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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외 3편 / 김자흔

광화문 사거리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나는 당신에게 꽝꽝꽝 내 마음을 찍어대고, 올 듯 말 듯 당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나는 기다림이 무서워 펄떡거리는 내 심장을 꺼내 길바닥에 펼쳐놓고, 여긴 뜨거운 무덤 속이에요 수증기가 자욱이 깔려 있죠 낮은 목소리로 내가 웅얼거릴 때 당신은 이제 막 졸린 눈곱을 떼내며 느릿느릿 내 심장을 곁눈질하고,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자신이 없는가 생각할 때 공사판 기계가 파르릉 소릴 내지르고 내 젖은 눈썹 위로 푸른 낮달이 흐르고, 숨을 곳을 더듬거리다 나는 기어이 공중전화기 속으로 몸을 숨기고, 오만한 당신이 느리게 나타났을 때 나는 내 작은 몸을 돌돌 말아 구멍 속에 더 깊이 숨겨놓고, 늘 그랬듯이 당신은 눈 한번 꿈쩍없이 뜨거운 입김 하나로 아주 쉽게 숨은 날 찾아내고, 엉뚱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이라서 날 좀 안아 줘요!

당신의 심장 속에 무례하게 날 가두어 버리는
당신은 당신은




목내이

한 구의 살아 있는 미이라를 보았다
인공위성이 찍어보낸 화성의 분화구처럼
숭숭 삶들이 빠져나간 육신의 구멍,
가만히 들여다보면
구멍 뚫린 분화구에 물 흐르던 흔적이 보인다
지금 미이라는 협곡의 물줄기 찾아 헤매는가
숨소리 가랑가랑 잦아들고 있다
활시위를 당겨도 될 만큼
열두 쌍의 늑골을 차례로 누이고
미이라가 앙상한 무릎 뼈를 곧추 세운다
짧은 빛살 분화구 속으로
푸스스 떨어져내리는 살비듬들,
마른 입술이 하얗게 타들어간다
드디어 물꼬를 찾아낸 걸까
힘겨운 손짓으로 미이라가 교신을 보낸다
바쁜 길 어떻게 왔냐고,
송출한 무전을 감지하는 순간
흉부가 거칠게 들썩인다
이마에 가 닿은 손길 황급히 거두며
재빨리 무선 송출을 차단시킨다
분화구를 적시는 뜨거운
눈물!

폐암 구멍에 링거줄 하나 꽂지 못한
한 구의 미이라,
그 미이라가 더듬더듬 협곡의 물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초조(初潮)

엄마는 샘물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나는 방안에서 기어 나와 엄마를 불렀다
엄마, 목이 말라요
얘야, 저 복사꽃이 빨갛게 터져 나와야 한단다
엄마는 샘물가에 있는 복사꽃나무를 가리켰다
엄마, 내 몸에도 열꽃이 번지고 있는 걸요
나는 샘물 앞에 엎드려 힘들게 목을 축였다
샘물 돌 틈 사이로 알 밴 가재가 들락거렸다
엄마, 저 알 밴 가재가 먹고 싶어요
무슨 부정 탈 말을……
엄마가 끙, 일어나 되돌아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복사꽃이 톡톡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엄마, 속이 자꾸 메슥거려요
나는 웩웩 게움질을 해댔다
이젠 때가 되었구나
엄마가 똬리를 풀어 탁탁 물결을 치자
알 밴 가재가 빨간 새끼들을 쏟아냈다
새끼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엄마를 한 입에 삼켜버렸다
나는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렸다
아랫도리로 뜨거운 열꽃이 마구 터져나왔다




아버지의 우화

아버지 똥간에 빠져
온 집안을 인분 냄새로 진동시켰다
똥간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웠던 날을
전부 잊은 듯,
아버지 술버릇은 여전히 고약해 툭하면
똥간으로 기어들었다
여름내 바글대던 구더기,
오글오글 아버지 목을 타고 올라왔지만
끝내 돋지 않는 아버지의
겨드랑이 날개,
아버지는 똥파리도 되지 못했다
겨우 앞다리 비비는 소리로 낮게 웅얼거릴 뿐이었다
똥간에서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윗방에 누이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웠다
친구가 사립문에 와서 나를 불렀다
친구는 별 내색이 없었다
고구마광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겨드랑이에 조금씩 날개 돋는 것이 보였다
섣달 그믐이 지고 있었다


 



[심사평]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선명한 이미지

시집을 읽어내는 독자들은 줄어들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이번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는 홍보가 미흡했는데도 불구하고 1백여 명의 시 천여 편이 응모되었다.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들은 크게 보아 자연 서정 계열의 시들과 환상성을 흡수한 시들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었다. 현실이 반서정적이라서 그런지 자연에 대한 열망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시들이 많았다. 대개 현재의 자연과 기억 속의 자연을 오가며 본질적 삶을 탐구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는데, 모티프나 화제의 참신성이 부족하고 과도한 감정이입을 발견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시 밑자락에서 송가(頌歌) 풍의 배음(背音)이 흘러나오거나, 시 전면에 교훈적 메시지 등이 노출되어 쉽게 자연과 합일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투영하는 미적 새로움이 부족했다. 한편, 어두운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환상시들도 눈에 띄었다. 환상적인 조형기법을 이용하여 황폐한 내면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 현재와 미래에 비전을 열어줄 치열함 대신 개인적인 내면의 비극성 앞에서 좌초하는 경향이 많았다.
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밀고 올라오는 것이다. 시적 대상과 내면의 관계가 분리되지 않고 혼융되면서 육체와 영혼을 함께 표현하는 것이다. 본심 심사는 이런 관점에서 시읽기를 꼼꼼히 하였다.
본심에서 집중 거론된 신인은 세 명이었다. 김산옥의 「앵무새 재우기」외 9편, 문채영의「바닥은 흐른다」외 9편, 그리고 김자흔의 「사랑에 관하여」외 9편이 경합하였다.
김산옥의 시들은 대상에 대한 꼼꼼한 묘사를 통해 이미지의 결합을 시도한 점이 좋았으나, 시인이 의도하는 바가 불투명하고 소품에 그친 경향이 있다. 물론 시는 그 자체의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그 안에 숨겨진 다채로운 의미가 언제든 격발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될 것이다.
문채영의 시들은 김자흔의 시들과 함께 끝까지 선자들을 고심케 하였다.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시적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문채영의 시들은 이번 신인상에 응모된 투고작 중에서 가장 안정감이 돋보인다. 표현도 오랜 사유 끝에 나온 것들이라 끝까지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바닥은 흐른다」, 「어느 노인의 목욕」 같은 시는 완성도나 이미지를 결합하는 능력에 있어 빼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가령 「어느 노인의 목욕」은 관계는 관계이면서 관계가 아닌, 헛껍데기의 인간 관계에 대한 비유이다. 치매 노인과 간병인 여자와의 관계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서로 유용한 경제 수단으로 관계를 맺는 것임을 보여준다. 다만, 자연 서정에 흐른 시편들에서 보이는 안정감이 다소 상투성으로 흐른 측면이 있다.
김자흔의 시편들은 문채영에 비해 안정감은 다소 부족하다. 「사랑에 관하여」, 「목내이」, 「초조(初潮)」, 「아버지의 우화」등이 다채로운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비교적 자신의 감정과 현실을 통어하였으나, 다른 시편들은 그 이미지들이 응축되지 못하고 풀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감정이 분출되는 대로 내뱉는 것 같으면서도 표현하는 방식이 새롭고 시적 패기가 있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숭숭 뚫린 구멍에서 생명의 물길을 발견하려는 「목내이」나,「초조(初潮)」의 ‘샘물 돌 틈 사이 알 밴 가재’와 ‘복사꽃’의 대립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번 심사는 분출하는 이미지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랜 고심 결과 김자흔의 시를 당선작으로 내밀게 되었다.  
아깝게 탈락된 문채영에게는 격려를, 김자흔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 안도현(우석대 문창과교수․시인),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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