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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은애

졸졸 고이는 산 개울물
운 좋아 비 맞으면 철철 넘치는.
 
80포기 배추는 소금도 쓸리지 않은 채
어느샌가 항아리 속 김치로 드러누었고
장갑 한 번 끼어 보지 못한 어머니의
얼은 손 맛은 한끼에 한 포기가
뿌리 째 없어졌습니다.
 
살좀 찌라며 가끔씩 닭을 잡으시는
새벽 문 열리는 날은
어김없이 손 두덩이 찢겨진 채로,
내 유년시절 간간히 책장을 넘기실 때는
소르르르 떨리던 고운 손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남의 집 살이를 하시면서
이딸년 공부시키느라 아픈것도,
힘든것도 없다 하시더니.
 
......몰랐습니다.
굽어 취어진 묵은 어머니의 손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전 굽은 길은 위험하다며
바른 길로 두손 꼬옥 잡고 먼저 발 내 디시던.
 그 따뜻한 어머니가 휘어진 채로
배추 김치 한 줄기 바로 잡지 못하셨습니다.
첫 눈 오는 날 첫 사랑 만나시라고 손녀딸이 곱게
얹어준 봉숭아조차
세 번 네 번에도 고운 빛을 머금지 않으셨습니다.
 
엊그제
푸욱 삶은 닭을 어머니 상에 놓았습니다.
껍질과 살을 발라 내시는 손은
보내 버린 세월을 탓 해야만 했습니다.
 
아상한 마디마다 살을 채워 주시고,
이제 와 남는 사랑 손주 녀석만 아시는
나의 전지나무. 굽은 손에 간직해온 사랑 앓이에
장갑 한 번 끼워 드리고 싶어
장만했습니다. 제일 큰 치수로.
 
가까이서
떨어진 낙엽을 파랑색에 맞추려는 듯,
하늘 한 번 높이 보고
집게로 파르르 집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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