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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 황규관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웃음이 너무 많다 노래는

없고 이파리 한 장 내밀지 못하는

언어가 객차 안에 가득하다

 

이번 차는 등을 돌리자

모험은 건조한 형식이 아닌데

내 몸이 당신의 맥박을 차갑게 하는

이번 차는 내 것이 아니다

행선지가 너무 명확하다

 

진리여 법이여

폐허의 입을 틀어막는 환희여

 

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

우두커니 혼자가 되자

혼자가 되어

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

 

다음 차도 보내고

다음다음 차도 보내고

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

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nefing.com

 

 

22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에 황규관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문학동네)가 선정됐다.

 

백석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창비는 지난 4일 본심 회의를 열고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노동 경험의 핍진성을 존재론적 기원의 한 축에 두고, 다른 한 축에 분명하고 서늘한 자연 사물의 운행 원리를 배치해가는 '시인 황규관'의 서정성이 보물처럼 빛나는 결실"이라며 "나태와 일상을 거부하는 평범치 않은 '발언'이 촘촘히 박힌 이 시집은 한국 리얼리즘시의 한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시가 발딛고 있어야 할 현실과 그 광활한 지평선을 활짝 열어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황규관 시인은 196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등과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나기' '리얼리스트 김수영' 등을 펴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고() 자야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된 상이다. 상금은 2000만원.

 

시상식은 이달 하순쯤 방역 당국의 지침에 맞게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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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 김해선


 내 팔목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어요 나뭇가지 위에는 올빼미가 눈을 뜨고 앉아 있어요 올빼미는 몸에 새겨진 나뭇가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요 문을 지나야 신에게 갈 수 있어요 그 나무가 없으면 절벽 밑으로 밀어버려요 나는 나무에 새겨진 이야기를 믿으며 뿌리마다 짙은 녹색을 새기고 있어요


 안에는 날카로운 모서리와 각이 너무 많아요, 밖이 좋아요 안에서 이미 자리 잡은 입술들의 소리


 나무도 종말을 믿는다고 해요 수십 개의 목을 흔들며 신의 소리를 흉내 내며 선명해지는 흉터를 돌아봐요


 내게 뻗어와요 가슴을 지나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몸을 빨아들여요 올빼미가 노란 불을 켜고 구석구석 비추고 있어요 더 많은 나무들을 불러줘요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비겁해요


 지워지길 기다리며 문이 굴러가요 시간을 놓치고 붉은 독 안에서 숨어 있는 씨앗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색상을 따라 바다가 짙어가요 며칠째 죽어 있다 일어났어요
신들이 녹아요







일몰


  눈동자 속으로 밤과 낮이 들락거려요 틈을 밀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채우고 파도 소리를 끼워보고 얼어붙은 길바닥을 비춰봐요 어둠속을 뚫고 내려가면 일몰의 빛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 빛을 잡고 있는 손자국들이 쌓여 무엇을 말하는지 놓쳐버린 기차 시간이 손자국 아래서 내려오고 있어요 가까이 갈 수 없어요 만지면 이글거려요 불꽃으로 가득 찬 구멍들 목이 없는 동그라미 안으로 빨려들어 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리가 모두 친근해요 날카롭지 않아요


  눈동자는 어디에 있나요...... 가시처럼 뾰족한 꽃들이 말을 걸어요 남아 있는 김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실크 코끼리를 만들고 있어요 붉은 천으로 코끼리 긴 코를 감고 네 개의 다리에는 초록 천으로 신발은 은박으로 씌울 거예요 우리는 가고 있어요 깊은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땅을 밟고 신맛이 돌아요







이미테이션 게임*


  스무 살이 되기 며칠 전 거짓말처럼 나를 낳았다는 남자가 말을 해요 내가 울 때마다 작은 발을 간질이면 ‘사과 견디기 사과 견디기’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웃었다고 해요


  남자는 어린 나에게 매일 ‘사과 던지기 게임’을 보여주고 가르쳤어요 나의 작은 손과 발이 마구마구 사과 던지기 판을 두드렸다고 해요 게임은 무럭무럭 자라나 사과 속에서 싹을 틔우고 기지개를 켜며 사과 향기로 누구를 낳을까 망설이다 ‘사과 견디기’ 오타가 났다고 해요


  나는 스무 살이 되기 며칠 전 긴 머리카락을 사과처럼 돌돌 말아, 사과로 태어난 듯 머리 던지기를 반복했어요 구름 위에 누워 거짓말 단검을 어디에 놔둘까** 고민하다 친구들이 지루하다고 모두 가버렸어요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않아요 나는 지나가요 눈을 감고 있는 눈꺼풀 속에서 작은 심장들이 굴러 나와요 물방울 같아요 서로 부딪쳐요 보이지 않아요 바람이 분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 영화 제목.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더빙


  점점 어두워져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나는 나무 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말을 해요 나무속으로 새들이 내려오면 몇 번이나 인사를 해야 하나요 예절을 알고 싶어요 나무 안에서 작은 사람이 빠져나와요 우리는 멈추지 않아요 거울이 되든지 애벌레로 변하든지 상관없어요 반딧불처럼 깜박거리며 농구대 밑에는 아직도 눈이 얼어 있어요 아이들이 신문지에 불을 붙여 겨울 놀이를 해요 서로에게 불을 던지며 여자가 되고 형이 되고 군산을 찾아요 검은 나무에게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요 그 소리를 입고 싶어요 길을 놓치고 건널목을 몇 개나 지나왔는지 신호를 못 봤어요 우리는 눈 밑에 쌓여 있어요 지금도 자고 있나요 삼킬 수 없어요 어디가 시작인가요 마른 바람 위에 군산을 덧입히는 소리 납작해지지 않아요 등도 달아나지 않아요







가리옷 유다의 변명


  그것은 너의 말이다, 마지막 빵조각을 입에 넣는 나를 보고 느닷없이 말하는 너, 혀 밑으로 숨긴 말 목젖 아래로 밀어 넣는 나의 배반을 알아차린 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그 거짓말 뒤에 숨어 있다 입술 위에 검은 점 하나 붙이고 새 옷으로 바꿔 입는다 오지 않는 너 사라진 너를 찾기 위해 매일 옷깃을 세우고 창문을 닦는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머리는 빗지 않고 창문엔 먼지가 쌓여 있다 나는 너를 태워서 화장시켰다 흰 단지에 담긴 너를 목젖 밑으로 밀어 넣는다 매일매일 밥을 삼키며 새 옷을 입고 새 옷을 찢어버리는 시간을 밀어 넣는다 나무들도 창문을 뚫고 들어오고 싶어 한다 불빛과 함께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많이 놀 수 있다


  봐, 봐, 나였던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팔목에 그림을 그리는 너 생전에는 무덤을 파는 사람, 꿈속에서 팔지를 주워 담는다 천으로 문지를수록 작은 소리가 난다 새들이 박혀 있는 팔지를 옮겨 그린다 너의 팔목은 수시로 나타난다 나를 감는다


  늪이 버려진다


  식탁 위에 가득 쌓인다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당선소감]


  6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길었다. 밤 열 시가 지나도 저녁 빛이 남아 있는 스페인 산골을 걷고, 먹고, 자고 그다음 날 새벽부터 걷고, 먹고, 자고 반복하는 40여 일 산티아고 여정이 나에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뙤약볕을 걸으면서 나를 버리기, 내 안의 것을 비우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는 소망들이 탁탁 찍는 스틱 소리와 함께 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이 글에 대한 절망과 대면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는 나의 글,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나의 글쓰기와 동행하며 걷고 싶었다.
  어느 날 이름이 긴 스페인 산골 마을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나오다 큰 나무 뒤에 있는 낡은 성당과 마주쳤다. 문을 열고 기웃거리다 슬그머니 들어갔다. 금이 간 천장에 흰 회(灰)가 칠해져 있었고 낡은 의자와 습기 찬 바닥에 찬기가 돌았다. 반백의 노수사님과 파란 눈의 젊은 수사님이 알 수 없는 기도문을 반복해서 바치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일하고...... 저녁 기도를 매일 바치는 수도자들처럼, 나의 글쓰기도 남들이 내 글을 읽어주든 안 읽어주든 그런 관심사에서 벗어나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바나나 두 개, 청사과 한 알, 생수병이 든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오후 아홉 시 삼십오 분, 긴 해가 사그라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실천문학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아이들 문자가 여러 개 와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서운함도 절망도 모두 녹아서 하얗게 변한 한 조각 밀떡의 형상이 나의 왼 손바닥 안에 멈춰 있었다. 계속 걷기만 하는 단순함에서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 만난 작은 조각 혀에 닿으면 핏방울이 될 것 같은 형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이해해주시고 끝없이 기다려주시고 용기를 주신 이원 선생님과 이승하 선생님, 최정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 친구 안희연, 김기형, 서기원 신부님과 까미노 위에서 만난 토론토 조지환 베드로 학사님께도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너는 늦었어, 이제 그만해’ 내 안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를 영원히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실천문학’ 시와 ‘신인상’ 시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을 끄집어낸다. 실천문학의 시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한국 시의 영토 어떤 부분을 개척하고 탐사했는가. 또한 실천문학 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아니 어떤 모습일 필요가 있는가. 이와 같은 고민이 2015 실천문학 신인상 시를 선정하는 데 고려되기를 기대하며 투고작들과 마주했다.
 170여 분이 보내준 원고가 모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렸으나 대개의 시 안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이 담겨 있었다. 시의 말들은 성향에 따라 그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었다. 쉽고 편해 보이는 말은 없었다. 선자들은 선정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데에 먼저 합의했다.
  집중적으로 논의한 원고는 세 분의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 <장화홍련뎐> 외 9편, <문신> 외 10편. 이들 원고에는 허투루 쓴 말이 없었으며 따라서 쉽게 지나칠 말이 없었다. 심사자들의 뜻이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견해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세 분에 대한 시각은 비슷했다. 문제는 시 세계가 모두 다르고 그것들이 각자 귀 기울일 만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데에 있었다.
  어렵게 한 분의 시편들에 대한 논의를 멈추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은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했다. 언어가 이룬 세계는 정교하면서도 섬세했다. 그런데 그 세계와 다른 세계의 통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실천문학의 시가 필요한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 아닐까.
  <장화홍련뎐> 외 9편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간혹 들렸다. 그러나 다양한 체험과 유연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넓히려 한 점이 돋보였다. <문신> 외 10편에서는 ‘시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집요한 내면의 탐사와 미지를 향한 모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심사자들은 고민했다. 상반된 개성을 지닌 두 세계 중 어느 하나를 쉽게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실천문학이 선보여야 하는 세계 아닌가. 두 분 모두를 선정했다.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 심사위원 : 김근. 김종훈.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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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지리산 /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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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내 시의 주제는 / 이철산

 

 

 

 

 

 

 

 

 

 

 

강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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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그의 목소리는 피곤하지 않은 고음

 

70년대에 사회적 할례식을 받은 세대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그 어둡고 막막했던 시대의 창공을 섬광으로 채찍질하는 뇌성번개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피뢰침 아래에서 어떤 갚을 길 없는 부채의식과 접선과 그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문학상에 응모된 여러분들의 시편들을, 이른바 '심사'라는 명목으로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새 잊어먹었던 빚을 재촉하는 명세서들을 다시금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투고된 작품들을 여느 문학상 심사에서처럼 진품을 골라내는 보석 감정가의 잔뜩 찌푸린 눈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어느 수준에서 포기하고 읽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침내 내 눈이 황규관의 <해방연서 1>9편을 만났을 때 번쩍 일어났던 시적 광채는 단순히 노동현장 체험을 저당으로 하여서 비슷한 것을 강요하는 것 같은 다름 응모작들을 일시에 빛 바래게 했다.

 

'나는 노동자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소위 노동문학이나 민중시의 상투형들은 이번 응모작들 가운데 일정한 시적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황규관은 그것을 벗어나고, 그러나 그것을 우회하지 않고 자신의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돋보인다. 물론 그의 목소리는 고음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잘 조절된, 말하자면 구조를 가진 소리이며, 그래서 듣기에 피곤하지 않다.

 

사람을 금방 피곤하게 하는, 글로건화된, 이를테면 '투쟁', '해방', '노동'과 같은 완강한 말들을 그가 영락없는 시속에 녹여내는 것은, "내 하루의 노동이/강물에 몸던져 빛나는/한웅큼의 햇살처럼 벅찰 때/그대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해방연서 1)라는 구절 아니 "진달래는/오래 오래 운 눈빛처럼 더욱 붉고"(내 조국이 식민지일 때)라는 구절에서 입증되듯이 세상과 사물에 대한 그의 빼어나 서정적 시선 탓이리라.

 

심사위원 전원은 제6'전태일문학상'을 황규관으로 하여금 감당하도록 하는 데 유보없이 동의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이 흉흉한 90년대에 '새로운' 노동 시인(나는 그를 그냥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철산의 <야생 황기>7편을 가작으로 상정한 것은 어쩌면 그가 더 길게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신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는 시인의 생애를 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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