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富洞 가는 길 / 임종훈
고향인 왜관 읍에서
908번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다부동이 있다.
차를 타고 달리면
불과 십여 분의 거리이지만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오십 년쯤의 시간이 필요하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경건하게 하여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금 이리도 푸르른 祖國이
한 때,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했던 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가야 한다.
이곳에 와서는
祖國이라는 말을 가볍게 말하지 말라.
가까이 보이는 遊鶴山의 진달래꽃이
그때 흘린, 젊은 兵士들의 피로
온통 핏빛을 띨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천천히 말하라
이름보다도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祖國이었음으로
비 오듯 쏟아지던 포탄을 뚫고
두려움 없이 前進을 거듭하다가
이 들판, 저 高地 어디쯤에서
이름도 없이 뜨거운 피 쏟으며
장렬하게 散花한 것이 아니었더냐.
와서 보면 알겠지만
그 처절했던 한 때를 기억하고 있는
이곳, 다부동의 땅과 하늘은
高貴한 피와 忠魂으로 하여
아직껏 붉다.
고로쇠나무 / 김찬순
지리산 깊숙한 빨치산들이 숨었다는 숲,
재선충에 병든 고로쇠나무들이
옹이가 총알이 박힌 것처럼 흉흉한 그루터기가 되어있다.
삭정이 몇 개 툭툭 팔처럼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아랫도리 다 드러난 그루터기들
돌무지에 눌려서 벌건 녹물을 흘리고 있다.
수통의 빨대를 무수히 꽂은 고로쇠나무,
얼마나 맑은 피를 흘리는 희생을 겪은 것인지
살갗이 벗겨진 상처들을 붕대로 감고 있다.
산불에 까맣게 그을린 것이
영락없이 토벌 나왔다가 팔도 다리도 잘린
군인처럼 목발을 짚고 서 있다.
봄 햇살은 활시위를 당기는 양 탱탱한데
그루터기들은 폭격기에 날아간 탱크 뚜껑같이 너부러져 있다.
가느다란 햇살들은 솔가피처럼 부서져 내리는데
지리산 골짜기, 상처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고로쇠나무?소나무?전나무들
줄줄이 계급장 뗀 퇴역 군인들처럼
비탈진 산언덕을 내려오고 있다.
진달래 철쭉꽃이
혼불인 양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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