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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는 잠들지 않는다 / 조미희


현충원의 주말 아침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문을 연다.
이 땅의 가장 숭고한 숨결
이 땅의 가장 뜨거운 심장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려고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곳은 묘지가 아니다
이곳은 죽은 자의 휴식처가 아니다
이곳은 통곡하는 어머니와
형제들의 비애의 땅이 아니다.
이곳은 선홍색 피를 토하며 쓰러진
이름 모를 병사가 잠들지 않았다.

어머니를 부르며
사랑하는 연인을 부르며
애통하게 죽어 간 그들의 주검은 이곳에 없다.
부러지고 터지고
총탄이 뚫고 간 몸은 없다.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의 아카시아 꽃향기가
희미하게 흐려지는 정신을 모질게 붙잡던
그날의 어린 병사는 없다.
밤마다 정화수 떠놓고 삼백예순다섯 날
두 손 닳도록 기도드리던
그 아들은 없다.

 

여기는 조국을 위해
살을 내어주고
뼈를 내어주고
피를 내어준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들만 있다
거친 폭풍우 온몸으로 막아 준
용감한 조국의 아들들만 있다
어머니의 기적의 기도로 키워진 아들이
이 강산에 개나리를 피우고
진달래를 피우고
우리가 밟지 않은
골자기마다 온갖 꽃을 피우게 한
그 아들이 있다
이 강산에 제 몸의 혈액을 송두리째 수혈해
21세기의 꽃을 피우게 한
장하고 장한 아들이 있다.

 

어머니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이
이 땅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며
김 병사 이 일병 박 중사의 이름을
부르며 따뜻한 현충원의 봄날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군인이 있다.

 

세계 속에 겨레의 꿈을
꽃 피워준 대한민국의 군인이여!
그대들 군인은
아직도 잠들지 않고
조국의 심장에
징소리처럼
북소리처럼
둥! 둥! 둥!
힘차게 울립니다
겨레의 혈액을 타고
유구히 흐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군인이여!

 

 

 

 

 

아직도 뜨거운 노래 / 황인숙

 

여기,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꺼지지 않는
너무도 뜨거운
노래가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비식처럼
장엄한 황혼이 일어서고
유월의 뜨거운 한철이
보릿고개 사이로 걸어올 무렵
한사코 풀잎을 흔들어대던
바람의 소원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님이여, 여기 뼈를 묻으셨나요
고향을 손질하던 손 뼈 마디에
방아쇠 걸고 분주히 나섰던
곧은 그 뼈를 여기 묻으셨나요

님이여, 여기 꿈을 심으셨나요
구름처럼 솟아오르던
그 꿈을
애국이라는 제단에 심으셨나요

고향 동구(洞口)를 작별할 때에
울컥 터지던 첫사랑 소녀의
울음을 뒤로하고
군가에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정열로 불타는 이글거리던 눈빛

아, 장렬하게
타관 땅 하늘 아래
죽음으로 맞이하던
사나이의 소망이
여기 잠들어 있나요

 

일찍이 선조들은
묘향산 제단에
향연 올리며
곰발바닥 같은 손 비벼
역사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말라고
단일(單一)하라 백의(白衣)하라
그 음성 귓가에 아직도 쟁쟁한데

 

언제나
나의 적(敵)은
내 안에 있어
님들을 맞아 줄
따뜻한 검은 흙 한줌
보태주지 못한
부끄러운 내가 적이었습니다

 

피비린내로 얻어낸
자유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고
님의 꿈과 소원을 져버린 채
미온(微溫)했던 나의 무관심을
여기 제단에 사르겠습니다

 

아, 여기
종이에 옮기기엔
너무나 뜨거운 노래를
님들을 기리는
제단에 올립니다
님이여!
길이길이 영복(永福)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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