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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밭 외 5편 / 이용헌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물음표 모양의 쇠갈고리를 들고
폐지뭉치를 퍽퍽 찔러대는 그의 오른손은
의문투성이다

다섯 손가락 중 세 개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 두 개는 엄지와 검지뿐이었다
검은 눈썹 아래 짙푸른 눈망울을 끔뻑이며
온종일 1톤 트럭에 폐지를 싣는 그의 손놀림은
뻘밭을 기어가는 게발 같았다

끼니때마다 그의 왼손에는 바다가 들려 있었다
그가 마른기침을 할 때마다 파도는 넘실거렸다
가끔은 은빛 숟가락을 입에 문 게발이
펄펄 끓는 순두부 사발에 꼼지락거리다가
땡그랑 댕댕, 나동그라지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붉은 노을이 제본소 바닥에 흩어졌다

모르겠어요 이제는 맵지 않아요
그의 혀끝은 이미 바다 건너 두고 온 맛과 키스와
달콤한 모국어를 잃어버렸다
세 개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이후
그는 더 이상 아내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인도양의 푸른 파도가 제본기의 책갈피처럼
펄럭이며 밀려올 때면
그는 공장 한 귀퉁이 폐지뭉치 위에서
낡은 지도책을 펴놓고
엄지와 검지로 바다의 거리를 재기도 하였다



바다의 문장 

‘ㅡ’모음 하나뿐인 속초 앞바다가 진종일 시를 쓰고 있네. 수평선 가득 떠도는 비문非文을 처얼썩철썩 후려치며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네. 달랑 남은 백사장 위에 천 번도 더 썼다 지우는 시, 밀었다 두드렸다 밤새 퇴고推敲를 해도 끝내 한 행을 넘지 못하네. ‘ㅡ’ 아득도 하다는 듯 ‘ㅡ’ 깊기도 하다는 듯, 달빛은 자꾸 허연 지우개가루를 뱉어내네. 철퍼덕철퍼덕 앉았다 누웠다 파도는 빈 종이만 구겨 던지네. 생각하매 나 태어난 생生의 바다도 ‘ㅡ’모음 하나였네. ‘ㅡ’모음으로 누워 젖을 빨고 ‘ㅡ’모음 하나로 옹알이를 하였네. 모음에 자음을 더하거나 자음에 모음을 더하기까지는 무수한 입술들이 스쳐갔네. 행과 행을 넘어 행간을 짚기까지는 아직도 숱한 눈과 귀를 훔쳐야 하네. 태초의 문장은 모음 하나, 속초 앞바다가 온몸으로 태초의 말씀을 풀고 계시네. 까마득한 수평선 위로 낯익은 자음들이 날아가네. 




좌판 스크린  

진눈깨비 날리는 중부시장, 명란젓을 팔던 노파가 졸고 있다
갯지렁이처럼 불거진 손등을 무릎에 포갠 채
꼬무락꼬무락 바다의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물너울 넘실대던 흥남 앞바다로 가는 것일까

스무 살 저편 그녀는 바다를 건너는 게 꿈이었다
한 뙈기 밭두렁에 눌러 붙은 열두 식구의 목구멍은
아버지의 그물질에 달려 있었다
망망창창 아침 바다는 매양 날것으로 반짝였으나
배가 고파요 어머니,
어느 해 겨울부터 어머닌 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다

개마고원을 넘어온 높바람이 밤배를 밀던 밤
물살을 가르는 그녀의 등줄기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물 속에서 팔딱이던 눈 퀭한 생선처럼
그녀의 눈동자엔 물거품이 일었다 지고
꿈을 짚던 관자놀이엔 아가미가 벌쭉거리고 있었다

낯선 포구의 밤이 흐르는 건 시간 문제였다
탱탱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뭇 사내의 알을 배는 일뿐이었다
밤마다 등지느러미를 흔들며 젖은 옷고름을 풀어헤치면
그리움의 자손들이 치어 떼처럼 몰려 왔다
자줏빛 젖꼭지가 퉁퉁 불어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녀는 밤새 낳았던 알을 노을에 절이며 울었다

명란젓이요 명란,
길모퉁이를 도는 바람이 비닐천막의 치마폭을 걷어올리자
한 무리의 명태 떼가 흥남 앞바다를 가르며 달아난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고쟁이 속에서 후훅, 갯내음이 쏟아진다 




너의 나무였다  

하늘 아래 와지직 찌그러지고 싶을 때가 있다
단 한 번 너에게 몸을 허락하고
무참히 던져져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을 담으면 물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이 되고
내 온전히 네 것으로 되는 길은 아득하나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꼭 한 번 몸을 열어 촉촉해지고 싶은 날이 있다
처음부터 나의 생生은
네 목울대 근처를 서성이는 목마른 나무였거나
차마 혀와 입술로 해갈하지 못한
또 다른 고백을 받아 적는 순백의 종이였거니
수천 수만의 꿈 잘리고 말리다가
끝내는 마음까지 척, 비어버린 종이컵이 되었다

알아?
단지 네 입술이 몸에 닿는 순간 미련 없이 열반하는 나 




방하착放下着*                          

백병원 영안실 앞마당, 잿비둘기 한 마리가 언 땅을 찍고 있다
채송화 줄기처럼 연붉은 발가락을 바짓단 밖으로 내놓고

불광동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비둘기가
탑골공원에 나가는 일은 일과 아닌 일과였다
3호선을 따라 무악재를 넘어 종로3가에 이르는 길은
그가 기억해야 하는 유일한 항로였다
기껏해야 빵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노후지만
척신隻身의 그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장기판을 거들거나 사물패를 따르다가도 그는 훌쩍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이 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는
적빈赤貧이 곧 자유였다

방하착放下着을 아시나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이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창공의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은빛 비행기처럼 희디흰
그녀의 처소는 달비듬만 내려앉는 공원벤치라 했다
한때는 축포소리에 맞춰 수없이 하늘로 솟아올랐다는 그녀는
어느 날부터 날갯짓을 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속깃을 씻겨주는 이도 없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싸구려 밥집을 기웃거리거나
근처 낙원떡집 앞을 서성이거나 가끔은 넋 나간 기억으로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이었다

출근길 신호대기 중 횡단보도 너머로 본 그것,
희뿌연 아스팔트 위에 채송화 꽃물 붉었던 그 자리,
오늘 그녀는 이승의 마지막으로 방하착을 알고 갔을까

모가지가 댕강댕강 잘려나간 가로수들이 조문행렬로 서 있는
마른내길 영안실 앞마당,
잿비둘기 한 마리 등솔기를 들썩이며 곡哭을 하고 있다

* 방하착(放下着):일체의 집착이나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불교용어


 

 



금성가구 

  작업실 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내가 마침 금성가구점 앞에 멈춰 서게 되리라고는, 가랑비가 굵어지지만 않았어도 몰랐을 것이다. 가방 속에서 접이우산을 꺼내 펼치려다 우연히 그 집 유리창 안을 훔쳐보게 되리라고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내가 그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쪽이 나에게 보여준 셈이었지만 여하튼 달빛은 이미 허옇게 내뱉은 혼령을 거두어 가고 버즘나무 이파리가 상두꾼을 대신하여 땅을 치던 밤이었다. 어둑한 보도 위에는 진종일 밟힌 시간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 쓰러져 있었고 나는 늦은 문상을 끝내듯 저벅저벅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통유리 너머로 괭이눈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보였다. 입술과 입술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고 눈동자와 눈동자가 서로를 탐조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처음엔 건너편의 네온등이 딸꾹질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그들은 분명 쌍쌍이 궁둥이를 포개고 있었고 번들거리는 대리석 위에서 떼를 지어 교접하고 있었다. 어둠 속 의자들이 밤마다 은밀하게 열락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공공연한 비밀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금성가구를 지날 때마다 금성으로 가는 꿈을 꾸곤 했었다. 가끔은 유년에 즐겨 듣던 트랜지스터라디오도 떠올렸지만 어느 날부터 흘러간 노래 같은 건 가슴에 남겨두지 않기로 했다. 과거를 소멸시키며 가앙가앙 우주로 멀어져 가는 일은 풍구질을 뿌리치고 날아가는 쥐불깡통처럼 뜨겁고 아뜩하였으나 정말이지 한순간에 지상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환상적인가. 허나 금성으로 가는 길은 겨우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멈추곤 했었다.

오늘도 금성가구 앞에는 색색의 의자들이 늘어 서 있다. 아니 앉아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들은 부뚜막의 고양이처럼 다소곳이 앉아 손님을 기다리거나 페르시안 고양이마냥 무료한 하품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낮 동안의 의자들은 청량리나 미아리의 여자들처럼 암고양이 소리를 내거나 절대 다리를 꼬고 앉는 법이 없다. 이제 금성가구 안에 또 하나의 금성이 있다는 건 내 마음 안에 또 하나의 내 마음이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심사평] 현실을 포착하는 힘있는 언어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적었지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 많았다. 오랜 기간 작품을 써 온 흔적이 역력한 작품도 많이 눈에 띄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기관지라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노동과 일상을 서정적 시선으로 포착하고 그려내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는 제법 안정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을 한숨짓게 만든 것은, 고민 없는 서정과 치열한 가치가 보이지 않는 노동, 사소하기만 한 일상의 풍경이었다. 매끄럽고 안정적인 언어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나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튼튼한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은 이들은 송부선, 신호승, 이설야, 심진숙, 이용헌 등 5명이었다.

송부선 씨의 작품들은 안정적인 서정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진부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신호승 씨의 작품들은 개성적인 언어와 리듬이 눈에 띄었지만, 군더더기가 많았다. 이설야 씨의 작품들은 대체로 유년의 풍경을 남다른 시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습작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사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심진숙 씨와 이용헌 씨의 작품들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심진숙 씨는 환상과 현실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안정적인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내 꽃신, 초록물뱀」「파라핀으로 만든 아버지」 같은 작품은 그의 환상이 구체적인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응모작들에 소품이 많고,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진정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점은 그의 단점이었다.
이용헌 씨는 현실을 포착하는 시선에 만만찮은 깊이와 진정성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를 이끌어가는 힘 있는 언어가 그의 장점이었다. 작품마다 편차가 있고, 거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의 진정성과 힘 있는 언어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안상학. 김근.


[당선소감]

꿈속에서도 시를 썼다. 때로는 깜깜하고 때로는 눈부신 무언가가 나를 끌고 다녔다. 몽유(夢遊)의 행려처럼 하릴없이 곤고한 나를 인도하고 지배하는 내 안의 교주는 시공을 넘나드는 시마(詩魔)였다. 눈을 뜨면 쪽창에 걸린 새벽별이 예언의 묵시처럼 가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사이비 신도(信徒), 시시종종 시를 욕보이고 구구절절 문학을 배반하기 일쑤였다. 고백컨대 나는 아직도 사무사(思無邪)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평생을 시인 흉내만 내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함에도 시는 나에게 절망이자 곧 희망이다. 비루한 현실에서 절망을 구걸 없이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시의 힘을 빌리는 일뿐이었다. 궁극적으로 절망의 밑바닥에는 생과 사의 양단(兩端)만이 존재한다. 생을 버리지 않는 한 선택의 여지는 희망 쪽이다. 그 희망 쪽에 목숨을 걸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절망과 슬픔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슬픔의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문학은 결국 상처와 결핍의 이야기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임을 믿는다. 그러기에 나는 사람 냄새가 나는 시를 쓰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악다구니와 하늘의 말씀을 등에 짊어지고도 달팽이처럼 유유히 사유의 늪을 기어가고 싶다. 이제 시를 잃고 흘러간 과거는 나의 이력에서 지울 것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뒤에서 힘이 되어준 풀밭 동인들, 특히 문학에 대한 열정만 믿고 노심초사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배 시인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부족한 글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늦깎이로 다시 출발하는 나를 묵묵히 응원해준 여러 벗들과 광은, 채은 두 아이와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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