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心道心論爭
1. 인심도심 논쟁의 연원
인심도심이라는 말은《서경》<대우모>에서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성을 다하고 하나에 집중해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는 구절에서 연원한다. 이것은 자기 내부의 도심과 인심을 뚜렷이 구분하여 오직 도심으로 중심을 잡고 성실히 행하여야 사물에 가장 합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심도심이라는 주제가 유학에서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중요한 논쟁거리가 된 것은 주희가 인심도심에 대해 그 의의를 서술하고 부터이다. 주희는 인심이란 대체로 인간의 신체적 기운에서 생기고, 도심은 선천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에서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이 도심이고, 그 자체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지만 신체의 기운과 욕구에 따라서 부도덕하게 될 위험이 높은 것이 인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도심은 선하다고 할 수 있고, 인심은 선한 경우와 악한 경우가 함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주희는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해야 한다(存天理去人欲)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나흠순은 자신의 기철학적 입장에서 정이와 주희의 리기이원론을 비판하고 리기를 혼연일체로 보는 정호의 관점을 받아들여 리기란 실체가 아니며 기의 법칙에 불고하다는 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나흠순은 주희 등 리기이원론자들이 성을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는 것을 비판하면서, 심성을 두 가지로 보는 것이나 한 가지로 보는 것이나 다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는 심을 제외한 성도 없고 성을 제외한 심도 없다고 하면서 오직 한 가지 가운데 두 가지를 분석해야만 성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나흠순은 도심을 양지(良知)라 한 왕수인의 이론은 체용(體用)을 혼동하고 기를 리라고 한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주희는 인심이건 도심이건 모두 이미 발동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나흠순은 도심은 성이요, 인심은 정이라고 하여 도심은 미발(未發)의 상태요 인심은 기발(旣發)의 상태라고 보았다. 또한 나흠순은 도심은 체이므로 지극한 정체(精體)를 볼 수 없어 은미하다고 하였고, 인심은 용이므로 그 지극한 변화를 헤아릴 수 없어 위태롭다고 하였다.
2. 인심도심 논쟁의 전개
인심: 사람의 마음 / 도심: 하늘의 마음 |
내재론적 기일원론: 심성일물, 이기일체 |
주희, 정이 이언적 이황 성혼 |
나흠순, 정호 조식 노수신 이이 |
(1) 이언적과 조식의 논쟁
이언적의 논의는 주희의 학설을 답습하였다. 이에 대해 조식은 이언적이 귀, 눈, 입, 코의 욕망을 사욕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귀, 눈, 입, 코의 욕망이 생겨나는 것은 성인이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천리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착하지 못한 쪽으로 기울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심과 도심의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형기(形氣)와 의리(義理)의 차이로 인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욕(人慾)이라 하지 않고 인심(人心)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이언적의 논의는 이후 이황과 성혼으로 이어지고 조식의 논의는 이후 노수신과 이이 그리고 윤휴의 입장으로 이어진다.
(2) 이황과 노수신의 논쟁
이황은 나누어서 말한다면 인심은 진실로 형기에서 발생하고 도심은 진실로 천성의 올바름에서 근원한다. 합해서 말한다면 도심은 인심 사이에서 섞여 나오는 것이니, 실상은 서로 발하는 것으로서 판연하게 두 가지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황은 다른 글에서 인심과 도심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즉 인심은 칠정이 되고, 도심은 사단이 된다고 말하면서 인심도심을 사단칠정과 연결시키면서 자신의 이원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1)
이황의 인심도심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한 가지냐, 두 가지냐 하는 논리적 일관성과 이론적인 치밀성보다는 그가 이 논의를 통해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했다는데 있다. 그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인심과 도심을 구별하여 도심과 사단을 인심과 칠정보다 우위에 놓아서 마침내는 도심을 천리의 보존이라는 경지로까지 높이고자 한 점이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이황의 인심도심설에 맞서 노수신은 나흠순의 견해에 동조하여 인심이 인욕이라면 도심은 이미 발한 것이라고 해야 옳지만, 인심이 선악을 겸했다고 한다면 도심은 아직 발한 것이 아니라고 해야 옳다고 하고, 또 인심은 선악을 겸했다는 주장에서 본다면 반드시 도심이 체가 됨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하였다.
(3)성혼과 이이의 논쟁
이황과 기대승과의 사단칠정논쟁이 끝난 지 6년 후인 1572년 성혼이 이이에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그 타당성을 물었는데, 이것을 시작으로 6년에 걸친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 논쟁은 먼저 성혼이 이이에게 리기론에 대한 문제를 묻는데서 출발하여 인심도심논쟁으로 번져 나갔다.
성혼은 사단은 리가 발동하여 기가 그것을 따르는 것이므로 본래부터 순수한 선이요 악이 없고, 반드시 리의 발동이 완수되지 못해서 기에 가려진 연후에 흘러 선하지 않게 된다. 칠정은 기가 발동하여 리가 그 위에 타는 것으로 사단과 마찬가지로 선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의 발동이 절도에 맞지 않아 리를 없애 버리게 되면 방탕해서 악이 된다고 한 것을 두고 리기의 발동이 처음에는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기가 절도에 맞지 않게 된 뒤에야 마침내 악으로 흐르는 것일 따름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는 대체로 이황의 견해를 따른 입장으로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는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이는 이(理)는 기(氣)를 주재하고 기는 이를 태우는 것이며, 이(理)가 아니면 기(氣)의 근저가 없고 기가 아니면 이가 의지할 데가 없다고 하면서, 천지의 변화에 두 가지 근본이 없듯이 마음의 발출에도 두 가지 근본이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이기호발설을 부인하였다.
또한 성혼은 인심 도심의 구분과 사단 칠정의 구분이 서로 대응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사단 칠정은 성(性)에서 발하고, 인심 도심은 심(心)에서 발한 것이어서 발원처는 다르지만 이미 성현의 말에 모두 주리설과 주기설이 있으니 사단 칠정을 이(理)에서 발하고 기(氣)에서 발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이는 성혼의 사단 칠정과 인심 도심의 비교는 잘못된 견해라고 하면서 이 양자의 관계를 편의상 구분하면, 사단은 도심만을 말한 것이고, 칠정은 인심과 도심을 합하여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단 칠정을 주리, 주기로 말할 수 없으니, 그것을 이기로 다시 말하면 사단은 주리라고 할 수 있지만 칠정은 이기를 포함하는 것이어서 주기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이는 성혼의 주장이 이황과 같이 발원처를 두 가지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기승이발일도설만을 주장하였다.
1) 이러한 이황의 입장은 리와 기에 대한 주희의 태도에 따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희는 리와 기를 리기론에서는 한 가지 것으로, 심성론에서는 두 가지로 논의했다고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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