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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학파의 사상



1. 헬레니즘의 시대적 상황


  스토아 철학에서 ‘스토아’(stoa)라는 말은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라는 그리스 말에서 왔는데 ‘스토아 포이킬레’란 ‘울긋불긋한 강당’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스토아는 강당을 뜻하는 그리스 말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백 년 동안 큰 영향을 미쳤던 철학파의 이름이 된 내력은 이 학파의 창시자였던 제논(Zenon)이란 철학자가 이 강당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이다.1) 울긋불긋한 벽화 때문에 그 강당은 ‘스토아 포이킬레’라고 불렸는데 그 후 스토아라는 말은 그곳에서 가르치고 공부했던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제논이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기원전 300년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지중해 세계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하고 북방의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지배아래 들어간 뒤였다. 그리고 마케도니아가 몰락한 뒤에 그리스는 이어서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한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336년 알렉산드로스의 등장으로부터 로마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등장까지 300여 년을 가리켜 보통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스토아 철학은 에피쿠로스 철학과 더불어 헬레니즘 시대를 지배했던 대표적인 철학이었다.

  모든 철학은 시대의 반영이라고 볼 때 스토아 철학자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토아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는 더 이상 소크라테스의 시대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도시국가의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았다. 거기서 개인의 삶은 언제나 도시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실현되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삶은 고립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언제나 공동체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었다. 물론 어느 시대나 개인의 삶은 공동체적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어떠하였느냐에 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는 시민의 공동체인 도시국가의 운명과 그 속에서 사는 개인의 삶 사이에 이상적인 조화가 있었다. 도시국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를 통해 운영되었고 개인의 삶은 그런 공동체적 관심을 통해 완성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인은 전체를 위해 그리고 전체는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대가 바로 고대 그리스였다.

  그러나 개인과 국가 사이의 이런 조화로운 균형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다.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자유인은 공동체의 운명을 더불어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라는 거대한 국가 속에서 개인은 공동체에 대하여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신민(臣民)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대에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개인의 소외가 스토아 철학의 토양이 되었던 헬레니즘 시대의 근본적 정서였다. 세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감 그리고 무기력감이 스토아 철학의 근본 정서이다. 예전 도시국가에서의 삶에 비하면 세계 범위는 이제 비교할 수도 없이 넓어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더 이상 한 도시의 시민이 아니라 세계의 시민이라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es), 즉 세계시민이라는 말도 이 시대에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넓어짐에 따라 개인의 의미와 가치는 훨씬 왜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확장된 세계 속에서 극도로 위축된 개인에게 세계는 낯설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나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졌던 사람들이 바로 스토아학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스토아(stoa) 학파의 사상은 한 사람,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오랜 시기에 걸쳐서 형성한 것이다.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300년경부터 로마 말기까지로 보고 있다. 헬레니즘 시대를 통하여 스토아주의는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에피쿠로스주의, 회의주의와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하였다. 그 후 로마시대에도 스토아주의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여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영향은 기독교가 서양의 지적 세계를 지배하였던 중세에도 계속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스피노자와 칸트 같은 철학자들도 스토아학파의 사상과 정서를 활용하였다.


2. 디오게네스 : 견유학파


  디오게네스(Diogenes, 기원전 404~323)는 이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 설교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많은 시민들에게 그들의 어리석은 야망과 그릇된 쾌락 그리고 사악한 삶의 방식들을 버리고 자연과 덕에 따르는 검소한 생활을 하라고 역설하였다. 그의 삶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권했던 검소하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실천한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는 단지 망토 하나만을 걸치고 살았으며 항상 커다란 나무통 안에서 잠을 잤으며 매우 검소한 식사를 하였다. 한번은 어린 아이가 컵으로 무언가를 마시는 것을 보고 컵을 빼앗아 던지면서 그것은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연에 따르는 삶을 살기로 목표로 정한 그는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보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점차 널리 알려지고 또 칭송받게 되어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방문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그를 크게 칭찬한 후에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이때 통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지금 비치는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대답하였다. 디오게네스는 가난을 결코 불명예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최소한의 생필품을 구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사람들이 그가 동상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때 그는 태연히 거절당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하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많은 철학자들은 자연에 따르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단순하고 검소한 삶으로부터 큰 인상을 받은 견유학파 사람들은 자연적인 것은 사회적인 삶과 관련된 모든 인위적인 활동이나 욕구와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결혼이나 신전의 건축, 심지어 동전을 만드는 것까지도 비난하였다. 이들은 사회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참된 공동체는 선하고 덕을 갖춘 개인들의 교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덕이 있는 개인은 의복이나 음식, 사회적 지위, 명예, 권력 등과 같은 외부적인 모든 것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은 좋은 삶을 사는데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이성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것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쾌락과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주 어려움에 휘말리게 되며 이런 것들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불행하게 된다. 좋은 삶은 덕을 갖춘 삶이며 모든 외부적인 강제와 영향에서 벗어난 삶이며 표리부동한 이중성과 허식으로부터 벗어난 삶이다.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 446~366)는 쾌락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함으로서 이런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모든 인위적인 욕구를 제거함으로써 견유학파의 철학자들은 상당히 넓은 영역에서 외부 세계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인위적인 욕구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위적인 욕구를 제거하는 쪽을 택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의견을 조절할 수 없음을 깨닫고 대중의 의견에 철저히 무관심하였다. 자기 자신의 모든 욕구를 조절하고 자신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은 모든 좌절과 마음의 동요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견유학파의 엄격하고 금욕적인 삶의 태도는 그들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덕이 있는 삶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3. 제논


  제논(Zeno of Citium, 기원전 333~261)은 키프로스 섬의 키티온(Kition) 출신으로 기원전 약 300년경에 스토아(Stoa)라고 알려진 아테네 중앙광장의 한 모퉁이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디오게네스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크라테스(Crates)와 같이 생활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제논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글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아테네로 왔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한 가게 주인에게 어떻게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를 찾을 수 있냐고 묻자 가게 주인은 가게 앞을 지나가던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을 따라가라”고 대답하였는데 바로 그 사람이 크라테스였다는 것이다.

  제논은 몇 권의 책을 썼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것은 오직 몇몇의 단편들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철학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의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이차 자료를 통해서 전해진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제논이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목표로 제시하고 이러한 삶을 ‘덕이 있는 삶’과 동일시하였으며 자연이 우리를 덕이라는 목표에로 인도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 역시 제논이 행복한 삶이란 없으며 오직 덕이 있는 삶만이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행복은 덕이 있는 삶으로 구성되거나 아니면 그런 삶과 동일하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삶이 자연과 일치하게 살아가는 삶이며 자연이 이런 유형의 삶을 우리 인간의 목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스토아학파의 독창적인 면이 있다. 여하튼 인간의 목적은 행복 또는 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자연 일반의 일부이며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자연은 이른바 인간의 삶의 이성적인 목적으로서 덕을 부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덕이 있는 삶이란 다른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성이 금지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삶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며 지배자인 제우스(Zeus)와도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제우스와 이성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정신과 전 우주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는 자의 의지 사이에 조화를 증진시킬 때 덕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신과 이성이 충만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이성(logos)은 우리가 덕에 이르고 행복하기 위하여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법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따라서 덕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충동과 정념에 따르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삶이 아니라 일관되게 이성적인 원리들에 따르는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다. 덕이란 삶 전체를 조화롭게 만드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조화로운 개인의 삶은 끝없이 발생하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항상 일관성을 유지하는 삶이며 신성한 이법의 이성적인 가르침에 따라서 이런 삶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개인의 삶은 자연 전체 그리고 신과도 조화를 이루게 된다.

  개인의 삶과 전체적인 자연 사이의 이러한 조화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 인간의 목적이 인간 자신의 태도와 행위를 실지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과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지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은 당연히 신성한 이법에 의해서 지배된다. 이성은 우리에게 무엇이 발생할 것이며 무엇이 발생하여야만 하는가를 알려주며 또한 우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며 무엇을 환영해야만 하는지를 제시한다.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구성하는 원인과 결과의 엄밀한 연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 덕의 본질이다. 덕이란 이성을 사용하여 이법의 인과적 능력 때문에 반드시 발생하는 것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논을 비롯한 많은 다른 스토아 학자들은 덕이 아닌 것은 기껏해야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덕은 유일한 선이며 부덕은 유일한 악이다. 이러한 단호한 입장을 당시의 많은 철학자들은 거부하였다. 그들은 건강, 아름다움, 부유함 등과 같은 ‘외부적인 선’들이 행복의 조건으로서 필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하지만 스토아학파는 쾌락과 건강, 고통, 가난 등의 모든 외부적인 요소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모두 그릇되게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견유학파의 극단적 금욕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제논은 다른 모든 것들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것은 자연과 일치하며 다른 어떤 것은 자연에 위배된다. 제논은 자연과 일치하는 것들은 선택되어 어떤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며 자연에 위배되는 것들은 그와는 반대되는 평가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들은 상관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인간에게 이익을 주지도 해를 입히지도 않는 모든 것들, 즉 생명, 건강, 쾌락, 아름다움, 강건함, 부유함, 명성 그리고 고귀한 가문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서로 구별할 수는 있다. 그들이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선호되며 다른 어떤 것은 거부된다. 즉 긍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선호되며 반면에 부정적 가치를 지닌 것들은 거부된다. 가치의 기준은 첫째, 그들이 조화로운 삶에 얼마나 기여하는 정도이고 둘째, 그들이 자연과 일치하는 삶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능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이다. 예를 들면 건강은 삶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일하게 진정한 선이라고 할 수 있는 덕 아래에서 각자 적절한 위치를 부여받게 된다. 키케로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그 행위를 수행하는데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제시될 수 있는 경우 즉 그런 행위가 자연저긴 삶을 위하여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얻으려는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도움이 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적절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곧 도덕적인 행위라는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적절한 행위라도 비도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4. 스토아학파의 말기 사상


  스토아 철학이 정치적 중심지인 로마로 유입되면서 자연히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로마에는 법과 제도, 큰 걸물들, 사방으로 흩어진 도로 등이 역사상 최고로 발달되어 있었으나 정신적 문화는 빈곤했다. 그래서 그리스 중에서도 특히 아테네의 철학, 예술, 사상이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마는 신흥국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긍정적이었고 건설적이었다. 그리스의 철학도 그런 성격으로 수정되면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로마는 고상한 철학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필요했고, 체계적인 학문보다는 교양이 더욱 요청되는 사회였다.

  스토아 철학도 로마에 들어오면서는 그런 성격으로 변질되어야 했다. 우리는 그 로마적인 특성이 있는 것을 말기 로마의 철학으로 치부하고 있다. 다만 스토아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종교적인 성격을 짙게 띠게 된 것은 그 당시는 벌써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와 새로운 정신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아 정신 속에도 종교적 요소가 가미되는 시대적 추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당시 스토아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우리가 잘 아는 세네카(Seneca, 기원후 4~65)였다. 그는 세계적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네로 왕의 스승이기도 했고, 한때는 총리대신의 직책을 맡은 일도 있었으나 네로에 의하여 자살을 강요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통속적이기는 하나 화려한 문필로 된 많은 저서를 남겨 주었다. 도덕적인 교훈과 종교적인 견해들도 무리 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이미 절충학파라는 부류의 철학과 사조가 유입되어 육성된 뒤여서 어떤 철학이나 사상을 주장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철학과 사상에서 우리가 받아들여 도움이 될 내용이면 좋게 여기는 풍조가 강하던 시대였다. 무신론보다는 유신론이 유익하며, 회의주의보다는 교양 있는 지식을 갖는 편이 좋으며, 절망이나 비극으로 이끄는 사상은 회피하는 쪽이 지혜롭다고 보았던 것이다.

  세네카에게서도 그런 종합적이며 긍정적인 면이 풍부히 엿보인다. 읽어서 손해가 될 내용들은 쓸 필요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나약함, 죄악의 가능성, 육체와 세속적인 비참의 가능성을 벗어나 구원을 받는 데는 섭리의 신앙, 종교적 귀의성, 신의 의지로 합일되는 일, 신의 자비에 대한 감사와 내세에 대한 희망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온화한 심정, 인간들 간의 동정심, 인간애와 박애정신을 가장 귀한 것이라고 보았다. 로마인이면서도 세계를 통치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세계시민의 정신을 계몽시켜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화려한 문치로 된 서간, 수상록 등에 더 접근할 수가 있어 정신적 위안을 받기도 한다. 철학보다는 삶의 지혜에 대한 교훈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조요한 글의 내용에 비하면 네로 시대에 지도자로 살았던 그 자신은 교훈과 어울리지 않는 비극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스토아 정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은 무소니우스 루푸스(Musonius Rufus) 같은 실천가도 있었다. 그는 당시 로마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투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매한 정신적 수양을 쌓은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의 제자로 자처했던 에픽테토스(Epiktetos, 120경 사망)는 그의 <어록> 때문에 우리와도 친분이 있는 철학자이다. 노예 신분이었고 다리를 저는 불구자였다. 노예생활의 학대에서 얻은 병신이었다고 한다. 그의 주인은 에파프로디토스라는 사람이었는데 황제의 궁전에서 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에픽테토스는 항상 명상과 사색에 잠겨 있었으므로 주인의 눈에는 게으름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무능하고 게으른 노예에게 화가 난 주인이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그런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신적 균형과 마음의 안식을 잃지 않고 살아간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로 알려지고 있다.

  

5.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를 통해서 우리는 육체적 고통의 느낌이나 손상에 대해서 전혀 상관하지 않는 스토아주의적인 부동심의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예정된 자연의 운행에 따라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이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실을 잘 참아내는 평온하고 이성적인 정신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의 태도나 생각,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 등은 모두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인 반면 우리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명성 등은 우리의 조절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우리에게 가혹하게 생각되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능력 안에 있는 것과 관련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일 그것이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대답을 준비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피할 수 없었다면 이를 피하려는 노력을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가 인간의 능력 안에 있지 않는 것과는 어떤 관련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자연과는 대조되는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만을 향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바로 일어나는 사건을 두려운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정신을 방해하는 것은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사건들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다. 예를 들면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두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다. 어떤 사건도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바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해를 입힐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경우에만 자신은 해를 입게 된다. 예를 들어 천박한 말이나 구타 등도 그 자체로는 폭력이 아니며 그것을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판단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누군가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을 때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해를 입은 모든 경우는 일어난 일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 때문에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무지한 사람들은 모든 이익이나 손해를 자신의 탓이 아니라 자신 외부의 세상 탓으로 돌린다. 반면에 철학자들은 모든 이익과 손해를 항상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지배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사건들이 전적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으며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두려워하거나 후회하고 평가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고 사건이 일어나는 대로 거기에 당신의 바람을 맞추도록 노력한다면 당신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오직 실지로 일어나는 일들 그대로가 일어나기를 바라야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의 의지가 실제적이고 필연적인 사건의 흐름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며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한 삶은 결코 패배를 모르는 삶이다. 왜냐하면 승리가 당신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 아닐 경우에는 결코 경쟁에 뛰어들지 않음으로써 당신을 결코 패배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항상 실지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만을 바란다면 승리는 항상 당신 것이다.

  에픽테토스에 있어서 이성에 따른다는 것은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우선 자연을 파악하고 그것에 따르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또한 원리에 따르는 삶을 함축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평생에 걸쳐 일관된 것이어야 한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원리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어기는 것은 마치 법을 어기는 사악한 일인 듯이 생각하고 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이러한 충고에 따르는 것은 스토아학파가 높이 평가하고 찬양한 확고함이라는 특성을 낳게 되는데 이러한 특성은 세상의 모드 ㄴ우연적인 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고 변덕스럽게 굴지 않으면서도 그런 일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평온한 사람이 지닌 특성이며 또한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특성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스스로 분명한 행위의 방식을 정하고 혼자 있을 때나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그것을 유지하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 바로 원리에 따르는 삶에 충실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에픽테토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그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이 겪은 일이나 모험담을 지나치게 자주 또는 어울리지 않게 많이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서 당신이 자신의 모험을 회상하는 것만큼의 쾌락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당신을 그렇게 함에 있어 당연히 실패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충분히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까지도 소홀히 하게 되고 만다. 더욱이 누군가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올바른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택한 원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대신에 당신이 지킨 원리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하라. 이처럼 에픽테토스는 삶의 지혜를 사물의 본성에 대한 가장 심오한 철학적 명상과 성공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스토아학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분명한 기여를 하였다.


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모든 위대한 스토아철학자들은 내적 자연 또는 이성과 외적 자연 또는 자연법에 순응해야 함을 믿는다. 마지막 스토아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영혼이란 이성과 동일한 것이므로 사람은 이성과 일치되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조화 있는 인생이란 자연과 가락이 맞는 인생인 것이다. 정서적인 격정이나 의기소침 등은 갑작스러운 요인 때문이며 이것이 수반하는 고통이나 이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예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행의 원인이 되는 감정은 이해심이 커짐으로써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또한 태도 역시 중요한 것이다. 즉 자신의 의견을 버리면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평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불평을 버리면 손해 역시 사라진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기분을 상하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격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지혜안에서 사람들은 고통이나 불행을 뛰어 넘어서 살아간다. 근심이란 사물을 넓게 보는 시야를 얻음으로써 사라지게 된다.


  인생의 전부를 생각함으로써 네 자신을 어지럽히지 마라. 일단 네게 닥치리라고 생각되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경우에 과거에 참았으며 또 지금 참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네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그 다음으로 미래와 과거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너를 괴롭히는 것은 현재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현재는 조금씩 과거로 환원된다. …중략… 미래의 것에 골머리를 썩히지 마라. 네가 그것이 필요하다면 너는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도 바로 그와 같은 연유에서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위의 훈계와 예수의 훈계를 비교하여 보자. “내일에 대하여 염려치 마라.”우리가 다루어야 할 악은 오늘의 악으로도 충분하기에 사람들은 그저 하루를 살라고 충고를 받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있어서 염려는 무지와 편협된 지식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에게 염려함은 신의 섭리적인 돌보심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었다는 징표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자연적인 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필연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이며, 합리적인 것은 곧 선(善)이다.


7. 스토아 철학에 대한 평가


  스토아철학은 인간의 지적이며 도덕적인 역사 가운데서 가장 권위적이고 또 가장 호소력 있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철학 중의 하나이다. 2세기동안 스토아철학은 기독교에 필적할 만큼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것으로서 대접받았다.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융성기 이후로 스토아 철학의 교설은 그리스도교인의 사유뿐만 아니라 칸트, 스피노자 등의 세속적인 철학자는 물론 그리스도교 신학과도 융화되었다.

  감정을 억누를 수 있고 따라서 지성이 명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놀라운 업적을 남기었는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경건하게 추구되어야 할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의 정신이 고안해낸 모든 철학처럼 스토아철학도 그 나름의 결점을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감정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말끔히 제거한다고 행복해질 수는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더욱이 심리요법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경험에 풍부함과 다양함을 더해주는 감정이나 느낌이 없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모호하고 흐릿하며 명확하지 않을까! 유명한 소설가나 화가나 음악가들의 예술적인 창작품인 그림이나 음악의 달콤한 음률에 전율하는 감정이 없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를 생각해보라. 가치의 영역에 눈이 먼 영적으로 불구인 사람만이 미적이며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진리와 맞닥뜨려서 무감각할 수가 있다. 감정이 없이는 사람들은 그의 경력이나 학문 또는 개인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일 등과 같이 인생 자체에 대해 그 무엇에서나 흥미를 찾을 수 없다.

  스토아학파의 염세적인 교의, 즉 그가 존재한다는 것이 피곤하게 되었을 때 자살이 허용된다는 심념 때문에 매우 흥미롭게도 관심의 결여나 인생에 관한 권태(taedium vitae)는 몇몇 스토아 철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여러 스토아 철학자가 바로 그 자신의 인생에서 이러한 자살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였다. 제논에 못지않은 클레안테스나 세네카는 냉정하고 침착한 사색을 통해 에픽테토스의 정신과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 가운데 그의 생(生)을 마쳤다.

  “누군가가 방에 연기를 피웠다고 하자. 연기가 웬만하면 그대로 있겠지만 연기가 지나치게 많으면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즉 우리는 문이 열려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며 또 이 문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2)


  에픽테토스는 자살을 암시하는 충고를 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또한 “여기서 산다는 것은 너의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해도 입지 않기 위해 생명을 버려라. 집에 연기가 자욱하면 나는 집을 떠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이나 행위는 스토아적인 사고와 모순되며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노예이며 장애자인 에픽테토스가 그의 잔혹한 주인에게 그의 다리를 비틀면 그의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특히 그렇다. 또 다른 예로 스토아철학자인 포시도니우스(Posidonius)는 극심한 동상으로 인해 선(善)에 대한 강의를 중단할 정도로 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악을 무지와 이해의 결핍에서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악(惡)이 이해의 결핍이라면 사람들은 또한 선(善)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가?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무지로부터의 논증의 오류(argumentum ad ignorantiam fallacy), 즉 자신의 논점을 지지하기 위한 사실을 제시하는 대신에 무지로부터 논증하는 잘못에 기초하고 있다. 지식이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악을 피하게 하지는 못한다. 정신과 의사는 왜 살인광이 살인을 저지르는지를 이해하고 또 쉽게 설명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미치광이나 이들의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이러한 비극은 좀처럼 근절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스토아 철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악의 뿌리를 이해한다면 종종 그것의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에 있어서 선과 미의 역할을 이해함은 이들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고양시키는 것임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인생이란 것이 관심을 끌만한 것임도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은 정신적인 질병의 경우처럼 단지 덧없는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몇몇 목표는 너무나 극단적으로 이상적인 것이기에 이것을 성취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을 벗어난다. 가령 우리는 절망하는 순간에 낙심할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울 때 노이로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스토아학파의 이론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목표를 완화하는 것이며, 이 목표를 인간의 능력 안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실상 자신의 환경에 완전히 무관심해야한다는 것은 바로 정신이상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분열증 환자만이 주위 환경에 대해 극단적인 무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로버트 L. 애링턴, 김성호 옮김,《서양윤리학사》, 서광사, 2005.

2. R. 샤하트 지음, 정영기 ‧ 최희봉 옮김,『근대철학사』, 서광사, 1993.

3. 스털링, P. 램프레히트 지음, 김태길 외 옮김,『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96.

4. 김형석 지음,『서양철학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7.

5. 김상봉 지음,『호모에티쿠스』,한길사, 2004.

6. W. S. 사하키안 지음, 박종대 옮김,『윤리학』, 서강대출판부, 2003.

출처 : 경남대학교 철학인들의 모임
글쓴이 : 권수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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