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흙 묻은 손 / 이준관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버려진 땅을 일구어 사람들은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뜨개질을 하듯
심은 옥수수와 콩과 고추들.
꿀벌이 날아와 하늘로 꽁지를 치켜들고
대지의 꿀을 빨아들이고,
배고픈 새들은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먹고 간다.

아파트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제 가슴의 빈터를 메우듯
호미를 들고 와 흙을 북돋워주고 풀을 뽑는다.
옥수수 잎에 후드득 지는 빗방울은
사람들의 핏방울로 흐르고,
저녁에는 푸른 별 같은
콩이 열린다.

흙 묻은 손으로
옥수수와 콩과 고추와 나누는
말없는 따뜻한 수화.
사람들의 손길 따라
흙은 선한 사람의 눈빛을 띤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흙 묻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흙에서 태어난 벌레들은
밤늦게까지 식구들의 옷을 짓는
재봉틀 소리로 운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겨울에는 시리고 적막한 무릎을 덮는
무릎덮개처럼
눈이 쌓인다.
사람들이 일군 마음의 밭에.

 

 

 

천국의 계단

 

nefing.com

 

 

계간 시와 시학사가 주관하는 제3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이준관(56) 씨가 선정됐다. 수상작 '흙 묻은 손'세상의 슬픔과 따뜻함을 함께 보는 '순한 사람의 눈빛'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728x90

 

 

1. 수상자 : 이준관

 


2. 수상작품 :  「가을 떡갈나무숲」 외 5편

 


「가을 떡갈나무숲」

떡갈나무숲을 걷는다. 떡갈나무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婚禮,
그 눈분신 날개짓소리 들리 듯 한데,
텃새만 남아
山 아래 콩밭에 뿌려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 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같다.
떡갈나무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山짐승이 혀로 핥아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山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거야, 잎을 떨군다.

 

 

 

천국의 계단

 

nefing.com

 

 

 


3. 심사위원 : 장 호(시인), 김종길(시인, 고려대 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4. 심사평

 

나는 먼저 김달진을 머리에 그리며 여섯 편의 시편들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 일은 도로에 그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달진에게서는 인간 삶의 땟국이 씻겨져 가뭇없는데 이즈음 시는 오히려 그것을 시의 알갱이로 잡아내려 들고 있으니 거기 그런 흔적인들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나대로 생활현장이 그대로 작품에 노정되어서는 이건 정 김달진과는 연줄이 닿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후퇴했다. 그러고보니 나름대로는 절반 숫자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거론된 분들이 모두 그만한 연조를 지녀 저마다의 빛깔로 압도해오는 터에 어느 한 작품, 어느 한 사람을 집어내기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이준관씨의 10편은 기복이 없이 모두 어느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연갈이를 한 작품은 한결 투명한 대신, 그렇지 않은 것은 또 그런대로 여태도 끓어오르고 있는 열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소재를 이모저모로 돌려대어가며 구워나가는 장인의식이 몸에 배어있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어느 거나 설익은 데가 없다. 소재를 그대로 배설해내는 우를 범하는 법이 없다. 어떤 상이든 꿀꺽 삼켜 그것을 이 시인의 내면세계라 할 따스한 심상풍경으로 차분하게 깔아보여주는 기량이 돋보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장기인 듯이 느껴졌다.
카자르스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독주곡을 하루에 한 곡씩 오십 년 이상을 거르는 법이 없이 탄주했다고 들었다. 모두 여섯 곡 밖에 안되는 것을 지루한 줄도 모르고 평생을 되풀이한 셈이다. 그에게는 그 낡은 것이 오히려 새로웠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즈음 듣기 힘든 말로 고전적 훈련이 몸에 밴 것이다.
이준관씨의 작품에 늘 안심이 가는 것도 그런 독자적인 훈련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章湖)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