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의 인식론
1. 로크의 생애
존 로크(John Loke, 1632~1704)는 영국의 브리스틀 근방 링턴에서 출생하여 런던 북방 20마일에 위치한 오츠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내란1)이 일어나자 1640년 국회의 의회군 기병 대장으로 활약했다. 그의 아버지는 의회의 편에 서서 왕에게 반대해서 싸웠다. 의회가 승리함으로써 로크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였던 웨스트민스트에서 그 다음에는 또 당시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가장 좋은 학교였던 크라이스트 처지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콜라 철학이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 데카르트의 저서를 찾아서 탐독했으며, 후일 자신의 저술 속에서 상당한 데카르트적 영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의학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그리스어․수사학․철학뿐만 아니라 물리학․화학․기상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관심을 보였다.
그가 28세였을 때 찰스 2세가 영국으로 돌아와 즉위했다. 로크도 다른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왕정복고를 기쁨으로 맞았다. 그러나 내란에서 의회의 승리는 군사적 독재를 가져왔으며, 옥스퍼드만 해도 자유의 이름으로 여러 번 숙정되었다. 그리고 로크는 강경한 반 왕당파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경험을 통해서 열렬한 군주주의 주창자가 되었다. 로크가 혁명적 자유주의의 길을 택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당시에는 애쉬리 경이었으며 후에 샤프츠베리 백작이 된 한 정치가를 우연히 만난 일이었다. 샤프츠베리 경은 로크를 설득해서 옥스퍼드를 떠나 런던에 있는 자기 가정의 의사, 친구 및 일반적 고문이 되도록 했다. 이 때, 로크는 샤프츠베리 백작 손자의 개인교사로서, 그리고 정치 고문으로서 샤프츠베리가와 친근한 관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제임스 2세의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백작의 음모에도 약간의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2)
그러나 1682년 찰스 왕의 즉위에 반대하던 애쉬리 경이 사망하자 그는 자진 망명의 길을 떠나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살면서 대륙의 지성인들과 알게 되었다. 로크가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제임스 2세가 찰스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제임스 2세의 통치는 샤프츠베리가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악정이었다. 제임스 2세는 모든 영국 사람들을 카톨릭 교도로 만들려고 했고 의회를 해산했으며, 영국 평민들이 옛날부터 물려받은 많은 권리와 특권을 박탈하였다. 결국 그는 전국을 너무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갔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그를 왕위로부터 축출하고 그 대신에 입헌 군주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윌리엄 공과 메리 여왕을 즉위케 한 1688년의 ‘명예혁명’이었다. 명예혁명이 성공으로 끝나고 로크는 윌리엄 왕과 메리 여왕의 교분관계로 영국으로 돌아와서 불로소득 할 수 있는 정부의 관직에 취임하였다가 오츠로 돌아가서 고요히 여생을 마치게 된다.
2. 로크 인식론의 이론적 기초
존 로크(John Locke, 1623~1704)는 가장 영국적이면서 고전적 영국 경험론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경험론자들은 모든 지식이 경험에서 파생된다고 믿는다. 이 철학자들은 합리론적 형이상학을 반대하며, 특히 합리론의 무제한적 사변성, 거창한 주장, 본유관념에 뿌리를 둔 인식론을 배척하였다. 그는 스피노자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27년을 더 살았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자유를 위해 싸운 가장 자유로운 사상가였다고 평가한다. 또한 홉스가 캐번디시 가(家)에 봉사한 것처럼 샤프츠베리 가(家)에 봉사한 학자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홉스의 후계자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철학적 기초는 인식론적 경험주의를 체계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경험이 없으면 인식도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인식은 경험의 내용과 과정에서 얻어지며 또 평가되어야 한다. 인식의 산물인 모든 관념은 경험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오성이나 이성의 선천성 같은 것은 인정될 수가 없다. 우리의 이성이나 오성은 백지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 경험을 통해 어떤 내용이 그려지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경험이 관념의 원체가 된다면 인식 기능과 과정은 자연히 심리적 작용을 따르게 되며 철학의 중요한 문제는 오성(Understanding)의 기원, 관계, 가치와 의미를 살피며 규정짓는 작업이 되어야한다.
그는《인간오성론》이란 저서에서 ‘오캄의 면도날’3)이라는 무기로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만약 로크가 본유관념에 의거하지 않고도 모든 인간적 지식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의 이론은 데카르트의 이론보다 더 단순할 것이며, 따라서 더 좋은 이론이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컨대 마음을 아무 글자도 씌어 있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담고 있지 않은 백지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채울까?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다. 바로 경험이다. 태어날 때의 마음은 흰색의 타불라 라사(tabular rasa), 즉 흰색의 서판과 같으며, 이것은 오로지 감각적 경험과 반성 행위에 의해서만 채울 수 있다. 로크는 이것을 바탕으로 인식론을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경험은 두 가지 요소를 갖는다. 하나는 외적 감각이며, 그 뒤에는 내적 반성이 뒤따른다. 외적 감각은 단순한 관념을 제공해주나 내적 반성은 복합 관념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생겨진 관념들을 서로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일이 인식의 임무이며 책임이다. 선천적 기능이나 생래적인 관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관념은 대상에 의한 객관적 성질과 반성에 따르는 주관적 성질을 갖는다. 대상에 따른 객관적 성질을 제1차적인 관념으로 보면, 반성적인 성질은 제2의 성질이 된다. 이러한 관념들의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진 복합 관념이 모든 지식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본다면 로크는 자연과학이나 수학 그리고 기하학보다는 심리적 경험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는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원형관념에 대한 직각적인 인식이나 논증성을 반대하지 않으나 인식의 기본은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반성하며 전개되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다.
3. 본유관념의 비판
로크의 주저는《인간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이다. 이 책은 외형상으로 간결하면서도 누구나 흥미를 일으키게 한다.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 책은 쓰여 졌다.
로크에게 있어서 문제 전개의 실마리는 어떤 철학적 고찰에서도 항상 오성의 능력과 그것이 미칠 수 있는 영역 내에 있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있는 대상에 관한 문제부터 미리 연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사상이 광막한 존재의 대해 속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듯이 함부로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로크 역시 데카르트와 같은 철저한 회의에 근거를 두고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데카르트의 회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회의였다. 데카르트는 이 세계는 연역적 방법에 의한 수학적 정확성을 바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로크는 도대체 우리가 오성의 힘으로 그와 같은 세계의 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진정한 철학의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사유 자체의 수단과 가능성의 범위를 검토하는 일을 제1차적 과업으로 삼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그렇게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으로 누구보다 로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로크는 최초의 비판 철학자이자 현대 인식론적 비판의 원조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크의 방법은 불란서 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데카르트의 회의는 그가 어떤 특정한 성질을 지닌 신의 개념을 가정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주저도 하지 않았다. 로크는 그와 같은 신의 개념은 결코 인류 역사와 각각 다른 여러 민족들에게 언제나 현존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감성적 대상, 의지의 발동, 그리고 관념 등 다양한 내용을 지닌 전반적인 인간의식에 관하여 비판적 검토를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 표상과 개념은 정신을 꾸며내게 되는가? 이 근원에 비추어볼 때 각각 다른 모든 표상들은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지니는가?
제1부는 전적으로 본유관념(innate ideas)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바쳐진 것이었다. 로크는 합리론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본유관념’을 반대했다. 본유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아나 야만족의 정신 상태를 보면“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것”에 타당한 관념과 개념, 그리고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성격의 원리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률이나 모순률과 같은 이론적 사유법칙이 지닌 추상적 성격도 그것이 장구한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뒤에야 형성된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도덕적 명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의식 내용은 처음 지적한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파생된 것이다. 내적 경험은 외적 경험에서 이끌어 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경험에 앞서는 것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의식은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은‘백지’(tablar rasa)와 같다. 이 점에서 그는 모든 단자의 독자적 폐쇄성으로 본유관념을 인정한 라이프니츠와 정면으로 대립되는 입장에 있다.
4. 단순관념과 복합관념
로크는《인간오성론》제2부에서 실제로 모든 관념4)이 경험에서 연유된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세밀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로크는 이것을 바탕으로 인식론을 정립하기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은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의 구분,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이다.
단순 관념은 하나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이 관념은 더 단순한 것들로 쪼개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노란 색’의 관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노란 색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에는 그저 예를 들어 보여 주고 ‘노란 색’이라고 말해 주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단순 관념이 로크가 말하는 일차적 자료, 즉 심리적 원자다. 모든 지식은 이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결합되어 생성된다.
로크는 단순 관념의 사례를 도처에서 열거하였다. 백과 흑, 감과 산, 열과 냉, 그리고 감관에서 오는 그 밖의 관념들; 전충성, 공간, 운동, 형상, 지각작용, 사유작용, 의욕작용 및 그 밖의 마음의 작용의 관념; 쾌락과 고통, 힘, 존재, 단일성 등등. 로크는 단순관념에 대한 그의 많은 실례를 체계화하기 위해서 그다지 애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본래 관심사는 오직 모든 관념들은 어떠한 것이든 마음 자체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그것들이 마음속에 생기는 방식을 통하여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는 핵심적 주장뿐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단순 관념으로부터 복합 관념을 형성한다. 이 형성은 단순 관념을 결합하고 대조하고 추상화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복합 관념은 이를테면, 단순관념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붉고 둥글고 달콤한’ 단순관념들로부터 ‘사과’라는 복합 관념이 파생된다. 이 복합 관념은 개별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만들고, 비교를 가능케 하며, 관계를 설정하고, 추상화를 낳는다. 어떤 대상을 설명할 때 ‘어떤 것이 더 검다’, ‘…의 북쪽에 있다’ 등의 표현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추상화 또는 보편적 관념도 개별 관념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로크는 복합 관념을 망라해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는 아무도 복합 관념을 망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많은 복합 관념들 중에서도 특히 모든 관념의 기원은 경험에 있다고 하는 그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예외라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경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지속, 연장, 무한, 신(神), 실체, 인과성, 도덕적 관계, 자유와 필연, 물질과 정신 등과 같은 관념에 관한 몇 장을 서술하였다.
로크의 서술에 따르면 복합 관념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즉 양태(樣態), 실체의 관념, 관계의 관념이다. 먼저 양태란 아무리 복합적이라 할지라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없고, 실체의 의존물 내지 부수물이라고 생각되는 복합 관념이다. 양태의 예를 든다면 삼각형, 감사, 살인 피트(尺)와 마일(里), 날(日)과 시간, 분노, 질투, 자유 등이 있다.
관계의 개념이 생기는 것은 마음이 독립적인 한 관념을 생각하는데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념을 넘어서 그것이 다른 관념들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를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 관념이 다른 관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무수히 많으며, 다라서 우리의 관계의 관념은 다종다양하다. 로크는 관계의 관념으로 원인과 결과, 동일성과 다양성,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 성질의 정도의 관계, 생물학적 관계, 그리고 인간의 행위와 도덕적 판단의 기준과의 관계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실체의 관념은 로크에게 상당한 괴로움을 끼쳤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단순 관념들은 우리의 경험 속에서 항상 떼를 지어 모여 다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각 관념의 무리들을 한 사물로부터 나온 것으로, 그리고 어떤 토대에 의하여 결속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이 토대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또 알 수도 없다. 예컨대 황금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황색, 상당한 무게, 불 속에서는 타지 않고 녹는 성질 등의 관념들을 언제나 함께 생기게 하는 어떤 것의 관념인 것이다. 정신이라는 관념은 추리하고, 두려워하고, 아마도 물질적인 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밖의 활동들을 영위해 가곤 하는 어떤 것의 관념이다.
로크가 인간의 오성에 관해서 처음 탐구를 시작하였을 때, 그는 관념이라는 것을 사물에 관한 사유의 방법으로 때로는 심지어 사물을 아는 방편으로도 생각하였다. 그 후로 관념은 사유할 때 마음의 유일한 직접적 대상으로 되었으며, 그것이 마음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은 관념에 의해서 대표되는 사물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로크의 초기 견해는 직접적 실재론 혹은 자연적 실재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후기 견해는 상징적 실재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상징적 실재론은 로크로 하여금 관념에 의한 새로운 인식 방법을 통해서 인간의 오성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또 얻을 수 없는가를 확정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서 탐구를 계속해 가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5. 제1성질과 제2성질
로크보다 앞서 이미 뉴턴과 갈릴레이는 물체의 실재적 성질들은 바로 수학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것들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뉴턴은 궁극적 분자(分子)의 본성을 확정함으로써 이 분자들로 이루어진 모든 물체들의 많은 성질을 설명하였다. 로크는 제1성질과 제2성질에 대한 갈릴레이의 구별을 고찰하고, 그것을 그의 인식론적 문제에 이용하였다.
로크에 의하면 관념이란 어떠한 것이든 마음이 그 자체 안에서 지각하는 것들이며, 성질이란 그 관념들을 생기게 하는 대상이 지니는 힘들이다. 제1성질들에 의해서 생긴 관념들은 그 성질을 닮고 있으며, 그 원형은 물체 자체 속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제2성질들에 의해서 생긴 관념은 그것을 대신하는 이름이 그 관념과 유사한 만큼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과 유사한 것이 못된다. 제1성질은 외부 대상의 특성이다. 이 성질은 그 대상 안에 내재하고 있다. 그 예로는 연장, 크기, 모양, 위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제2성질도 흔히 외부 대상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실은 마음속에만 있다. 즉 그것은 외부 대상의 진정한 속성이 마음속에 생성시킨 성질이다. 그 예로는 색깔, 소리, 맛 등이 있다.
하지만 로크는 갈릴레이와 뉴턴의 수학과는 매우 다른 이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수학은 외적 세계의 구조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서 제멋대로 형성된 어떤 복합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경험이 가리키는 한에 있어서 탐구하는 하나의 과학이다. 즉 대상의 보여진 형상, 사물의 경험된 운동이나 크기 등은 자연 안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형상이나 운동이나 크기 등과 같다고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로크는 자기 인식론을 계속 발전시켜 감에 따라서 갈릴레이나 뉴턴으로부터 얻은 시사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주관적 경험을 낳은 세계 내의 사물들의 본성에 관하여 추론을 하기에 모든 관념들이 적합한가에 관해서 점점 회의적으로 되었다.
마음을 이렇게 보는 견해를 가리켜 우리는 표상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표상적 실재론5)에 따르면, 마음은 외부 세계를 표상할 뿐 모사하지 않는다. 마음은 외부 세계를 아주 정밀하게 표상하는 사진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세 사람을 찍은 사진은 세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각자가 두 개의 눈, 하나의 코,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오로지 사진만이 가진 특성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광택이 난다든가, 2차원적이라든가, 내용물의 주변에 희색 테두리가 있다든가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체계에서와 같이 실재 세계는 존재하며, 제1성질이라는 실재의 성질을 가진다. 그렇다면 이 성질은 무엇의 성질인가? 이 문제에 대답하면서 로크는 데카르트적 실체의 형이상학에서 나온 기본 구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6. 언어에 관하여
제3부에서는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로크는 항상 일반적인 의미를 나타나는 데 그치는 단어들은 결코 아무런 현실성도 지닐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사실을 곡해하는 데서 모든 오류가 생긴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복합 관념이 전적으로 오성작용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명제에도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것은 ‘실체’의 개념이다. 실재의 성질은 실재하는 사물의 성질이어야 하며, 실재하는 사물은 실체6)이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실체’의 관념은 로크의 이론에서 어떤 위치를 지닐까? 앞에서 보았듯이, 데카르트는 지각이란 단지 성질들을 발생시킬 수 있을 뿐이므로 관찰을 통해 실체의 관념을 얻어낼 수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실체의 관념을 본유관념으로 가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로크는 본유관념을 부인하고 모든 지식은 감각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로크는 모든 지식을 순전히 경험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지난 수십 년 동안 철학을 지배해 온 실체라는 개념을 미스터리로 규정하면서 그것에 대해 농담까지 던졌다. 그는 실체를 찾으려 애쓰는 철학자를 인디언에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인디언은 이 세계를 거대한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으며, 이 코끼리는 또 거북의 등위에 있고, 거북은 또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떠받치고 있다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로크의 이러한 주장은 경험론의 불길한 출발점일수도 있겠고, 아니면 실체의 형이상학이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일 수도 있겠다.
로크의《인간오성론》에 근원을 둔 경험론의 전통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크가 경험론을 주관주의 및 불가지론과 한데 묶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경험에 대한 호소를 하나의 조직된 이론으로서 수립했는데, 그 이론에 의하면 사유를 위하여 마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관념들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참된 성질에 관해서는 영원히 무지한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크는 역사상에 있어서 과학자들의 탐구와 철학자들의 성찰이 각각 독립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공헌한 바가 크다 .
<참고문헌>
1. 존 로크 저, 이재한 역,《인간오성론》, 다락원, 2009.
2. 존 로크 저, 이극찬 역,《통치론》, 삼성출판사, 1983.
3. S. 모리스 엥겔 지음, 이종철‧나종석 옮김,《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문예출판사, 1992.
4. N. 보위, 사이몬 지음, 이인탁 옮김,《사회․정치철학》, 서광사, 1986.
5. 스털링 P. 램프레히트 지음,《서양철학사》, 김태길 외 옮김, 을유문화사, 1996.
6. 쉬퇴리히 지음, 하재창 역,《세계철학사 하》, 배재서관,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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