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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사랑법 / 이정원
독을 묻었네
마당을 파고 김치독을 묻었네
흙에서 난 배추를
흙으로 만든 독에 담아
다시 흙에 묻었네
흙은 독을 발효시키고
독은 배추를 발효시키고
배추는 나를 발효시킬 것이네
맛이 깊어질수록
독은 점점 제 속을 비워
나를 끌어당길 것이네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는 독 안으로
한없이 꺼져들어갈 것이네
깊은 무덤 / 이정원
풀섶에 숨어 있는 호박 한 덩이
반점이 푸릇푸릇하다
검버섯 가득한 노파가 풀 무덤 속에서
물결 주름 바싹 야위고 있다
노파의 몸 어느 구석에선가
맑은 풍경소리 들린다
마른 풀들이 품고 있는 미라 한 구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품은 것들은
저렇듯 썩지도 않는구나
바람결에 시나몬* 냄새,
마른 풀들을 잔디처럼 덮어주었다
* 시나몬: 미라를 만들 때 쓰던 계피향의 방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