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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답다 / 황명희

 

 

'연어답다는 연어의 거룩한 삶까지 포장해드립니다'라고 써 놓은 가게 문을 열자 연어들이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 바다를 거슬러 오르던 한 생애를 누군가 경건하게 건져 올려 '연어답다'한 토막난 말로 쟁여 놓은 곳, 냉장실의 붉은 몸 토막에 일렁이는 물결들이 내 눈길을 끌어당긴다. 연어답다의 젊은 주인은 유난히 붉은 살을 집어 들더니 저울에 달아 투명한 랩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치던 연어의 가파른 기억을 단단히 옭아매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투명한 랩으로 단단하게 초장되어 있던 연어를 끄집어내어 연어답다로 토막낸다. 연어답다 속에 얼룩져있던 연어답지 않다가 보인다. 연어답지 않다를 토막낸다. 연어답지 않다에 얼룩져 있는 연어답다가 보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에 출몰하는 바닷물과 냇물들의 밑바닥을 들추어 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 미끄러지는 몸부림을 꽉 움켜쥔 어머니의 쭈글한 손의 내력을 가늠해 보려는 듯이

 

'연어답다'는 바닷물과 냇물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엇갈려 새겨진 탄탄하고 붉은 욕망, 혹은 몸부림의 서사가 기록된 오래된 책일까.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촉감과 가파른 침묵이 '연어답다'로 포장된 붉은 당신의 생애를 찾아 벅꽃 흐드러지지게 핀 산길을 걸어간다. 수천마리 연어 떼가 등 뒤에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벚꽃이 새떼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제26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 부문은 <연어답다> 외 4편을 낸 황명희 시인(56, 대구), 소설 부문은 단편 <우주 라이크>와 <무명과 누명>을 낸 황인선 소설가(31, 경기도 군포)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주 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당선자에게는 시 500만 원, 소설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황명희 시인의 작품을 시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8명의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연어답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고 했다. <연어답다> 외 4편의 시에서 “유희를 뛰어넘는 발랄한 언어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치열한 표현들, 그 이미지를 능숙한 서사의 얼개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면서 “연어가게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 또한 우리 삶과 맞닿아 있어 울림이 작지 않았다”고 했다.

황명희 시인은 “본격적으로 시를 배운 지 두 해만에 (당선작 선정이라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영광이다”라며 그간 시를 쓰면서 도움을 준 강현국 교수, 이학성 선생님, 시 창작 모임 ‘애피퍼니 13기’ 등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시의 싹을 진주인양 캐내어 내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해 준 심사위원 두 분과 <진주가을문예> 주최 측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누구나 사는 동안 한 번 만나는 잊지 못할 사람처럼 찾아온 소중한 시와 오래 동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진주가을문예’는 올해 10월 31일 공모를 마감했다. 시 부문은 144명(952편), 소설 부문은 104명(203편)이 응모했다. 예심 없이 부문별 2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을 봤다. 시 부문 심사위원은 시집 <트렁크>를 펴낸 김언희 시인, 시집 <달 안을 걷다> 를 출간한 김병호 시인(협성대 교수)이 맡았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은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를 펴낸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조선통신사> 를 출간한 김종광 소설가가 담당했다. 시상식은 12월 5일 오후 4시30분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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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물의 기억 속으로 / 최재욱 



기억 속에 돌들을 키우고 있다
대야산 용추계곡을 지나 선유동을 거쳐
영강에 다다르면
깎인 돌들의 표정이 물위에 뜬다
못나고 못난 돌들만 뽑혀가는 영강에
못난 나도 조용히 서 볼만하다
돌이 돌을 품고 그 위로 잔잔히 울던 물살
거품으로 살을 내어주는 산란의 소리가 정겹다
살 껍질들이 만든 한세상
갈대숲과 모래 둔덕의 문명은
수면아래 돌들 표정 속 세상이다
얇은 입술에 달이 뜨고
조용한 숨결 마시며 내가 걷기 시작했지
온유의 젖꼭지를 입에 문 바다는 푸르게 출렁 인다
내 몸을 더듬고 나온 너의 기억
일부는 소실된 다리로 빠르게 둥근 전두엽에 강들을 정리하고
태양마저 기어오르지 못할 망가진 내일이 있다 해도
빈 몸으로 영강에 서보자
벗은 만큼 위로 해주는 물의 기억 속에서
내 눈 가려놓은 한세월과
새벽처럼 일어섰던 욕망의 덫에 걸린 발목들과
홀로 일어서지 못한 지게 같은 은둔의 삶 몇 개 씻고 나면
그제 서야 말 할 수 있다
빈손으로 왔길 망정이지 버리는데 급급할 뻔 했구나
언제부턴가 이곳 영강에서는
유연한 몸짓들이 물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금상] 파밭 경전 / 권용례

파밭에 호미 날로 쓴 노모의 경전을 읽는다
흙 속에 스며든 문장들이 뿌리를 박았다.
빗물을 받아먹고
지각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글들은
파릇파릇 파잎처럼 반듯하고 꼿꼿하다
바람에 펼쳐지는 책의 귀퉁이부터
순식간에 점령하는 잡풀들을 뽑아내는 호미
무엇을 증언하고 싶은 걸까
실뿌리에서 뽑아 올린 한 구절을
닳고 닳은 몽당 쇠판에 또박또박 새긴다
행간 사이에 한숨을 장단으로 넣으며
호미질에 불꽃이 튀는 경전 쉼 없다
정직한 마음을 가르치는 말씀보다
이윤이 왕이 된 세상에서 내내 괴로웠으리라
노모는 가끔 발등이 찍혔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멈출 수가 없는 일필서
이 일은
몸도 마음도 생각도 건강해지는 일이었다
태풍이 몰아쳐도
어깨동무하는 가족들을 살려야 했기에
파밭에 빼곡히 적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골수에 사무쳤다.
희망이 나부끼는 파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고, 무릎 꿇는 밭고랑
햇볕이 폭설처럼 쏟아지는 이 밭고랑이
노모가 살아가는 길이었던 것
땅을 파헤치는 호미 날에 글자들이 운다





[은상] 허밍테이블 / 황명희

 

무학산 오솔길 입구에 허밍테이블이 있다 간판에 허밍 하는 발랄한 여자의 모습을 하얀 바탕에 초록색 선으로 그려놓아 눈길이 간다 무엇을 파는 곳인지 가끔 주인 여자만이 테이블에 앉아 먼지가 일지 않는 무학산 오솔길을 바라보거나 허밍을 하며 무언가를 만지고 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그 후 그 가게 앞에 가면 이상하게도 간판의 균열된 곳에서 초록 허밍이 들려와 귀 기울이게 되고 초록 허밍은 바람의 마디마디마다 허밍으로 돋아나서 잎이 되고 넝쿨이 되어 오솔길을 덮고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빈집에 쌓인 수북한 허밍에 또 허밍을 하는 일 허밍이 허밍을 부르고 또 허밍이 허밍을 부르면 오솔길이 생기고 오솔길 한켠 수북하게 먼지 쌓인 빈집이 보이면 먼지가 불현듯 빈 테이블 위에 오래된 서까래 같은 기다림의 두께를 만든다 목멘 그리움도 아닌데 기다림으로 목이 메고 목멘 기다림도 아닌데 그리움으로 목이 메고 조그만 소리로 불러보는 허밍에는 허밍만이 허밍으로 쌓여가고 여태껏 한 번도 무엇을 파는 것인지 본 적이 없는 허밍테이블 다 저녁 골목길 가로등에는 순서대로 불이 켜져만 가고.

 

가로등 멀리 걸어오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따스한 햇빛이 가게 안을 기웃거리거나 허밍이 오솔길을 데려오는 날 그땐 모르는 누군가가 모르는 누군가를 데리고 허밍을 하며 허밍 테이블에 한 발을 들여놓겠지 주인여자가 허밍을 하며 무언가를 만지고 있고 나는 허밍을 하며 오늘도 허밍테이블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은상] 아버지의 가을 / 박광수

 

성묫길 산을 내려서다가

벼 이삭 서걱 거리는 논두렁을 밟고

해마다 이맘때에 아버지처럼

세상을 한번 둘러보았다

 

해질 녘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우물물을 길어 올려 목을 축이고

고무신을 신은 발등에 물을 부어준 다음

찬찬히 얼굴을 씻었다

 

그가 아들에게 가르쳐 준 말은

겁내거나 서둘지 말고

세상을 한번 쓱 둘러보라는 것 이었다

 

땀에 젖은 삼베수건을 목에 걸고

고단했던 당신의 논둑에서 둘러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쉬운 쓸쓸함이 있었을까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말과 같았고

모자라기 때문에 고마움이 있었다.

아버지의 논은 늘 그만큼 뿐이었고

들에서 돌아와 얼굴을 씻는 그는

언제나 경건한 모습이었다.

 

가난한 어머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고사떡을 다 돌리고 나서

시루에 남아있던 팥고물로 밥을 지었다

팥고물이 섞인 밥에서는 고사떡 냄새가 났다

 

내가 떠도는 이 도시에 주차장에도

해마다 아버지의 그 가을은 내려오고

쓸쓸한 부족함과 고마움이 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서둘지 말고

가꾸어 놓은 논둑을 한번 둘러보듯이

천천히 차에서 내려

오늘의 이 얼굴을 씻어야 한다.

 

겁낼 것도 없다

가을은 누구나 고향으로 가는 때이니

세상을 한번 쓱 둘러보고 가면 그만이다

아끼며 살던 모든 것

 

돌아서서 보면 고마운 것 들이다






[동상] 자전거의 시간 / 문순희


담벼락에 자전거 한 대 기대 서 있다
녹슨 핸들 위에 잡초가 자라고
뒷바퀴의 반은 둥근 뼈대를 꽉 잡고 있다
구불구불 바퀴에 매달려 온 길들
오도 가도 못하고 비에 젖은 채 묶여져 있다
감기다 끊어진 길의 부스러기들
낡은 필름처럼 돌돌 말려 있다
한 때는 탱탱한 바퀴로
아침을 굴리고 점심을 굴리고 밤을 굴리다
꽃을 감고 나무를 감고 땅을 감고 하늘을 감았을 것이다
돌부리에 걸리면
속도를 이기지 못해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헛바퀴를 돌리기도 했던 자전거
먼지를 굴리며 지나온 길을 밀어 내기도 했던,
굴러왔던 생이 균형을 잃고 비를 맞고 있다
버리는 것과 버려진 틈에서
바퀴살에 엉겨 붙은 녹 슨 시간이 저렇게 굴러가고 있다
녹슨 바퀴 사이로 흘러내린 길이 감기는지
바퀴가 잠시 전율한다
비는 추적추적 자전거를 적시고
자전거는 굴려왔던 시간을 적시는 동안
저녁은 그냥 굴러갔다





[동상] 아내의 일기4 / 이국희

 

아내가

속이 곪아 터질 것 같은 사랑을

방금 세탁기에 넣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지난겨울 혹독했던 가난도 다 털어 뒤집어

몇 스푼의 세제로 열두살 딸년의 반항과

지 남편의 주벽이나 무능함을

돌리려고 시작 버튼을 꾹 눌러

이것만 돌리면 다시 시작한단다

자동으로 헹굼 세탁

 

세탁을 마치고 나온 빨래들이

누구랄 것 없이 기진맥진하며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흔적없이 탈수기로 또 한 번

돌렸건만

삶의 무게에 눈물들만 뚝뚝 흘리며

건조대로 끌려가고 있다

 

빈둥대던 베란다에 햇살이 들어왔다

 

나는 가만히 앉아

아내의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동상] 건너기가 두렵다 / 박인자

 

네 생각에

민들레꽃과 질경이 꽃을 놓기로 했어,

 

구름다리 출렁이며

초록구름은 회색 기타 소리 감아 오고

다리 아래 소식 묻기 조심스럽더라고

 

시간이 맨발로 건느는 나무다리에 멈춘

시인은 너무 많이 익었더라고

자신의 붉은 색을 고집한다고 반성했어.

 

곧 떨어질 토마토이면서

고추처럼 농부의 푸른 땀을 기다리기도 한 거야

 

금방 건너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다리

겨울과 계단처럼 멀리 보였어

 

이승과 저승 오락가락 하면서

다리를 못 건너가시는 엄마

 

다리만 건너면 저승인데

저편에서 아버지가 아무리 불러도 안 가시려고

 

가을 다리 난간을 꼭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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