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철학
1. 데카르트의 생애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의 조그만 도시 투렌느(Touraine)의 라 아이(La Haye)에서 태어났다. 데카르트가 살았던 17세기는 지적인 활동이 활발한 시기였으며, 그의 동시대인 중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막 완성한 셰익스피어와, 그의 유명한 실험을 행한 갈릴레오와 같은 지성계의 거장들이 있었다.
데카르트 가문은 오랫동안 행정관리로 복무한 대단치 않은 귀족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브리타니 의회의 의원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그는 일생동안 재정적으로 독립하기에 충분한 재산을 유상으로 물려받았다.
1642~12년까지 데카르트는 제수이트교(敎)의 라 플레슈(La Fleche) 대학에 다니면서 고전어와 수학 그리고 철학을 연구했다. 그는 자신이 수학에 깊이 끌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후에 그는 실제로 수학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리고 그는 수학 이외의 학문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만스러워한 나머지 자신이나 세계라는 위대한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만을 추구하기로 결심하면서 이러한 학문들을 포기하였다.
라 플레슈 대학을 떠나면서부터 데카르트는 푸아티에(Poitiers)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1616년 법학 학위를 받았다. 여기에서 그는 도박과 여행 그리고 결투에 심취했었다. 이런 생활에도 이골이 난 그는 군에 입대하여 30년 전쟁에 참여했으며, 신교 휘하에 있는 군과 구교 휘하에 있는 군 양쪽에서 군복무를 하고 1621년에 제대한 후에, 학문과 여행에 전념하였다. 마침내 외부와 차단된 생활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껴 그 당시 문화와 지적인 자유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에 정착할 결심을 했다. 그 후 20년 동안(1629~49) 이곳에서 그는 그의 명성을 드높였던 작품들, 즉 《방법서설》(1637), 《제1철학에 대한 명상》(1644), 《철학의 원리》(1644),《정념론》(1649)과 같은 작품들을 저술했다.
1649년경에 데카르트의 명성은 대단해서 그때 나이 22살인 스웨덴의 크리스티나(Christina) 여왕이 자신에게 철학을 가르쳐 달라고 그를 초청했다. 그는 스웨덴에 가기를 주저했으나, 그녀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그를 데려갈 배를 보내어 그는 할 수 없이 스웨덴으로 갔다. 그러나 그녀가 철학 강습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아침 5시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정오까지 잠을 자는 습관이 있는 데카르트에게 새로운 생활습관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더구나 강의 장소는 추운 도서관이었다. 결국 데카르트는 폐렴에 걸려 죽었다. 그 때 나이는 54세였다.
2. 정초주의(foundationalism)
데카르트에 따르면 어떠한 믿음이든 간에 그것이 지식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절대적 확실성’과 같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 기초적 지식이 존재해야 하며, 나머지 지식들은 그 기초와 어떤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이를 토대주의적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지식을 확립하려는 것으로 데카르트 이후에도 인식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되었다.
데카르트적 토대주의의 핵심은 기초적인 믿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과 다른 믿음들의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그 기초적 믿음에 의존해서 확보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기초적이지 않은 믿음들이 정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적 믿음과 특정한 관계에 놓여야 하며, 그 관계는 연역적 추론방식을 따라야 한다. 말하자면 기초적 믿음과 기초적이지 않은 믿음이라는 두 종류의 믿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기초적이지 않은 믿음은 기초적 믿음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되어야 한다. “정당성의 원천이 되는 기초적 믿음이 존재하고, 다른 모든 믿음에 의존할 때만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라는 두 가지 사항이 토대주의의 핵심이라면, 기초적 믿음은 정당성의 원천이 되기 위한 특정한 속성을 가질 때만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여타의 믿음은 기초적 믿음과 모종의 관계를 가질 때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경우에 정당성이 확보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전자의 경우 그 정당성이 스스로 확보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그 정당성이 의존적으로 확보된다.
그런데 이런 데카르트의 토대주의가 성립되기 위한 관건은 무엇보다 기초적 믿음의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에 있다. 왜냐하면 기초적 믿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믿음은 기초적 믿음에 의존하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이런 기초적 믿음이 다른 믿음에 또 다시 의존하게 될 경우 그 믿음은 정당성을 제공받는 믿음, 즉 의존적인 믿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더 이상 기초적이지 않게 된다.
토대주의를 본질적으로 규정짓는 것이 다른 어떤 믿음에도 의존하지 않는 기초적 믿음의 자기정당화 가능성에 있다면, 토대가 되는 믿음은 다른 믿음들이 갖고 있지 않는 어떤 특징 혹은 속성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데카르트는 기초적 믿음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그런 특징들을 제시하는데 확실성, 의심불가능성, 오류불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특징들을 갖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정당화의 근거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믿음을 찾기 위해 ‘방법적 회의’혹은 ‘회의적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진 여러 믿음들 가운데 토대의 구실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결정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어떤 믿음이든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일단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의심될 수 있다면 확실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토대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면 그 믿음은 확실한 것이고, 따라서 토대의 구실을 할 수 있다.
내가 모든 것이 의심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은 곧 사유의 주체로서 자아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가 너무나 견고하고 확고해서 모든 의심가능성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보고, 또한 철학의 제1원리(prima philosophia)로 결코 손색이 없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의심불가능성을 지식의 토대로 삼는다.
3. 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우리가 학문에 있어 지금까지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을 의심을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철학체계를 정립시키기 위한 사고실험을 시도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른다. 방법적 회의란 확실한 앎을 얻기 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서 ‘방법적’이라는 말은 어떤 계획이나 의도 하에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다소 전략적으로 요령 있게 펼쳐보겠다는 뜻이고, ‘회의’란 말 그대로 어떤 대상들에 대해서 ‘의심’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회의는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들이 말하는 염세적 성격이 강한 그런 ‘회의’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방법적 회의’란 의심을 함에 있어 아무렇게나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획이나 의도 하에서 전력적인 방법으로 의심을 해보겠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먼저 데카르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감각적 경험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지식’과 사유작용으로 얻을 수 있는 ‘오성적 지식’으로 구분하면서 이러한 지식들이 과연 확실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 지식 전부가 포함되어 여기서 얻게 되는 확실성은 참된 진리로 받아들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감각적 지식에 대한 회의
데카르트는 감각적 지식의 확실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2가지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우리의 감각적 지식의 일부는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겨울 외투를 입고 난로 가에 앉아 있다는 것, 이 종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감각적 지식은 착각이나 착오로 인해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예로써 미세하거나 먼 곳에 있는 사물의 형태를 다른 모습으로 착각했던 경우를 들고 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지식들 중에서 하나라도 불확실한 것이 발견되면 그 지식의 전체를 명석 판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전략적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이로써 감각적 지식은 불확실한 것이 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신체를 가진 내가 확실한 감각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활동의 확실성을 검토하기 위해서 데카르트는 ‘꿈의 가설’을 도입한다. 잠을 자고 있을 때 우리는 종종 현실세계와 꿈속의 세계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악몽을 꾸면서 그 극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 쳤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실세계와 꿈속의 세계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내가 지금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세계가 꿈속의 세계가 아니라고 보장받을 수 있는 그 어떤 징표도 찾을 수 없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즉 우리는 현실세계와 꿈속의 세계를 구분해 불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감각적 지식의 현실세계는 꿈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사실 꿈의 가설은 데카르트가 감각적 지식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쐐기를 박기 위한 장치로 고안된 것이다.
(2) 오성적 지식에 대한 회의
감각적 지식과 독립해 있는 오성적 지식은 꿈속에서도 여전히 확실성을 보장받는다. 꿈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2+3=5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오성적 지식의 불확실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우리의 사유를 완전히 통제시키고 조장하는 악마를 가정하는데 이러한 사고실험을 ‘악마의 가설’이라고 부른다.
오성적 지식의 불확실성 역시 감각적 지식에서처럼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수학적 계산을 하면서 가끔씩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완전성이며, 그 자체로써 명석 판명한 지식이 될 수가 없다. 둘째는 우리가 수학적 계산을 할 때마다 악마가 개입하여 2+3을 자꾸만 4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거나 삼각형을 두고 사각형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가정이다. 이처럼 악마의 가설도 역시 우리가 사유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 즉 오성적 지식에 대한 불확실성에 쐐기를 박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우리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지식들은 그 어떤 곳에서도 확실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가운데 참으로 성립하는 지식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참된 지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데카르트는 회의하는 자신에게로 시선의 방향을 돌린다. 감각이 착각이나 착오일지라도 착각이나 착오를 일으키는 대상은 존재한다. 악마의 조정과 통제로 인해 우리의 사유작용이 매번 잘못을 범할지라도 그렇게 잘못을 범하는 주체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ego sum, ego existo)는 명제는 어떠한 경우에 직면을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라 불리는 사고실험을 통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이 명제를 자신의 철학 제1원리로 삼아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의 황금시대 이후로 거의 2000년 동안 빈사상태로 잠자고 있던 철학을 단잠에서 일깨우고 ‘근세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와 작위를 수여받았다.
(3) 요약
방법적 회의란 확실한 앎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방법적’이라는 말에는 계획과 의도 속에서 요령과 전략을 가지고 무엇을 한다는 뜻이 들어 있고, ‘회의’란 보통 의심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방법적 회의란 회의를 함에 있어서 아무렇게나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 자발적, 전면적으로 회의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은 크게 2가지 종류 즉 ‘감각적 지식’(경험)과 ‘수학적 지식’(이해)에 포함된다고 보고 이것이 과연 확실한지를 검토한다. 감각적 지식은 더러는 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전체로 보면 그 확실성이 문제되는 지식이다. 그것은 착오, 착각, 환상 등의 비정상적인 감각상태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쉽사리 확인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데카르트는 ‘꿈의 가설’을 도입하여 감각적 지식이 불확실함을 보여준다. 그는 진짜 감각(현실의 감각)과 가짜 감각(꿈속의 감각)을 원칙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감각하는 것과 감각하지 않는 것이 서로 다를 바 없게 된다. 말하자면 감각적 지식은 원칙적으로 꿈속의 감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따라서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감각과 독립해 있는 수학적 지식(이해)은 꿈속에서도 여전히 참이다. 사람들은 꿈속에서라도 2+3=5라고 하지 6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수학 계산이나 증명을 할 때 자주 틀린 곤 한다. 더 나아가서 데카르트는 우리의 사유를 완전히 통제, 조정하는 악마를 가정하여 진리 인식을 순간적으로 틀리게 하는 상황을 가정한다.(악마의 가설) 이를테면 악마가 있어 내가 2+3을 셈할 때마다 4라고 하게끔 하거나 세모꼴을 생각할 때마다 네 변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라고 생각하도록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적 지식도 확실치 않게 된다. 이제 수학적 지식도 확실한 인식의 영역 밖으로 밀려 난다.
이 두 가지 지식이 확실하지 않다면 확실한 지식은 아무 곳에도 없다. 결국 우리가 아는 것 가운데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데카르트는 회의하는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의 방향을 돌린다. 감각이 착각이나 환각에 불과하더라도 착각이나 환각을 범하는 자는 있다. 악마의 조정과 통제로 잘못을 범하더라도 그렇게 잘못을 범하는 자는 존재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사고(의심)하는 활동이 있는 한 사고하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리하여 만약 내가 사고한다면 사고하는 나는 적어도 사고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내각 지각하는 모든 것이 착각일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온통 허위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생각하는 존재로서 나 자신(자아)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 만약 생각하는 내가 없다면 나는 의심할 수도 없고 기만당할 수도 없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다.
4. 관념과 실재의 관계
방법적 회의를 통해 확보된 자아는 외적 세계와 분리된 밀폐된 자아이다. 이 자아가 외부세계로부터 나아가는 길은 오직 자아 밖에 있는 또 다른 실재(reality) 즉 신을 매개로 가능하다. 또한 자아는 시간 지속의 원리를 보유하지 못한 자아이다. 자아(코기토, cogito)는 한 순간의 명증성을 가질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그 명증성을 변질시킨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코기토의 명증성을 확보해주는 외부 도움 즉 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데카르트 철학에는 신이 있어야만 한다. 실로 신 존재 증명은 데카르트 철학의 사활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의 철학의 두 축이 ‘자아’와 ‘신’인데 그 중 하나인 신 존재가 증명되지 않으면 그의 철학은 미완의 철학이 되고 말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에 있어서 관념과 실재의 관계는 신 존재 증명을 위한 예비적 단계에 해당한다. 이것은 그이 철학에 있어 신 존재 증명만큼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 세계의 진리성이 문제되는 시점에서 자아 너머에 또 다른 실재를 무리 없이 설정하는 길을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스콜라 철학의 용어까지 동원하여 이 문제에 매달린 것이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정신 속에서 제일 먼저 발견되는 개념에서부터 그 다음에 발견되는 개념으로 단계적으로 넘어가는 순서를 고수한다. 그는 탐구의 순서가 확실한 것에서부터 성찰을 시도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유가 그 대상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 외부세계는 의심스럽고 확실한 것은 사유(생각, 관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유를 관념, 의지, 판단으로 나누고 난 뒤, 의지와 판단을 논외로 하고 관념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1) 관념, 의지, 판단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생각(사유)은 관념, 의지, 판단 이렇게 3종류이다. 먼저 관념은 내가 인간, 천사, 신과 같은 것을 생각할 때 나타나는 사물의 상(像)과 같은 것으로서 다른 어떤 것을 연관시키지 않는 한에서 항상 참으로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의지(정념, 태도)는 우리가 생각할 때, 사물의 상 이외의 어떤 형상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가령 내가 커피를 원한다고 할 때 이 문장 속에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 내포된 의미가 바로 형상이다. 의지 역시 관념과 같은 조건 하에서는 항상 참으로 성립한다. 마지막으로 판단은 항상 참인 명제로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판단은 어떤 문장(주어+술어)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주어 개념에 대한 진위(眞僞)를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 속에는 항상 참과 거짓이라는 두 종류의 명제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가령 ‘호랑이는 어류다.’는 문장이 참이라면 ‘호랑이는 어류가 아니다.’는 문장은 거짓이 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우리의 인식이 외부 사물과의 관계를 가짐에 있어 판단을 배제시킨다.
그리고 관념과 의지가 서로 다른 것을 연관시키지 않는 한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거짓일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외부사물과 관계했을 때, 관념은 의지에 의존하고 있지 않음이 명백하다. 예를 들어 열의 관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관념을 통해서만 외부세계와의 확실성을 보장받는 논의를 전개시킬 수밖에 없다.
(2) 본유관념, 외래관념, 인위관념
관념을 사유의 양태의 관점(형식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모두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모두가 똑같은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실재의 표상(내용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각각의 관념은 구별된다. 가령 연필 1자루와 문방구의 필기구라는 관념은 글을 쓰는 도구라는 점에서 즉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같지만 연필과 필기구 즉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엄연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그의 주저 《방법서설》4부에서 관념의 종류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본유관념은 우리의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난 관념으로서 생득관념으로도 불리며 이 본유관념을 통해서 우리는 수학적 공리나 진리 혹은 신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외래관념은 우리 밖의 외래 사물들을 우리의 감각기관이 인식하여 얻어지는 관념으로서 우리가 소리를 듣거나 더위를 느끼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인위관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관념으로 인어공주나 도깨비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또한 그 관념의 원인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관념의 원인을 데카르트는 실재(reality)라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관념의 원인이 되는 실재를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표상적 실재성이란 관념에 의해 표현되는 것 안에 실재성 혹은 완전성이 있는 것을 말하고, 형상적 실재성은 외부사물 안에 존재하는 실재성을 말한다. 이 둘의 관계는 원본과 복사의 비유를 들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실재(원인)가 뚜렷하고 명확하면 관념(결과) 또한 두렷한 관념이 될 것이고, 실재(원본)가 흐릿하고 명확하지 못하면 관념(복사) 또한 흐릿한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즉 관념이 어떤 특정한 표상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그 관념이 갖고 있는 표상적 실재성과 적어도 동등한 형상적 실재성을 갖고 있는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원인 속에 있지 않는 것을 관념 속에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관념은 이것을 무(無)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내 머리 속에 연필이라는 관념이 떠오르는 것은 외부세계에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연필이 존재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외부세계에 연필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에서 내 머리 속에 연필의 관념이 떠오른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처럼 모든 관념과 실재는 인과 관계에 의해서 더 완전한 것으로부터 덜 완전한 것으로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덜 완전한 것으로부터 더 완전한 것으로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생각하는 나 역시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사물이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물은 나 자신이 원인이 될 수 없는 사물 즉 신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유 실험의 결과 데카르트는 신 존재증명을 시도하게 된다.
5. 신 존재증명
(1) 후험적(後驗的) 증명 혹은 인장(印章)의 증명
데카르트의 신 존재증명은 그의 주저 《성찰》3부와 5부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등장한다. 첫 번째 증명은 후험적(後驗的) 증명 혹은 인장(印章)의 증명이라 불리고, 두 번째 증명은 선험적 증명 혹은 존재론적 증명이라 불린다.
첫 번째 증명이 후험적이라 명명되는 것은 사유하는 자아의 경험, 정확히 말해서 몇 가지 분류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분류는 관념의 분류이다. 회의에 의해서 이 세계의 존재가 부정되었으므로 이제 자기 내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자아 안에는 여러 가지 관념이 있다. 어떤 관념은 경험적 현실에서 주어진 외래관념인 듯하며, 어떤 관념은 자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관념인 듯하다. 그러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본유관념과 외래관념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외래관념과 인위관념의 구분도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관념은 새로운 관점에서 분류되어야 한다.
데카르트는 관념을 사유행위의 양태로 간주할 수도 있고 그것이 표현하는 내용적 측면에서 고찰할 수도 있음을 주목한다. 사유행위의 양태인 한에서 모든 관념은 사유하는 자아의 행위에서 유래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그것들 간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그 내용적 측면에서 각각의 관념은 서로 다른 ‘표상적 실재성’(realitas objeciva)을 지닌다. 이때 표상적 실재성이란 현실적 사물이 갖는 ‘형상적 실재성’(realitas formalis)과 대비되는 것이다. 가령 실제로 존재하는 태양이 형상적 실재성을 갖는다면, 태양에 대한 관념이 지닌 실재성은 표상적 실재성이다. 따라서 관념은 이 실재성의 정도에 따라 위계화 될 수 있다. 이 위계질서는 원인에는 적어도 그 결과에 있는 것만큼의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공리에 따라 성립한다. 이 위계질서의 정점에서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지전능한 창조자의 관념을 발견한다.
데카르트의 첫 번째 신 존재증명은 이 무한하고 완전한 관념이 자아의 관념으로부터는 산출불가능하며, 따라서 자아 밖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 다시 말해 형상적으로 존재하는 신으로부터 유래했음을 밝히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자아 안에는 자아 스스로 산출할 수 없는 무한한 실재성을 표상하는 관념이 있는데,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 관념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자아 안에 있는 신의 관념을 장인(匠人)이 자신의 작품 안에 남기는 서명에 비교한다. 신의 관념은 창조자 신이 자아를 창조할 때 그 안에 표식으로 남긴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표식은 자아가 자신의 불완전성을 체험하는 조건이다. “나보다 더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다시 말해 나 자신을 이것과 비교하면서 내 결함을 알게 되는 관념이 내 안에 있지 않다면, 내가 의심하고 어떤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 즉 나는 어떤 것을 결여하고 있고 아주 완전한 것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신에 대한 인식은 자아의 자기인식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양자는 하나를 이루는 것으로 신에 대한 인식은 자아의 자기인식이 심화되는 과정이자 완성되는 과정이다.
(2) 선험적 증명 혹은 존재론적 증명
데카르트의 두 번째 신 존재증명은 신 관념 자체를 분석하면서 그 결론에 도달한다. 신의 관념은 지고하고 완전한 존재자를 표상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결여나 결핍도 없다. 따라서 신은 필연적으로 현존한다. 왜냐하면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대한 결여이기 때문이다. “세 내각의 합이 두 직각의 합이라는 사실과 삼각형의 본질이 분리될 수 없고, 골짜기의 관념이 산의 관념과 분리될 수 없듯이, 신의 현존이 그 본질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신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신은 필연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서만 표상되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골짜기 없는 산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순이다.
현존의 개념이 지고하고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에 필연적으로 함축되어 있다는 이 증명은 원래 안셀무스(Anselmus)에 의해서 처음 제시되었다. 칸트는 이 증명을 ‘존재론적 증명’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것이 경험과 무관하게 개념분석에 머물러 있는 선험적 추론으로 이루어졌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반론은 일찍부터 있어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증명에서 선결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 즉 지고한 완전성의 관념에 대응하는 현실적 존재가 있다는 것이 먼저 입증되어야 이 증명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현존을 어떤 속성이나 술어로 간주할 수 있을 때만 이 증명이 타당한데, 존재는 속성이나 술어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에 있어 존재론적 신 존재증명은 자아의 유한성 체험에 대한 서술에서 출발하는 첫 번째 신 존재증명 이후에, 그 증명의 결과를 재확인하고 단순화하기 위해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논증이건 그것을 재차 점검하는 가운데 그 과정 전체를 하나의 직관 속에 수렴하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규칙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분석적으로 발견된 진리는 언제나 삼단논법의 형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신념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요컨대 선험적 증명은 이미 논증된 신의 존재를 단순화, 형식화하는 이차적 절차인 것이다.
6. 몸과 마음의 관계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과학혁명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모든 자연적 대상을 시계와 같은 자동기계로 보는 기계론을 옹호하게 된다. 시계는 태엽을 감아 놓기만 하면 태엽이 풀리면서 하나의 톱니바퀴를 돌리고, 그 톱니바퀴는 다시 다른 톱니바퀴를 돌려, 마지막으로 시계 바늘을 돌리게 되어 있는 부품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시계는 인간이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인공물이지만, 인간의 목적 자체가 시계를 돌게 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시계의 부품들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시계가 시계로서 작동하는 원리는 시계를 이루고 있는 부품들 간의 밀고 당기는 인과관계에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동물이나 식물 등 모든 물질적 존재는 시계와 같은 기계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인간의 육체도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병든 사람은 잘못 제조된 시계, 건강한 사람은 잘 제조된 시계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이다.
기계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몸이 기계에 불과하다면, 인간 자체의 존재론적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간 자체도 시계와 같은 기계에 불과한 것일까? 의지도 목적도 지성도 없는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까? 기계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신의 존재를 믿었던 데카르트는 신으로부터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가 문자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정신을 육체로부터 분리하였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전혀 다른 실체들로 구성된 존재라는 ‘실체이원론’(substance dualism)을 내놓은 것이다.
인간이 육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견해이다. 우리는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아프다.”든가,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안하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데, 이러한 말은 몸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적 견해는 육체적인 속성과 정신적인 속성이 다르다는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육체로서의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육체와는 전혀 다른 실체로서의 마음이 마치 조종사가 비행기를 조종하듯 육체 속에 들어 앉아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에 의하면, 상식적인 의미에서 몸과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몸과 마음은 그 본질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다른 것이다. 몸의 본질은 연장(extension)이다. 즉 몸은 공간을 점유하고, 시간 속에 존재하며,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변화하고, 분리될 수 있으며, 모양을 가지고 있고,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다. 반면에 마음의 본질은 생각(thinking)이지 연장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분리되지 않고, 모양도 없고, 비공간적이다. 물론 마음은 몸을 점유하고는 있다. 그러나 마음이 몸에 구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몸을 떠나 존재 할 수 있다. 즉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체이원론에 의하면 몸이 죽을 때 마음은 살아남아 천당이나 지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은 몸과 마음이 본질적으로 다르면서도 상호 인과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손에 가시가 박히면 마음은 고통을 느끼고, 마음이 가시를 뺄 생각을 하면 가시를 빼는 방향으로 몸이 움직이는데, 전자와 같은 인식은 몸이 마음에 인과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후자와 같은 행위는 마음이 몸에 인과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문제는 어떻게 ‘연장’이 본질인 ‘몸’과 ‘생각’이 본질인 ‘마음’이 인과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뇌 안의 ‘송과선’(松科腺, pineal gland)이라 불리는 곳에서 심신 인과관계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데카르트는 당시 새로운 학문으로 관심을 모으던 해부학을 배경으로 우리 목 뒷부분에 있는 송과선이 바로 정신과 육체의 연결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뇌의 뒷부분에 있는 송과선을 통해 정신이 자신의 의지를 몸에 전달하고, 또한 신체가 자신의 활동을 전신에 전달한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심신 상호작용설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독립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로써 데카르트는 인간을 신으로부터 독립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인 자연으로부터도 독립한 존재로 만들 수 있었다.
이처럼 데카르트는 신이 창조한 세계를 양분해서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데카르트는 각각의 다른 세계 즉 신의 세계, 정신의 세계, 물질세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존재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문제와 심신론적 문제 등을 야기했다. 가령 한 인간이 두 개의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에 와서는 기계속의 유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몸 이외의 사유하는 실체의 존재에 대한 주장은 범주적 오류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또한 두 실체간의 인과적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송과선이라는 가설은 오늘날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가설에 기반을 둔 데카르트의 심신 상호작용설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고, 하나의 문제점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1. 르네 데카르트 저, 이현복 역,《방법서설》, 문예출판사, 2001.
2. 르네 데카르트 저, 이현복 역,《방법서설》, 문예출판사, 1997.
3. 서양근대철학회 지음,《서양근대철학》, 창작과비평사, 2001.
4. 서양근대철학회 지음,《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 창작과비평사, 2004.
5. 스털링 P. 렘브레히트 저, 김태길 외 역,《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96.
6. 김상환, 《교과서 데카르트》(철학과 현실 1992년 여름호), 철학문화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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