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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 정진규

 

 

통도사에 갔다 추녀와 추녀들이 서로 밀어 올리고 섰는 허공들 뒤뜰 깊게까지 따라갔다가 무작정 그 허공들 받들고 서 있는 무작정無作停 한 채를 보고 있다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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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9회 박두진문학상 심사는, 예심에서 추천된 여섯 분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최근 발표한 시편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진행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량감 있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정진규(鄭鎭圭)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커다란 스케일과 함께 보편적인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고, 시형에서도 박두진 산문시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진규 시편이 보여주는 후기 시학적 모드는, 줄글 형식의 단형 산문시 안에 존재의 근원과 미시적 감각을 통합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지향은, 자연 사물이 내뿜는 리듬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을 정도로 깊고 예민한 몸의 리듬을 담고 있다. 우주적 리듬과 자연 사물의 움직임들을 세밀하게 발견하면서 근원적 관조의 미학을 완성하려는 몸의 감각들은, 한결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모습을 한 채 모나고 날카롭고 파열된 우리들 생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비유적 형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그들 스스로 계시적 이미지가 되어 활달한 자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진규 시인 특유의 직관과 사유에 의해 마련되고 확장되어온 이러한 상징체계들은 한국 시에서 이른바 ‘메타시편’의 차원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가 되면서, 동시에 심미적 감각과 철학적 인식이 통합된 사례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진규 시인 고유의 미학이 이처럼 고요한 수런거림의 여운을 주고 있는 것도, 이러한 감각과 인식을 심미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시인의 역량과 밝은 눈 때문일 것이다. 거듭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정진규 시인만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본안심사위원 >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대한민국예술원 원장)

김용직(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가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조남철(문학평론가,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혜산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충빈(시인, 혜산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 간사, 안성문인협회 고문)

 

< 예심 심사위원 >

유성호(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오문석(조선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신용목(고려대학교 강의교수, 시인)

임충빈(시인, 혜산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 간사, 안성문인협회 고문)

 

 

 

모르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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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혜산 박두진문학상 수상자, 정진규 시인

 

안성시와 혜산 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는 제9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정진규(鄭鎭圭,74, 전 월간 현대시학 주간) 시인이 선정되었다.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고 계승·발전하는 취지로 안성시에서 주최하는 이 상은 그동안 제1회 신대철, 2회 천양희, 3회 최문자, 4회 최동호, 5회 박라연, 6회 마종기, 7회 강은교, 8회 김종철 시인을 시상하였고, 이번에도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정진규 시인을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문예비평가, 대한민국예술원 원장,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문학평론가, 시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섭(시인, 가천대 명예교수),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 직전 총장, 혜산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 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임충빈(시인, 안성문협 고문, 혜산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 간사)이다.

 

정진규 시인이 보여주는 시학적 모드는, 줄글 형식의 단형 산문시에 존재의 근원과 미시적 감각을 통합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지향은, 자연 사물이 내뿜는 리듬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을 정도로 깊고 예민한 몸의 리듬을 담고 있다. 우주과 자연 사물의 움직임들을 세밀하게 발견하면서 근원적 관조의 미학을 완성하려는 몸의 감각들은, 한결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모습을 한 채 모나고 날카롭고 파열된 우리들 생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비유적 형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상작으로 수상작으로 뽑힌 무작정 9편의 경우 고유의 미학이 이처럼 고요한 수런거림의 여운을 주고 있고 감각과 인식을 심미적으로 구축하는 시편들이다.

 

시상식은 시상식은 10 25()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안성문예회관에서 제14혜산박두진문학제 때 있으며 상금은 일천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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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純金) / 정진규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 손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의 금거북이와 금열쇠를 가져가느라고 온통 온 집안을 들쑤셔놓은 채로 돌아갔다 아내는 손님이라고 했고 다녀가셨다고 말했다 놀라운 비방(秘方)이다 나도 얼른 다른 생각이 끼여들지 못하게 잘하셨다고 말했다 조금 아까웠지만 이 손재수가 더는 나를 흔들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나의 행운을 열 수 있는 열쇠의 힘을 내가 잃었다거나, 순금으로 순도 백 프로로 내가 거북이처럼 장생할 수 있는 시간의 행운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님께서도 그가 훔친 건 나의 행운이 아니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징의 무게가 늘 함께 있다 몸이 깊다 나는 그걸 이 세상에서도 더 잘 믿게 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상징은 언제나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금방 우리를 등돌리지 못하게 어깨를 잡는 손, 손의 무게를 나는 안다 지는 동백꽃잎에도 이 손의 무게가 있다 머뭇거린다 이윽고 져내릴 때는 슬픔의 무게를 제몸에 더욱 가득 채운다 슬픔이 몸이다 그때 가라, 누가 그에게 허락하신다 어머니도 그렇게 가셨다 내게 손님이 다녀가셨다 순금으로 다녀가셨다

 

 

 

도둑이 다녀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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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공초문학상은 운영세칙상 20년 이상의 시단 경력과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뽑게 되어 있다.이것은 중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하되 반드시 작품에 주어지는 문학상임을 못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나라 시문학상 가운데 가장 품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상의 비중에 걸맞는 시인들의 대상 작품을 엄정하게 가려 뽑고 다시 토의를 거듭한 끝에 정진규의 시 純金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純金은 정진규가 오늘의 시단에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산문시의 한 전범이다. 짜임새가 빈틈이 없을 뿐 아니라純金으로 표상되는 물질적 가치관과 집에 도둑이 들어 잃게 되는 상실감 사이의 시대적 상징의 무게가 밀도 있게 실려 있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화자의 체험이 도저한 시적 사유와 만나고 다시 사물과 사건 속에서 작은 우주를 형성해나가는 문채(文彩)는 생각의 틀을 한 차원 고양시켜준다. ‘純金의 값이 이처럼 시로 매겨지는 일도 바로 저 공초(空超)시의 무소유의 세계와 맞닿고 있음이 아닌지? 이 작품으로 상의 중량감이 더해질 것이다.

 

- 심사위원장 이근배(재능대 교수·공초숭모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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