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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비석 / 고영윤
아버지 반듯하게 누워계신다
생전 소원하던 그 곳에, 아버지
명조체로 또렷이 새겨져 누워계신다
묘지를 찾아갈 때마다 길을 잃는 나를
조용히 꾸중하는 넓게 도열한 비석들
언제나 아득하고 엄숙한 풍경 속
아버지 꼿꼿하게 서 계신다
생물 오른 진초록의 수풀들이
제 키를 우쭐대는 6월이 오면
여름의 초입보다 먼저 나를 방문하는
우뚝 반듯한 아버지의 비석
사나운 신록의 눈부심 속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의 생생한 기억을 솎아낼 것이다
아버지의 풀물 든 젊음을 찾아내어
차가운 물수건으로 꼼꼼히 닦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반성해도 되돌아서면
잊어버리고야 마는 묘지 가는 길
엄격하게 각이 진 비석으로
육신을 버려서도 끝끝내
일렬횡대, 일렬종대
끝 간 데 없는 진군의 당당함
태양의 사열의 받는
무수한 아버지들의 생전
행군의 군화 발자국 소리 듣는다
지치지 않는 생솔가지 알싸한
젊음의 고결한 용맹을 엿 본다
영원히 닳지 않을 희생의 행진소리
서로를 달랬을 군가의 콧노래 소리
6월의 바람 속에 섞여 먼 하늘까지 다다를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운 마음에 어렵게 뒤돌아 본
반듯이 서 계신 아버지의 비석
나를 배웅하신다.
여전히 엄숙한 군가소리에 맞춰
태양, 태양 속으로 전진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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