밭”(「트라이앵글 꽃밭」) 같은 빛나는 표현감각과 “붉고 뜨거운 불의 핏물을 다 빼내야 소리의 집이 된다는데”(「소리의 집」) 같은 대상에 대한 깊이를 겸비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주관적이고 불명확한 진술이 마음에 걸렸다. 주로 태생지인 강원도에서의 자기 체험적 요소를 시적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는 고은희는 짧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단호한 어법을 거느린 독특한 문체, 비극적인 서사를 잘 갈무리한 솜씨 등 이번 응모자 중에서 솔직히 가장 발군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심사위원들과 격론을 벌였다. 다만, 「꽝꽝나무 아버지」 같은 경우 너무 긴 가족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다소 주관적 표현 위주인데다가 구체성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만 고은희의 시적 가능성에 계속 주목하기로 하였음을 밝힌다. 당선자로 뽑은 최옥자의 시들은 주로 모성애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섬세한 관찰력과 묘사력 그리고 주제의식이 명확한 게 특장이다. 게다가 언어의 운용이 뛰어나고 「게거미의 7월」처럼 표현의 재미까지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의 생활체험을 시적 진정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러나 시적 완결성 차원에서 아직 미숙한 점도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부디 당선에 취해 자만하지 말고 「팰릿」의 새처럼 좋은 시를 부지런히 토해내어 주목 받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 심사위원 : 최두석, 김선태(글), 공광규, 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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